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16
316화. 그림자 군단 (1)
쩌저적.
타이니가 지목했던 그곳.
이미 사방 3km 반경의 나무들이 모조리 뿌리째 뽑혀 공터로 변해 버린 숲의 허공에서 검은 균열이 나타나자.
“цоычт цтыйд!!!”
“пл!”
쿵. 쿵.
타이니 일행의 뒤쪽에서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던 1만의 오크가 일제히 무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는, 엘프족의 최정예인 엘븐나이트는 아닐지라도 어엿이 엘븐하임과 대수림을 지키던 5만에 가까운 엘프 레인저가 일제히 활을 겨누기 시작했다.
동시에.
“에스티나!”
타이니의 고함을 들은 에스티나가 한 손을 치켜들자, 녹색의 기운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그 신호와 함께.
그들이 있는 곳에서 아득히 먼 동쪽에서부터, 숲 전체를 울리는 허밍 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
엘븐하임에서 시작된 엘프들 수만 명의 노랫소리가 3일 거리나 되는 이곳에서 들린다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었지만.
“♬♪~!”
“♪♪♬~!! ”
5만에 가까운 엘프 레인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노랫가락, 요정어의 주문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허공의 균열이 점점 더 커져 가는 가운데, 엘프들의 그 노랫가락이 극치에 다다른다 싶던 어느 순간.
– ♬♪~♪♪♬~!!(어머니 세계수의 뜻이여, 이곳에 임하소서!!)
번쩍!
엘프들의 고함과 동시에, 아득히 먼 거리의 상공에서 녹색의 성광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내 그 성광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더니, 그들이 있는 공간 전체에 아늑한 빛을 뿌렸다.
– 아아아아아아아아!
‘세계수…….’
타이니가 월랑과 함께 만난 적 있던 그 신화적 존재를 떠올리는 순간.
당시에 그가 느꼈던 형언할 수 없는 따뜻한 의지가 주변을 휩쓸며 오크와 엘프들의 전신에 힘이 차올랐고, 점차 커지던 균열이 주춤하기 시작했다.
“……됐어.”
“여기까진 예상대로.”
타이니와 에스티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마역의 마기가 침습해 오는 것을 막던 세계수의 권능이, 잠시간 이 공간에만 집중된 것이었다.
그 대가로 대수림의 침식이 조금 빨라지겠지만, 지금은 그런 후유증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이것을 믿고서 성물이라도 지원해 주겠다는 검제의 제의를 거절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 과연 어떤 놈들이 튀어나올까.
모두가 균열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가운데.
파지지지직.
잠깐 주춤하던 균열이 강렬한 파열음과 함께 한순간에 확장되며, 타원형의 거대한 차원문으로 변했다.
그리고 곧이어.
자욱한 검은 안개가 폭발적으로 전장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용사, 크롬벨이 튀어 나간 것은 그 직후였다.
“탐욕이다!”
타이니를 비롯한 모두에게 상대해야 할 적의 정체를 알리는 크롬벨의 성검에서 찬란한 성광이 피어오를 때.
– 역시……
– 변수가 있다.
– 하지만…….
– 그래 봤자다.
마치 한 존재의 것인 양 연달아 이어져 나오는 영파들이 있었다.
균열을 주시하고 있던 모든 이들이 저 검은 안개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순간.
자욱이 뻗어 나오던 검은 안개가 갑자기 수만 개로 갈라지며, 제각기 인간 크기의 작은 덩어리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는 모두의 머릿속에, 용사 크롬벨이 사전에 말한 정보가 떠올랐다.
– 탐욕의 군세는 그림자 악마의 군단.
– 그 정예 중 대다수는 상대의 모습을 취해 특성을 분석하고 흉내 낸 뒤 마족 본연의 힘까지 더해 적을 압살하는 도플갱어들이죠.
– 그 군단이 세상 곳곳에 퍼진다면, 가장 까다로운 적이 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그 전에 위치를 특정하고 잡아낼 수만 있다면, 승산은 있습니다.
– 아니, 차고 넘치죠. 우리에겐 강림 위치를 특정한 이후 그림자 군단이 나오는 것이 최상의 경우입니다.
그 마지막 말은 이미 이뤄지고 있었다.
광휘의 기사가 균열의 예정지를 알아냈고, 그림자 악마들이 숨을 만한 그늘을 모두 치워 놓은 공터에 세계수의 권능까지 쏟아지는 상황.
– 끼에에에에에에!
– 크롸롸롸롸롸롸!
덩어리로 변한 안개 중 크기가 작은 것들은 세계수의 권능에 닿는 즉시 녹아내렸고.
곧바로 녹아내리지 않은 그림자 악마들마저, 그 파마(破魔)의 권능 아래 형태를 바꾸는 것이 늦어지고 있었다.
– 이길 수 있다.
전의가 치솟아 오른 오크&엘프 연합군의 입에서 동시에 고함이 터져 나왔다.
“변신을 끝내기 전에 없애!”
“죽여!!”
오크 전사들의 무기와 엘프 레인저들의 화살이 특정한 형체를 갖추기 시작한 그림자들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할 때.
콰콰콰콰콰콰콰!
콰아아앙!
그 중심에서는 크롬벨의 성검, 포이나에서 뻗어 나온 성광이 그중 가장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는 ‘스물하나’의 안개 더미를 묶어 가고 있었다.
당장은 일곱의 군단장과 그 부관 열넷. 법칙처럼 정해진 그 악마급 마족들이 목표였다.
이능 연계, 신성력 극대화.
엑소시즘, 극멸(極滅).
“부정한 것들을 지옥으로!!”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네 가지 기운이 일순간 새하얀 광원으로 변하며, 그 스물한 개의 그림자에 그대로 쏟아지고.
– 캬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익숙한 사람의 형태로 변한 그 마족들이, 거친 기운을 뿜어내며 그 빛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웅.
콰콰콰콰콰콰콰.
일순간 충돌하는 두 기운과 이어지는 충격파.
‘크……!’
그 순간,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아악!”
“막아!”
세계수의 성광에도 녹아내리지 않은 7단계 초월급의 그림자 마족들을 필두로, 6단계급 마족들이 각기 엘프와 오크들의 모습으로 변해 학살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믿겠습니다, 루나 양.’
그녀와 남은 병력만으로는 힘들겠지만, 당장은 계획대로 행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크롬벨의 신경은 온전히 낯익은 모습으로 변신한 악마급 마족들을 향해 집중되었다.
그런데.
‘내가 여덟, 에스티나가 넷, 타이니가 아홉……?’
스물하나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수가 검은 머리에 워해머를 든 기사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 보이자, 크롬벨의 얼굴이 미미하게 찡그려졌다.
심지어 그중 탐욕의 일곱 장군으로 추정되는 특출난 개체 넷이 타이니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으니.
‘내가 아니라……?’
그것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그리고 그 덕에 생각해 두었던 계획도 살짝 비틀어지고 말았다.
‘이런 젠장.’
하지만 그런 감정에 휩쓸릴 틈은 없었다.
스물한 개체의 악마급을 동시에 묶어 놓는 것은 전성기의 힘을 모조리 회복한 그로서도 힘든 일이었으니.
“크으으으.”
“제법.”
“인간이…….”
“하지만, 어림없다.”
크롬벨의 모습을 취한 마족들이 시꺼먼 마기가 섞인 에너지를 토해 내는 순간, 극멸의 힘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순간, 그런 마족들의 머리 위로 노을빛 재앙이 강림했다.
번쩍!
콰아아아아아앙!
그 일격은 타이니의 최종기인 빅뱅은 아니었다.
근거리에서 악마급 마족들을 묶어 놓기로 했던 크롬벨을 배려한 유성 떨구기.
하지만 빅뱅이 아니라 해도 그것은 엄연히 전생에 괴력의 기사가 구사하던 필살기였으니, 그 파괴력만큼은 충분히 압도적이었다.
노을빛 파멸의 구체가 악마급 마족을 뒤덮는 순간.
“끄아아악!”
– 어떻게, 인간이……!
흉내 낸 대상의 방어력까지 반영한 것인지, 탐욕의 장군 하나를 포함해서 에스티나의 형태를 한 악마급 마족 넷이 가장 먼저 터져 나갔다.
그리고 크롬벨의 형상을 한 장군 둘과 악마급 마족 여섯도 상당한 타격을 받은 듯 검은 피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튕겨 나가는데.
그중 하나는 딱 보기에도 회생불능으로 보일 정도였으니, 괴력의 기사가 가진 최강의 일격은 충분히 그 이름값을 한 셈이었다.
하지만 문제라면.
“우오오오오오!”
“저놈이 운명의 변수다!”
“죽여!”
타이니의 모습을 취한 마족 아홉은, 낭패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그 재앙을 뿌린 본체(?)인 타이니를 향해 하나의 낙오도 없이 달려들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 순간 크롬벨의 가슴속에 일어난 충동은 타이니를 외면하고 실리를 취하라고 유혹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돕겠……!”
극멸을 사용한 탈력감을 한순간에 이겨 내고 억지로 신체를 가속시킨 크롬벨은 타이니를 돕기 위해 재빨리 뛰어들려 했다.
그런데.
“흉내 낸 놈들은 각자 맡아!!!”
정작 그 당사자는 다시금 노을빛 서광을 두른 채 분신(?)들을 향해 마주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타이니가 먼저 도움을 마다하니, 크롬벨은 가슴속 충동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타이니는, 눈앞에서 돌진해 오는 자신과 똑 닮은 괴물들을 보며 크롬벨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 그림자 군단, 특히 그중에서도 초월급 이상의 마족들은 무조건 전멸시켜야 합니다.
– 의태한 놈들이 본체를 잡아먹고 나면 더 이상 신성력도 통하지 않고 구별해 낼 방법도 없습니다.
– 고대 마계 대전에서는 인류 최강의 영웅 중 하나로 둔갑하고 있던 악마급 마족 하나 때문에 연합군 전체가 괴멸의 위기에 몰린 적도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잡아먹힌다는 상상은 해 본 적도 없고.
‘한 놈도 살려 보낼 생각 없어.’
크롬벨이 이전에 했던 말대로, 이 균열에서 그림자 군단이 튀어나온 것은 최상의 경우였다.
지금 이 전장에 모여 있는 연합군의 간부라고 해 봤자 자신과 크롬벨, 에스티나, 루나뿐인 데다가.
‘자신 있지?’
– 컹!
자신과 월랑의 소울 사이트라면 혹시나 숨어든 도플갱어가 있다 한들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그러자면, 눈앞에서 자신의 유성 떨구기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는 저 빌어먹을 마족들을 모조리 처리해야겠지만 말이다.
– 악마급 도플갱어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이 세상의 것은 딱 세 가지뿐입니다.
‘초월무구, 정령, 그리고 신성력.’
다행히도 자신에게는 그중 두 가지가 있었다.
그러나.
우우우우우우웅.
콰콰콰콰콰콰콰.
가속된 의식 속에서 일견하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이 느껴지는 기세들.
암흑 오러에 노을빛이 반쯤 섞인 아홉 줄기 유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면으로 부딪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자신의 유성 떨구기에 각기 다른 저주나 이상한 속성까지 더해진 공격들.
얼핏 보는 것만으로도 암흑, 독, 약화, 노화, 등등.
거기에 더해 스치는 순간 전부 폭발시켜 버리겠다는 의념과 유성 떨구기의 고유한 마나 패턴까지 고스란히 느껴지자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그그그그그그.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그 모든 기운이 피부가 저릿저릿하도록 느껴지고 있었으니.
‘기술을 보여주자마자 완벽히 따라 하고, 거기다 자기 속성까지 더한다고? 하…….’
마음 같아서는 저것들이 과연 빅뱅도 개량해 낼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따라올 후환을 감당할 수 없을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장은 이 순간을 극복하는 것이 먼저였다.
‘정면은 안 돼.’
그 안에 담긴 마나의 패턴과 세세한 의념까지도 완벽하게 구현된 기술들.
아무리 자신이 녹턴과 정령 합신을 쓴다 해도.
‘두 번까지는 어찌어찌 상쇄해도, 세 번째에는 가루가 된다.’
하지만 놈들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제대로 내 흉내를 냈다면 기력 소모가 적지 않을 것이다. 메테오 스트라이크는 원래 그리 고안되었으니.’
견적이 나오는 순간, 이미 가속하고 있던 그의 몸에서 마치 영혼이 분리되듯 분신이 튀어나왔다.
이내 그 분신이 그대로 노을빛 유성으로 변해 마족들을 향해 뛰어든 순간.
타이니의 본신은 그 유성 아래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그 직후.
꽈아아아아아아앙!
꽈아아아아아앙!
쾅!
콰아아앙!
노을빛 유성 한 줄기와 아홉 줄기 검은 유성이 부딪치고, 연달아 엄청난 충격파와 후폭풍이 전장을 강타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우르르르르르르릉.
사위를 휩쓰는 폭풍과 지진이 전장의 혼란을 부추길 때.
“фто фтовш!?”
“♬♪!”
일순간 전장의 흐름을 멈춘 그 충돌의 한가운데에서는, 타이니의 시체(?)가 노을빛으로 흐려지며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에 타이니의 얼굴을 한 마족들은 동시에 입을 길게 찢으며 살기 어린 기괴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속았……?”
“우리가?!”
그리고 그때,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이 그들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왔다.
새하얀 머리의 거인이 노을빛 서광이 서린 망치를 휘두르는 것으로.
꽈아아아아앙!
“끄, 끄륵!?”
타이니로 의태한 아홉의 악마급 마족 중에서도 가장 강한 축에 속하던, 탐욕의 일곱 장군 중 하나로 추정되는 마족이 일격에 그대로 짓이겨졌다.
앞서 타이니의 유성 떨구기를 간접적으로나마 얻어맞은 충격과 자신들이 같은 기술을 사용한 직후의 경직을 회복하지 못한 대가였다.
하지만 그 대가를 치른 것은 타이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크…….”
무리하게 그림자 도약까지 써서 기습을 감행한 탓에, 한 대도 맞지 않은 상태임에도 입가에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치러야 할 대가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 죽어!
– 죽어!
– 죽어라!
사방에서 녹턴과 똑같은 형태의 워해머들이 이글거리는 검은 노을빛 오러를 싣고 그에게로 쏟아졌다.
심지어 남은 여덟 마족의 뒤에서 일제히 튀어나온 분신들까지 더해져, 총 열여섯 개의 워해머가.
‘오러 분신까지?’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만, 그대로 맞아 줄 수는 없었다.
내상을 입은 타이니가 필사적으로 녹턴을 들어 올리는 순간.
그의 발밑에서 거대한 은빛 늑대가 솟구치며 그대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