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17
317화. 그림자 군단 (2)
콰아아아앙!
“큭!”
상승하는 순간 위쪽에서 떨어져 내린 망치 세 방은, 녹턴을 들어 올린 채 그대로 몸으로 막아 낼 수밖에 없었다.
월랑의 움직임은 충분히 빨랐지만 애초에 사방, 아니 십육 방을 점유하고 쏟아져 들어오는 공격을 모조리 피할 수는 없었으니까.
우드드득.
골이 울리고 내장이 흔들렸지만, 충분히 감내할 만한 타격이었다.
그나마 아니무스를 장착한 양어깨를 들이밀고 녹턴을 휘두르며 절묘하게 그 충격을 흐트러트렸기에 이 정도로 그친 것이었다.
쿨럭.
입가에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타이니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해머를 쓰려면 일격에 목숨을 걸어야지, 새끼들.’
괜한 잡생각을 떠올려서 통증을 달래며 속도를 높였다.
지금은 허공에서 잠시나마 충격을 회복할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중요했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뿐.
“어딜!”
“잡아!”
자신과 똑같은 얼굴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적들을 보는 순간, 표정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X발!!”
난 원래 하늘 못 나는데!?
각자 날개를 펼치거나 마법의 기운을 휘감고 쫓아오는 적들의 모습에 치가 떨렸다.
월랑도 없는 것들이, 흉내를 내려면 철저히 낼 것이지!
‘순 자기들 필요한 것만…….’
온갖 짜증이 휘몰아치는 와중에도 타이니는 월랑과 함께 그대로 허공을 향해 솟구쳤고.
꽈르르르릉.
그와 똑같이 생긴 마족들이 폭음을 동반하며 그 뒤를 번개처럼 따라붙었다.
정작 자신은 다뤄 본 적도 없는 벼락이나 바람 등의 속성을 휘감고 따라오는 적들은 분명히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충분해.’
급박하게 쫓기는 상태에서도, 타이니의 감각은 뒤를 쫓아오는 적들이 품은 힘을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하고 있었다.
‘마나나 마력을 상당히 소모한 것은 서로 마찬가지.’
거기다 타격도 꽤 많이 받았다.
이제 유성 떨구기 이상의 큰 기술은 쓸 기력도, 시간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정령술사로서 8단계, 스피릿액셀의 경지에 오르면서 더욱 강력해진 타이니의 육체는 이제 자신조차 측정하기 힘든 힘을 품고 있었고, 지금은 정령 합신으로 그조차 증폭된 상태다.
거기다 그에겐 월랑까지 있으니.
‘계속 따라와라.’
하늘 위로 솟구친 그의 몸이 그대로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순간.
“컹!”
월랑이 스스로 올라갈 수 있는 고도의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신호를 보내 왔다.
‘지금!’
그리고 그 즉시, 월랑과 그의 몸이 아래로 반전했다.
그 순간 보이는 것은 개체 간의 속도 차이에 따라 서로 떨어진 채 그의 꽁무니에 붙은 마족들.
소름 끼치게 자신과 닮은 적들의 얼굴을 보며, 타이니는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그의 금속 부츠, 바람의 지배자가 푸른빛을 발하더니, 7서클의 마법 칼날 폭풍(Blade Storm)을 쏟아 냈다.
콰콰콰콰콰콰콰.
하지만 일주일이라는 긴 쿨타임을 가지는 대마법, 허공을 광범위하게 뒤덮는 그 바람의 칼날들은 적들에게 치명타를 입히지 못했다.
“푸하하하하!”
“크르르륵.”
“가소롭다!”
쫓아오는 적들은 모두 8단계, 악마급.
더구나 한 개체에게 집중된 것도 아니고 광범위를 휩쓰는 7서클의 마법은, 그들의 몸에 생채기 수준의 상처만 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생채기만으로도, 개체 간의 능력 차에 따라 놈들 사이의 거리가 조금 더 확실하게 벌어졌다.
마치 반전한 타이니의 꽁무니를 따라 줄을 서듯이.
‘이 정도면 충분해.’
다시 한번 의식을 가속한 그는, 느려진 시간 속에서 마주 미소 짓는 적들의 모습을 살폈다.
자신의 얼굴로, 귀밑까지 찢어진 입을 벌리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는 놈들.
도플갱어라고 했던가?
– 도플갱어는 일순간에 상대하는 적의 특성을 분석하고 그 모습까지 그대로 흉내 냅니다. 상대를 잡아먹지 않아도 전투 기술 정도는 보는 순간 그대로 따라 하고, 마족 본연의 힘을 더해 개량까지 하죠.
– 그리고 적을 살해한 후에는 통째로 잡아먹고, 완벽히 그 대상인 척하며 적진에 잠입합니다. 그 변신은 금실 좋은 부부라도 눈치채지 못하고, 신성력으로도 구별하지 못합니다.
– 심지어 까다롭게 주인을 선택하는 초월무구조차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크롬벨의 그 말은, 마수병단과는 달리 한 가지 종류의 마족으로 구성된 이 그림자 군단의 위험성을 잘 알려 주고 있었다.
하지만.
‘날 흉내 낸 게 네놈들의 실수다.’
타이니는 자신이 있었다.
놈들이 전투 기술을 따라 하는 것을 넘어 개량까지 한다는 것은 이미 확인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괴력의 기사가 최강이라 불렸던 것은 특별한 기술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지금도 빅뱅을 제외한 그의 전투 기술들의 핵심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힘과 속성을 모은 일격을 영혼을 다해 후려갈기는 것이 전부.
그것은 빅뱅의 이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유성 떨구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 그 과정에서 나만의 감각이 필요하긴 하지만.’
특별한 비기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전투 기술들도 마찬가지.
상대의 공격을 흘려 내는 요령 따위는 관심 없다.
힘이나 방향을 세심하게 조절하는 기술도 없다.
자신이 아는 것은 오직 우직하게 타격을 버텨 내고, 몸을 던져 적을 때려 부수는 방법뿐.
그 밖의 잔기술이야 어디선가 봤던 걸 필요할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흉내 내서 쓰면 그만이니까.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그가 최강이라 불리는 것은 인간의 수준을 한참이나 초월한 힘과 마나 감응력 때문이지, 결코 기술 때문이 아니었다.
거기다 지금은 아니무스로 증폭된 육체의 힘이 정령 합신으로 또 한 번 증폭되었고, 월랑의 무게와 중력의 가속이 더해진 상태에서 녹턴까지 들고 있다.
‘과연 네놈들이 내 힘을 어디까지 흉내 낼 수 있을까?’
내 육체는 악마 귀족들의 육체마저 확실하게 능가했을까?
과연 대상의 모든 것을 흉내 낼 수 있다는, 그리고 능가할 수 있다는 악마 귀족들의 한계는 어디일까?
타이니는 그 궁금증을 모두 담아 녹턴을 힘껏 휘둘렀다.
그러자 기대했던 대로, 그의 꽁무니를 따라온 마족들은 적에게 정면으로 맞섰다.
그의 전투 방식 그대로 타격을 우직하게 버텨 내려는 듯 몸을 내던지면서.
그의 얼굴을 한 채 찢어진 웃음을 보이면서.
– 악마 귀족과 정면으로 힘을 겨루겠다!?
– 가소롭구나, 인간!
쏟아져 오는 영파에 육체와 영혼을 짓누르는 힘이 스미어 있는 것을 보니, 저들 중 몇은 피어의 권능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타이니는 그런 놈들을 비웃었다.
‘X신들.’
거대한 워해머를 들고 적을 향해 돌진하면서, 다른 수법에 힘과 정신을 분산하다니.
뭐, 그만큼 힘겨루기에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만.
‘감히 나를 상대로?’
타이니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감과 동시에 녹턴이 번개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콰콰콰콰콰콰콰쾅!
달려들어 오던 마족들이, 순식간에 신체의 일부가 짓이겨진 채로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꽈르르르르르릉.
그 직후에 퍼져 나간 충격파가 주변의 구름을 사방으로 흐트러트리며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를 퍼트렸다.
“커흑!”
– 어, 어떻게!?
“푸억!”
– 어떻게 인간이!?
“크르륵.”
– 이럴 수가!
허공에 검은 피를 흩뿌리는 마족들의 당황한 영파가 울려 퍼질 때.
월랑을 탄 타이니의 몸은, 이미 그중에서도 가장 약해진 마족의 머리 위에 있었다.
“고작, 마족 따위가!”
쾅!!
콰드드드득.
한순간에 분쇄되는 육체.
또 하나의 악마급 마족이 그렇게 허망하게 허공에서 스러졌다.
– 게로인!
– 게로인! 젠장!
– 빌어먹을, 게로인의 복수를!
그 순간 기세가 확 바뀌는 나머지 마족들.
분명히 각기 받은 타격도 만만치 않을 텐데, 남은 일곱의 마족이 동시에 거칠게 마기를 움직이며 그를 향해 돌진해 왔다.
피식.
– 다 똑같은 놈들인 줄 알았는데, 이놈이 특별히 인기 많은 놈이었나 봐?
단순히 음성으로 도발하기에는 너무나도 급박한 상황.
음파가 전달될 만한 짧은 틈을 다시 쪼갠 순간의 시간 속에서, 타이니가 보낸 영파가 마족들에게 와닿았고.
그것은 마족들이 그에게 더욱 거칠게 달려들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 네놈이!?
– 찢어 죽여!!
그리고 타이니는 그 모습을 보며 내심 웃고 있었다.
지금 놈들은 예상치 못한 실패로 곤경에 몰린 상황.
그런 상황이라면 사소한 도발도 극도의 흥분을 일으키기 마련이라.
‘바라던 바다.’
정령 합신에 월랑의 현신까지 유지하는 것도 이제 슬슬 한계에 다다른 마당.
조금 전부터는 마나가 회복되기는커녕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계속 소모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나.’
타이니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아니, 애초에 부족한 전력으로 차원문 하나를 틀어막겠다 했을 때부터 이 정도 무리는 예정된 수순이었으니.
그나마 모든 환경이 맞아떨어진, 극상성으로 초전을 압도하기 시작한 지금.
‘아예 끝장을 본다.’
결심이 서는 순간, 타이니의 몸이 환영처럼 흐려지더니 7개로 나누어져 각각 달려드는 마족들의 정면에 나타났다.
하나의 본신과 여섯 개의 분신.
– 아닛!?
그러자 그와 똑같이 생긴 마족들의 눈동자가 일순간에 확대되는가 싶더니, 그들 역시 저마다 여섯 개의 분신을 더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 복제한 대상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 도플갱어의 본능. 특히나 극한 상황, 전투 시에는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그리하게 됩니다.
타이니의 머릿속에 크롬벨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갈 때.
콰드드득!
– 빌어먹을!
그에게 달려들던 마족들의 전신에서 검은 피가 흩뿌려졌다.
이미 에너지를 쥐어짤 만큼 쥐어짠 데다 몇 번에 걸쳐 엄청난 타격까지 입은 마족들에게, 여섯 개의 오러 분신을 만드는 일은 자폭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푸화확!
이를 악다문 채 마족들을 향해 달려들던 타이니의 본체도 그 순간 폭포수처럼 피를 토해 냈다.
그와 동시에 여섯 개의 분신 중 절반이 허공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검은 눈동자는 의지의 빛을 잃지 않았다.
간신히 오러만 유지한 본체와 남은 분신 셋은, 사실상 그로기 상태가 된 악마급 마족 넷의 머리를 그대로 후려갈겼다.
꽈아아아아아앙!
거의 동시에 울려 퍼진 폭음.
그렇게 그림자 악마 귀족 넷이, 강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중간계의 하늘에 육체의 파편을 흩뿌리며 그 존재를 상실했다.
그러나.
‘빌어먹을…….’
우드득.
모험을 완벽하게 마무리 짓지 못한 타이니는, 정령 합신이 풀린 채 월랑도 없이 지상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위쪽으로.
– 괴물 같은 놈!
– 하지만 네놈을 먹으면.
– 우리가 최강이 된다.
남은 셋의 마족들이 그대로 따라붙으며 저마다 탐욕스럽게 입을 벌렸다.
타이니의 형체를 유지하는 것도 포기한 듯, 검고 거대한 괴물의 입을 벌린 세 마족이 저마다 경쟁하듯 타이니의 육체를 집어삼키려는 순간.
퓨슉.
가벼운 바람 소리와 함께, 녹색의 서광이 그들을 한꺼번에 관통했다.
“끄륵!?”
“끅!?”
“캬악!?”
한순간 다시 타이니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마족들.
그리고 뒤이어.
번쩍!
어디선가 쏘아진 찬란한 빛줄기가 그런 그들의 몸을 다시 한번 꿰뚫었다.
– 끄아아아아아아악!
마족들의 고통 가득한 영파가 허공에 울려 퍼질 때.
그런 그들…… 아니, 떨어지는 타이니를 향해 두 인영이 급속도로 접근했다.
“타이니!”
“타이니 경!”
등 뒤에 새하얀 날개를 단 엘프 여전사와, 두꺼운 갑주 뒤로 조금 작은 날개를 단 성기사.
엘프는 멀쩡한 피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온몸이 피와 상처로 뒤덮여 있었고, 성기사 역시 갑주의 삼분지 이 이상이 파괴된 상태로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지독한 악전을 거쳤다는 것이 여실히 보이는 모습들이었지만, 그 뒤를 쫓아오는 악마급 마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부 처리했구나.’
타이니가 추락하는 와중에도 흐릿한 미소를 지을 때.
“끄으으……. 이, 이것들이…….”
그 둘의 공격에도 중상을 입은 채 살아남은 마지막 악마 귀족, 일곱 장군으로 추정되는 놈이 그를 보며 분노를 토해 냈다.
“……기억하겠다, 특히 네놈.”
놈이 그대로 그림자로 화해 허공으로 사라지는 순간.
– 1계 실패. 2계를 시작한다!!!
분노를 가득 담고 전장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영파.
그에 지상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던 그림자 마족 중 강자들이 바로 반응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특히나 보랏빛 머리 하프 엘프의 모습으로 살육의 축제를 벌이고 있던 초월급 마족들 백여 개체가 동시에 육성을 토해 내더니, 일순간에 다시 그림자로 화해 사라지기 시작했다.
– 초월급 이상의 그림자 마족이 인간 세상에 숨어들게 하면 안 됩니다.
“아, 안 되는……!”
크롬벨의 경고를 떠올린 타이니가 힘 빠진 목소리를 뱉어 낼 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지금은 어쩔 수 없어, 타이니.”
쿨럭.
어느새 곁에 다가온 에스티나가 추락하는 그의 몸을 받아 들며 피를 토해 내고.
캬악. 퉤.
“덕분에 8단계 마족은 저 장군급 한 놈만 남았습니다. 우리가 회복하는 게 먼저입니다, 타이니 경.”
창백한 안색의 용사, 크롬벨 역시 핏물 섞인 침을 뱉어 내며 에스티나의 말에 동의했다.
그 상황에서.
– 나 때문에, 피해가 커졌어. 내가 쫓아.
타이니의 귀에만 들린 전성 하나가, 그의 눈을 커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