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28
328화. 탐욕, 애버리스 (1)
“커억!”
왈칵.
핵을 파고든 크롬벨의 검에 탐욕의 마지막 장군, 애쉬튼이 비명과 함께 피를 토해 냈다.
죽음에 이르게 되면 봉인 마법 역시 풀리는 건지, 이내 원독 어린 시선이 크롬벨과 일행을 향하는데.
핏물이 흥건한 놈의 입은 조금 벌어진 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이내 그 몸이 그림자로 변해 흘러내렸다. 토해 낸 피 역시 어느새 마기로 화해 자욱하게 퍼져 나갔다.
그렇게.
“그, 그분이 너희를 징치하실 것이다.”
희망이라고 봐야 할지 소망이라 봐야 할지, 단말마에 가까운 말을 남긴 탐욕의 마지막 장군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자 곧바로 차원 균열이 변화를 보였다.
우우웅.
일순간 다시 두 배 넘게 확장되며 더욱 짙은 마기를 토해 내는 차원문.
그것을 본 일행의 얼굴에 동시에 긴장감이 떠올랐다.
“역시!”
“전투 준비!”
그리 소리쳐 보지만, 이제 더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었다.
이미 엘프 레인저들과 오크 전사들을 엘븐하임까지 후퇴시킨 후였으니, 탐욕이 강림하면 전투에 뛰어들 인원은 여기 있는 넷이 전부.
부족하다면 한없이 부족한 준비였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 쿵.
차원 균열에서 퍼진 둔중한 울림 하나에 사방의 대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직 모습도 보이지 않는데?’
타이니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빅뱅을 쓰기 위해 모으기 시작한 힘이 아직 충분하지 않은데.
쾅!
“무슨……!”
차원문에서 터져 나온 충격파가 일순간 사방을 휩쓸며 일행을 강타했다.
콰콰콰콰콰콰콰.
우르르르르릉.
적은 모습도 보이지 않는데 폭풍이 쏟아지고 땅이 뒤집혔다.
“쯧.”
쾅.
억지로 기세를 일으켜 충격파를 걷어 내고 대지를 진정시키는 순간.
멀지 않은 곳에, 검게 일렁이는 안개 덩어리가 나타난 것이 감각에 들어왔다.
세로로 길쭉한 형태의 3m 남짓한 검은 안개 덩어리는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는 세계수의 권능 안에서 불쾌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어느새?’
그것을 인식한 순간, 그 검은 안개 덩어리가 자신을 ‘바라본다’라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안개가 갑자기 인간의 형태로 변했다.
곧 그 괴물, 탐욕이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1초를 수백분의 일로 쪼갠 시간 동안, 서로의 시선이 교차했다.
– 네가 운명의 변수로구나.
마치 하프 엘프처럼 인간과 엘프의 중간쯤 되어 보이는 얼굴이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녹색과 금색, 보라색과 검은색의 네 영역으로 나뉘어진 머리카락이 굉장히 거슬리게만 느껴지는데.
– 거기다 세계수의 권능이라…….
– 하나, 그렇다 해도……
그보다 거슬리는 것은, 등 뒤에 녹턴을 닮은 거대한 워해머와 아르쿠스를 닮은 고풍스러운 활을 둘러맨 채 포이나를 닮은 장검과 움브라-테그맨을 닮은 단검을 각각 오른손과 왼손에 든 놈의 모습 그 자체였다.
– ……고작 넷이서 나를?
스륵.
놈의 몸이 소리도 없이 사라진 순간.
타이니는 반사적으로 등 뒤를 향해 녹턴을 휘둘렀다.
꽈아아아아앙!
노을빛과 검은빛이 교차하며 일순간 다시 터져 나가는 충격파.
그 속에서 타이니는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빅뱅을 사용하기에는 이미 타이밍이 많이 어긋났다.
‘흐.’
녹턴에 와닿은 묵직한 중량감과 소름 끼치는 마기.
– 괴물이로구나.
충격을 비스듬히 흘리듯 녹턴을 가로막은 장검과 그 너머로 보이는 적의 표정과 영파까지, 모든 것이 극도로 거슬렸다.
거기다.
그극. 극.
“흡!”
간격이 벌어지는 아주 짧은 순간에 장검을 집어넣고 워해머를 들어 후려치는 그 속도는 명백하게 자신을 압도했다.
‘벼락 떨구기?’
콰아아아아앙!
처음부터 전개해 놨던 오러 신경망의 반사 속도가 아니었다면, 분명히 바로 수세에 몰렸을 것이다.
‘좀 전의 그림자 도약도 그렇고…….’
한순간에 터져 나가는 지면, 쏟아지는 충격파 속에서 균형을 잡는 타이니의 눈이 차가워졌다.
놈은 부하들과는 다르게 보여 준 적이 없는 기술까지 고스란히 베껴 쓰고 있었다.
그것도 크롬벨의 속도와 자신의 힘을 갖춘 채로.
그나마 다행이라면.
‘크롬벨의 말대로군.’
일행이 이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
– 탐욕은 상대하는 적 중 최강자 ‘일곱’ 명의 특징을 그대로 흉내 내서 조합하는 형태로 전투를 시작할 겁니다.
– 거기에 본신의 힘을 더해서 말이죠.
그것을 증명하듯, 잠깐 떨어진 사이 놈이 꺼낸 활에 온갖 저주의 힘이 더해진 암흑 오러의 빛이 맺히더니 검은 화살이 형성되는 것이 보였다.
놀랍도록 빠른 속도였지만.
파아아아아앙!
‘흡!’
시위가 놓아지는 순간 다시 한번 반응하는 오러 신경망.
영역 안에서 의식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인 타이니의 몸이, 그 공격을 종잇장 하나 차이로 비켜 냈다.
그리고 그의 발밑에서 솟구치는 월랑.
– 크와아아앙!
‘좋아!’
인간형과의 전투에 딱 맞춘 크기로 압축된 월랑의 육체와 완벽한 일체감을 느끼며 놈을 향해 돌진하는데.
그 순간 적의 뒤를 덮치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놈의 그림자에서 솟구친 루나가 죽음의 오러를 두른 단검으로 낭심을 파고들었고.
그 반대편에서 날아온 녹색의 오러 화살이 맹렬히 회전하며 놈의 머리를 노렸다.
그리고 반 박자 늦게 크롬벨의 신성력이 사방의 그림자를 없애며 마기를 불태우는데.
– 흐, 여신의 힘이라…….
짜증이 물씬 느껴지는 영파와 함께, 놈이 번개처럼 빠르게 반 발자국 물러섰다.
동시에.
그그극.
망치 자루로 루나의 공세를 비스듬히 흘려 내며, 그 단검이 에스티나의 화살과 마주치도록 유도했다.
쾅!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치명적인 공세를 피해 낸 놈이 그대로 놓아 버린 망치 대신 뽑아 든 단검으로 루나의 옆구리를 꿰뚫으려는 순간.
적의 전면에 들이닥친 타이니가 녹턴을 휘둘렀다.
꽈아아아앙!
스각.
콰콰콰콰콰콰콰콰.
“흥!”
놈이 튕겨 나가는 순간, 방향을 바꿔 휘두른 단검이 타이니의 볼을 살짝 스쳤다.
순식간에 체내로 침투하는 암흑 오러와 개수를 헤아리기 힘든 저주를 콧바람과 함께 씹어 먹은 타이니는, 그대로 튕겨 나간 놈을 향해 월랑을 타고 폭풍처럼 질주했다.
‘아직까진 예상대로…….’
이내 월랑처럼 덩치를 줄인 카일룸이 타이니보다 먼저 놈의 뒤를 덮쳤고.
크롬벨과 비슷한 덩치의 부엉이 정령 오투스가 그 옆으로 쇄도하는 광경도 눈에 들어왔다.
– 하지만 놈은 정령과 여신의 힘은 흉내 내지 못할 겁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승산이 있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크롬벨의 희망적인 말이 떠올랐지만.
콰콰콰쾅!
“큭!”
놈과 비슷한 속도로 연달아 검을 부딪치면서도 일방적으로 밀려나는 크롬벨의 모습과.
우우우웅.
– 끼루루루루.
– 뿌우우우.
적의 뒤편으로 떠오른 검은 마법진들이 카일룸과 오투스를 속박하는 광경은 그다지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 반대로 최악의 경우는, 놈이 당신의 그 말도 안 되는 힘까지 그대로 흉내 내는 경우입니다만.
크롬벨이 말했던 최악의 경우가,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뛰어든 타이니의 망치가 그대로 놈이 있던 자리를 후려쳤다.
그리고.
꽈아아아아아앙!
지면이 그대로 터져 나가는 순간.
타이니는 다시금 배후를 습격하는 살기를 느낌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스각.
꽝!
교차하는 공격.
놈의 공격은 타이니의 등을 스쳐 지나갔고, 타이니의 공격은 녹턴과 닮은 워해머가 막아 냈다.
명백히 타이니가 손해를 본 듯한 상황.
하지만 교차하는 표정에 드러난 반응은 반대였다.
이 공방으로 한 가지가 확실해졌으니까.
‘이놈, 내 힘은 완전히 흉내 못 낸다.’
미소를 짓는 타이니와 안색을 굳히는 탐욕.
– 이놈이……!!
그때, 한순간 경직된 탐욕의 뒤쪽으로 검은빛과 녹색 빛이 엄습했다.
스각.
콰아아아앙.
– 하찮은 것들이!!!!
루나의 죽음의 오러가 놈의 옆구리를 스치고, 녹색 오러의 화살이 등 뒤를 강타했다.
그에 교전 이후 처음으로 충격을 받고 튕겨 나가는 탐욕.
이내 그의 전면으로, 새하얀 빛살이 쏟아졌다.
크롬벨식 성검술 오의.
하늘 꿰뚫기.
번쩍.
콰아아아아아앙!
새하얀 성광이 일직선으로 쏟아지며 대수림의 일각을 그대로 뚫어 버렸다.
우르르르르르릉.
지면이 울리고, 비산하는 흙먼지가 사방을 뿌옇게 물들이는데.
정작.
“크흐…….”
그 흙먼지 속에서 느껴지는 적의 기척은 멀쩡하기만 했다.
거기다 놈의 신음에 묻어나는 짜증스러운 감정은, 왜인지 직전에 타격을 입힌 크롬벨이 아닌 타이니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 네놈, 운명의 변수답구나. 하지만…….
갑자기 붉게 변한 눈이 타이니를 바라보며 번뜩이는 순간 주변의 모든 마나가 놈에게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오.
콰콰콰콰콰콰콰콰.
그것만으로도 폭풍이 일어나며 모두의 운신을 방해했고, 전장에 쏟아지던 세계수의 권능, 신성한 빛마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큭!”
“퉤!”
에스티나와 루나가 일순간 마나가 꼬이는 것을 느끼며 옅은 피를 토해 낼 때.
크롬벨 역시 손안에서 형편없이 일그러지는 마법진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탐욕의 권능! 에너지 흡수나 흐름 조작 계열입니다!”
그가 입이 닳도록 설명했던 원죄의 힘.
가장 큰 변수가 생각보다 일찍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각자 바뀐 흐름에 맞춰서 마나 패턴을 조율하십시오. 자칫하면 자멸합니다!”
타이니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지금 느껴지는 적의 상태를 감각으로 분석하기에 바빴다.
꼬인 흐름에 맞춰 에너지 패턴을 변환하는 것 따위야 그에겐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 틈에 기습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지금 그의 영혼을 자극하는 직감은 저 반신의 권능, 원죄의 힘을 더 자세히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하고 있었다.
‘마나의 마기 치환? 아니, 좀 달라. 이건…….’
본질을 이해하고 변환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막무가내로 집어삼키는 느낌.
힘의 효율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억지로 법칙을 비트는 것 같았다.
마치 덩치 큰 깡패 하나가 거지 꼬마 수십을 겁박해서 강제로 일을 시키는 듯한, 어린 시절의 더러운 기억이 떠오르는 불쾌한 느낌이었다.
‘이런 게 신성에 의거한 반신의 권능이라면, 짜증 나는데.’
타이니는 그 힘의 구조를 파악하며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그것을 자신이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본능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조작이라면, 나도 일가견이 있거든.’
그러자 여태껏 애버리스의 영역 ‘타깃 분석’과 상쇄되고 있던 타이니의 영역 ‘에너지 필드’가 그 한계를 넘어서서, 적의 권능이 만들어 낸 흐름에도 관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놈에 의해 완전히 변질된 전장 전체를 장악하진 못해도 당장 주변의 에너지 주도권은 확보했다 싶은 그때.
– 이 탐욕의 군주, 애버리스 님이 네놈들을 그대로 ‘빼앗아’ 주겠다.
쾅!
그 말과 함께 사라진 적의 몸이 일순간 4개로 갈라지며, 제각기 일행의 앞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오러 분신!? 빌어먹을!’
타이니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의 정면으로 쇄도해 오는 적의 모습은 놓치지 않았다.
직전에도 놈의 속도는 분명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였는데 거기서 더욱 빨라진 느낌.
전장의 모든 에너지가 놈을 중심으로 요동치는 듯한 기세는 덤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게 본체다.’
이놈만 잡으면 될 거란 확신이 든다는 것.
타이니는 그 하나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하!”
쿵.
기합을 내지른 순간.
타이니의 좌우로 노을빛 오러의 분신이 생겨나며, 본신과 동시에 망치를 휘둘렀다.
콰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