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37
337화. 언데드 병단 (4)
‘큰일이다.’
제나스의 안색이 굳어졌다.
직전에 멀리서 터진 마도 기사의 화려한 마법 이팩트가 사라졌고, 문나이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벼락의 오러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 꽈아아앙!
그 직후 그 근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굉음은 어쩐지 아군의 전선이 무너지는 소리 같아서, 점차 마음이 무거워질 뿐이었다.
그 상황에서, 그 목소리가 들렸다.
– 중앙!!! 보조를 부탁!!
‘저릭 공, 하필 지금……!?’
무슨 뜻인지 대번에 알아듣긴 했지만, 지금은 여유가 없었다.
꽈아아앙!
그가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온 악마급 암흑 기사의 창을 재차 막아 내자.
콰가가가각.
– 지겨운 것들.
놈과 같은 악마급 마족, 자이언트 미라가 채찍처럼 휘두른 붕대가 짙푸른 암흑 오러를 휘감고 사방 수십 미터의 공간을 덮쳐 왔다.
‘빌어먹을.’
제나스는 다시금 마나를 총동원해 검을 뿌렸다.
제나스식 발렌티아 검술, 결전 오의.
서릿바람 광시곡(Frosty wind Rhapsody).
서늘한 바람의 오러가 사방으로 휘몰아치며 붕대를 튕겨 내고, 그 틈에 접근하려던 다른 마족들을 막아섰다.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숨 쉬는 것처럼 쉽게 써지는 비의.
그에 적의 극찬이 쏟아졌다.
– 빌어먹을 것, 기괴한 술수를……!
– 그래 봤자 고작 한 번 탈각한 놈일 뿐이다.
물론, 말뿐만 아니라 공격도 이어졌다.
콰콰콰쾅.
쏟아지는 창과 붕대. 그 뒤를 따르는 데스 나이트 다섯 기의 공세까지.
파괴적인 암흑 오러가 실린 공격들을 연신 피하고 흘려 내며, 제나스는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섰다.
까드득.
버거웠지만, 이마저도 온전히 그의 힘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의 검이자 초월무구, ‘북극의 바람’이 특기와 무력을 극대화시켜 주었고.
뒤에서는 블루윙 기사단이 단체 스킬, 푸른 날개의 힘을 보태 주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만 해도, 한바탕 비의를 쏟아 냈는데도 금세 힘이 차올랐다. 자신이 발전한 만큼 블루윙의 기사들도 지난 격전을 통해 푸른 날개 스킬에 한층 능숙해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그그그그극.
블루윙의 모든 기마가 초전에서 죽어 버린 탓에, 제나스를 비롯한 모든 기사가 두 발로 땅을 달리며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거기다.
“단장!! 힘을 아끼시오!!”
험악한 인상의 부단장 드렉슬러가 고함을 지르며 다시금 블루윙의 왼쪽 날개 조율을 맡았고.
“너나 떠들지 말고 집중해!”
그 반대편에서는 같은 부단장 가렌이 오른쪽 날개를 조율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악마급 마족 셋과 초월급 마족 다섯을 묶어 놓는 것은 충분히 무리한 일이었다.
이번 전투만 벌써 사흘째였으니까.
“더는 안 되겠다. 가렌!! 가라!!”
“뭐?!”
“네놈 특기를 살려서 저것들 좀 꼬셔 봐!”
“뭘 꼬셔, 미친놈아!!”
부단장들은 실없는 농담을 해 가며 기사들의 집중력을 유지시키려 노력했다.
아무리 초인적인 정신력을 가진 블루윙 기사단이라지만, 한계를 거듭 넘어서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누군가 좀 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흐…….’
콰콰콰콰콰쾅.
옆에서는, 한껏 가속하며 전투 중인 제나스의 눈으로도 좇기 힘든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주군.’
비록 마계의 초월무구에 해당하는 데모닉 웨폰을 희생했다곤 해도 무려 군단 스킬의 전진을 막아 낸 괴물, 데스 로드 길로틴.
그런 놈을 혼자 상대하고 있는 주군에겐 작은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이대로는 안 돼.’
이 상황에서 저릭 공을 혼자 돌진하게 내버려 둔다?
그랬다간 결국 연합군이 그대로 무너질 게 불 보듯 뻔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무언가 해야 했다.
하지만 불리한 상황에서 부족한 실력으로 변수를 만들어 내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었다.
예를 들면.
‘……내 목숨.’
문제라면, 지금 그의 온몸을 휘감고 있는 거대한 기운의 출처가 오직 자신의 힘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 혼자면 몰라도, 기사단원 전부의 목숨을?’
이미 블루윙 기사단원 50여 명이 죽은 상황, 연이은 격전 속에서 총원의 육분의 일이 넘게 희생된 셈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임의로 결정해서 남은 이들의 생목숨을 갈아 넣어도 되는가.
질끈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블루윙……!”
제나스가 힘겨운 명령을 내리려던 순간.
– 쾅. 콰아앙!
– 쾅!
마도 기사와 문나이트가 있던 자리에서 시작된 굉음이, 점차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정확히는.
‘중앙으로……?’
자신도 모르게 흘깃 시선을 돌리는 순간.
– 감히 여유를?
– 하찮은 것들이……!
쩌저저저저정.
꽈아앙!
한순간에 집중되어 쏟아진 암흑 오러의 세례에, 그는 기사단 전체와 함께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실수라면 실수.
하지만 제나스의 얼굴에는 오히려 미소가 걸렸다.
– 꽈아아아앙!
가장 걱정했던 전장에서부터 중앙으로 이어지는 길에 굉음이 잇따르며, 언데드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가며 바스러지는 광경이 보였으니까.
그리고 그 파죽지세로 몰아붙이는 질주의 가장 앞에는, 거대 늑대를 탄 채 노을빛 오러를 전신에 휘감고 말 그대로 적들을 터트리며 전진하는 기사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푸하하하하! 광휘의 기사가 왔다!”
“우와아아아!”
버럭 지른 고함에 바로 호응이 돌아왔다.
뒤를 돌아보진 않았지만, 기사단 전체의 사기가 오르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리고.
– 뭐야, 저놈은……!?
– 막아!
그들이 상대하던 악마급 마족 둘이 갑자기 크게 기세를 뿜어내는 순간.
콰아아아앙.
암흑 오러의 파도가 덮쳐 오며 다시 한번 그와 블루윙 기사들을 뒤로 밀어 냈다.
쿨럭.
전열의 선두에서 가장 큰 충격을 감당한 제나스의 입가에 옅은 핏물이 흘러내릴 때.
두 악마급 마족이 동시에 사라지더니, 노을빛 유성처럼 전진하는 타이니를 뒤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제나스의 입가에 또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굳이 자신이 놈들을 쫓을 필요는 없었다. 강력한 마족들이 알아서 죽을 자리를 찾아간 것뿐이니.
“블루윙! 전속 전진!! 적의 중심을 꿰뚫는다!”
“하!!!”
그의 검, 북극의 바람에서 시리도록 푸르고 하얀 오러가 솟구쳐 오르고.
새하얀 부리를 앞세운 거대한 독수리가 전장을 관통하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
말을 타지 않아도 기사는 기사.
250여 명의 기사가 지축을 울리며 적을 향해 돌진하자.
콰드드득.
상관들이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데스 나이트 다섯 기가 그대로 튕겨 나갔고, 그 뒤에서 다가오던 거대 고양잇과 마수 형태의 뼈 괴물도 단숨에 무너졌다.
‘그래, 이거지!’
제나스가 미소를 짓는 순간, 그 뒤쪽의 분위기도 순식간에 일변했다.
“뚫어라!”
“블루윙이 앞장선다! 기사단 전진!”
블루윙의 뒤편에서 언데드 병단과 맞서며 전선을 유지하던 제국의 기사들이, 그들을 따라 전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끼륵?”
콰드득.
“꾸에에에에!”
쾅!
우르르릉.
마치 풍선이 부푸는 듯한 모양으로 포위망을 바깥쪽으로 밀어 내며 차차 승기를 가져가던 언데드 병단의 전선에서, 한 곳이 뚫리기 시작했다.
그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당연히 근처에서 검제와 대치하던 데스 로드 길로틴이었다.
– 감히!!!!
꽈아아아아앙!
거대한 대검을 횡으로 휘둘러 암흑 오러의 파도를 뿜어낸 길로틴.
검제가 위력 봉쇄와 굴곡으로 그 충격을 버텨 내는 와중에, 길로틴이 개전 이후 처음으로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딜!”
내내 수세로 일관하던 검제가 비로소 튀어 나가며, 남아있는 데스 나이트들과 길로틴을 중심으로 주변 공간 전체를 가로지르는 한 줄기 붉은 오러의 선을 뿌렸다.
검제의 비기 중 하나, 절단.
콰드드드득.
“끼에에!”
그것이 데스 나이트들을 단숨에 양단하고, 데스 로드의 갑옷까지 갈라 내며 놈이 짙은 마기를 토해 내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길로틴에게 유의미한 상처를 입힌 것이다.
“흐…….”
물론 그 대가로 검제도 비틀거리기 시작했지만.
– 흥……. 같잖은 수작을…….
그럼에도 길로틴은 반격하지 않고 그대로 물러서는 속도를 더했다.
“젠장.”
검제가 반쯤은 연기, 반쯤은 진심이었던 무너진 자세를 바로잡으며 인상을 쓰는 순간.
파아아아앙!
검은 유성처럼 변한 길로틴이 언데드 군단의 중심부를 향해 돌진하는 블루윙 기사단의 진형을 맹렬한 기세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제나스의 손짓에 드렉슬러와 가렌이 눈을 빛냈고, 빠르게 앞으로만 전진하던 블루윙의 진형에 변화가 일었다.
왼쪽 날개는 더욱 가속했고, 오른쪽 날개는 반대로 속도를 늦추었다.
전속 전진을 하고 있던 상황, 미세한 차이로 속도를 조정했을 뿐이었지만 그 순간 일렬횡대로 전진하던 푸른 날개, 왼쪽과 오른쪽 날개가 앞뒤로 어긋났다.
그리고.
– 흡!?
어긋난 편대의 중심으로, 검은 유성이 순식간에 통과해 버렸다.
그렇게 한순간 본의 아니게 블루윙의 진형을 저항 없이 관통해 버린 길로틴의 뒤쪽으로.
“반전!!”
콰콰콰쾅!
제나스를 중심으로 한 블루윙 기사단, 거대한 푸른 매의 부리가 다시 놈에게로 방향을 돌렸다.
파아아아아아앙.
– 낚시가 제대로 성공했다.
제나스는 데스 로드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살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장군급 악마를 등 뒤에 두고 적진을 향해 무작정 돌진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저 주군과 놈의 초월적인 전장에 무작정 난입할 수가 없어 꼼수를 쓴 것이었는데, 그게 제대로 통한 것이다.
다만 그 낚시의 과정에서 기사들의 희생이 따를지도 모른다는 게 걱정이었는데.
‘미리 상의도 안 했는데.’
마수병단과 언데드 병단을 상대로 두 달 동안 이어진 실전에서 호흡을 맞춰 온 블루윙은 전원이 한몸인 것처럼 그야말로 예술적인 합을 선보였다.
이제는.
‘내가 마무리만 하면 된다.’
제나스는 푸른 날개의 스킬을 통해 자신의 전신에 끝없이 공급되는 마나를 느끼며, 마치 독수리의 부리처럼 진형의 선두에 튀어나와 있는 자신의 오러를 더욱 날카롭게 응축했다.
이제까지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수준으로, 한계의 한계를 넘어서서.
‘더, 더, 더!’
상대는 오러익시더의 경지에 오른 주군이자 스승, 검제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던 놈이다.
평소에 가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일격이 필요했다.
‘할 수 있어!’
우우우우웅.
극한을 넘어선 집중력이 한없이 시간을 가속시키고, 고양된 의식이 그 버거운 에너지의 통제를 이끌었다.
그때, 스승이자 주군의 말이 떠올렸다.
– 개인의 전투력으로 타이니를 넘어설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것은 인정해야 해.
– 용사 크롬벨? 신화시대의 흔적들이 여전히 그를 수호한다면 모를까, 현세에는 무리야.
– 반면에 타이니 그놈한테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 그 괴물이 우리 편이라는 것을 감사히 생각하자고.
– 아, 물론 그 녀석한테는 비밀이다. 괜히 거만해질 테니.
– 어쨌건 우리는 대군을 이끄는 머리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날카로운 칼이 되어야 한다. 그 녀석에게 없는 것을 우리가 채워야 해.
그것이 검제의 결론이자 목표였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찌해야 할까.
사실 모두를 이끌 머리는 주군이면 충분하다.
그럼 자신은 그저 날카로운 칼 중 하나로 남아야 하는가?
그러기는 싫었지만, 다른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하던 그는, 군단 스킬의 그 거대한 일체감을 경험해 보며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자신이 타이니와의 차별점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
– 나는 블루윙의 단장이다.
혼자 힘으로 그를 능가할 수 없다면, 단체의 힘으로 그 이상을 해내면 된다.
그것이 제나스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길이 보였다.
‘할 수 있어!’
우우우우웅.
오러익시더인 검제와 함께 ‘영역’의 힘이 포함된 집단 전투 스킬을 가동해 보았던 경험, 그리고 푸른 날개의 힘을 빌려서 한계 이상의 검격을 수도 없이 뿌려 보았던 경험이 그 결심에 빛을 더했다.
그리고 마침내.
스아아아아아.
집중된 오러의 힘이, 그의 한계를 넘어선 차가운 바람을 뿌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벽을 넘을 가능성을 찾은 것에 불과했지만, 푸른 날개의 힘이 그런 그의 영혼을 뒷받침해 준 덕에 한순간이나마 벽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내 제나스의 영역이 일순간 발현과 증폭의 단계를 넘어 특화 변이에까지 다다랐다.
‘영역 전개.’
그 결과, 250여 명이 구성한 푸른 날개 위로 희고 푸른 오러 한 줄기가 덧씌워졌고.
한순간 블루윙 기사들의 영혼이 모두 동일한 고양감을 느끼며 들끓어 올랐다.
– 우오오오오오!
본래의 푸른 날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힘.
제나스가 깨달은 ‘일체화 영역’의 힘이, 일순간 블루윙 전체를 감싸며 거대한 오러의 푸른 날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마치 2백 명이 넘는 기사들이 동시에 옅은 오러를 뿌려 대는 것 같은 기적적인 광경.
새하얗고 상서로운 빛이 더해진 푸른 날개가, 언데드 병단의 가장 튼튼한 검의 뒤를 쳤다.
꽈아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