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38
338화. 언데드 병단 (5)
탈진한 아르곤과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긴 실버 팽을 루나에게 부탁해 후방으로 빼낸 순간, 더 이상 몸을 사릴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 타이니의 눈앞을 가득 메운 시체들의 군단.
‘성물의 힘을 쓴 거 아니었어?’
순간 그런 의문이 들 정도의 머릿수였지만, 답은 뻔했다.
놈들은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우는 군단이니.
그림자 군단의 경우처럼, 결국 적들을 초전에 박살 내지 못한 결과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말도 안 되는 대군인 것이었다.
뭐, 그래도 이젠 상관없었다.
어쨌건 자신이 여기 왔으니.
“흐흐, 너희들 다 뒈졌…….”
아니, 이미 다 죽은 놈들이니까 또 죽이는…….
아니, 이게 맞는 말인가?
순간 생각이 꼬이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지만, 결론은 단순했다.
“에이씨, 몰라. 모조리 박살 내 주마!”
그 순간, 멀리서 저릭의 고함이 들렸다.
– 중앙!!! 보조를 부탁!!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타이니로선 딱 마음에 드는 신호였다.
“좋아, 친구. 날뛰어 보자고!”
“컹!”
“너한테 한 말 아니……. 아니, 맞아. 가자!”
그때부터 타이니는 땅 위를 달리는 유성이 되어, 언데드 병단을 일직선으로 관통하기 시작했다.
“으다다다다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전부 꺼져!!”
꽈아아아아앙!
거대 마수의 시체건 인간형 괴물이건 가리지 않고 녹턴을 휘두른 타이니는, 적들을 모조리 박살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타이니를 태운 월랑 역시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잡것들을 앞발로 터트려 가며 끝없이 전진했고.
늑대와 기수가 질주하는 길목은 금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시체들의 파편으로 가득해졌다.
그런데.
“으라라라라라!!”
콰콰콰콰콰쾅.
그 노을빛 유성, 혹은 태풍의 전진을 두 줄기 검은빛이 막아섰다.
콰드득.
“컹!?”
월랑의 네 발이 웬 붕대에 휘감겨 전진이 멈춘 그 짧은 순간, 타이니의 옆구리로 검붉은 불꽃 같은 암흑 오러를 담은 창이 파고들었다.
물론.
콰아아앙!
타이니는 반사적으로 전신에 노을빛 철갑 형태의 오러를 둘러 공격을 그대로 튕겨 냈다.
그드드드득.
거침없는 질주에 제동이 걸린 것은 그다음이었다.
그제야 눈앞에 보이는 적 둘.
– 어떻게……?
철신갑에 튕겨 나간 시커먼 갑주를 입은 기사와, 전신을 붕대로 휘감은 미친놈.
특이한 패션의 극한을 달리는 변태들의 등장에, 타이니는 분노로 그들을 환대했다.
“웬 잡것들이……!!”
콰아아앙.
월랑이 불꽃 같은 노을빛 오러의 갑옷으로 자신의 발목을 감은 붕대를 툭 끊어 내고.
– 미친……!
당황해하는 붕대쟁이를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 ……어림없다!
발악 같은 영파와 함께 암흑 오러가 깃든 붕대가 사방을 뒤덮으며 쏟아졌지만.
‘더럽게 시체 감았던 걸!? 으윽.’
타이니의 감상은 그게 전부였다.
꽈아아아아아앙!
더욱 가속하며 적에게 뛰어든 타이니가 녹턴을 휘둘러 그 붕대의 방패를 뚫어 버리고는, 그대로 그 너머에 있던 무언가를 후려갈겼다.
콰콰콰콰.
그 충돌의 여파만으로도 사방에 폭풍이 일어났지만, 아쉽게도 상대는 공격을 버텨 낸 듯했다.
물론 완전히 멀쩡한 건 아니었다.
– 어떻게 인간이……!?
왼팔 하나가 날아간 붕대쟁이가 분노와 당황 등 온갖 감정이 담긴 영파를 발할 때.
그 결과를 만들어 낸 인간은 그저 혀를 차는 것으로 응답했다.
“쯧, 얕았나.”
그리고 그 순간, 다시금 검은 오러를 휘감은 창이 시야를 메웠다.
쩌저저정.
직전에 일어난 격돌의 결과를 보았는지, 일순간 그 창이 십수 개로 나뉘며 각기 다른 각도로 타이니의 전신을 노렸다.
물론, 큰 의미는 없었다.
뜨겁게 일렁이는 노을빛 불꽃의 갑옷이 월랑과 타이니의 전신을 순식간에 휘어 감은 순간.
타이니는 그대로 전면으로 뛰어들며 녹턴을 휘둘렀다.
꽝!
– 커흑!
순식간에 튕겨 나가는 흑기사.
그런 놈의 뒤에 즉시 따라붙은 타이니에게서 자연스레 적을 비웃는 영파가 흘러나왔다.
– 정면 승부만 안 하면 될 줄 알았어?! 힘을 모아야지, X신아!
놈의 반파된 상체 갑옷에서 검은 마기가 마구 흘러나오고, 검은 투구 안에 이글거리는 붉은 불꽃이 거세게 흔들리던 순간.
휘리릭.
다시금 월랑과 타이니의 전신을 소리도 없이 묶어 오는 붕대 더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틈을 노리며 다시 다가오는 창.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그 붕대는 그들의 움직임을 잠시도 막아 내지 못했다.
뚜둑.
타오르는 노을빛 오러의 갑옷이 붕대를 그대로 끊어 냄과 동시에, 타이니는 자신을 찔러 오는 창과 그 주인을 후려쳤다.
꽈아아아아앙!
콰콰콰콰콰.
우르르르릉.
다시금 후폭풍이 몰아치고, 지면까지 얕게 울리는 충격파가 그들 사이를 휩쓸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타이니는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하지 못했다.
“붕대쟁이, 제법이네. 씁.”
붕대가 끊어진 순간, 놈이 다시금 갑옷의 앞을 가로막으며 결정타를 막아 낸 것이다.
물론.
– 괴물……. 우리 상대가 아니다.
–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이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두 마족이 얻은 타격은 엄청났다.
갑옷의 절반 이상이 박살 난 채 피 대신 마기를 흘려 대는 암흑 기사.
왼팔이 날아가고 몸에 감은 붕대 역시 절반이 소멸되어 짓무른 속살이 드러난 자이언트 미라.
엄청난 쓴맛을 본 두 악마급 마족은 이미 전의를 잃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타이니의 무력은 악마 후작으로 분류되는 장군급마저 눈 아래로 내려다보는 수준. 애초에 고작 일반 악마급 둘이서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안 덤벼? 그럼…….”
쾅!
자신들에게 돌진해 오는 타이니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들은 그대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이미 극심한 중상을 입은 암흑 기사는 쫓아오는 타이니를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콰아아아앙!
– 끄아아아악!
악마급 마족이 내지른 단말마.
그것이 한순간 전장의 모든 강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전장의 서북쪽에서 갓 핸드가 이끄는 성기사단과 대치하던 스켈레톤 킹, 본메쉬였다.
– 카드만을 그렇게 쉽게? 내가 상대해 주마, 인간.
쾅!
체고만 30m에 이르는 그 해골 거인이 거대한 뼈의 검을 휘둘러 대지에 커다란 상처를 새겼다.
여태 상대하던 성령 기사와 성기사단을 그렇게 한순간 밀어 낸 본메쉬는, 이내 그대로 전장을 가로질러 타이니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콰직. 콰드득.
“꾸에에!”
그 발아래에 가득한 언데드 병단의 시체들마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지르밟는 질주.
그 비현실적으로 엄청난 거체 때문에 얼핏 느리게도 보였지만, 그 돌진은 실로 빨랐다.
동시에.
– 나도 합류한다!
콰아아아앙!
서남쪽에서 기갑왕 하이넨과 웨폰 마스터 그리드를 동시에 상대하던 뱀파이어 로드, 샹귀스가 거대한 마법을 터트리며 박쥐 떼로 변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흐, 악마 후작 둘이라…….”
그리고 그것을 인식한 타이니는 피식 웃더니.
“가자, 월랑!”
“컹!”
그대로 몸을 돌려 차원문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따라와 봐!”
쾅!
다시금 땅을 터트리며 시작된 질주가 언데드 병단의 진형을 뭉갰다.
– 저놈이!?
– 서라!!
쎄에에엑.
쿵. 쿵. 쿵.
‘계속 따라와라.’
뒤를 따라 오는 악마 후작급, 아마도 질투의 장군들로 추측되는 괴물들의 기세를 느끼며 타이니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저릭이 왜 이 시점에 중앙을 향해 돌진을 감행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내가 시선을 끌면 끌수록, 녀석이 안전해진다.’
에스티나와 크롬벨이 함께 오지 않은 것이 아쉬웠지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전투다.
다시금 노을빛 유성이 된 타이니가 전장의 모든 시선을 끌어모으며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일견 팽팽하게, 하지만 서서히 언데드 병단 쪽으로 전세가 기울던 상황에 갑자기 나타난 강력한 변수.
랑켄 평야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기 시작했다.
* * *
‘타이니?’
구울 로드 프린스를 뒤에 달고 전장의 중심을 향해 질주하던 저릭 역시, 전장에 일어난 변화를 알아챘다.
쾅!
우르르릉.
콰콰콰콰.
연달아 퍼지는 폭음과 진동, 쏟아지는 후폭풍, 그리고 가끔 하늘 위로 솟구치는 노을빛 오러까지.
저 정도로 난리를 치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다만.
‘어떻게 지금?’
탐욕의 강림을 막아서고 있어야 할 타이니가 왜 지금 이 자리에 있는가.
의문이 들었지만, 길게 생각할 틈은 없었다.
“쥐새끼!!!”
콰아아아앙!
우르르릉.
잠시라도 멈칫하면 그대로 자신을 찢어발길 것 같은 적이 뒤를 따라오고 있었으니까.
눈이 돌아간, 심리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시뻘건 두 눈이 툭 튀어나와 있는 프린스의 모습은 참으로 혐오스러웠다.
당장이라도 그 눈깔을 뽑아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눈앞의 목표부터 달성해야 했다.
차원문 앞에서 먹구름을 불러와 대지를 오염시키고 있는 아크 리치 몇 놈과 리치들 수십부터 처리해야 전세가 진실로 인류에게 유리해질 테니까.
우우우우우웅.
“흡!”
다시금 뒤쪽에서 거대한 파동이 느껴지자마자, 정면으로 내달리던 저릭의 거체가 등 뒤에서 덮쳐 오는 에너지 파동에 호응하듯 부드럽게 회전하며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있던 자리를, 붉은 광선이 관통하듯 지나갔다.
찌이이이이이잉.
콰콰콰콰콰콰.
“끄륵?”
달그락.
순식간에 폐허가 된 일대.
중앙에 가까워질수록 언데드만이 존재하는 검은 대지의 심부를 스스로 폭격한 프린스.
그 위력보다 어리석음이 더 놀라웠던 저릭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 정도로 바보였나?’
바람 걸음의 잠재력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감안해도, 변신한 프린스의 지능은 심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와중에.
– 이 X 같은……!
불과 한 달 동안 공용어를 터득해 버린 괴물이라도 욕설은 못 익힌 건지, 말 대신 영파로 온갖 모욕적인 의지가 전해져 왔다.
물론 적의 욕설은 그저 칭찬일 뿐이라, 저릭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더욱더 질주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머, 덩치 큰 쥐새끼가?”
프린스와 비슷한 톤의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콰드득.
갑자기 지면에서 그의 사지를 옭아매는 붕대가 튀어나왔다.
‘프린세스……!’
저릭은 그 목소리와 붕대의 주인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그그그그그극.
질주가 강제로 멈춰진 순간, 저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레이트 미라가 왜 여기에? 설마…….’
분명 마도 기사 아르곤을 쫓고 있던 장군급이 자신을 가로막았다는 사실이, 저릭의 눈동자를 크게 흔들었다.
그리고.
“합!”
우드드득.
힘을 주는 순간 생각보다 맥없이 뜯겨 나가는 붕대 자락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그녀(?)의 상태가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장군급 악마가 힘이 빠진 채 여기에 와 있다?
그 현실이 저릭의 불길한 상상을 더욱 부추겼다.
“네년! 설마 아르곤을……!?”
“아, 그 작은 쥐새끼 말인가요? 제법 곤란하긴 했죠. 호호호.”
“……!!”
앞에서는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그레이트 미라 프린세스가.
“잡았다, 쥐새끼!”
콰아아아앙!
“컥!”
뒤에서는 미친개처럼 쫓아오던 구울 로드 프린스가 동시에 공격해 오자,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그것을 피해 낸 저릭이 무거운 표정으로 도끼를 들었다.
‘젠장! 아르곤, 그래도 내가 죽기 전에 네 복수는 해 주마!’
정신 나간 왕자와 공주를 노려보는 그의 눈이 살벌하게 빛나는 순간.
번쩍.
멀리 제국군의 후방에서, 거대한 빛줄기가 하늘의 먹구름을 향해 쏘아지는 것이 보였다.
– 하늘이여, 열려라!
우우우우우웅.
콰콰콰콰콰콰.
노쇠한, 하지만 우렁찬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지며,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던 먹구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