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41
341화. 개천(開天)
우우우웅.
거인의 죽음을 알리듯, 랑켄 평야의 하늘에 낀 먹구름이 다시 진해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다시…….”
“……닫힌다.”
기세 좋게 적을 몰아붙이던 인류 연합군이 주춤할 때.
그와 반대로, 내리쬐는 햇빛 아래서 기세를 잃어 가던 언데드 병단의 눈에는 광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꾸우우우!”
“끄르륵.”
“끄으으으!”
쿵. 쿵!
다시금 언데드 병단의 진격이 시작되는가 싶던 그때.
번쩍.
제국군의 후방에서 한 줄기 빛이 쏘아지더니, 당장이라도 닫힐 듯하던 하늘이 열린 상태를 유지한 채 이전보다 옅게나마 빛을 뿜어냈다.
그러한 상황에서, 막상 언데드 병단 측에서 최전선으로 나선 병력은 하급 마물이 대다수였다.
“……어?”
인류의 전선을 무너트리고 유린하던 강대한 마물들은 오히려 원형을 유지하고 있던 전선의 안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장의 중심부에서부터 퍼져 나간 노을빛이 모두의 눈에 들어온 순간.
하늘이 열리기 전부터 중앙 전장에서 ‘그’를 목격한 이들의 목소리가 때맞춰 울려 퍼졌다.
“광휘의 기사가 왔다!”
“서부의 재앙을 수습한 광휘의 기사가 이 전장에 왔다!”
순식간에 연합군의 사기가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마수병단의 군단장, 폭식 글러터니를 처치하며 오렌 평야의 지형까지 뒤바꿔 버린 광휘의 기사. 그때부터 그는 의심의 여지 없는 인류 최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광휘의 기사는 지금.
전장의 중심부에서, 미칠 듯이 밀려드는 언데드 떼를 정신없이 박살 내고 있었다.
“미친!”
쾅!
“왜 다 여기로!”
꽈아앙!
“오냐!”
콰르르르릉.
녹턴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사방이 진동했다. 달려들던 시체들이 그대로 터져 나가며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 옆에서는 오크의 대전사가 자신의 도끼, 아너를 미친 듯이 휘두르고 있었다.
“왜긴!”
쩌억!
“너 때문이지!”
콰아앙!
“적어도 나는.”
쩌저적.
“아니다!!”
콰아앙!
두 명의 초인이 달려드는 언데드 떼를 그야말로 갈아 버리고 있는 듯한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몰려드는 시체의 군단은 조금도 물러설 줄을 몰랐다.
장군들을 몰아친 뒤 겨우 기력을 회복하던 그들이 조금도 쉴 수 없게.
콰아아아앙!
적을 분쇄하면서도 실없는 농담을 나누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들 역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바깥쪽 전선에서 연합군의 군세가 언데드 병단을 몰아치고 있다는 것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느낄 수 있었다.
문제라면 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지금 자신들을 향해 집중되고 있는 적들이라는 것.
“끄르륵!”
“꾸어어어!”
온몸을 붕대로 휘감은 거대 야수형 자이언트 미라부터, 제 머리를 옆구리에 낀 채 마법을 난사하고 창을 휘두르는 듀라한까지.
얼핏 봐도 6단계로 보이는 마물들이 그야말로 몸을 내던지듯 덤벼들고 있었다.
꽈르르릉.
쾅!
– 군단 전체가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를 먼저 죽일 속셈이다.
쩌억.
빛살처럼 움직이는 와중에도 타이니와 저릭이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의 뜻을 확인한 순간.
– 작전상 후퇴.
쾅!
특별한 말도 없이, 그들은 두 방향으로 나뉘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물론.
“엇!?”
“이쪽……?”
그게 의도한 것은 아닌 듯했지만.
결과적으로 언데드 대군이 양쪽으로 나뉘어 쫓아오기 시작하자, 그들은 각자 향하던 방향으로 계속 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칫, 젠장.’
타이니는 속으로 혀를 찼다.
유성우를 쓰면서 월랑이 소환 해제되어 버린 게 아쉬울 수밖에 없는 순간.
기력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잡졸들에게 쫓기는 것이 달가울 리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저릭을 쫓아가는 놈들보다 자신을 쫓는 놈들이 훨씬 많다는 것.
‘저릭은 쉽게 빠져나가겠어.’
적어도 그것 하나만큼은 위안이 되었다.
“합!”
콰아아아앙!
달려드는 거구의 시체 하나를 박살 내며 그 반동 그대로 하늘 위로 솟구친 타이니는, 공중을 몇 번 밟아 가며 쏟아지는 마물들의 파도를 다시 한번 타 넘었다.
‘칫.’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허공을 내달려 그대로 전선을 탈출하고 싶었지만, 여력이 허락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지상으로 추락한 그 순간.
꽈아아아아앙!
다시 휘둘러진 녹턴이, 달려드는 죽은 자들의 파도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
“그어어어!”
“끄룩!”
“끄아!!”
전장의 중심을 향해 내달리던 언데드들과 타이니를 쫓던 언데드들이 서로 충돌하며 뒤엉켰다.
그야말로 난장판이 벌어진 가운데.
“캬오오오오!”
콰아앙!
그나마 판단력이 존재하는 듯한 고위 언데드들만이 어지럽게 얽혀 있는 하급 좀비나 미라, 스켈레톤들을 치워 내며 끈질기게 타이니의 뒤를 쫓았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벗어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흡!’
타이니는 질주하던 경로 전체에 유동하는 마기를 감지하고는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꽈아아아아아앙!
전방 반경 30여 미터가 일순간 푸른 불꽃에 휘감기며 그대로 터져 나가더니, 곧 막대한 열풍이 휘몰아쳤다.
콰콰콰콰콰콰콰.
폭심지만 반경 수십 미터에 달하며 여파가 미치는 범위는 그 열 배는 될 듯한 강력한 마법. 그런 게 터지기 직전에나 간신히 눈치챌 수 있게 발현되다니.
‘어떤 놈이?’
타이니가 의문을 가지면서도 허공을 몇 번 뛰어넘어 그 범위를 넘어서는데.
– 쥐새끼 같은……!
분노한 영파와 함께, 전신을 휘감는 싸늘한 마기가 느껴졌다.
저주.
종류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수십 가지 저주가 동시에 엄습해 올 때, 타이니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자신이 때려죽인 적이 있는 말룸의 수장보다 확실히 강력한 마족, 멀리서 봤던 그 아크 리치의 짓이라는 것을 짐작한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콰드득.
그는 저주 따위는 가볍게 뿌리치고 그대로 다시 수백 미터를 순식간에 내달렸다.
그런데 그 순간.
– 어딜!
익숙한 영파와 함께 나타난 누더기같이 기운 녹색 피부의 인형이 그를 가로막았다.
쾅!
– 넌 여기서 죽는다!
동시에 싸늘한 안개 자락이 전신을 뒤덮으며 시야를 차단하더니, 그 안에서 날카로운 피의 빛줄기들이 쏟아졌다.
물론.
‘흡!’
철신갑. 노을빛 갑옷 모양의 오러를 전신에 띄운 타이니는 속력을 조금도 늦추지 않고 그대로 돌진하여, 녹색 피부의 괴물 프린스를 들이박았다.
콰콰콰콰쾅!
꽝!
콰콰콰.
우르르르릉.
그저 몸이 부딪치는 것만으로 굉음이 퍼지고, 후폭풍과 더불어 옅은 지진까지 일어났다.
타이니의 몸통 박치기는 충분히 위력적이었지만, 눈앞을 가로막은 프린스를 완전히 튕겨 내기에는 모자람이 있었다.
“큭.”
무겁다.
– 역시…….
그저 십여 미터를 주르륵 밀려나는 것만으로 타이니의 질주를 막아선 프린스가 다시금 붉은 안광을 빛내고.
– 감히 이놈이…….
안개로 변한 상태에서도 흐릿하게 얼굴형을 드러낸 샹귀스가 분노할 때.
– 묶어라. 그리고 타올라라.
타이니의 발밑에서 솟구쳐 오른 가시덤불이 그의 전신을 구속했고, 이내 검은 불꽃이 타오르며 철신갑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장군급 셋? 곤란한데.’
뱀파이어 로드는 여전히 정상이 아닌 듯했지만 구울 로드는 벌써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한 것 같았고, 아크 리치는 타이니의 공격이 닿지 않는 하늘에서 자유자재로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다.
거의 외통수에 가까운 상황.
하지만.
“합!”
쾅!!
콰드득.
철신갑을 터트려 마법을 해제한 타이니가 그대로 전면의 프린스를 향해 쇄도했다.
– 어림없다!
화르륵.
그러자 얼마 전 마주했을 때와는 달리 꽤 이지적인 눈동자를 유지하고 있는 프린스가 자세를 낮추더니, 전신으로 검붉은 암흑 오러의 불길을 뿜어내며 그에게 마주 달려왔다.
– 치욕을 갚아 주마!
막대한 힘과 더불어 온갖 저주가 실린 암흑 오러의 불길.
– 뭐래, 땅굴 파서 도망친 놈이.
– 뭣이……!
파아악.
영파를 쏘아 내는 것만으로 암흑 오러의 불길을 뒤흔든 타이니는, 곧장 그 사이로 뛰어들며 그대로 녹턴을 휘둘렀다.
꽈아아아앙!
부족한 마나와 전신의 기력을 쥐어짜 탄력을 극대화한 벼락 떨구기의 일격이, 프린스의 암흑 오러를 박살 내며 놈의 상체를 지면 아래에 파묻었다.
우르르르릉.
아예 몸까지 박살 낼 생각이었는데.
‘이래도 안 부서져?!’
놀란 것도 잠시, 타이니는 크레이터 안에 파묻힌 프린스의 발목을 잡고 놈의 몸을 뽑아내, 머리 위로 쏟아지던 냉기의 세례를 향해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앙!
콰콰콰콰.
“손맛 좋고!”
– 이놈이!!
아크 리치 데로드의 당혹스러운 영파가 울려 퍼진 그때.
전신을 내달리는 노을빛 오러에 의해 내부가 박살이 난 프린스는 타이니의 손에 붙들린 채 연신 휘둘러지고 있었다.
“네놈은!”
콰아아앙!
“차라리!”
꽝!
“맛이 갔을 때가!”
꽈르르릉!
“나아!”
꽈아아아앙.
프린스로서는 억울할 노릇이었다.
– 빌어먹을……!
짧은 시간 동안 닥치는 대로 수하들을 먹어 치우며 힘을 회복했지만, 여전히 ‘광폭화’를 쓰기에는 부족했을 뿐이었다.
타이니는 그런 놈의 영파를 무시하며,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마법과 언데드들을 향해 프린스를 휘둘렀다.
그러던 어느 순간, 콰직 소리와 함께 허전한 느낌이 들더니 프린스의 몸뚱어리가 그의 손안에서 사라졌다.
‘무슨……?’
타이니가 느릿하게 시선을 돌려 보니, 스스로 발목을 잘라 내 버린 프린스의 원독 어린 얼굴이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 어느새 다시 실체화한 샹귀스의 이빨이 그의 목덜미를 노려 왔다.
– 네놈의 피를 다오.
물론.
– 엿이나 먹어라!
쾅!
중상을 입고 회복도 제대로 못 한 뱀파이어 로드의 이빨은, 타이니의 근육과 그 위를 덮은 노을빛 오러의 장벽을 뚫지 못하고 맥없이 튕겨 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초토화된 공간에 타이니 홀로 남게 된 순간.
그 공간 전체를 뒤덮는 엄청난 마기가 쏟아져 내렸다.
그사이 그의 특징을 파악했는지 저주의 기운은 모두 지워 버린, 오직 파괴와 소멸의 기운만을 가득 실은 대파괴 마법.
– 소멸하라!
‘이런……!?’
황급히 녹턴으로 전면을 가로막고 최대한 오러를 끌어 올리는데.
지이이잉.
이제는 철신갑조차 완벽하게 형성되지 않았다.
‘망할……!’
연이어진 치열한 전투 탓에, 그의 엄청난 회복력으로도 마나 수급이 어려웠던 것이다.
낭패한 타이니의 표정 위로 데로드의 소멸 마법이 쏟아지려던 찰나.
– 아닛……!
느닷없이 아크 리치의 당혹스러운 영파가 울려 퍼졌다.
콰아아아아아앙!
콰콰콰콰콰콰.
우르르르르릉.
사방을 초토화시킨 마법의 기운, 그 후폭풍이 터져 나가는 동안.
– 감히 어떤 놈이!!!!!?
– 프린스, 샹귀스! 복귀하라! 길로틴과 프린세스가 소멸했다!
– 뭣!?
구울 로드와 뱀파이어 로드가 황급히 전장의 중앙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고.
– 이놈은…….
자신이 만들어 낸 파멸의 흔적을 마법과 기감으로 훑어 내리던 데로드 역시 이를 갈며 돌아섰다.
– ……죽은 것이 확실하고.
그리고 그런 그가 상공에서 사라지자마자.
“꾸륵?”
대파괴의 중심지로부터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명령을 기다리던 좀비 한 마리의 그림자 속에서, 검은 머리의 남자가 튀어나왔다.
“우웨에엑!”
비틀거리며 피를 토해 낸 타이니.
그 느닷없는 등장에 일순간 경직되었던 주변의 언데드들이, 이내 반 박자 늦게 다시 눈동자에 붉은빛을 피워 올렸다.
“하, X발. X 같네…….”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게 없단 말이지.
타이니가 녹턴을 들어 올리는 것마저 버거워진 몸으로 이를 가는 순간.
– 연합군은 물러서라!!!
갑자기 그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검제의 목소리가 최전방에서부터 전장 가득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엥? 왜?’
저 영감이 미쳤나?
날 죽이려고?
황당한 마음에 속으로 이를 가는 순간.
– 폭뢰 투하!!
하늘 위에서 거대한 독수리와 부엉이가 십자로 교차하며, 붉은 덩어리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