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52
352화. 새로운 대륙으로
카룬 왕국의 수도 오르투스. 그 중심에 있는 왕성은 갑자기 날벼락을 맞았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실제로 벼락과도 같이 무서운 기세로 추락한 무언가에 의해, 왕실 회의가 열리고 있던 대전의 천장이 갑자기 무너져 내린 것이다.
꽈아아아아아앙!
우르르르르릉.
“으아아악!”
“뭐야!?”
“무, 무슨 일이……!”
“도망쳐!”
안 그래도 하 수상한 시절에 갑자기 재앙이 벌어졌으니, 신하들 다수가 사색이 되어 대피했고.
“전하!!”
기사들은 일제히 나서서 왕의 앞에 장벽을 쌓기 시작했다.
신화에나 나오는 마계의 괴물들이 이 세상에 넘어오는, 그야말로 말세라는 말이 나오는 시기.
하지만 이미 크라켄이라는 신화 속 괴물을 상대해 본 적(?) 있는 카룬의 기사들은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결사의 의지를 다지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 가장 앞에 선 이는 암벽의 기사 리암 폰 피터슨. 그가 무너진 천장 아래에 피어오른 흙먼지 속 그림자를 향해 검을 겨눴다.
그리고는 왕궁의 결계를 꿰뚫고 두꺼운 천장까지 폭파시킨 강적을 향해 위협하듯 물었다.
“사람이냐, 괴물이냐? 사람이면 정체를 밝혀라!!”
카룬 왕국 최강의 기사. 크라켄과 흑마도사라는 시련에 담금질 된 노기사의 검에는, 마나 블레이드를 넘어선 그 이상의 무언가가 희미하게 아른거리고 있었다.
마계 대전이 일어나는 것도 알지 못했을 정도로 장구했던 폐관 수련이 만들어 낸 성과가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차츰 가라앉아 가는 흙먼지 속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축하합니다, 리암 경. 고비를 거의 넘으셨군요.”
“음?”
그에 리암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눈동자를 빛내던 그때.
휘이이잉.
갑자기 불어온 바람이 흙먼지를 전부 날려 버렸고, 그 안에서 카룬의 기사라면 모를 수 없는 검은 머리 청년이 일행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소년이라 부를 수도 없는 큰 체격의 기사와 눈이 번쩍 뜨이도록 아름다운 엘프.
그리고 검은 머리 기사의 등 뒤에 기대듯 선 채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보랏빛 눈의 하프 엘프와 어쩐지 굉장히 불편해 보이는 표정의 갈색 머리 청년.
이내 그들 일행의 리더로 보이는 기사가 굉장히 미안한 얼굴로 한 걸음 앞으로 나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실례했습니다, 전하. 상황이 급해 예법에 맞춰 알현을 청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타이니 경…….”
기사들의 뒤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적(?)을 응시하던 젊은 국왕, 헨리 1세의 표정이 그 순간에야 밝아졌다.
물론 국왕의 반응이 어쨌건, 그를 지키는 기사단장은 원칙을 고수해야 했다.
“자네, 아무리 광휘의 기사라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네. 급한 일이 뭐길래……!”
“세상이 망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어, 음…….”
그 단호한 대답에 리암이 더 이상 뭐라 말하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고 있던 순간.
타이니가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동대륙에 지급으로 연락할 수 있는 통신 수단이 있습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이게 과연 왕에게 와서 물을 말인가? 세상이 망할 일이라더니?
듣고 있던 모든 이의 머릿속에 같은 의문이 떠오르던 그때.
“내가 설명할게, 타이니.”
광휘의 기사를 대신해 앞으로 나선 엘프의 설명이 시작되었고, 대전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마족의 침략이 공식화된 세상에서 더 안 좋은 소식이 뭐가 있겠냐마는, 카룬 사람들에겐 왕국의 은인이 가지고 온 소식이 특히 절망적으로 들렸던 것이다.
“동대륙이 망하면 우리나라는…….”
신하 한 명의 혼잣말이, 그런 이들의 심정을 대표했다.
* * *
“연락을 취해 놓았네. 하지만 그들이 그대의 말을 믿을지는 모르겠어. 반응이 떨떠름하다더군.”
다행히 카룬의 국왕 헨리 1세는 관대했다.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내려 내성의 천장을 뚫고 등장한 무뢰한의 청을 즉시 들어준 것이다.
동대륙의 서쪽 끝 항구에 직통으로 닿는 통신구가 카룬에 있었던 것도 일행에게는 행운이었다.
정확히는 대양의 섬들 중간중간에 설치된 중계 기지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형식이었지만, 어쨌건 시차를 크게 두지 않고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었다.
다만.
“동대륙의 서쪽에 있는 왕국, 서진(西晉)의 국왕이 내 말을 믿어 줄지 의문이야. 아니, 믿어 준다고 해도 10일 안에 전쟁 준비를 끝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네.”
헨리 1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거기다.
“사실상 동대륙을 지배하는 선 제국을 움직여야 할 텐데, 그곳에서는 사절이 황제를 만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하더군.”
이어진 그의 말은 일행의 탄식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강제로 뚫고 들어가야 하나?”
“그랬다가는 마족 이전에 우리랑 싸우려 들겠지.”
애초에 무리한 일일 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어 닥쳐온 순간 힘이 빠지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심리였다.
하지만 타이니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가 보자.”
그에 에스티나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서 어떻게든 해 보자고.”
“어떻게 말입니까?”
“어떻게든!”
어느새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진하게 자리 잡은 아르곤이 태클을 걸어 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타이니나 루나 씨는 그렇다 쳐도, 왜 세계수의 수호자까지…….’
여기 정상인은 나밖에 없는 건가 싶은 생각에 그의 다크서클은 실시간으로 짙어져 갈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르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동대륙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서진의 왕실에 메시지를 전해 놓겠네. 일단 그곳으로 찾아가 보게.”
“예, 전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뭘.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니 당연한 일일세. 그런데…….”
“……?”
조심스러운 왕의 태도에 일행이 의아함을 표할 때.
“솔직히 물어봐도 되겠나? 동대륙이 마족의 공격을 막아 낼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동대륙과의 무역이 왕국 경제의 8할을 차지하는 카룬의 국왕, 헨리 1세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일행은 그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한 채 오르투스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 * *
쎄에에에엑.
카일룸이 스스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도에서 전속력으로 비행했다.
만약 그 위에 타고 있는 게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숨을 쉬는 건 물론 체온 유지조차 버거워하며 금세 쓰러지거나 생명이 위독해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일행의 표정이 굳은 것은 그런 환경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사람 넷, 정확히는 셋과 그림자 하나를 싣고 날아가는 최속의 비행을 반나절 넘게 유지 중인 에스티나는 마나 유지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머지 동료들은 제각기 앞으로의 일에 대해 고민하느라 침묵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동대륙에 강림할 칠죄종 중 하나를 암살하는 정도가 전부일지 몰라.”
긴 침묵을 깬 아르곤의 목소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마나 보호막 안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암살?]느닷없이 그림자에서 들려오는 답변.
그에 아르곤이 그림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대신 슬쩍 타이니를 바라봤지만, 그는 아까부터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말은 루나의 귀만 쫑긋하게 만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유일한 청자를 향해 말을 이어 가는데.
“하…… 그래. 솔직히 동대륙의 전력이 타이니의 말처럼 대단하다면, 아무리 강림지가 곳곳에 분산되어 있어도 칠죄종 밑의 장군들까지는 어찌어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야. 아, 물론 희생이 엄청 크긴 하겠지만…….”
“진짜? 그렇게 생각해?”
“헙!?”
갑작스레 지근거리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얼굴.
루나가 코앞에서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아르곤은 움찔하며 시선을 피했다.
‘무섭게시리.’
그림자 속에서 머리만 내미는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왜 그렇게 생각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지 비꼬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괜히 찔리는 기분에 아르곤은 그냥 솔직히 말했다.
“……아니, 솔직히 군단 셋이면 어떻게 해도 망할 것 같긴 한데 말이야. 우리가 그 군단들을 다 어떻게 상대하냐고.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는 거지.”
한숨처럼 말하고는 슬쩍 눈치를 보는데.
“괜찮아. 타이니, 있어.”
아, 얘도 모르스였지.
“……그래.”
태평한 루나의 얼굴을 본 아르곤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루나의 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 암살이라면, 타이니만큼 자신 있어.”
타이니만큼 자신 있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냐.
아주 작게(Tiny) 자신 있다는 뜻은 아닐 테니…….
‘대충 엄청나게 자신 있다는 뜻이겠……지?’
그가 루나의 이상한 묘사법에 머리를 굴리는 순간.
“올케와 네가 각자 나와 타이니를 도우면, 칠죄종 둘, 충분히 암살할 수 있어. 물론, 타이니는 암살이 아니겠지만. 그러니까 비행할 수 있는 올케가, 타이니한테 붙고. 넌 나를 도와. 그러면 돼.”
올케는 또 누굴 말하는 건데?!
‘설마 세계수의 수호……자?’
이상한 묘사와 호칭에 순간 혼동이 오긴 했지만, 아르곤은 금세 루나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어……?”
“이해했어?”
이 모르스는 어쩌면 타이니만큼 바보는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런데 너, 정말 자신 있어?”
단, 고작 자신의 조력만 있으면 칠죄종을 암살할 수 있다는 턱없는 자신감에 근거가 있다면 말이다.
“이제는, 가능할 것 같아. 네가 그때 보여 준 마법에, 시기와 장소, 운만 따라주면, ”
‘뭔가 뒤에 조건이 많이 붙는데…….’
하지만 그녀의 그 자신감이, 오히려 아르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신뢰를 싹트게 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나, 도와줄 거지?”
두근.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자수정 같은 눈빛이 그 싹을 키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근.
“무, 물론이지.”
아, 씨. 왜, 왜 이러지.
‘무서워서 그래.’
그래, 틀림없다.
‘그림자에서 머리만 툭 튀어나와서 말하는 게, 호러 그 자체지 뭐.’
당혹스러운 기분을 그리 치부하며, 그녀의 시선을 피한 채 대충 대답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한지 미소를 짓는 루나의 얼굴이 보이자, 왜인지 마음이 뿌듯해졌다.
그리고 루나가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자마자.
“정리됐다!”
무슨 깊은 고민이 있는 양 눈을 감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있던 타이니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뭐, 뭐야!?”
왜인지 뜨끔한 아르곤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타이니가 그의 그림자를 툭툭 두드렸다.
“루나, 나와 봐. 무게 안 실리게 얼굴만 내밀어도 돼.”
“야, 그거 무섭단 말이야.”
“시끄러워. 티나에게 부담 안 주는 게 중요해.”
“씁…….”
티나? 애칭까지 쓰냐?
‘정말 아까 그 올케라는 게…….’
아르곤의 상념이 끝도 없이 이어지려던 찰나.
“으악!”
다시 루나의 얼굴이 그의 그림자에서 불쑥 튀어나왔고.
“응, 왔어.”
“신호라도 좀 주고 나와라…….”
놀라서 심장을 부여잡은 아르곤의 반응 따윈 신경도 쓰지 않은 모르스 남매가 그들만의 대화를 이어 갔다.
“너희들한테 가르칠 어휘를 정리했어.”
“뭐?”
그 예상치 못한 말에, 넋을 놓고 있던 아르곤이 정신을 차리고 타이니를 돌아보았다.
“어휘라니?”
“어, 동대륙어. 기본 회화는 알아야 할 거 아냐.”
“어…….”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닌데.’
선생이…….
“네가?”
“그럼 나지, 누구야. 너도 글자밖에 모른다며?”
“그렇긴 한데…….”
타이니한테 전투와 상관없는 무언가를 배운다니, 굉장히 찜찜했다.
무언가 자존감이 한없이 내려가는 느낌이랄까?
“……배우긴 배워야지.”
“너, 표정이 불순하다?”
“아, 아냐.”
“흐음…….”
“진짜 아냐!”
“그래. 뭐, 일단 따라 해 봐. ‘안녕하세요’.”
“안녀운헤이세요?”
“하, 씨…….”
타이니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순간, 아르곤의 자존심도 그와 함께 처참히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렇게 불과 하루 후.
끝도 없이 비행을 유지하느라 안색이 창백해진 에스티나가 이를 악물고 있던 그때.
“아무래도 저기 같다.”
떠오르는 태양의 아래편.
카룬을 닮은 거대한 군도의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