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6
36화. 성과
우적우적.
와드득, 와드득.
갖가지 요리가 수북이 담긴 접시들이 순식간에 비워질 때마다 주위의 시선이 경이로움에 물들어 갔다.
심지어 그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해치우고 있는 게 한옆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빈 접시의 높이보다도 키가 작은 아이였으니,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로선 놀라울 만도 했다.
“……사람이 맞긴 한 건가.”
“저 머리 색, 설마 마족은 아니겠지?”
“에이, 공작님이 받아들이셨는데.”
제게로 향하는 시선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도 소년은 그저 식사에 여념이 없었다. 몇 시간째 이어지는 폭식은 도무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와구와구.
“이야, 맛있네요. 역시 발렌티아 기사 식당!”
시선이 마주치면 활짝 웃으며 엄지를 척 올리는 소년.
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가 어쩐지 꺼림칙한데다 식사량 역시 인간 같지 않으니, 눈이 마주치는 시종들마다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물론, 소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거의 채워져 간다, 조금만 더!’
식사라기보단 그저 위에 음식물을 몰아넣는 것에 가까운 행위를 끼니때마다 반복한 지도 벌써 3일째.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이렇게나 많이 먹는 것은 노동이나 다름없었지만, 다행히 이미 반쯤 괴물에 가까워진 육신은 끝없이 씹어 삼킨 음식들을 순식간에 분해하여 에너지로 전환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년은 불과 사흘 만에 5cm가량 자랐다.
물론 그래 봤자 또래에 비하면 여전히 작은 키였지만, 정말 대단한 것은 겉으로 보이는 체격의 성장이 아닌 몸 내부의 변화였다.
우드드득.
근육과 뼈가 실시간으로 압축되며 더욱더 탄력 있고 튼튼하게 변모하고, 심장과 뇌를 비롯하여 복부 장기들 역시 질기디질긴 탄성과 생명력을 머금으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강화되었다.
그러다 마침내 식탁에 산처럼 쌓여 있던 음식들이 거의 다 사라질 즈음.
“꺼어억.”
……완성됐다.
쿵.
살짝 발을 굴렀을 뿐인데 사방이 울리는 거력에 타이니는 슬쩍 미소를 흘렸다.
염체의 비전에 의한 육체의 개량, 그 3단계의 변화가 완성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10배 가까이 더 나가는 무게, 그 무게를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는 탄력과 근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정확히는 8배인가? 역시…….’
몸의 부피와 무게를 비교해 그 밀도를 정확히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번에 얻은 ‘중력’ 속성 덕분이었다. 이상하게 변질된 그 능력 덕에, 사실 딱 이 정도까지 변화하리란 것도 예상하던 차였다.
물론 이렇게까지 무거워지면 생활에 불편함이 생길 수 있다.
이를테면 부실한 바닥이 갑자기 무너진다든가 하는.
‘뭐, 이제는 상관없지. 아니, 오히려 더 좋아.’
‘중력’의 속성을 머금은 마나바디(Mana body), 염체(念體)는 의지가 일어나는 순간 체중을 감소시켰다.
몸무게가 줄어드는 비율은 정확하게 8분의 1.
“후우우.”
이제야 비로소 체격에 걸맞은 몸무게가 된 것이다.
하지만 강화된 근력과 탄성은 그대로니, 체감되는 무게가 거의 없다시피 느껴질 정도로 몸이 가벼웠다.
‘어디 한번…….’
폴짝.
쾅!
“……윽!”
살짝 힘을 줘서 식탁을 뛰어넘는다는 게, 그대로 천장을 들이박고 말았다.
털썩.
“아으으, 내 머리…….”
마나도 안 썼는데 이게 무슨…….
방금 3단계의 육체가 완성된 참이라 중력 속성의 힘을 다루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지만, 주변에서 그 사정을 알 리 없었다.
게다가 사람이 3~4m를 뛰어오르는 것쯤이야 발렌티아의 기사 식당에서 일하는 시종들에게는 그리 놀라운 광경도 아니었으니, 그들의 반응은 꽤 신랄했다.
“……뭐 하는 짓이래.”
“좀 모자란가?”
“쯧쯧, 각하께서 이상한 애를 들이셨어.”
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 대놓고 속삭이는 목소리들에 타이니의 얼굴은 한순간 벌겋게 달아올랐다.
“쪽팔리게…….”
쯧, 역시 수련을 하긴 해야겠다.
새로운 개념을 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이게 전부도 아니란 말이지.’
지금과 반대로, 의지가 일어나는 순간 최대 여덟 배까지 무게를 늘리는 것도 가능하다.
평상시에는 무게를 가볍게 유지하고 적과 충돌 시에는 한순간 늘리는 요령을 습득한다면, 안 그래도 괴물같이 강화된 육체를 8배 빠르게 움직일 수도, 8배 강하게 타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전생에 터득했던 특수 속성 ‘폭발’이 전혀 아쉽지 않을 만큼 엄청난 성과였다.
물론, 검제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 네 녀석이 중력에 대해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렇게 이상하게 고정된 출력이 나오지는 않았을거다.
– 마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깃털처럼 가볍게도, 산처럼 무겁게도 변할 수 있는 근원 속성. 그것이 진짜 중력의 비전일진대…….
그는 정말로 아쉬워했지만, 타이니의 생각은 달랐다.
‘……자기도 그렇게 못 하면서 말이야.’
검제의 가정은 전설의 오러마스터가 된다 한들 가능할까 싶은 꿈같은 얘기.
게다가 지금처럼 발현되는 힘의 양이 8분의 1에서 8배까지로 고정되어 버린 것은 사실 염체의 비전 때문이었다.
이젠 그의 무의식의 집합체라고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육체, 염체가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출력으로 한계선을 그어 버린 것이다.
공작이 부러 연출해 낸 위기 상황 속에서 억지로 속성을 터득한 부작용이랄까.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이점도 있었다.
‘소모되는 마나가 미미해.’
이것은 출력이 제한된 것에 비하면 훨씬 큰 이득이었다.
어차피 그의 육체는 비정상적으로 강화되어 그 중량 역시 정상인의 범주를 훌쩍 넘어서 버렸고, 앞으로 경지가 성장함에 따라 점점 더 무거워질 테니.
‘한 단계마다 거의 두 배씩이라 봐야 하나.’
중력 속성의 출력 역시 그에 따라 변화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생의 경지만 되찾는다 해도.
‘지금보다 얼마나 더 강해질 수 있는 걸까?’
앞으로 다섯 단계가 더 남아 있다.
염체의 비전에 대한 자부심은 잠시 접어 두고, 마나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중폭된 힘이 동급의 마나유저들과 비슷하다고 가정해도.
제겐 경이로울 만큼 강화된 육체와 순간적인 무게 증폭이 가능한 중력 속성이 있다.
성장할수록 더욱 강해질 자신만의 무기와 함께 다시 전생의 경지에 다다른다면, 지금과 그때의 출력 차이만 해도…….
‘……몇 배지?’
음, 음…….
“……에이 몰라.”
계산을 하려 드니 머리가 아팠지만, 대충 감은 왔다.
단순히 동급 최강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압도적인 차이를 보일 것이다. 다른 이들도 특수한 비전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한두 수 위의 상대는 찜쪄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마왕은 몰라도 1군단장 정도는……. 으흐흐.”
주먹을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마수왕 글러터니의 골통을 홀로 깨부수는 짜릿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니 당장.
“수련을 시작해 보자고.”
타이니의 입가에 사나운 미소가 맺혔다.
* * *
팍.
돌바닥을 박찬 순간 번개같이 나아가는 몸.
‘좋아!’
바람을 가르는 느낌을 만끽하며, 타이니는 원을 그리듯 연무장 가장자리를 돌기 시작했다.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힘, 그리고 그에 비해 가벼운 몸은 스스로 생각해도 경이로운 속도를 만들어 냈다.
거기다, 여기서 순간적으로 무게를 최대로 늘리면.
콰아아앙!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연무장의 돌바닥이 발자국 모양으로 패었고, 쩌저적 소리와 함께 균열이 퍼져 나갔다.
최소 익스퍼트급인 블루윙의 기사들이 사용하는 연무장인 만큼 단단한 자재를 사용했을 텐데, 그저 걸음 하나에 박살이 난 것이다.
‘으드득.’
그 육중한 충격에 잠시 인상을 찡그린 타이니는, 이내 극한까지 응축된 신체의 무게를 다시 최소로 줄였다.
동시에.
파아아앙!
순간적으로 튀어 나가는 속도는 좀 전의 몇 배로 뛰었다.
‘이거야!’
단번에 중력 속성의 활용법 중 하나를 찾아낸 타이니는, 그 순간부터 번개 같은 질주와 일순간의 요란한 정지를 반복했다.
파아아앙, 쾅!
……파아아앙, 쾅!
요란한 소음을 내며 연무장의 이곳저곳을 박살 내는 소년.
알게 모르게 그를 주시하던 사람들이 탄성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저게 말이 돼?”
“보고 있으면서도 안 믿긴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저 꼬마가 익스퍼트가 됐다는 것부터가 충격인데…….”
“뛰는 것만 봐도 너보다 강할 거 같은데?”
“뭐, 인마?”
호기심 어린 시선의 주인들은 바로 블루윙의 기사들.
얼마 전 그들의 주군이 무심결에 중얼거린 말.
– 햐, 고놈…… 3일 만에 벽을 넘다니.
그 때문에 퍼지기 시작한 갖가지 소문의 당사자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
심지어 흑마법사가 발렌티아의 천사를 습격했을 때 저 꼬마가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는 소문까지 도는 중이었다.
직접 본 사람이 없다면 모를까 공녀와 동행했던 기사들이 목격자를 자처하기까지 했으니, 이 검은 머리 천재 소년을 향한 기사들의 관심도는 이미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열세 살짜리가 익스퍼트라고? 하…… 씨X, 난 여태 뭘 한 거지?”
“저 정도 재능은 들어 본 적도 없는데…….”
비록 바로 어제 그들의 주군이 녀석을 제자로 들인 것도, 블루윙에 입단시킬 것도 아니라고 못을 박긴 했지만, 그런다고 이미 뜨거울 대로 뜨거워진 관심이 식을 리는 없었다.
“주군의 제자도, 우리 후배도 아니면 한번 겨뤄 봐도 되지 않겠어?”
“……그렇지? 대련 정도야 뭐.”
오히려 타이니가 몸을 만드느라 두문불출하던 시간 동안 그 호기심은 한껏 달아오르다 못해 이미 과열되어 있었다.
거기다 한참 만에 나타나서 보이는 광경이 저런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대쉬와 킥이라니.
“이 정도면 우리와 상대해 볼 만하겠는데?”
“저거 완전 괴물이구만.”
“좋아, 피가 끓는다!”
단원 대다수가 익스퍼트급 이상인, 제국에서도 알아주는 블루윙의 기사들이기에 타이니의 실력을 더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기사들은 저마다 눈을 빛냈다.
“꼬마야, 대련 한번 할 수 있을까?”
“나도, 나도!”
“난 아까부터 기다렸어!”
“닥쳐, 인마! 난 저 꼬마가 여기 왔을 때부터 줄 서 있었어!”
어쩌면 전설이 될 수도 있는 아이를 보며, 블루윙의 기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방금 달리기를 끝낸 타이니에게 다가왔다.
“아……. 하하, 저야 뭐…….”
타이니로선 안 그래도 감각의 조율이 필요했던 참이라 그 갑작스러운 대련 신청들이 내심 달가웠다.
그런데 그때, 그들의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비켜라, 이놈들아! 그 꼬마는 선약이 있다!”
타이니도 한 번 만난 적 있는 험악한 인상의 갈색 머리 남자.
블루윙의 두 부단장 중 한 명인 드렉슬러 아이넨이었다.
“억!? 부단장님!”
“새치기하시는 겁니까!?”
“아무리 부단장님이라도 이러시면…….”
험상궂은 인상과는 달리 평소 단원들에게 너그럽고 인자한 선임으로 유명한 드렉슬러.
그래서인지 기사들은 그의 명에 따라 바로 물러서면서도 농담조로 항의를 표했다. 어쩌면 마음 약한 부단장이 차례를 양보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인자하던 부단장이 인상처럼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는 듯했다.
“저 녀석에게 빚이 있다.!”
드렉슬러는 위풍당당한 한마디로 부하들을 모조리 뒤로 물렸다.
그리고 검은 머리 소년을 향해 손을 까닥였다.
“설욕전은 어떠냐, 꼬마야?”
“……저야 좋지요.”
타이니로선 그야말로 바라 마지않던 상황.
다만.
“이번에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 일단은 방어만 할 테니, 맘껏 재주를 부려 봐라.”
살벌한 기세를 뿜던 좀 전과는 달리 부드럽기만 한 드렉슬러의 말에, 타이니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왼손에 들린 카이트 실드는 제법 튼튼해 보였지만, 오른손은 정말 휑하니 비어 있었다.
이건 자청해서 샌드백이 되어 주겠다는 말이 아닌가.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건데요?”
“왜긴! 어디까지나 선배로서 후배에게 지도 대련을 해 주려는 것이다.”
“그럼 무기를 드셔야죠?”
그 말에 움찔한 거한이 이내 고개를 저으며 손을 까닥였다.
“그, 그게 내가 무기를 들면 성격이 좀 바뀌어서……. 어험! 말이 많다!”
억지로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시선조차 맞추지 못하는 모습.
거짓말을 할 땐 사람 눈을 못 쳐다보는 사람이 있던데, 아무래도 그런 유형 같았다.
‘생긴 거랑 아주 딴판이네’.
그리고 사실 타이니는, 그가 이렇게 나오는 이유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혹시 지난번 일이 미안해서 그러시는 겁니까?”
또 움찔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정곡을 찔렀나 보다.
김이 샌 타이니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일은 어디까지나 제가 선택한 결과지, 경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때의 내기는 제가 이긴 거니까요.”
그 말에 그때의 일을 떠올린 것인지, 드렉슬러의 얼굴이 더욱 침울해졌다.
“아니, 그래도 나는 흥분을 주체 못 해서 어린아이에게 워해머를 휘두른 놈이다. 기사답지 못했어. 내 실수다.”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내가 안 괜찮다! 그러니 소년, 마음껏 덤벼라! 새로운 경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마!”
애써 호기롭게 외치는 얼굴. 하지만 더 따지고 들면 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얼굴로 저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아마도 이것은 이 남자 나름의 사과이리라.
타이니는 그리 탐탁지는 않았지만, 얌전히 연무장 벽에 있던 워해머 하나를 꺼내 들었다.
‘뭐, 좋게 생각하자.’
눈앞의 드렉슬러 때문인지, 보통은 외면받는 무기인 전투 망치가 떡하니 걸려 있는 건 마음에 들었다.
‘좋아, 적당한 무게야.’
드드득.
돌바닥에 망치 머리가 긁히는 소리. 오랜만에 듣는 그 작은 소음이, 그의 입가에 미소를 만들었다.
드렉슬러가 사용하는 워해머는 한 손용이기에 전생의 그가 사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지금 그의 몸으로 들어 보니 전생의 규격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으니까.
거기다 자신보다 두 단계 위의 슈페리어급이라면, 새로 얻은 중력 속성을 마음껏 시험해 보기에는 참으로 적절한 상대였다.
그 생각을 하며 눈이 마주치는 순간.
“원하신다면…… 뭐, 그냥 갑니다.”
가볍게 땅을 박찬 타이니가 이전에 비해 월등히 빠른 속도로 드렉슬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게 얼마 만이더라.’
익숙한 감촉의 무기가 손에 착 감겨드는 느낌.
그 육중한 무게감에 타이니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순간.
“하압!”
호쾌하게 휘둘러진 워해머가 푸른 마나가 넘실거리는 카이트 실드를 거침없이 강타했다.
꽈아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