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67
367화. 황실 3대 고수
단순하기 짝이 없는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몰리고 있던 그때.
서일산의 눈이 번뜩였다.
‘그 사이에 힘을 조절하고 있다?’
그가 완벽하게 공격을 흘려 내는데도 충격이 누적되고 있는 이유였다.
일견 전력을 다하는 듯 보이는 적의 공세는 일격마다 담긴 힘이 조금씩 달랐으니.
그것이 패도일변도의 공격에 미묘한 변화를 줌으로써 자신의 완벽한 방어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거침없는 공세 속에서도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체력과 기의 배분도 그렇고.
하나의 정묘한 기예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어떤 돌발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머릿속에 전투라는 큰 그림을 계속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특히나 저 일격의 형태는 마치 인간이 아니라…….
‘덩치 큰 괴물을 상대하기 위한 기술.’
그것을 깨닫는 순간 서일산의 눈빛은 더욱 무거워졌다.
‘설마 그 경고가 진실인가?’
한편 그를 몰아붙이고 있는 타이니 역시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허…….’
쾅!
전력을 다해 후려친 일격에 적의 대검이 슬쩍 붙었다가 떨어진다.
쩡.
그 안에 담긴 힘은 녹턴에 실린 힘의 십 퍼센트나 될까 싶었지만.
서일산은 그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충격을 흘려 내며 자연스레 뒤쪽으로 물러서고 있었다.
스사삭.
그 칼질부터 잔상이 남을 정도로 재빠른 발걸음 기술까지, 모든 것이 놀라웠다.
마치 새롭게 눈을 뜨는 듯한 느낌.
‘이런 게 가능한 거였어?’
자신의 전투법은 본래 힘으로 적을 압도하여 단숨에 결판을 내는 것을 추구하기는 했다.
그렇기에 정교한 기술을 추구하는 기사들과 싸울 때 가성비가 좋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서일산이 보여 주는 기술의 효율은 그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것이었다.
이전에 그가 보아 온 기술들이 1의 힘으로 3의 위력을 내는 것이었다면, 지금 서일산은 1의 힘으로 10 이상의 초월적인 위력을 내고 있었으니.
앞서 겨뤄 봤던 서진의 대장군, 대해제일검 모용원호의 무술과도 궤를 달리하는 환상적인 기예였다.
대검을 쓰길래 밀어붙이는 공격 위주로 싸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멋진데.’
상대하면서도 속으로 연신 감탄이 나올 정도.
본래 자신의 전투법은 효율이 아닌 효과를 중시했다. 무엇보다 적을 박살 내는 것이 중요하기에, 그 과정에서 추구하는 것은 효율보다는 일격의 위력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마나바디, 염체가 가진 마나 수급력과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육체가 가진 힘은 그러한 전투법을 구사하기에 제격이었다.
언제나 더 강하게, 더 힘 있게.
오직 그것만을 추구해 온 자신의 전투법은 이제 와서 어설픈 기예를 접목시키기에는 이미 완성도가 높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기술이라면.
‘배울 만하다.’
적의 움직임을 살피는 타이니의 눈에 묘한 빛이 스치고,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더구나 저 기예를 완성하는 것은 무기의 움직임이 3할, 몸 내부의 마나 흐름이 7할이니.
‘저 검술은 나한테는 안 맞아.’
하지만 후자의 7할만 흉내 내도 자신의 전투 지속력 자체가 차원이 달라질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자마자, 그는 의식을 더욱 집중하여 ‘고유의 시간’에 빠져들었다.
우우웅.
그렇게 느리게 흐르기 시작한 시간 속에서, 타이니는 이미 상식을 초월해 버린 자신의 감각을 모조리 동원하여 서일산의 체내 마나의 흐름을 읽었다.
‘복잡하네. 하지만…….’
마치 핏줄처럼 복잡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온몸에 퍼져 있는 마나의 패턴이 충격을 분산시키고 전투 지속력을 늘린다는 것이 고스란히 감지되었다.
그걸 자신의 염체에 적용한다면.
‘저렇게까지 복잡할 필요는 없어.’
효율만을 추구하는 수법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으니.
꼭 필요한 부분만 베끼고, 나머지는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바꾼다.
그의 의념이 움직이는 즉시 마나바디가 스스로를 개변시켜 나갔고, 그 결과가 나타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됐다!’
우우우웅.
겉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내부에서는 격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나의 수급 효율이 3할 이상 증가하고, 마나바디를 구성하는 마나끼리의 연결이 30% 더 긴밀해졌다.
그 말인즉, 순식간에 전투 지속력이 거의 30% 이상 늘어나고, 방어력 역시 30% 가까이 증가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더 단단하고, 더 끈질긴 싸움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성과가 있었으니.
‘아는 수법을 파훼하는 것은 쉽지.’
꽈아아앙!
“컥!”
한순간 충격을 받은 서일산이 피를 토하며 뒤쪽으로 날아갔다.
적의 힘을 꾸준히 흩어 내던 그의 마나 패턴이 고스란히 분석되어 그 수법이 파훼된 까닭.
“어, 어떻게……?!”
한순간 균형을 잃어버린 서일산이 당혹스러운 눈으로 타이니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해 볼 틈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리다 쓰러진 상황.
황망한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좌중엔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순간.
타이니가 서일산의 뒤쪽에 선 다른 장군들을 향해 손을 까닥였다.
“대장군의 기예는 충분히 경험한 것 같습니다. 이제 나머지 두 분도 함께 덤비시죠.”
파지직.
새하얗게 변한 체모와 거대한 몸 주변으로 번개처럼 퍼져 나가는 노을빛 오러.
그리고 도발하듯 지어 보인 박력 넘치는 미소가 대련을 지켜보던 선 제국의 장수들의 공분을 샀다.
그리고 누군가 말리기도 전에.
“어디서 사술을……!”
황제의 왼편에 두 개의 도끼를 메고 서 있던 장수, 좌장군 개벽일월부(開闢日月斧) 장천일이 분개한 얼굴로 뛰어나왔다.
쾅!
그의 발밑에서 터져 나가는 석판들.
폭발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달려온 그의 양손은, 어느새 각각 붉고 푸른 두 개의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극명한 온도 차가 느껴지는 붉은 열기와 푸른 냉기의 오러가 십자로 교차하며 타이니를 노리는데.
그 순간 타이니의 몸이 미끄러지듯 뒤로 슥 물러섰다.
정확하게 그 오러를 두른 도끼의 타점을 피해 움직인 것.
그것을 본 장천일의 불퉁한 얼굴에 사나운 미소가 스쳤다.
그리고.
쾅!
“흡!”
상반되는 두 속성이 서로 상쇄되지 않고 오히려 폭증하며, 타이니의 바로 앞에서 엄청난 충격파를 터트렸다.
콰콰콰콰콰.
우르르르릉.
건청궁 앞마당의 돌바닥이 일시에 폭발하듯 터져 나가고, 사방에 흙먼지가 비산하는데.
그 자욱하게 일어난 흙먼지 속을 향해 도끼를 겨눈 장천일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어떤가, 오랑캐? 이것이 바로 제대로 된 동방의 무공이다. 사이한 술수나 기습으로 득을 보는 서방의 잡술과는 차원이 다르지.”
대장군 서일산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몰리다 쓰러지는 것을 본 그가, 처음부터 최강의 절기를 꺼내 든 것이었다.
“개벽부, 일월파멸격……. 저 친구 작정을 했군.”
직전의 충격파를 창으로 갈라 내며 등 뒤의 황제를 보호하던 우장군 양일원이 헛웃음을 흘리는데.
흙먼지 안에서 태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미있군요. 비슷한 효과를 내는 기술을 얼마 전 우리 대륙에서도 봤는데…….”
이내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몸에 먼지 하나 묻지 않은 타이니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
장천일의 절기를 방어해 낸 것으로도 모자라, 그사이 몸에 묻은 먼지까지 털어 버릴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는 증명이었다.
거기다.
“거기 창 드신 분, 합세 안 하실 겁니까? 이 두 분으로는 힘들 겁니다.”
“흥.”
그 말에 장천일이 이를 악물자, 어느새 자세를 가다듬은 서일산이 다시금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허세는 그만 부리셔도 될 듯하오. 그 변신 상태, 오래 가지 못할 듯한데 말이오. 내 수법을 베껴 허를 찌르는 것도 이제는 통하지 않을 거요.”
갑자기 자신에게 말을 조금 높이기 시작한 상대의 정확한 지적에, 타이니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사이 원인 파악도 다 했다? 역시…….’
솔직히 서일산이 처음부터 자신의 특성에 대해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쉽게 밀리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렇기에 더욱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 앞으로 당신들이 상대해야 할 적들이 얼마나 강한지,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할 수 있도록.”
“허…….”
“그리고 이 또한 제 전부가 아닙니다. 제가 순간적으로 낼 수 있는 힘은 더 강하지요.”
스으윽.
그 순간 타이니의 발밑에서 월랑이 솟아올랐다.
“아우우우우우!”
커진 주인의 몸에 맞춰 덩치를 부풀린 월랑이 과시하듯 하울링을 내지르는 순간.
타이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더욱 크고 안정적으로 변한 것을 느낀 서일산의 안색이 확 변했다.
“신수…….”
“정령(精靈)입니다.”
“정령?”
“마나, 이곳 말로는 기(氣)의 정(精)을 뭉쳐 다시 태어난 영혼(靈). 그것이 신수보다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아…….”
“그리고 이 상태의 저는 조금 더 강하고, 훨씬 빠릅니다.”
그 말에 두 장군의 안색이 굳어지는 순간.
“본인이 원하니, 그리해 봅시다.”
어느새 그들의 옆에는 장창을 치켜든 홀쭉한 체격의 장수가 서 있었다.
“일원!”
“폐하께서는……?”
“허락하셨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서일산의 시선에 양일원이 슬쩍 고개를 숙이며 응답했다.
그리고 멀리 앉아 있는 창백한 안색의 황제도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에 서일산이 무거운 표정으로 다시 타이니를 응시하며 대검을 들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합을 맞춰 본 게 언제지?”
“20년 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 그래. 검선 어르신이 찾아왔을 때였지.”
“그때보다 압박감은 더하네요.”
“하지만 그 어르신만큼은 아니겠지.”
“그렇……겠지요.”
장군들이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기세가 안정되는 순간.
“안 오실 겁니까? 말씀하신 대로, 제가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스스로 약점을 드러내는 타이니의 말에 세 장군은 오히려 눈을 빛냈다.
“그렇다면 가야지.”
“전력을 보여 줍시다.”
“선 제국의 3대 고수를 동시에 상대하겠다는 배짱, 인정해 주지.”
황금빛 오러, 붉고 푸른 오러, 새하얀 오러가 동시에 솟구쳐 오르며 기세를 형성할 때.
“하!”
은빛 늑대를 탄 기수가 노을빛 오러를 뿜어내며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쾅!
바닥이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공간을 압축하듯 움직인 거대 늑대가 순식간에 서일산의 앞에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휘둘러지는 워해머.
흡!
생각보다 훨씬 빠른 그 공격을 서일산의 대검이 간신히 흘려 내는 순간.
월랑의 오른쪽 옆구리로 붉고 푸른 도끼가 연달아 날아들고.
콰콰!
타이니의 몸통을 향해 새하얀 바람을 휘감은 창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늑대와 기사는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스아아.
그들의 전신을 희미하게 감싸고 있던 노을빛 오러가 진한 빛을 발하자.
늑대와 기수는 그대로 한 발 더 가속하여, 물러서는 서일산을 향해 워해머를 휘둘렀다.
‘무슨?’
‘이렇게 막무가내로……?’
‘원래 이런 싸움을 해 온 자다.’
세 장군의 눈빛이 교차한 그 짧은 순간.
꽈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세 사람이 튕겨 나갔고, 고통을 참는 듯 인상을 찡그린 타이니는 그대로 원래의 목표인 서일산을 향해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지독한……!”
쾅!
거침없이 몰아치는 공세에 담긴 막대한 힘, 거대 늑대의 엄청난 스피드.
그리고 웬만한 공격은 그대로 몸으로 때우며 방어를 포기하는 공격 일변도의 전술.
생전 처음 보는 무식한 전법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내가 공격을 흘려 내겠다.] [제가 늑대의 발을 묶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세 장군 사이에 전음이 교차하는 순간.
콰콰콰쾅!
그들의 싸움은 완벽하게 호각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지켜보던 이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아니, 정확히는 선 제국의 사람들에게만.
“저럴 수가…….”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소?”
“꿈을 꾸는 것 같구려. 어떻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중천제일검(中天第一劍), 하늘의 중심에 선 최고의 검.
개천관일창(開天貫日槍), 하늘을 열고 태양을 꿰뚫는 창.
개벽일월부(開闢日月斧), 세상을 쪼개는 해와 달의 도끼.
그 별호에 동대륙 특유의 과장이 들어가 있다고는 하나, 그런 거창한 이름을 받을 정도로 강력한 무력을 가진 초인이 바로 저 세 장군이었다.
선 제국의 무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자부심과도 같은 이들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장군들이, 고작 서방의 오랑캐 한 명과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군요.”
“대단하군. 허허, 어찌 사람이 저런…….”
“어떻게 오랑캐가 저런 무력을…….”
놀라는 자, 감탄하는 자, 그리고 질시하는 자.
온갖 군상의 반응 속에서, 황제만이 그 싸움을 무거운 눈으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한편.
“역시 타이니.”
“내 동생, 대단.”
“장군들도 대단해요, 루나 양.”
“근데 저 녀석, 그사이 더 강해진 거 같은데?”
타이니의 일행은 그저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