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79
379화. 마룡 군단
“이게, 이게 말이 돼?”
파아아아앙.
아르곤은 점차 멀어지는 노란 장포 자락을 쫓아 이를 악문 채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비행 마법이 허락하는 최고도까지 오르고 시야 확대 마법까지 적용해야 간신히 눈에 들어오던 그 옷자락의 주인은, 이내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에 아르곤은 신경질적으로 다시금 마기아를 휘둘렀다.
[加速(가속)]파아아아앙!
“어떻게 그냥 달리는 사람이……!!”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인식은 되고 있었다.
자꾸만 멀어지는 자신을 배려해, 검선이 타겟팅 마법에 ‘걸려 주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곧 해가 질 터이니, 검선은 어제처럼 야영을 위해 어딘가에 자리를 잡을 터였다.
‘이 빌어먹을 대륙은 왜 남북으로 더 긴 것 같지?’
동대륙의 지형에 괜한 화풀이를 하던 아르곤은 다시금 마나를 최대한 쏟아부으며 가속했다.
그러다 결국 완전히 진이 빠지고 나서야, 숲속 공터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그 위에서 야생 멧돼지를 굽고 있는 검선과 루나의 곁에 내려설 수 있었다.
“커흠, 역시 이곳은 공기가 좋네.”
지나친 마력 소모 탓에 탈진 증세가 와서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마법을 써서 억지로 몸을 제어했다.
물론 그래 봤자.
“자네, 그러다 곧 쓰러지겠네. 빨리 와서 앉아.”
“……바보.”
육체 능력치가 월등한 두 사람에게 바로 간파당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젠장.’
그래도 약한 모습을 보여 주기 싫었던 아르곤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연기하며 불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아, 살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안도의 탄성을 터트렸다.
그래 놓고는.
“아, 내, 내 말은, 역시 따뜻한 곳이…… 아니, 그, 난 멀쩡한데…….”
혼자 화들짝 놀라며 헛소리를 늘어놓는 아르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은 루나는 이내 불에 구운 멧돼지의 뒷다리를 쭉 찢어 내밀었다.
“고생했어. 먹어.”
“……나 주는 거야?”
“먹으라고.”
그러자 왜인지 과하게 감동한 듯한 아르곤에게 살짝 거부감을 느낀 루나는 그에게 건네던 고기를 툭 던졌다.
“예입……!”
그리고 그 뒷다리를 웃으며 받아 들려던 아르곤은 이내 화들짝 놀라며 자기도 모르게 저글링을 시전했다.
“으랏차. 아뜨뜨! 뜨끈하네. 하, 하하.”
손바닥에 열기를 막아 줄 마나나 오러를 운용하지도 못할 만큼 탈진해 있던 탓이었다.
그에 검선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자네, 요술쟁이라더니 재주도 잘 부리는군.”
그저 보는 것만으로 아르곤의 몸 상태나 심리를 다 파악한 듯했지만.
아르곤은 그 말을 못 들은 것처럼 태연하게 멧돼지 뒷다리를 맨손으로 잡고는 물어뜯기 시작했다.
“역시 고기는 뜨거워야 맛이지.”
새빨개진 얼굴로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고기를 잡은 손바닥에서는 ‘치익’ 소리가 나는데도 말이다.
당연히 그 쓸데없는 호기는 오러익시더인 루나의 감각을 속일 수 없었다.
“변태였……?”
“응? 내, 내가? 그럴 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광경.
두 사람을 지켜보던 검선은 이내 슬쩍 혀를 차더니 다시 표정을 관리하며 아르곤에게 한마디를 전했다.
“……자네도 강기를 다룰 줄 아니 금세 회복하긴 하겠지만, 자중하게.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예?”
“내일 오전 중에 도착할 거야. 그 균열이라는 게 느껴지는 장소에 말이네. 기(氣)를 조절하게. 언제든 싸울 수 있도록.”
“아…… 예.”
그제야 호들갑을 떨던 아르곤의 얼굴도 진지하게 변했다.
지금 그들이 향하는 곳은 칠죄종의 강림 포인트.
게다가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소수로 위험 지대에 들어가는 것이니, 그것을 떠올리면 지금도 손발이 떨릴 지경이었다.
‘동글이도 고장 났는데. 자체 수복이 얼마나 걸릴지…….’
물론 그럼에도, 옆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자수정 눈동자를 신경 쓰다 보니 이상하게도 호기가 솟아올랐다.
“혹시 버거우시면 제게 맡기고 후퇴하십쇼. 제가 다 처리하겠습니다.”
“……그래도 되나?”
하지만 거의 타이니급 강자일 것으로 보이는 검선이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아르곤의 호기는 대번에 수그러들었다.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면 곤란합니다. 농이죠. 농.”
동대륙어로 그리 말하면서도 혹시나 루나가 알아들었을까 봐 그녀를 힐끔거리는데.
피식 웃은 검선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걱정 말게. 우리 세상의 일로 서방인이 피를 보게 하지는 않을 테니. 특히 여자는.”
자신감을 표하는 그였지만, 상황을 쉽게 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건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루나를 턱짓하며 하는 그 한마디에는 비장한 각오까지 담겨 있는 것 같았으니까.
“영감이 뭐래?”
“널 믿는대.”
“흠…….”
아르곤은 루나의 물음에 적당히 대꾸해 주고는 다시 검선을 바라보았다.
새삼 궁금한 게 생겼으니까.
“긴장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바로 본 겁니까?”
마충 군단의 장군으로 보이던 사마귀를 일검에 격퇴한 강자가, 아직 대면하지도 않은 적들을 상대로 그런 감정을 보이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그런데.
“차원이 뚫렸을 때, 아니 찢어졌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 순간 느껴지는 엄청난 존재감이 있었는데, 어찌 긴장을 안 하겠나. 이 늙은이의 가슴이 다 뛰는구먼그래. 허허.”
저 경지가 가늠조차 안 되는 강자가 존재감을 느낀 것만으로 긴장할 정도라니.
검선의 대답을 들은 아르곤은 괜히 더 불안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 그럼 타이니 놈은…… 왜 그랬지?’
분명 검선과 비슷한 감각을 느꼈을 타이니 녀석은 저런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다.
녀석은 칠죄종의 강림을 감지했을 때도 단지 성질을 부렸을 뿐, 긴장한 느낌은 아니었다.
타이니 녀석이 저 노인보다 강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처럼 사는 놈이라 그런 건가.’
그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아르곤은 다시금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도망치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결심해도 위기 때마다 간이 콩알만 해지는 자신과 비교가 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그 순간, 고개를 푹 숙인 그의 시야에 루나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긴장돼?”
“우와악!”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씨, 너, 너…….”
본능적으로 후다닥 물러선 아르곤이 말을 더듬는데.
피식 웃은 루나가 그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긴장하지 마. 너 잘해 왔어.”
“그, 그야 당연하지!!”
부끄러움에 오히려 버럭 지른 고함이 공터에 쩌렁쩌렁 울리는데, 그에 아랑곳하지 않은 루나가 태연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나온 과거가, 사람을 만들어.”
“어……?”
갑자기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싶었는데.
“그러니 쫄지 마. 네가 해온 일, 결코 작지 않아. 너 이미 큰 사람. 네가 작다고 생각하는 건, 너 자신뿐이야.”
루나답지 않게 길게 늘어놓은 그 말이 순간적으로 그를 멍하게 만들었다.
“내, 내가?”
“그래.”
분명 별거 아닌 말인데.
‘당연한 소리인데…….’
왜인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 내가 언제 쫄았다고 그래!”
머쓱한 마음에 괜히 허세를 부려 보지만.
“좋아.”
“뭣?!”
이어진 루나의 한마디에 심장이 하늘 위로 솟구치는 듯했다.
“그런 태도.”
“아…….”
물론 그 뒷말을 듣곤 다시 바닥으로 추락했지만.
두근. 두근. 두근.
“마, 말 좀 이어서 해라. 젠장, 깜짝 놀랐잖아!”
뛰는 가슴을 감추려 공연히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러자 갑자기 루나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졌다.
“……안 그래도, 노력 중이야. 계속.”
아차.
“그, 그게 내 말은, 그 뜻이 아니라……. 내가, 마, 말 끊어서 말하는 게 싫다는, 아니, 좋다는……. 아아악! 아무튼 미안!!!”
또다시 두서없이 쏟아져 나온 말들.
하지만 그의 진심이 통한 건지, 그 순간 굳어졌던 루나의 얼굴에 다시금 미소가 돌아왔다.
“너부터 고쳐야겠네.”
“어? 어! 어, 어. 나도, 나도 고쳐야지. 하. 하하.”
그녀가 피식 웃으며 내뱉은 말에 아르곤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덕분에 검선의 말에서 비롯된 긴장감이 어느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그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 있던 노인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빙긋 웃고 있었다.
“좋을 때군…….”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는 몰라도, 분위기만으로도 저 젊은 남녀의 관계는 알 것 같았다.
보기 좋은 젊은이들.
나이에 비해 실력도 훌륭하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먼 바다를 건너 동대륙까지 찾아온 정성과 인품도 칭찬할 만하니, 뭐 하나 나무랄 곳이 없는 인재들이었다.
그러니 더욱.
‘우리 대륙의 일은 우리 선에서 끝낸다. 내 손으로.’
검선은 어쩌면 이미 한참 늦어 버렸을지도 모르는 각오를 다지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위태로운 세상 속에서, 아름다운 하룻밤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다음 날.
“음?”
아르곤의 알람 마법이 울리기도 전에, 명상으로 밤을 지새우던 검선의 눈이 갑자기 떠졌다.
‘움직인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는 순간.
– 진군하라! 눈에 띄는 모든 생명을 파괴하라!!!!!
소름 끼치는 살기가 담긴 영파가 그들이 있는 공간까지 울려 퍼졌다.
“뭐!?”
“하!?”
그에 각각 마법으로 만든 흙집과 나무의 그림자 속에서 자고 있던 아르곤과 루나 역시 한순간에 잠이 확 달아난 표정으로 튀어나왔다.
“벌써 움직이고 있었나?!”
검선의 안색이 굳어짐과 동시에 그의 몸이 그대로 남쪽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젠장!”
“가자!”
그리고 그런 그가 사라진 방향을 따라 아르곤과 루나도 뒤늦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飛行(비행)] [加速(가속)]하늘 위로 날아오른 아르곤과 숲속의 그림자를 무서운 속도로 타고 넘는 루나가 남쪽으로 몇 시간을 질주했을 무렵.
그들은 하늘과 땅을 뒤덮은 육중하고 거대한 괴물들의 군세를 마주할 수 있었다.
“끼에에에에!”
지상에서는 온몸에 뿔과 비늘이 무질서하게 돋아난 동산만 한 파충류가 입으로 시꺼먼 연기를 토해 내며 전진하고 있었고.
쿵. 쾅. 쿵. 쾅.
그 앞뒤에서는 네발 달린 괴물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사방을 향해 흩어지는데, 그중 가장 작은 것도 집채만 했다.
“끼에에에엑!”
하늘 위에서는 수십 미터 길이의 거대한 날개를 가진 뱀 같은 괴물들이 창공을 메우며 사방으로 쏟아졌고.
쿠우우우웅.
저 멀리 그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지점에서는,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거대한 괴물이 움직이고 있었다.
뿔 달린 7개의 머리가 붙어 있는 각각의 기다란 목을 하늘에 닿을 듯 쳐들고 전진하는 그 괴물의 덩치는 그야말로 산과 같았다. 그 등 뒤에 돋아난 기형적으로 ‘작은 날개’만 해도 그 크기가 집채만 할 듯했다.
거기다.
쿠우우우우웅.
마치 강물처럼 늘어진 거대한 꼬리는 여섯 개의 다리가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크게 요동치며 그 괴물이 지나온 길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었다.
이미 차원 균열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 괴물과 그의 군세가 지나온 뒤쪽에는 온통 폐허가 된 광경뿐이었다.
그리고.
– 오만의 군세여. 중간계의 모든 것을 파괴하라.
일곱 쌍의 머리에서 동시에 울려 퍼진 영파에 따라.
“끼에에에에!”
콰콰콰콰콰.
콰아아아앙!
사방으로 쏟아지는 거대 괴수 군단이 저마다 입에서 불길을 토해 내고, 하늘에 먹구름을 불러 벼락을 치고, 내딛는 지면을 검은 독기로 오염시키고 있었다.
더구나 그 괴물들의 몸에서 넘실거리는 암흑 오러나 마기는 단순히 놈들이 덩치만 큰 괴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으니.
하나하나가 가히 재해를 일으킬 것 같은 괴물이 언뜻 보이는 것만 수백.
– 우리 마룡 군단이 최강이라는 것을 중간계의 잡것들에게 증명하라!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일행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마룡 군단…….”
“오만의 군세…….”
여태 그들이 상대해 왔던 마계 군단들의 위용을 한참이나 뛰어넘는 파멸적인 광경.
그 앞에서 아르곤과 루나는 순간적으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굳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이런 것들을 너희가 셋이나 처리했다고?”
“어르신!?”
먼저 떠난 줄 알았던 검선이 딱딱한 얼굴로 그들의 곁에 내려섰다.
“예, 예상외입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아르곤이 그렇게 말을 이으려던 찰나.
“후퇴한다.”
검선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예?”
“이건 우리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특히 저 괴물은……. 대륙의 전력을 모아야 해. 절대고수들까지 전부.”
검선의 단언에 아르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단, 그 전에 한 방은 먹이고 가야지.”
천지 사방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괴물들의 행패를 지켜본 검선의 검에는, 아까부터 이글거리는 갈색의 오러가 끊임없이 압축되고 있었다.
마치 그 눈에 가득한 분노의 불길처럼 타오르는 오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