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91
391화. 가루라 vs 몽마 군단
가루라(迦樓羅), 용을 잡아먹는 새.
그 신화 속 동물의 이름을 딴 선 제국 황실 친위대의 진법은 그야말로 강력했다.
우우우웅.
콰드드득.
새의 날개처럼 좌우로 쭉 흩어진 기마들이 파도처럼 밀려가며 마물의 군대를 휩쓸었다.
그들의 전투 진법 가루라의 힘은 분명 강력했지만, 마물들은 그 이상으로 허무하게 쓰러져 갔다.
1만에 이르는 마물의 군단에 비하면 500여 기로 구성된 기마대는 거의 한 줌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 이리로.
– 나에게 안겨요.
– 내게 그대의 사랑을 주세요.
흉측한 외양으로 턱도 없는 유혹을 해 오는 마물들이 무방비 상태로 기마대의 앞에 뛰어든 탓이 컸다.
“끼릭!?”
“끼야아악!”
그리고 그런 놈들은 황금빛 빛살에 닿는 순간 그대로 그 힘에 휩쓸려서 사라져 갔다.
심지어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 나간 괴물 중에는 몸이 갈려 나가는 순간 검고 불길한 오러를 뿌리는 것들도 있었다.
초인경의 괴물조차 그리 허무하게 죽어 나간 것이다.
‘뭐 하자는 짓이지?’
서일산조차 이것들이 왜 이러나 싶을 정도였다.
순간적으로 정말 이것들이 인류의 위협이 되는 마물들이 맞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 쾌속의 진격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 어딜!
– 역겨운 신의 기운이다.
– 군단의 권능이 막힌다.
– 물러서라, 몽마의 정예들이여.
여태 쉽게 죽어 나가던 것들과는 궤가 다른 기세를 풍기는 마물들이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꽈아아아앙!
“크르르르.”
우우우웅.
그그그그그극.
일순간 스무 개체의 괴물들이 늘어서서 친위대의 진격을 막아서는데.
가루라의 힘을 두른 황실 친위대, 황실 3대 고수에 초인경의 고수 스물이 포함된 500여 기의 병력이 고작 스물의 괴물이 뿌리는 기세와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캬아악!”
“크륵!?”
콰콰콰콰콰.
거대한 두 힘의 충돌에 주변의 약한 괴물들이 그대로 튕겨 나가는 순간.
서일산의 피부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놈들, 하나하나가 혼세경이다.’
영역의 동조.
스무 개체의 괴물들이 일시에 영역을 동조시키며 자신들의 힘을 증폭시킨 것이다.
광휘 공의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하던 사실.
멀리서 놈들의 모습을 보고서야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었는데, 이 마물들은 정말로 지고한 무학의 경지인 혼세경에 달해 있었다.
그것도 한둘도 아닌 스물에 가까운 개체들이 모두 절대고수와 동급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그나마도 그중 하나는 자신들과의 힘겨루기에 끼어들지도 않고 있었다.
9척에 가까운 키만 아니라면 그저 지나치게 천박한 차림의 여성으로 보이는 한 개체.
– 호오? 현혹은 신의 힘으로 무마한다 해도, 한낱 인간들이 이걸 버텨?
혜광심어로 태연하게 감탄사를 뿌리는 여자.
혼세경의 마물들 스물한 개체 가운데에는 특출난 일곱 개체가 있다고 들었는데, 서일산의 기감은 저 여자가 그중에서도 특히나 강력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 명심하세요. 적어도 악마급, 특히나 장군 일곱은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 한 놈이라도 놓치면 나라가 혼란에 빠져들 겁니다. 특히 이 동대륙에서는.
광휘 공이 강조한 말이 아니더라도, 그 겉모습과는 달리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힘은 그가 긴장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크와아아앙!”
– 라미아! 보고만 있을 셈이냐!? 이놈들 보통이 아니다!
한 쌍의 송곳니가 턱밑까지 내려온 거대한 맹수형 괴물이 신경질적인 포효와 함께 여자에게 심어(心語)를 보냈다.
맹수의 늘어진 젖가슴이 출렁거리는 것이 혐오스럽게도 보이는데.
– 재촉하지 마라, 샤넬. 주인께서 승기를 다시 잡으시길 기다린 것뿐이니.
일순간 여자의 시선이 순간 하늘로 향하는가 싶더니.
– 다행히 우세하시다.
살기 어린 심어가 퍼져 나가는 동시에, 여자가 전선에 뛰어들어 왔다.
– 이제 이곳을 정리해야지.
그 순간 여자의 전신에서 이상한 문양이 떠오르더니, 전선 곳곳에서 기마들의 발을 파고드는 가시넝쿨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히이이이잉!”
여태까지 두 팔을 벌리고 기마대에게 달려들어 오다가 창에 꿰뚫리거나 정면에서 무작정 힘으로 부딪치던 괴물들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
“사술!?”
“진법의 힘을 기마에 집중해!”
“밀려나지 마라!”
다행히 서일산이 뭐라 지시할 것도 없이, 각 분대의 지휘관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처하며 진법을 유지했다.
다만 그럼으로써 괴물들을 조금씩 밀어 내던 가루라의 힘이 약해지고 전선이 뒤로 밀리기 시작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 크하하하!
– 무너져라!
커다란 송곳니를 가진 맹수와 서대륙의 정장을 입은 남자와 여자, 박쥐 날개를 단 벌거벗은 남녀, 그리고 여성 귀신까지.
장군으로 추측되는 강한 괴물들이 일순간 살기 어린 심어를 토해 내며 전선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그그극.
“히이잉!”
말은 본디 뒤로 걸을 수 없는 생물이니, 한 발씩 전선이 밀릴 때마다 친위대의 기마들이 하나둘씩 휘청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서일산이 미간을 좁히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일원! 천일!!”
단순히 이름을 부른 것뿐이지만, 그의 뜻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전해졌다.
동대륙 최강의 전투 진법, 가루라 안에서 별도의 기술을 쓸 여력이 있는 것은 혼세경의 고수들뿐이니까.
“하!”
개벽일월부(開闢日月斧), 장천일의 두 도끼가 십자로 교차하며 각각 붉고 푸른 강기를 뿜어냈다.
개벽부(開闢斧) 절기(絶技), 일월파멸격(日月破滅擊).
일전에 타이니를 공격한 적이 있던, 불꽃과 얼음의 기운을 담은 강기가 서로 교차하며 날아가는데.
묘하게도 그 방향은 적이 아닌 서일산을 향해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조심!”
뒤이어 개천관일창(開天貫日槍), 양일원의 창을 휘감고 있던 새하얀 강기가 회오리치듯 창끝에 모여들었다.
관일창(貫日槍) 극의(極意), 관천(貫天).
강기로 이루어진 그 회오리바람은 창끝에서 응축되더니, 그 무엇이든 꿰뚫을 수 있는 빛살이 되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살은, 서일산을 그대로 갈라 버릴 듯 쇄도하던 장천일의 붉고 푸른 두 강기가 교차하는 지점을 관통했다.
두 사람의 공격은 동시에 엄청난 힘을 싣고 그대로 서일산을 강타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하압!”
서일산이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두른 순간, 두 혼세경의 고수가 뿜어낸 힘이 고스란히 한곳에 모여들었다.
유수검(流水劍),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 극의(極意), 역도기개세(力道氣蓋世).
그가 자신의 의도대로 흘려 낸 그 강기에 가루라의 힘까지 더하자.
번쩍.
그 검에 모인 힘에 황금빛이 더해져 전방을 향해 쏘아졌다.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황금빛 새의 부리가 먹이를 향해 덮쳐드는 광경처럼 보였는데.
그 막대한 힘이 향하는 것은, 일곱 장군 중 가장 약해 보이는 여자 귀신 형태의 괴물이었다.
– 이런!?
– 아니마!! 피해!
– 흥!
여자 귀신, 아니마의 몸이 한순간 흐려지며 자리를 이탈하려 했지만.
“하!”
– 윽!?
그 순간 놈과 대적하고 있던 황실 친위대의 초인들이 움직였다.
열 명의 초인경의 고수가 만들어 낸 강기의 그물, 가루라의 발톱이 그 단 한 개체에게 집중되며 움직임을 제약한 것이다.
– 아, 안 돼!
그리고 그 위를 가루라의 부리 끝, 세상의 어떤 것도 찢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막대한 힘이 덮쳤다.
꽈아아아아아앙!
콰콰콰콰콰콰.
한순간에 소멸해 버리는 귀신의 형체.
– 아니마!
– 아니마 님!!
– 이것들이!!
장군 중 하나가 허무하게 죽자, 일순간 그 자리를 피했던 악마급 몽마들의 전신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성공했다.’
상대적으로 황실 친위대의 기세는 오를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괴물들을 쓸어버려라!”
“우와아아!”
콰아아앙.
다시 시작된 힘과 힘의 겨루기.
그 접전은 팽팽하게 이어지는 듯했지만, 갈수록 황실 친위대가 우위를 점해 가는 것 같았다.
초강자들의 충돌을 피해 흩어졌던 몽마 군단의 괴물들이 점점 더 많이 그 전장으로 모여들기 전까지는.
‘좁아. 너무 좁아.’
황실 친위대 십인장, 위천성은 전장의 상황에 미간을 좁혔다.
기세를 모아 전선을 뚫기 위해 진법을 최대한 좁게 펼친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크륵!?”
“키에에!”
사방으로 튕겨 나간 괴물들이 다시 접근하기 시작했는데도 진법 변경에 대한 지시가 없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선 제국 무력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전투 진법 가루라는, 일단 그 기운이 말단까지 퍼져 나간 뒤에는 간격을 열 배까지 늘여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즉 자신 같은 십인장을 기준으로 대략 다섯 배, 말단 무사를 기준으로 일곱 배에서 열 배가량 증폭되는 이 엄청난 전투력을 넓은 전선 곳곳에 퍼트릴 수 있는 사기적인 진법이라는 뜻이다.
고대의 선 나라가 제국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진법에서 기초한 압도적인 무력이 한몫했을 정도.
물론 핵심축이 되는 인재들이 연달아 무너지면 진법이 박살 나기 쉬우니 그렇게까지 할 일은 잘 없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뒤를 받쳐주는 군대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 날개축 역할을 하는 백인장에게서 1리 반…… 아니, 1리 이상 벗어나지 마라.
전투 시작 전부터 내려온 명령은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사람을 홀리는 사술을 쓰는 마물이라고 하던가?
백번 양보해서, 전투 시작 전의 모습을 보니 적에겐 어느 정도 그런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낱 마물의 사술 따위가 단련된 무사의 정신을 함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거기다 대장군이 그 대책으로 마련한 것들도.
‘신화경에 이른 무인들의 유물이 아군을 그 사술에서 보호해 준다? 허, 무슨 말도 안 되는…….’
부러진 검과 한쪽만 남은 권갑.
이미 수백 년 전에 별거 없다고 결론이 난 볼품없는 고대의 유물에 그런 힘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그 말을 할 때 장군들의 표정도 솔직히 미심쩍어 보였다는 것은 눈치 빠른 이는 다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명령을 어길 수는 없었지만.
“끼에에!”
마물들에게 포위되기 직전인 지금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진법의 끝부분인 날개 끝을 지휘하는 자신의 조가 가장 위험한 상황이었다.
어차피 스물에 불과한 소수의 괴물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그들 조의 역할은 전열의 두 번째 교대조.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포위되기 전에 먼저 친다.’
명령을 어기고 날개축에서 1리 반 이상 벗어나게 되는 것이 찜찜했지만, 포위되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저놈들을 먼저 정리한다!”
“……!?”
“예!”
조원들의 대답이 반 박자 늦었다.
그들 역시 사전에 대장군에게 들었던 명령을 떠올린 것이리라.
하지만 당장은 조장의 지시를 따르는 게 먼저였고, 그 또한 타당하다는 것을 금세 판단한 것 같았다.
그리고.
“하!”
조장의 기합과 함께 그들이 다가서는 괴물들을 정리하기 위해 날개축에서 1.5리 이상 벗어나는 순간.
– 진정한 주를 경배하라!
“끄헉!?”
히이이잉!
갑자기 머릿속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엄청난 목소리에 위천성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도 않아.
“헤…….”
위천성과 조원들, 그리고 그들의 기마까지 모두 그대로 눈이 풀린 채 창을 거꾸로 들기 시작했다.
“괴물들을…….”
“죽이자.”
“아녀자들을 보호하자.”
그들의 눈에 비친 괴물들이란, 바로 직전까지 아군이었던 동료들과 상관들.
그리고 보호해야 할 ‘아녀자’들이란, 그들에게 다가오던 흉측한 외모의 괴물들이었다.
이성을 잃은 위천성의 조는 당연하게도 진법을 유지하는 구결과 기의 흐름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했고.
황실 친위대의 전력에서 그들 열 명의 조원이 빠져나간 만큼, 가루라 진법의 힘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대쪽 날개 끝부분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진법의 힘이 일 할가량 약해진 순간, 지휘부 3대 고수들이 그 변화를 인지하고 즉시 다급한 고함을 질렀다.
“무슨 일이냐!”
“이런 어리석은……!”
“범위를 벗어나지 마라!”
급속도로 다시 전열을 축소하는 황실 친위대.
하지만.
“저게, 뭐야?”
“천성!! 정신 차려!”
“이런 미친!”
“그게 진짜라고!?”
이미 눈앞의 괴물들에게 위압감을 느끼고 있던 참에 또 다른 미지의 공포를 마주한 그들의 움직임은 다소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이들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