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93
393화. 상식 밖의 일격
강량은 당황스러웠다.
‘저게, 무슨……!’
전장에 도착해 보니 마물의 군세는 생각보다 많았고 느껴지는 기세도 살벌했지만, 비단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르르르릉.
꽝!
콰콰콰콰콰.
바로 하늘에서 연신 폭발하는 말도 안 되는 기운의 여파들이 그를 질리게 한 것이다.
기감이 뛰어나기에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천외천의 격돌.
‘설마 신화경의 괴물이라는 헛소리가 진짜……?’
하지만 그는 다행히 금세 정신을 차렸다.
소름 끼치는 기운을 뿜어내는 괴물의 존재는 상상외였지만, 그 괴물을 상대하는 이들에 대해선 그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서방제일검과 그 반려의 움직임도 놀라웠지만, 그를 안심시킨 것은 다른 한 명이었다.
‘검선!’
동대륙 최강의 고수, 감히 자신과 같은 혼세경이라 논하는 게 실례가 될 정도로 아득히 높은 수준의 강자.
예상외의 변수를, 또 다른 예상외의 변수가 막아 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물의 군대는 이미 동쪽에서 진군해 온 선 제국의 군대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와중이었는데.
대륙 10대 고수 중에서도 수위권에 속하는 자신의 기감으로 판단할 때, 마물 군단의 가장 강력한 괴물들은 그쪽에 몰려 있었다.
완벽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마물들을 쳐부숴라!!”
동진의 대장군, 진천뇌전검 강량은 호기롭게 소리칠 수 있었다.
하늘에서 번뜩이는 검붉은 빛과 노을빛, 갈색빛의 강기의 세례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가슴을 뛰게 하던 긴장감은 전장에 대한 흥분, 그리고 공훈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자연히.
“하!”
두두두두두.
질주하는 군대의 선두에 선 그의 표정이 달아올랐다.
그가 거느리는 동진의 정예 3천 명은 모두가 최소한 저마다의 속성을 개화한 일류 무사 수준이었으니, 자신감이 넘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섣부른 만용이 아니었다.
그들이 마물 군단의 후방으로 들이닥치려던 순간, 갑자기 반전한 일부 괴물들이 연분홍빛 마력을 뿜어 대며 요사한 술수를 부렸다.
그중에서도 특히.
– 아아아아아!
상반신은 인간 여성을 닮고 하반신은 물고기의 그것인 여성형 괴물들의 노랫소리가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기는 했지만, 떨쳐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모두 집중!”
“하!”
강량의 기합과 함께, 그를 중심으로 형성된 뾰족한 송곳 모양의 돌진 진형이 이내 짙은 황토색의 거대한 코뿔소 같은 형상의 군기(軍氣)에 휘감겼다.
동진의 정예들이 펼치는 전투 진법, ‘무소의 뿔’.
그 힘은 마물들의 잡스러운 술수를 단숨에 날려 버렸다.
두두두두두.
“가자!!”
무소의 뿔은 선 제국의 가루라보다는 거의 모든 면에서 떨어지지만, 아군의 사기를 진작하고 집중력을 끌어 올리는 효과만큼은 더욱 뛰어났다.
강량이 선 제국의 경고를 무시한 데에는 나름의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서일산, 전투 후의 네 표정이 기대되는구나. 흐흐.’
마물 군대의 가장 약한 부분을 동진의 최정예가 치면서 싸움을 끝낸다.
그렇게 이룬 공적은 결국 자신의 영광이자 동진의 영광이 될 것이며, 선 제국에 많은 양보를 받아 낼 기회로 이어질 것이다.
어쩌면 조국이 동진(東晉)이라는 이름에서 동(東)을 떼고 다시금 진(晉)의 이름을 회복하는 데 제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벌써부터 웃음이 나왔다.
그러던 그 순간.
[피하게, 강량!]머릿속에 강하게 울려 퍼지는 검선의 목소리와 함께,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기운이 머리 위로 엄습하는 것이 느껴졌다.
“흡!?”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은 것이라 판단하고 반사적으로 반응했지만, 다급히 휘두른 검은 그저 허공만 가를 뿐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의 눈은 허공에서 직선으로 떨어져 내리는 검붉은 유성을 발견했다.
아직은 한참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있는 유성. 하지만 그 먼 거리를 격하고 전해져 오는 기세만으로도 진천뇌전검이라 불리는 자신을 압박하여 헛손질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유성은 순식간에 가까워졌고.
그 타오르는 듯한 검붉은 마기 안에 두 쌍의 팔, 세 쌍의 눈을 가진 여성형 거인 괴물이 존재하는 것을 목격한 강량의 눈이 확장될 때.
‘빌어먹을, 갑자기 왜?!’
– 복종하라!!
좀 전에 들은 검선의 목소리와도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절대적인 울림이 그의 뇌리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그가 사모했던, 하지만 결국 가질 수 없었던 여인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현재 동진을 지배하는 여왕이자 철혈의 군주. 하지만 한때는 대륙제일화(大陸第一華)로 불렸던 여인이 가장 젊었을 때의 모습으로.
그녀가 봄날의 꽃잎처럼 살포시 그의 앞에 내려앉았다.
– 강량, 내 사랑.
상황은 명백히 이상했다.
하지만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음성은 다른 생각을 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 보고 싶었어요.
정지된 듯한 시간 속에서, 꿈의 여인이 자신의 품에 안겨 들었다.
“주, 주군?”
그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 주군이라니. 그런 딱딱한 말로 부르지 말아요, 내 사랑.
뒤이어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이 그의 얼굴에 와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판단력이 마비됐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최소한의 이성마저 증발된 것이다.
‘내, 내 꿈이 이뤄졌다.’
소싯적 꾸던 꿈에서 수없이 나타나던 환상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거의 십 년간 반응이 없었던 아래쪽의 물건이 뜨겁게 용솟음치며 두 눈이 욕망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 아직, 아직은 아니에요. 량.
“왜……?”
– 이 전쟁을 끝내면, 그때……. 우선 저 괴물들을 처리해 주세요.
수줍게 자신의 볼에 입 맞추는 그녀.
그녀의 시선은 ‘적을 포위한 채 몰아치는 인간의 군세에 맞서 격렬히 저항하는 500여 개체의 괴물들’을 향해 있었다.
“기꺼이…….”
강량이 그렇게 맹세하는 그때.
콰아아아아앙!
– 크으으!
– 감히 이런!!?
갑자기 울린 폭음과 함께 그녀의 모습이 멀어져 갔다.
녹색의 섬광, 거대한 그물 같은 무언가가 그녀를 튕겨 낸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멈췄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전장을 향해 달려 나가는 기마의 위에서 갑작스레 되찾은 현실감.
‘내가 뭘 하고…….’
눈앞의 현실과 직전의 상황의 괴리에 어리둥절해하는 것도 잠시.
– 괴물들을 처리…….
강량의 멍한 시선은 그녀가 지목해 놓은 ‘괴물들’에게 온전히 향해 있었다.
이미 이성이 마비된 그는 그녀가 날아가 버린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 마지막 ‘부탁’만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주변에 늘어선 동진의 정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돌진!!!”
강량의 고함과 함께 다시 가속하는 무사들.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그대로였지만, 목표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구도,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 * *
쿠우우웅.
콰아아아앙.
“크륵!”
– 같잖은!
러스트는 땅속에 파묻힌 채 자신을 옭아맨 녹색 오러의 그물을 신경질적으로 뜯어냈다.
뚜드득.
중간계의 혐오스러운 기운의 응집체가 그녀의 손길에 우드득 뜯겨 나갔다.
누구의 짓인지는 분명했다.
치열한 전장에서 끝없이 자신을 귀찮게 만들었던 날파리.
여태 쏘아 대던 녹색 화살과는 달리 이 그물에는 살기가 담기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궤를 달리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하필 괜찮은 먹이를 세뇌하던 중이었기에 그녀는 습격에 재빠르게 반응하지 못했다.
물론 그래 봤자 조금 더 걸리적거리는 것일 뿐, 결과적으로 변하는 것은 없다.
– 특별히 비참하게 죽여 주마!
자신이 가장 먼저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던 조금 크고 강인한 애완동물 두 마리.
일단 매혹의 손길로 그 두 놈을 손에 넣고 난 다음에, 날파리를 그 손에 찢겨 죽게 하는 것도 꽤 재미있는 놀이가 되리라.
러스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벌한 웃음을 지었다.
땅속을 파고든 자신의 머리 위로, 가장 탐나던 애완동물 후보 1이 노을빛 짜증 나는 기운을 머금고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 허……?
완전히 뜯어 내지 못한 녹색 그물 탓에 움직임이 조금 둔해져 있던 러스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 역시, 제법.
애완동물 후보 1의 공격은 이미 몇 번 얻어맞아 본바 꽤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 정도 충격을 각오했다.
이 일격을 버텨 낸 뒤, 이번 전투에 입은 데미지 이상의 정혈을 놈에게서 다시 뽑아내면 된다.
우웅.
급히 끌어올린 마기와 암흑의 오러, 한순간에 의지만으로 형성해 낸 8서클의 방어 주문까지.
러스트는 칠죄종 서열 3위의 저력을 그 순간에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뒈져라!!!!”
애완동물 후보 1의 얼굴에 살벌한 미소가 떠오른 순간,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예감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고.
이내.
번쩍.
코앞에서 터져 나온 노을빛 파멸의 섬광은 그녀가 앞서 이 전투에서 감당한 적 없는, 아니 칠죄종으로서도 생전에 본 적조차 없는 절대적인 파괴력을 담고 있었다.
– 이럴……!
그 비명은 채 마무리되지도 못했다.
———!
노을빛 파멸의 빛은 러스트에게서 가장 먼저 모든 감각을 앗아 갔고.
‘아, 안 돼.’
그녀는 이내 온몸이 가장 작은 단위로 분해되는 느낌과 함께 자신의 근원의 힘, 색욕마저 부서지는 것을 체감했다.
그리고 그것이 무언가 ‘더 흉악한 존재’에 의해 삼켜지는 것까지 영혼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이 어떻게……!’
글러터니와 애버리스가 죽었을 때 그들을 비웃었던 과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지만.
이내 그 영혼마저도 집어삼킨 노을빛 파멸은, 더 이상 그녀에게 짧은 생각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 * *
콰콰콰콰콰콰콰.
우르르르르르릉.
‘해, 해냈다.’
피부가 따갑게 느껴지는 후폭풍과 여진은 타이니에겐 이제 익숙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번엔 새로운 느낌이 있었다.
러스트를 끝장낼 때 녹턴이 무언가를 집어삼키는 감각을 똑똑히 느낀 것이다.
꿀꺽꿀꺽.
와드득, 와드득.
마치 보이지 않은 무언가를 잡아먹는 무형의 맹수처럼 녹턴이 러스트의 안에 있던 죄악을 삼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가처럼.
우우웅.
녹턴의 영원성과 멸살의 권능이, 자신의 몸 안에 조금 더 많이 스며들었다.
그 모든 과정이 이제는 똑똑히 느껴졌다.
당장의 탈력감을 극복하고 다시 컨디션을 회복한다면, 전투 직전에 비해서도 확실히 더 단단해지고 강력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것은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굉장히 이질적인 경험이었다.
‘너 이 녀석……. 대체 뭐냐?’
하지만 어차피 답을 들을 수 없는 의문이었다.
“흐…….”
쿵.
바닥까지 친 기력을 간신히 수습하며 일어서자, 머리 위로 생겨나 있는 엄청난 높이의 절벽과 그 위로 드러난 하늘이 보였다.
동대륙에 와서 급격하게 성장한 만큼, 빅뱅의 위력은 글러터니를 잡았을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강렬한 여파를 남긴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하늘 위로.
“타이니!!!”
날개를 단 천사, 아니 에스티나가 카일룸을 타고 바람처럼 날아내려 왔다.
굳이 기감을 발동하지 않아도,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그녀의 갑작스러운 성장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스피릿……액셀?”
수십 년간 정체 중이었다는 세계수의 수호자가 이번 전투에서 갑작스러운 성장을 이룬 것이다.
“응! 검선 영감님 덕분에……!”
무슨 소리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타이니는 자신에게 그대로 안겨드는 에스티나에게 더 이상 따져 묻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그녀의 따듯한 감정과 체온을 느끼고 있던 그때.
구덩이 바깥 멀리에서 울려 퍼진 검선의 영파가 그들의 귓가에 닿았다.
– 콰아아아앙!
– 아악!
– 끄아악!
탈력감 탓에 감각이 많이 둔해져 있긴 했지만, 타이니에겐 바깥 전장의 비명과 굉음들이 고스란히 들리고 있었으니.
그래,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
“티나, 바깥 정리부터.”
“어? 어, 어. 갈게!!”
후다닥.
그의 한마디에 비로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얼굴을 붉힌 에스티나가 뒤늦게 정령 합신을 풀고 다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기왕이면 나도 데리고……. 하…….”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에스티나의 뒤에서 허공에 흩어진 말을 주워 담은 타이니가 헛웃음을 지었다.
‘하긴, 지금 나는 회복에 전념하는 게 낫겠지.’
타이니는 차분히 주변의 에너지를 끌어들이며 아직도 저릿저릿한 몸에 힘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그리고 잠시 후.
그가 그렇게 적당히 힘을 회복한 뒤 스스로 만든 절벽을 기어올라 왔을 때.
“이런……!”
그는 칠죄종을 처리하고 안심한 것이 얼마나 섣부른 생각이었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