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94
394화. X 된 거 같은데…….
서일산은 가루라의 부리 역할을 하며 샤넬이라는 송곳니 맹수, 그리고 라미아라는 마족 여자와 동시에 대치하고 있었다.
쾅!
– 지겹구나! 인간!
스르르르르.
그는 삿된 강기가 넘실대는 맹수의 발톱을 막아 냄과 동시에 그와 같은 기운을 휘감은 가시덩굴 같은 채찍을 튕겨 냈고.
콰콰쾅.
그 뒤쪽에서 끝없이 쏟아져 오는 검은 불꽃과 냉기, 그리고 저주의 기운을 흐트러트렸다.
세 가지 마법을 쏘아 내는 그 마물 넷도 모두 혼세경에 달한 놈들이었으니.
‘흐…….’
그는 사실상 악마급 괴물 여섯의 거센 맹공을 홀로 막아 내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가 후발선제(後發先制)와 유수(流水)의 묘리에 통달한 반격과 버티기의 달인이라 해도, 가루라의 힘이 보태지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었을 상황.
게다가 이제는 그것으로도 부족한 것 같았다.
‘점점 밀린다. 이대로는 안 돼.’
유물의 범위를 벗어난 무사들이 적들에게 홀리는 일은 더 이상 없었지만, 애초에 절대적인 숫자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방도를 찾아야 한다.’
콰콰콰쾅!
스르르륵.
적의 공격을 흘려 다른 적의 공격을 막던 그가 그 흐름을 타고 스르륵 물러서는 순간, 코앞으로 맹수의 발톱이 스쳐 지나갔다.
– 쥐새끼 같은……!
그러면서도 서일산의 눈은 사방을 훑으며 타개책을 찾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 순간.
번쩍.
꽈르르르르르릉!
마물의 군세 뒤편에서, 측량하기조차 힘든 노을빛 광채가 터져 나왔다.
그러더니.
우르르르르릉.
갑자기 옅은 지진이 일어남과 동시에 마물들의 뒤편에서 일단의 무리가 들이닥쳐 왔다.
‘어!?’
두두두두.
“하! 괴물들을 척결하라!”
동진(東晉)의 깃발을 단 군세.
‘강량!?’
연달아 벌어진 이변을 목격한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순간.
꽈아아아앙!
그 군대가 마물이 아닌 아군 전열의 옆을 들이쳐 왔고, 난데없는 습격을 받은 선 제국 친위대에게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뭐, 뭐야!?”
– 크하하하하!
– 이것이 몽마 군단의 힘이다!
한순간에 극단적으로 바뀐 전세에 장군급 마족들이 광소를 토해 냈다.
“강량!!! 뭐 하는 짓이냐!!”
“닥쳐라, 괴물!”
저 미친놈이 대체 뭐라고……!?
“으아아악!”
히이이이잉!
인간의 두 군대끼리 서로 충돌한 상황.
한순간에 선 제국의 병력들 사이에 혼란이 번졌다.
그런데 그 순간, 본래대로라면 그런 그들에게 합세해 동시에 덤벼들어야 했을 몽마 군단 역시 혼란에 빠져든 듯했다.
– ……계속 반응이 없으시다.
– 주군께서!?
– 어찌 이럴 수가!
서일산과 대치하고 있던 라미아와 샤넬, 그리고 그들의 부관들이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그러진 그의 표정은 펴질 수가 없었다.
“강량!”
한순간 자신에게 덤비지 않는 적들을 무시한 채, 동진의 군대 선두에 선 익숙한 얼굴을 향해 돌진하는데.
진천뇌전검, 강량의 공세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맞이했다.
“죽어!”
쾅.
푸슈슈슈.
콰아아앙!
빗발치듯 날아드는 전격의 강기.
그것을 간신히 흘려 내며 서일산은 이를 악물었다.
“네놈이 정말 미쳤구나!”
마물의 수뇌부가 갑작스레 움직임을 멈췄지만, 상황은 결코 좋아지지 않았다.
쩌저정.
“끄아아악!”
“키에에엑!”
지금 전장에 있는 무사 중 가장 약한 이도 자신만의 속성을 무기에 두를 줄 아는 강자였고, 거기에 그 이상의 강자나 마물들까지 뒤섞여 서로에게 공세를 퍼붓는 상황.
그야말로 피아를 가리기 힘든 난장판이었다.
‘젠장.’
서일산이 속으로 한탄하는 순간.
번쩍.
하늘에서 갈색의 벼락이 떨어졌다.
“강량! 이 한심한 놈이!!”
우르르릉.
쾅!
“어르신!”
마물을 두고 애먼 선 제국군을 공격한 강량의 머리 위로 검선의 검이 떨어진 것이다.
다만.
“괴물 두목인가!?”
이미 벌겋게 달아오른 눈에 요상한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는 강량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쾌검으로 이름 높은 진천뇌전검 강량의 검은 평소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번개처럼 서일산을 몰아붙이고 있는 와중에도 검선의 공격까지 막아 내는 놀라운 위력.
그리고 서일산은 그 이유를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생명력을? 미친!?’
아무리 악마의 매혹이 강력하다 하더라도 스스로 생명을 갈아 넣게 만들다다니, 그것은 이미 세뇌가 아니라 그야말로 권능이라 불러 마땅한 힘이었다.
물론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아무리 강량이 생명력을 뽑아 쓴들 검선과 자신의 합공을 받아 낼 수는 없다.
그러나.
‘어르신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검선은 큰 부상에서 회복된 지 얼마 안 된 상태로 바로 신화경에 이른 괴물과 싸우고 온 것이니, 강량의 방어를 뚫어 내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거기다 검선은 강량에게 충격을 줘 제압하려 할 뿐, 죽일 생각은 없는 듯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서일산이 입술을 꽉 깨무는 순간.
그나마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음? 이게……?”
“어, 어라? 내가 왜……?”
“갑자기!? 뭐야?”
신화경의 유물이 가진 힘을 증명하듯, 황실 친위대를 공격하던 동진의 정예 중 일부가 다시금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
파바바박.
콰콰콰쾅!
그때 하늘 위에서 쏟아진 녹색의 화살들이 장군급 마족 중 일부의 시선을 끌었다.
‘요정신궁!!’
막장으로 치닫던 상황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서일산의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그러자마자, 천박한 옷차림의 마족 여자 라미아가 전장을 울리는 영파를 퍼트렸다.
– 저 인간들부터 모두 죽인다!!
지독한 살기가 진득하게 묻어 나오는 영파.
그것이 한순간 혼돈에 빠져들었던 마족들을 정신 차리게 만든 것 같았다.
– 주군과 대적하던 적 중 하나다. 원수를 갚아라!
뒤이어 다른 마족들의 영파가 퍼져 나가는 것과 동시에.
– 여성체? 흐, 우리가 처리한다!
보기 흉한 근육과 박쥐 날개를 꿈틀거리는 장군급 마족이 그보다 조금 못해 보이는 악마급 둘과 함께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고, 쏟아지던 화살 지원은 그 순간 뚝 끊겼다.
서일산은 그 상황까지 되어서야 변화의 원인을 알아챘다.
‘원수?’
검선이 자신을 도왔고, 요정신궁도 이곳 전투에 끼어들었다.
광휘 공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은.
‘적장을 처리한 거야!’
그 생각에 갑자기 기운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그런 그를 응원하는 것처럼 전장의 상공에 커다란 동대륙 글자가 새겨졌다.
‘저건?’
그것은 서일산에게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광휘 공의 동료, 마도 기사의 힘.
[靈魂覺性(영혼각성)]찬란하게 퍼지는 푸른 광채. 거기에는 어쩐지 투명한 검은 기운까지 포함된 듯 했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 빛이 닿는 순간, 유물의 힘에 의해 조금씩 정신을 차려 가던 동진의 정예들이 한순간에 각성하게 되었으니까.
“무, 무슨!?”
“내가 왜?”
“지휘, 지휘관!”
“대장군님은!?”
선 제국 친위대를 공격하던 와중에 정신을 차린 동진의 정예들.
하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더욱 비참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미친 듯이 싸우던 그들이 갑자기 칼부림을 멈춘다 한들, 적들의 칼은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으아아악!”
“꺼흑!?”
“끄르륵.”
동진의 정예들이 정신을 차렸다곤 하지만, 선 제국의 황실 친위대는 자신들을 공격한 그들을 이미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심지어 유물의 힘이 미치는 범위를 벗어난 동진의 정예들은 다시 마물들의 매혹에 노출되어 공세를 퍼붓고 있었으니, 선 제국의 정예들만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
거기다 그 사이에 낀 마물들은, 인간이라면 진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강량을 비롯한 동진의 최정예 십수 명은, 진영의 중심에서 유물과 마법의 영향을 직접 받았음에도 눈빛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죽어!!”
콰콰콰콰쾅!
평소보다 이성적이지 못한 공격이지만, 원래 쾌검으로 이름 높았던 진천뇌전검이니.
생명력을 뽑아 쓰며 평소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퍼붓는 강량의 공세는 잠깐이나마 두 고수를 주춤하게 만들 수 있었다.
‘빌어먹을.’
서일산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으아아악!”
“이 미친…….”
사방에서 선 제국 친위대의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와드드득.
“크르륵.”
“으아아악!”
이 난장판의 와중에 한 사람의 생명을 아낀답시고 대치 상태를 이어 나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혼세경의 고수는 생명이 다하기 직전에도 마지막 불꽃을 태워 발악할 수 있으니, 강량을 적당히 제압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었고, 다행히 검선 역시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네. 죽여야겠어.]검선의 혜광심어가 서일산의 머릿속에 울려 퍼진 직후.
“하!”
서일산의 대검이 강량의 검을 미묘하게 흘려 내는 순간.
번쩍.
“커흑!?”
검선의 검이 강량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서일산은 바닥에 떨어지려던 강량의 목을 대검으로 푹 찍어 그대로 들어 올렸다.
“마물에게 홀린 강량의 목을 베었다!!! 사람이라면, 마물과 싸워라!!!!”
잔인한 행사에 이은 전략적 선포.
안 그래도 광기가 난무하던 전장에서 그게 무슨 효과가 있나 싶기도 했었지만, 실제로 그 행위만으로도 황실 친위대와 동진의 정예 간의 전투가 확연하게 잦아들었다.
거기다.
“동진의 무사들은 가루라의 날개축에서 1리 이상 벗어나지 마라! 마물들의 사술에 홀린 자는 무조건 베겠다!”
대열을 이탈해 있다가 어느새 그의 곁에 따라붙은 양일원 역시 고함을 지르며 대장군의 말에 힘을 더했다.
‘역시.’
든든한 아우다.
아마 마도 기사의 술수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고, 동진의 군세를 모두 유물의 범위 안에 두는 것은 무리다.
그러니 결국 양일원의 고함은 휘하 무사들에게 엄포를 놓은 것에 불과하겠지만, 적어도 당장 그들 사이의 혼란을 잦아들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이쯤이면 나서야 할 또 한 명의 아우가…….
“천일!?”
서일산은 양일원이 온 방향을 문득 돌아보았다.
그곳엔 서대륙의 정장을 입은 인간형 마족 남녀를 동시에 가로로 쪼갠 자세 그대로 늠름히 서 있는 장천일의 모습이 보였다.
적들의 장군 중 둘을 동시에 참살한 것이다.
‘어떻게!?’
놀라우면서도 반가웠다.
다만 이상한 것은, 그런 위업을 이룬 의동생이 창백한 안색이 되어 더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내 서일산의 시선은, 장천일의 가슴으로 관통한 세 개의 창날을 뒤늦게 발견했다.
‘어…….’
눈으로 보면서 현실을 믿을 수가 없던 그때.
“천일은 전사했습니다, 형님!!”
“뭐!?”
양일원의 붉게 물든 눈과 그가 짓씹은 입술에서 흘리는 피를 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진의 천인장 셋이 뒤를 쳤습니다. 천일은 그대로 웃으면서 돌아서서 방심한 적들의 목을…….”
짧지만 확실히 이해가 가는 설명이었다.
개벽일월부, 장천일다운 최후.
‘그럴 수가……. 아우야.’
서일산은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다잡고 억지로 검을 움켜쥐었다.
남은 적의 장수는 모두 넷이며, 그에 버금가는 마물은 여전히 열이 더 남아 있다.
– 악마급은 반드시 모조리 죽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광휘 공의 경고는 머릿속 한편으로 치워 버렸다.
이제 그 경고가 아니더라도.
“한 놈도 살려 두지 않는다!!”
의동생의 죽음을 마주하고 온몸에 핏발이 선 서일산의 대검에서 피어오른 황금빛 강기가 그의 키보다 높게 솟구쳤다.
그런데 그때.
그런 그의 분노가 향한 적의 수뇌부들이, 자신들과 싸우던 것을 잊기라도 했는지 갑자기 후방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거나 날아서 돌진하기 시작했다.
– 저놈이다!
– 주군의 진정한 원수!
– 놈을 찢어 죽여라!!
이게 무슨……?
적의 후방에 대체 뭐가?
아, 아까 그 노을빛? 그렇다면…….
‘광휘 공!’
황당한 상황이었지만,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어르신!!”
“알고 있네!”
검선이 허공을 날아 그런 괴물들의 뒤를 쫓았고.
“마물들을 섬멸하라!!”
적의 머릿수에 비하면 이십 분의 일도 되지 않은 인간의 군세가 섬멸을 외치며, 갑작스레 반전한 마물의 군단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목표가 되는 한 지점에는.
간신히 최소한의 힘을 회복해 절벽을 기어올라 온 서대륙 최강의 기사가, 자신을 열렬히 환영해 주는 듯한(?) 마족들의 질주를 어색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X발, X 된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