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95
395화. 천문금쇄진
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소리에 타이니의 심장 역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빠른 발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자연스레 소환되는 월랑.
이전과는 달리 빅뱅을 쓴 이후에도 월랑을 소환할 여력이 남은 거였지만, 스스로의 성취에 만족감을 표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튀자!!”
곧바로 월랑에 올라타는데.
“아우우……울?”
하울링을 하다 말고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월랑이 땡그란 눈을 가늘게 뜨고 계약자를 노려보다가, 이내 쇄도하는 마물들의 군단을 보며 황급히 뒤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컹! 크릉!”
정면으로 맞선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떠올리지도 않았다.
스스로 만들어 낸 거대한 크레이터를 단숨에 뛰어넘어 허공을 밟고 도망가는데.
– 어딜!!!
그런 그의 머리 위로 불벼락과 냉기가 쏟아지고, 나아가는 진로에 새까만 저주의 기운이 대량으로 어리기 시작했다.
쾅!
“큭!”
그것들을 막무가내로 뚫고 나가는 순간 속이 울렁거리며 내장이 상하는 느낌이 들었다.
평상시라면 그냥 무시할 만한 부상이었지만, 지금의 그에겐 월랑을 허공에서 비틀거리게 만들 정도로 타격이 컸다.
‘X발, 이건 진짜 생각 못 했는데.’
여태 칠죄종을 처리할 때마다 매번 군단부터 전멸시켜 왔기에, 군단이 멀쩡할 때 칠죄종을 처리하면 어찌 되는지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적당히 몸을 회복해 가며 잔당 처리에 힘을 보탤 생각이었는데, 놈들이 이렇게 자신에게 몰려들 줄은 몰랐다.
그리고 지금 그의 속을 더 타게 만드는 것은 머릿속을 울리는 검선의 영파였다.
[조금만 버텨 주게, 덕분에 싸움이 쉬워질 듯해.] [내가 어려워, 영감!!]영파로 거칠게 응답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파바박.
간신히 허공을 달려 스스로 만들어 낸 크레이터를 뛰어넘고 그대로 바람처럼 질주하기 시작했다.
지금 낼 수 있는 최선의 속도를 내고 있지만, 당연히 멀쩡할 때와 비교할 수는 없었고.
– 죽어!!
어느새 소리도 없이 눈앞까지 다가온 거대한 맹수의 송곳니가 그의 옆을 파고들고 있었다.
쾅!
황급히 녹턴을 들어 막아 냈지만, 그대로 몸이 튕겨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큭!’
놈의 이빨에 이글거리는 암흑 오러나 거기에 실린 힘과 무게는, 지금 그의 상태로는 잠깐을 버텨 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 결과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듯했다.
– 막아!?
분노 어린 영파, 아마도 장군급으로 보이는 맹수의 살기와 함께 검붉은 기운이 타이니를 옭아맸다.
동시에 그의 앞에 나타난 거대한 형상.
– 너, 이 아니메데의 소유가 되어라.
박쥐의 날개를 달았을 뿐 거의 헐벗은 인간 여자와 다르지 않아 보이는 여성 마족이 분홍빛 눈을 빛냈다.
그러자 그의 온몸으로 은밀하게, 순식간에 스며드는 스산한 마력.
‘흥!’
하지만 타이니는 그것을 오히려 자신의 힘으로 변환했고, 망치 머리에 노을빛 오러를 형성해 낸 녹턴을 힘껏 휘둘렀다.
꽈앙!
– 끅!?
한순간에 튕겨 나간 아니메데의 위쪽으로 다시금 검붉은 피부의 마족 여자가 뛰어들었다.
– 멍청한 것!! 군주의 매혹을 견뎌 낸 자다! 그냥 죽여!
놈의 손에서부터 솟구친 가시덩굴이 넘실거리는 암흑 오러를 싣고 타이니에게 날아들었다.
전방 30여 미터 범위를 뒤덮는 흑마법과 암흑 오러를 합친 듯한 공격.
그것은 차마 피할 수가 없었다.
“컥!”
– 컹!
한순간에 월랑이 역소환되고, 육신이 튕겨 나갔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젠장.’
감당하기 힘든 타격에 몸을 가누기도 힘겨워지는데.
– 버텼다고!?
여마족은 그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잡것들이…….’
힘이 반만 돌아왔어도, 젠장!
타이니가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하는 순간.
“크와아앙!”
– 내 먹이다!
코앞으로 거대한 맹수의 아가리가 다가왔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상황.
‘빌어먹을……!’
이렇게 허무하게!?
최후를 직감한 타이니가 이를 악물며 다가오는 적을 노려보는데.
번쩍.
쩌어어억.
갈색의 섬광과 함께, 그 맹수의 머리가 그대로 세로로 갈라졌다.
“끄르르…….”
– 이, 이럴……
– 샤넬!!
“늦었네. 자네, 큭!?”
결정적인 순간 나타난 검선이 타이니의 몸을 들다 말고 살짝 휘청였다.
“몸이 왜 이렇게 무거운……?”
– 뒈져라!
그 틈으로 다시금 쏟아져 오는 가시덩굴 오러의 파도.
콰콰콰콰콰콰.
– 놓칠 것 같으냐!
우르르릉.
그리고 그 뒤에서 아니메데가 만들어 낸 녹색이 낀 검은 먹구름이, 그들이 있는 공간 전체를 그대로 뒤덮었다.
그러자 반 박자 늦게 전장에 뛰어든 부관들, 악마급 마족 여덟이 아니메데가 먹구름을 뿌린 그 공간 전체에 온갖 마법의 폭격을 퍼부었다.
– 그대로 소멸시켜라!
– 주군의 복수를!
콰콰콰콰콰콰!
우르르르릉.
검붉은 번개와 냉기, 불꽃, 독기, 지진, 저주 등등.
가늠하기도 힘든 마기가 검선과 타이니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일대를 자욱히 오염시켰다.
그리고.
파아아악.
이내 그 지대의 상공으로, 피부가 살짝 검게 물든 검선이 솟구쳐 올랐다.
“큭!”
쿨럭.
허공으로 솟구치는 검선이 입가로 핏물을 토해 낼 때.
그 이상으로 파리한 안색의 타이니가 이를 악물며 한 자 한 자 끊어 내듯 말했다.
“영감, 왜, 하늘로……!”
말할 힘도 없는 듯한 모습.
검선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이유는 곧 타이니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타이니!!”
바람처럼 하강하는 독수리와, 그 위에 올라탄 창백한 안색의 엘프.
카일룸을 타고 단숨에 날아온 에스티나였다.
하지만 문제라면.
– 짜증 날 정도로 빠르구나.
– 놓치지 않는다!
그녀의 뒤로 박쥐 날개를 단 악마급 마족 셋이 따라붙어 오고 있다는 것.
비슷한 형상의 그 세 마족 중에서도 특히 근육질 거인처럼 생긴 개체는 장군급으로 보였는데.
하지만 검선과 타이니로선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무조건 피하세. 자네 무게부터 어떻게 해 봐.”
“젠장, 그럼 아군은…….”
“이미 후퇴 중이야!”
우당탕탕!
그들이 카일룸의 등판 위로 구르듯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꽉 잡아!!”
에스티나의 목소리와 함께 급작스레 수직으로 상승한 카일룸.
“어억!?”
그 거대한 정령이 거기서 한 번 더 직각으로 꺾여 후방을 향해 날았다.
“우와악!”
그 관성을 무시하는 듯한 움직임에 타이니가 간신히 카일룸의 털을 잡고 매달릴 때.
카일룸을 쫓던 마족들의 마법은 독수리가 스쳐 지나간 공간을 뒤덮으며 허탕을 칠 뿐이었다.
– 크아악, 젠장! 또!
벌거벗은 남자처럼 생긴 흉물스러운 마족의 포효가 순식간에 멀어지는 가운데, 타이니의 시선이 의문을 담은 채로 에스티나를 향하는데.
그가 뭐라 묻기도 전에 에스티나의 입이 먼저 열렸다.
“정령술 경지가 올라서 가능해진 거야. 이게 진짜 카일룸이지.”
창백한 안색으로도 뿌듯한 웃음을 보이는 에스티나의 모습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루나는?!”
“피했을 거야. 마지막에 아르곤이 마도 검술을 크게 쓴 다음에 회피하는 걸 봤어. 걱정하지 마.”
“아……. 아니, 그럼 지상의 아군들은…….”
“이미 후퇴하고 있어!”
“……??”
그 대답은 아까 검선에게 들은 말과 같았다.
자연히 지상을 내려다보았는데.
두두두두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물의 군세를 땅끝까지 쫓아갈 듯했던 선 제국의 군세와 동진의 병사들이, 방향을 돌려 동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부상자나 낙오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전장에서 급히 물러나는 모습.
직전에 들었던 ‘섬멸하라’는 외침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그들의 움직임은 완전히 정반대였다.
– 후퇴, 후퇴하라!
분한 음성으로 외치는 서일산의 목소리가 후퇴하는 무사들의 뒤쪽에서 울려 퍼졌다.
이미 마물의 군세와는 상당히 거리가 벌어진 듯했다.
하지만 이렇게 마물을, 심지어 저 생물을 현혹해서 지배하는 몽마 군단을 꽁무니에 달고 후퇴하면.
“흐…….”
[대체 어쩌자는 겁니까?]길게 말할 힘도 없는 타이니가 영파로 검선에게 물었다.
이제는 말보다 영파로 뜻을 전하는 게 더 편해진 것 같았으니까.
그러자 흘깃 웃은 검선이 역시 영파로 응답했다.
[어쩌긴, 도망쳐야지. 솔직히 이것도 최상의 경우야. 짐작하고 있지 않았나.]동시에 제 몸에 물든 검은 기운을 손가락 끝으로 뽑아내는 검선.
그러자 그의 피부는 금세 본래의 색을 되찾았지만, 그사이 몇 년은 더 늙은 듯 피로해 보이는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말도 틀리지 않았다.
[그렇긴 합니다만.]색욕, 러스트를 소멸시킨 데다 장군급 중에서도 넷은 죽인 듯했고, 부관급도 얼추 그만큼은 처리한 듯했다.
500여 기의 기마대와 그들 일행만으로 시작한 전쟁치고는 솔직히 큰 성과였던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몽마 군단입니다. 생물을 현혹하는 마족의 군단이요. 저들을 꽁무니에 달고 도망쳐 봤자 재앙이 커질 뿐입니다. 적어도 악마급들은 어떻게든 다 죽여야 합니다!] [그것도 자네나 내가 회복한 뒤에야 가능한 일 아니겠나? 당장은 어쩔 수 없네.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하지만…….] [그리고 일산이가 대비를 해 놓은 것이 있어. 그것을 쓴다면 희생도 생각보다 적어질 거야.] [대비라니요?]타이니가 물었지만, 검선은 그에 대한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그럴 정신이 없었으니까.
– 놓치지 않는다!!!
원래 에스티나를 쫓던 장군급과 부관급 둘에, 이제는 아니메데라는 날개를 단 장군급과 그 부관으로 보이는 악마급 둘이 추격에 더해졌다.
– 마스, 날 보조해!
– 명령하지 마라, 아니메데.
헐벗은 근육질의 몸을 드러낸 채 박쥐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는 장군급 마족들.
그 둘은 얼핏 보기에는 같은 종족 같았지만, 사이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요정 아가씨, 최대한 빨리 선 제국의 본대 방향으로.]“예?”
마지막 반문은 육성으로 튀어나왔다.
‘군대 방향으로 향하다니?’
그건 몽마 군단이 더 큰 위세를 발휘할 수 있도록 제물을 갖다 바치는 격인데…….
[일산을 믿을 수 없다면, 우리 대륙의 저력을 믿게, 동대륙이 결코 서방에 못지않다는 것을 보여 줄 테니.]검선의 호언장담은 더 이상의 반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또 그렇다고 너무 빨리 도망치면 안 되네. 우리를 쫓아오는 것들이 지상군에게 신경 못 쓰게 간격을 유지해 주시게.]그리고 그로부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그들은 지상에서부터 하늘까지의 시야를 모두 가리는 거대한 안개, 아니 구름의 벽을 마주했다.
“앞이……!”
에스티나의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선 제국의 수도 중천을 향해 가는 길에 이런 구름이 있었던가 싶은데.
[허, 이만한 범위로 진을 펼치다니. 제국에서 작정을 하고 돈을 썼군. 국고가 거덜 났겠어.] [무슨 뜻입니까, 영감님? 저게 뭔지 아는 겁니까?] [그냥 돌진하시게, 요정 아가씨. ‘길’은 내가 안내할 터이니.“길이요?”
영파에 대한 반문이 서대륙 공용어로 돌아왔지만, 검선은 그 뜻을 짐작한 듯 그녀에게 답했다.
[그래, 길. ‘하늘의 문조차 닫아 버리는 진법’을 통과하려면, 하늘에서도 정해진 길을 따라야 하니까 말이네. 나도 100년 만에 보는 거긴 한데.]“그게 뭐…….”
그에 옆에서 듣고 있던 타이니 역시 의문을 표할 때.
다시금 그들이 나아가던 공간에 검은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파아아앙.
순간적으로 다시 직각 기동을 하며 지그재그로 움직여 마법들을 피해 내는 카일룸.
그 등에 탄 타이니가 언뜻 뒤를 돌아보자, 악마급 마족들이 이제는 영파를 보내지도 않고 핏발이 선 눈으로 자신들을 쫓고 있었다.
[놈들을 한동안 잡아 놓을 수 있는 수단일세.]타이니의 물음에 한발 늦게 대답한 검선의 영파와 함께, 카일룸이 그대로 구름 안으로 파고들었다.
푸슉.
그리고 그 순간,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던 카일룸의 날갯짓 소리나 바람 소리가 사라지고 갑자기 새까만 공간이 나타났다.
시야에 보이는 것은 새까맣게 펼쳐진 공간 안에서 조금씩 빛나는 구체들.
마치 밤하늘 안에 뛰어들어 온 듯한 환경이었는데.
그의 바로 옆에 있는 에스티나와 검선의 존재감이 어쩐지 희미하게만 느껴졌다.
“타이니!?”
심지어 에스티나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 듯하니.
타이니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억지로 기감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이게 뭐…….’
지치고 둔해진 감각으로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이상 상태.
그저 이 공간의 저변에 흐르는 에너지가 일정한 규칙성을 가지고 감각을 혼란시키는 듯하다는 막연한 생각만 들 때.
[왼쪽으로 비스듬히 1리, 그리고 아래쪽으로 같은 거리. 그리고 뒤로 1리. 그다음엔…….]검선의 영파가 감각의 교란을 뚫고 전달되었다.
‘이게 이렇게도 되네?’
말이 아닌 영파로 전한 덕에, 동대륙의 거리 단위가 생소할 에스티나에게도 그의 뜻이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본 타이니가 헛웃음을 흘리는데.
“크흡”
급격히 방향을 꺾은 카일룸을 따라 그의 몸이 기울었고, 그 뒤로도 공중을 한참 동안 어지럽게 움직인다 싶더니.
파아아아앙!
파공음과 함께, 카일룸이 구름을 뚫고 반대편으로 튀어나왔다.
“끼루루루루루!”
감각 교란에서 빠져나온 카일룸이 상쾌한 울음소리를 낼 때.
바로 지상에서 반응이 왔다.
– @!$ 신조다!
– 선발대는 !@#!?
– 어떻게 @!#!……!
그에 자연스레 시선을 내려 보니, 선 제국의 본대로 보이는 10만에 가까운 대군이 거대한 구름의 벽 앞에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가장 앞에는 학자들로 보이는 이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무언가를 이리저리 배치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 모양새 그대로 구름이 피어오르니, 온갖 마법을 경험해 온 타이니조차도 그 생경한 광경에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에 노쇠하고 지친 목소리가 답했다.
“천문금쇄진(天門金鎖陳). 역시 자네도 진법에 대해서는 모르는군.”
“진법……?”
“보통 인간이라면 평생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굶어 죽게 된다는 절진.”
“예?”
“물론 마족 놈들을 상대로 그 정도 효과를 기대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가둬 놓을 수 있겠지. 그래, 적어도 그 정도는 돼야 할 텐데…….”
검선은 기대와 불안이 섞인 표정으로 그들이 이미 지나쳐 온 거대한 구름의 벽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들을 따라 구름 속으로 들어선 악마급 마족들이 그 일각을 검게 물들이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