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03
403화. 파편을?
“뭐?”
몽마 군단을 전멸시킨 직후, 선 제국의 본대에서 황급히 달려온 전령이 가지고 온 소식.
예상은 했지만, 결코 태연할 수는 없는 소식이었다.
“남부에서 지평선 너머에서도 보이는 산 같은 괴물이 중천을 향해 일직선으로 올라오고, 동부에서는 계속 번식하는 마충들이 평야의 모든 식물의 씨를 말리고 있습니다! 이미 호 나라는 멸망했고, 요 나라는 궤멸 직전의 상태랍니다!”
전령이 전한 말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폐하께서 마충들을 정리할 군대를 따로 움직이고, 3장군님을 비롯한 초인들은 남부의 괴물을 요격하라 명하셨습니다!”
그 소식을 듣는 모든 이가 거의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X발, 이거 진짜 죽겠는데……?”
“어쩌라는 거야.”
“말세다…….”
“그래도 하나는 우리가 처리했잖아.”
“우리가 처리한 거냐? 저기 저 사람이 했지…….”
웅성거리는 무사들의 시선이 타이니에게 몰렸지만, 정작 그의 시선은 검선을 향해 있었다.
아직 칠죄종이 강림하지 않은 마충 군단은 일단 후순위에 둔 상황.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아무래도 그 칠두룡, 오만 휴브리스일 수밖에 없었다.
“이 권능, 불굴을 쓴다면 제가 그놈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격하의 적을 약화시키는 놈의 권능을 상쇄할 수는 있을 듯하네. 부족한 격으로나마, 상성이 좋으니까. 하지만 그 뒤에는 그 산만 한 칠두룡과 힘으로 싸워서 이겨야 하는데, 가능하겠느냐?”
“제가 또 한 몸 합니…….”
“게다가 놈은 자네와는 달리 온전한 권능을 가지고 있으니, 강기나 그 마법이란 것들도 아무런 제약 없이 난사할 수 있을 텐데?”
“하…….”
타이니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 검선의 다음 말에 바로 끊길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막막한 상황이었다.
“유일한 약점은 그 덩치 때문인지 느리다는 것뿐이지만, 애초에 가진 힘이 그 정도 되면 큰 약점이라고 할 수도 없지.”
“그렇다면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놈을 지치게 만드는 것도 방법이겠군요.”
“그 전에 우리가 먼저 지칠걸? 애초에 그 괴물과 인간의 몸은 용량이 달라.”
검선의 말은 부정적인 면만 심각하게 부각시키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휴브리스를 상대해 본 자의 경험담이니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타이니는 그의 말을 듣고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전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뭐?”
“제가 살기를 품고 만들어 낸 상처는 절대 회복 못 합니다. 아무리 산만 한 괴물이라도, 결국 상처가 누적되면 죽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신성을 일부 획득하면서 얻은 불굴 이전에, 그는 녹턴의 멸살의 권능도 가지고 있었다.
멸살의 힘은 결국 자신의 몸에도 스며들어 자기화되었으니,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오만을 쳐 죽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신격의 권능이 상쇄되고 사라진 후에도, 그 괴물과 지구력을 겨룰 수 있다 생각하는 건가?”
……아.
“그, 그래도 어떻게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면.”
“그중에 단 한 번이라도 빠지지 못하면 자네는 죽는 걸세.”
“…….”
그때, 서일산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르신,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그건 광휘 공이 혼자 그 괴물을 상대하는 것을 전제로 두고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만?”
“그렇네. 그 괴물은 약자가 다수로 덤벼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놈의 그 힘을 상쇄할 권능이 없다면 농락당하다 살해당하겠지. 괜히 아군의 짐만 될 뿐일걸세.”
“그걸 어떻게…….”
“내가 상대해 봐서 확신하네.”
그 역시 검선의 말을 듣고는 입을 다물었지만.
대신 다른 생각을 떠올린 것 같았다.
“그럼 저희는 동부의 그 벌레 떼들을 상대하러 가야겠군요.”
“그래야지.”
황제의 명령은 이 세부 사정을 모른 상태에서 내려진 것이니, 현장의 지휘관으로서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또, 또 이렇게 되는가…….’
서방인에게 산만 한 괴물을 맡기고, 자신의 군대는 다른 곳을 향해야 한다.
서일산의 책임감은 그것을 좋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거기엔 내 검을 앞발 하나 잘리고 막아 낸 사마귀도 있으니 조심하게. 그런 놈들 몇 놈 더 있다고 하더군.”
검선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조언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타이니도 한마디를 보탰는데.
“예. 거기다 장군급 둘을 전부 죽이면 그 순간 칠죄종이 강림할 겁니다. 그러니 한 놈은 제압해 두셔야…… 아니, 잠깐만. 시간이 얼마나 지났더라……?”
그는 그 말을 하다 말고 무언가 찜찜한 마음에 에스티나를 돌아보았다.
“왜?”
“우리가 동대륙 온 지, 아니 지난 강림 이후에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곧 한 달은 되어 갈 것 같아. 그것 때문에 묻는 거지?”
“그거라니?”
“분노의 강림 시간. 장군 두 놈 남았잖아.”
“아……!”
에스티나는 타이니가 찜찜함을 느끼던 그 문제를 수면 위로 꺼내 주었다.
“한 놈당 49일이라면, 이제 대략 49일 하고도 열흘 정도 남았을까? 그것도 확실하지 않아. 나도 쓰러졌던 날들 때문에 시간 감각에 혼선이 좀 와서…….”
“아니, 그게 맞을 거야. 젠장.”
절로 이가 악물어진 상태로, 타이니는 다시 서일산을 향해 당부했다.
“빌어먹을, 장군급 둘은 죽이면 안 됩니다. 하나라도 죽이면 칠죄종이 열흘 안에 강림할 테니까요. 최대한 놈들을 살려 둔 상태에서 벌레 떼들만 다 죽여야 하는데…….”
“예?”
자신이 말을 하면서도 그게 얼마나 무리한 요구인지 통감하기에 말끝이 흐려졌다.
남부의 휴브리스만 걱정할 때가 아니다. 마충 군단이 나타난 동부에서도 이미 그 주인이 강림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뭘까. 또 뭔가 잊고 있는 게 있는데…….’
에스티나의 말을 듣고서도 완전히 개운해지지 않는 마음.
무언가 큰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은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게 될 리가 있겠습니까?”
“아무튼 그렇게 하는 게 좋습…… 아니, 무조건 그리해야 합니다. 만약 한창 전투 중에 칠죄종이 강림하면 곧 대장군과 저기 우장군을 제외한 모두가 죽는다고 생각하십쇼. 아, 유물의 범위 안에 있는 이들은 영혼살에 죽지 않을 겁니다만.”
“그런…….”
이미 몇 차례나 설명했던 내용이었지만, 서일산의 표정을 보면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듯했다.
하지만 지금 타이니가 그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은 그 말이 전부였다.
굳이 다른 방도를 찾자면.
“티나, 혹시 네가 저들을 도와…….”
“싫어.”
“응?”
“설령 내가 오만과의 싸움에 큰 도움이 될 수 없다 해도, 멀리서 엄호를 할 수는 있어.”
“아니, 그게…….”
“그마저도 안 된대도, 난 널 지켜보고 있을 거야. 혹시 잘못될 수도 있는 거잖아.”
에스티나는 확고하게 의사를 표시했다.
“흘흘.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상황은 짐작이 되네. 남편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어찌 아내가 다른 일을 하겠는가. 차라리 자네가 온전히 신화경에 도달하는 게 빠를 거야.”
남편, 아내……. 태클 걸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게요.”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다. 아니, 이미 한 달 전에 던져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그때 던져진 3개의 재앙 중 하나를 간신히 수습한 게 현실이니.
“그저 우리가 각자의 역할을 다 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서일산의 말대로, 당면한 과제를 해치우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진짜 하루하루 피가 말라 가는구나.’
속으로 탄식이 나오는데.
양일원에게 정예들의 수습을 명령했던 서일산이 다시 타이니에게 다가오더니 대뜸 깊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광휘 공.”
“왜, 왜 그럼까 갑자기?”
당혹스러운 마음에 다시 말이 꼬이는데.
“그대와 동료분들은 이미 우리 땅에서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의 공만으로도 이 대륙의 모든 이가 칭송할 만한 업적이 될 것입니다.”
“갑자기…….”
“그러니 힘들다 싶다면 몸을 빼십시오. 그 누구도 그대를 원망하지 않을 겁니다.”
그 말이 오히려 타이니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이러면 더 피할 수 없잖아.’
쓴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호기가 차오르기도 했다.
“전 살면서 무언가를 피해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절 막아선 것은 전부 박살 내며 살아왔죠.”
쭉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다.
그리고 지금 해야 할 것 또한 그간 해 온 것과 같다.
다를 것은 없다.
“칠두룡이라고 했던가요? 그 머리를 전부 쪼개서, 동대륙 일곱 나라에 골고루 나눠 드리죠.”
그 자신감 넘치는 말이 듣고 있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 미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일산. 미안하네만, 나 역시 광휘와 같이 가야겠네. 오직 그에게만 모두 맡겨 놓을 수는 없으니. 그리고…….”
“예, 압니다. 빚도 갚으셔야죠.”
“……그래. 그냥 당하고만 물러설 수는 없지.”
검선의 투지 넘치는 눈빛에 서일산은 아쉬움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각자의 목표가 정해졌다.
* * *
“……격하의 적을 무시한다?”
“그래. 정확히는 그리 표현하는 게 맞을 게야. 나도 공간참의 권능을 쓰지 않았다면 애초에 비늘 하나 뚫지 못했을 거네. 결국 낭패를 봤지만.”
“권능의 조각이라도 없다면, 아예 공격이 의미가 없을 거란 말씀이시군요.”
“그래. 그래서 자네 혼자 상대해야 한다고 말한 거야. 나도 이제는 힘들 테니까.”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서 검선은 자신이 휴브리스를 상대하며 느꼈던 권능, 정확히는 그 막막함에 대해서 다시 설명했다.
몽마 군단과 싸우고 남은 후유증을 털어 낼 겸, 전략이라고 할 수도 없는 전략을 재차 점검하는 것이다.
“오만의 힘이 그 정도라니…….”
그런 권능을 가진 놈이, 세상에 다시 없을 괴물의 육체까지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불합리 그 자체였다.
여태까지 가까스로 극복해 온 칠죄종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상대.
“기껏 권능을 개화했는데…….”
권능, 불굴. 그것은 어찌 보면 오만의 권능에 극상성이라 할 만한 힘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완전하지가 않았다.
“괜히 스스로를 탓하지 말게. 격하의 상대들에게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권능과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권능의 효율이 같을 수가 없지. 동등한 상태에서 부딪친다면, 자네가 무조건 이겨.”
불굴이 완전한 힘이었다면 타이니에겐 휴브리스의 권능이 먹히지 않을 것이고, 그는 쓰러지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놈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뒤에 이어진 검선의 말에는 진한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단, 자네가 온전히 신화경에 도달할 수 있다면 말이야.”
그 말은 지금은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
정확히는 질 확률이 높다는 말에 다름 아니었다.
그에 타이니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동대륙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에스티나마저도 덩달아 표정이 무거워졌다.
그런데 그때.
망연하게 허공을 바라보던 검선이 불쑥 생각났다는 듯 갑자기 물었다.
“그런데 혹시 자네, 영혼 안에 이상한 걸 품고 있지 않나?”
“예?”
“그, 자네에게서 업(業)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다른 신성의 조각이 느껴졌단 말이지. 내 착각인 거 같기도 하지만 말이야. 그걸 쓴다면 확실한 방법이 있을 것도 같은데.”
“아…….”
그 순간 타이니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운명의 파편. 그것을 말함이라.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진짠가!?”
“아, 예. 그렇습니다만…….”
“그럼 왜 여태 그걸 활용 안 한 건가!?”
멱살이라도 잡을 듯한 검선의 모습에 타이니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이렇게 된 이상, 이제는 검선에게 운명의 파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긴 이야기가 끝난 직후.
“흠, 그래. 그렇다면 이해할 만하지. 하지만 말이야. 그 운명의 파편이라는 거, 다르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예?”
담담하던, 아니 달리 말하면 암담하기만 하던 검선의 눈에 다시금 별빛이 들어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