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06
406화. 휴브리스 vs 오러마스터 (2)
산만 한 덩치의 적이 한순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지만, 따지고 들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안 돼!!’
환각이나 눈속임도 아니었다.
일시적으로나마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상태의 소울 사이트, 그것도 자신과 월랑의 그것을 동시에 속일 수 있는 환각은 존재하지 않을…… 아니,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 그의 손에서 터져 나가기 일보 직전인 에너지는 다시 되돌릴 수도 없었다.
빌어먹을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
‘젠장.’
타이니의 한탄 속에서, 노을빛 파멸의 빛이 터져 나왔다.
번쩍.
——–!!
터져 나간 에너지가 사방을 휩쓸어 가는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지며 갑자기 회색의 공간이 나타났다.
‘음?’
빅뱅을 쏟아 내는 즉시 여력을 수습해서 어떻게든 반전을 꾀해 보려던 타이니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무엇도 보이지 않는 공간.
마치 시공간이 멈춘 것처럼, 회색빛 공간 안에 타이니의 몸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이게 뭐……?’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사용하는 빅뱅이니만큼 파괴력이 이전과 다를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런 상황은 아예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자신이 있는 공간만 통째로 세상에서 유리된 것 같은 상황이라니.
당황스러웠지만,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바로 반격당하는 것보다야…….’
그리 생각한 타이니는 놀란 감정을 빠르게 추스르고 주변 공간을 살펴보려 했다.
하지만 감각이 순식간에 살아나는 것과 별개로 몸은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의지가 몸으로 전달되는 속도가 매우 느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은 그에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고유의 시간?’
의식을 가속해 주변의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것. 한없는 집중력이 발휘될 때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자연스레 자신의 상태를 인지한 타이니가 이내 이 상황의 원인을 추론하기 시작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중력의 힘으로 에너지를 흡수하고 응축한 뒤 폭발의 힘으로 그 한없이 압축된 그 에너지의 본질을 깨트려 사방으로 발산시켜서, 투자한 에너지 대비 수백, 수천 배의 파괴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 빅뱅의 원리.
물론 그조차 세밀한 원리를 모두 이해한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뿐인 기술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공간을 만들어 내는 마법적 효과 따위가 있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나도 모르게 뭔가 다른 것이 섞여 들었다.’
빅뱅의 발현 직전에 흡수한 에너지에 무언가가 섞인 듯했다.
그리고 이 정도 이상한 변화를 만들어 낸 원인이라면,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카르마?’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영혼들이 뿌린 힘이자, 세상을 지탱하는 존재력으로 변환되는 힘.
‘아니, 아니야.’
하지만 자신의 남은 카르마는 일시적인 경지 상승을 위해 모두 소모했고, 타인의 카르마는 자신이 움직일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직전에 자신이 당했던 공격.
‘용언.’
카르마를 소모하지 않고도 세상의 존재력을 움직이는 사기적인 권능.
불굴의 권능으로 그것을 강제로 벗어났을 때, 흩어지던 무형의 힘.
‘존재력.’
이 세상을 유지하는 그 존재력의 일부가 빅뱅에 섞여 들어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추정이 맞다면.
‘이거 생각보다 큰일이 벌어졌을지도…….’
자신도 모르게 이 세상의 존재력 자체를 에너지 삼아 대폭발을 일으켰다?
오러마스터 이전에도 멀쩡한 평야에 대협곡을 만들어 내던 빅뱅이었다.
심지어 지금 가만히 둘러보니, 이 공간 자체의 느낌은 조금 익숙했다.
직접 와 보지는 못했지만, 가끔씩 감지되던 카르마의 흐름이 조금씩 피부로 느껴지고 있는 상황.
‘세상의 이면, 차원의 경계.’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단순히 땅이 파인 게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지금 자신이 터트린 일격이 대체 세상에 어떤 상처를 남긴 것일까?
아니, 그 전에.
‘어떻게 돌아가지? 오만, 휴브리스는? 어떻게 된 거지?’
다시금 당혹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다행히도.
찌릿.
‘응?’
어느 순간 의지가 육체에 전달되는 속도가 빨라진다 싶더니.
쩌저저저저정.
갑작스레 회색의 공간이 유리창처럼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쾅!
들릴 리 없는 폭음이 울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일시에 회색의 세상이 부서져 나갔다.
그리고 그 너머에 보이는 것은.
– 어떻게!?
– 한낱 인간이
– 불가능하다!
– 있을 수 없어!
– 무언가 잘못됐다!
– 죽이자!
– 죽여야 한다!
우르르르르릉.
갑작스레 만들어진 듯한 거대하고 둥그런 크레이터…… 아니, 대협곡. 그리고 그 밑바닥에서 하늘까지 새까맣게 오염시키는 막대한 암흑 오러와 함께 진득한 살기를 뿌려 대는 칠두룡이었다.
다만 그런 휴브리스의 상태는 타이니가 예상한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는데.
그 거체의 균형을 잡아 주고 있던 꿈틀거리는 거대한 강 같은 꼬리의 끝부분이 뭉텅 잘린 채로 자신의 뒤쪽 공간에 나뒹굴고 있고, 그 상처에서 검은 피가 정말 강물처럼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확히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하기조차 힘들었다.
좀 전에 자신이 세상의 이면에 들어섰던 게 맞는 건지, 그럼 대체 어떻게 나온 건지.
거기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후방에서 대기한다던 동료들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티나는? 검선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고민할 틈은 없었다.
– 멈춰라!
칠두룡의 일곱 머리가 다시 동시에 눈을 빛내며 같은 영파를 발하는 순간.
다시금 전신을 옭아매는 거대한 힘의 흐름이 느껴졌다.
‘또 용언!’
심지어 이번의 용언은 권능 불굴로 저항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직접적으로 위해를 입히는 것이 아닌, 그저 신체를 구속하는 힘이었으니까.
그렇게 그가 꼼짝도 하지 못하는 동안, 어느새 다가온 칠두룡의 머리 하나가 섬뜩한 검은 이빨 사이로 암흑 오러를 넘실거리며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캬오오오오오!”
– 찢는다!
용의 입 안에서 회오리치는 정체 모를 마기의 덩어리들과 이빨에 넘실거리는 암흑 오러에, 또다시 용언의 권능까지 깃들었다.
‘대체 용언을 몇 번이나!!? 젠장!’
우우웅.
콰드드득.
그러자 오러마스터의 경지에서 정령 합신까지 사용한 그의 힘이, 자신을 옭아매는 용언의 힘을 억지로 뜯어내기 시작했다.
이미 인간이라 볼 수 없는 막대한 질량을 가진 신체가 정령 합신으로 강화되었고, 반신급에 다다른 영혼이 영력을 한계까지 끌어모았다.
그리고 휴브리스의 권능을 상쇄하고도 막대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불굴의 권능까지.
타이니는 그 모든 힘을 집중해서, 자신을 묶고 있는 세상의 존재력을 뜯어냈고.
꽈아아앙!!
뒤이어 급하게 휘둘러진 녹턴이 다가오던 거대한 이빨의 일각을 내려쳤다.
스각.
“큭!”
충돌의 반동으로 위쪽으로 튕겨 나가는 몸.
킬로미터 단위로 움푹 파인 땅이 단숨에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데.
그때 타이니는 자신도 모르게 오른쪽 옆구리를 붙들고 있었다.
튕겨 나가던 순간에 스치고 지나간 놈의 이빨에 긁힌 것이었다.
용언의 힘이 깃든 이빨에 당한 상처였지만.
‘견뎌 낼 수 있어.’
다소간의 출혈도, 상처를 빌미로 영혼을 공격해 오는 영력의 저주도 아직까지는 불굴의 권능으로 참아 낼 만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콰드득.
영혼의 저편에서, 자신의 격을 잠시간 받쳐 주던 운명의 파편이 다시 잠수하려는 움직임이 느껴진 것이다.
‘젠장, 역시…….’
빅뱅을 쓰고 난 후유증이 너무 컸다.
어떻게든 짧은 시간 내로 결판을 내야 했다.
그런데.
– 도망갈 수 없다!
또다시 울려 퍼진 영파가 위쪽으로 솟구치던 그의 몸을 덜컥 허공에 묶었다.
‘또!?’
벌써 다섯 번째 용언.
타락하지 않고서는 어느 차원에도 남을 수 없었다는 신화종, 용의 힘을 휴브리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었다.
아무리 용혈을 소모하는 힘이라 해도, 한계는 있을 터인데…….
그런 그의 생각이 더 이어지기도 전에.
– 이동!
스륵.
‘또 용언?’
다시 한번 울려 퍼진 영파와 함께 한순간 눈앞이 깜깜하게 물들었다.
쿠우우웅.
고오오오오.
휴브리스의 거체가 갑자기 그의 머리 위에 나타난 것이다.
좀 전에 빅뱅을 피해 냈던 바로 그 수법.
거기다 그것도 끝이 아니었다.
– 약해져라!
‘큭!’
허공에 묶인 타이니의 불굴의 권능을 확연하게 감소시키는 용언이 또다시 더해졌다.
자신의 권능이 이미 적에게 파악당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살벌하게 퍼지는 영파, 삽시간에 다가오는 거대한 산만 한 칠두룡의 몸체.
눈앞으로 죽음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이건 너무하잖아…….’
타이니는 이를 악물었다.
오만, 휴브리스는 상상력의 한계를 가뿐히 넘어서는 괴물이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육체와 괴력, 그 육체에 넘쳐 흐르는 마기와 암흑 오러. 거기에 오만의 권능과 용언의 권능까지.
말 그대로 절대적이라고 느껴지는 힘을 가진 괴물.
편법으로나마 오러마스터가 되어 끝없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자부심을 순식간에 부숴 버린 적.
‘이게 글러터니랑 동급이라고?’
글러터니나 애버리스와 같은 칠죄종이라는 분류로 묶이는 게 이상할 정도의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죽어 줄 생각은 없었다.
‘쉽게 물러서진 않아!’
편법으로 끌어올린 경지. 그 고양감이 끝나기 전에, 타이니는 남은 모든 힘을 다시 일격에 모았다.
우웅.
산이 자신을 깔아뭉개려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금 이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한없이 미약한 힘이지만.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발버둥 치다 죽을 생각이었다.
‘움직여!’
우드득.
자신을 구속하는 용언의 힘을 서서히 풀어 가며 느리게나마 육체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혼자 죽지는 않는다.’
절망적인 위기 속에서 다시금 가속된 의식.
그 속에서 남은 생명력까지 모조리 끌어들이려던 순간,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현실을 도피하려는 기제로서 떠오른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직감은 이 상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놈, 왜 나를 그냥 깔아뭉개려고 하지?’
물론 놈의 질량은 그 자체로 엄청난 무기다.
단순히 꼬리나 머리로 후려치는 것만으로도 작은 산 하나는 그냥 뭉개 버릴 수도 있는 흉기.
하지만 그보다 강력한 것이 놈이 가진 이능이었다.
끝도 없이 쏟아 내는 마기와 오러, 그리고 권능까지.
그 모든 것을 놔두고, 꼴사납게 적을 그냥 몸으로 깔아뭉개려고 한다고?
‘이 오만한 괴물이?’
– 그럴 리가 없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은 그는 자신의 생명력까지 불태우려던 것을 멈추고, 녹턴에 모아 가던 힘을 감각에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반신급의 영혼에서 비롯된 직감을 근거로 끝없이 뻗어 나간 감각이 적을 통째로 읽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상을 알아챘다.
아니,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그 강력한 오만, 휴브리스의 존재감이 무려 ‘일곱’ 갈래로 뚜렷하게 갈라져 있는 게 느껴졌으니까.
‘허……?’
각각의 머리가 저마다 다른 영파를 뿌려 낼 때부터 살짝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때 휴브리스는 분명한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일곱 개로 갈라진 존재감들이 휴브리스의 몸에 넘쳐흐르는 마기와 에너지를 각기 멋대로 통제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왜? 뭐지? 뭐 때문이지?’
그 원인으로 짐작되는 것은 하나.
용언.
휴브리스의 영혼이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이 처음 든 것도, 놈이 처음 용언을 사용한 직후였다.
그리고 놈이 이 싸움에서 용언을 사용한 횟수를 세 보면.
‘하나, 둘 셋……. 일곱!?’
일곱 개의 머리, 일곱 번의 용언. 그리고 그 후에 일곱 개로 갈라진 존재감.
‘이 새끼, 설마……?’
벼락같은 깨달음이 타이니의 머릿속을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