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30
430화. 인어 전쟁 (1)
“젠장! 전부 귀환하라고 해! 조업 완전 중단!!! 낚시도 거둬!!”
테헤논의 외침에, 남해 어부 연합의 간부들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인술라 주민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아니, 연합군 정예는 그대로 동부 해안에 둬! 남부 산맥이 천연 방파제가 되어 줄 거야! 엘로랑 전사단만 테르티우스로 돌려보내! 각국의 최정예들 붙여서!”
검제가 통신구를 붙잡고 그 너머의 인물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런 소란이 벌어지는 와중에, 한쪽에서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바닷속 전투는 다시는 하기 싫은데. 품위가 없어.”
“인어들이 몰려온다잖아. 더구나 이번엔 이 섬이 전장이 될 테니, 뭍에서 싸우게 되는 거지. 이거 정말 원 없이 몸 풀겠네. 안 그래, 사림?”
“내 이름 부르지 말라니까? 하. 뭐, 어쨌건 그건 나도 동감이다.”
“내 직감은 아니라는데, 좀 쉬면 안 되나?”
“아 할배! 그 빌어먹을 직감 이제 때려치우라고요. 전투 시에는 잘 작동한다며? 맞아요 그거?”
“저 마법쟁이 새끼. 그놈이랑 어울려 다니더니, 싸가지가 아주…….”
여왕, 아니 그 분체와의 한차례 전투를 마치고 안색이 창백해져 있던 초인들이 다시금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앞에서 통신을 끝낸 검제가 한숨을 내쉬며 크롬벨을 바라보았다.
“크롬벨 경. 인어가 머맨이나 세이렌과 뭐가 다른지 알고 있습니까?”
“여왕을 보셨듯이, 비늘이나 송곳니 따위가 안 보이고 멀쩡한 인간 상체를 가지고 있죠.”
“…….”
“크흠. 사실 저도 전설로만 접한 것이라 잘 모릅니다. 다만 확실히 다른 점은, 전술을 구사할 지능이 있고, 대륙에 발을 디디면 아예 인간처럼 변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빠르게 불어나는 개체수가 고대의 문젯거리였다는 것 정도.”
“그게 사실이면…….”
“이 섬이 수십만 대군에게 포위당하는 국면에 몰리겠죠. 그것도 적은 진퇴가 자유로우면서 우리만 일방적으로 피해를 강요당하는 형태로.”
크롬벨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그럼, 이 섬을 버리고 후퇴하는 것은…….”
“그건 절대 안 돼!! 차라리 당신들만 떠나! 우리는 끝까지 항전할 테니까!”
혹시나 해서 꺼내 본 그 말은, 테헤논을 비롯한 어부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쳤다.
그리고.
“나태의 균열을 그냥 적에게 넘겨줄 수는 없습니다, 공작. 그나마 어부 연합과 협력한다면 막을 방도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프만을 비롯한 마도사들 역시 그 의견을 반대했다.
“어차피 우린 항상 열세로 싸워 왔소이다, 공작. 정보의 우위 때문에 그걸 간과했던 것뿐이지.”
“그게 이번엔 조금 더 심해진 것으로 칩시다.”
“그래. 그럽시다, 공작. 그 짜증 나던 인어 여왕도, 뭍에서 싸우면 좀 낫겠지.”
마지막에 더해진 저릭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8대 기사가 모두 동원되고도, 본체의 7분의 1밖에 안 되는 분체를 간신히 잡았다.
아무리 그것이 악마급 시어 드워프 셋을 처리한 뒤라고 해도, 여왕의 분체가 보여 준 힘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그 자리에 크롬벨이 없었다면 누군가 하나는 죽었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데 그런 여왕이 이번엔 완전체로 등장한다.
물론 그들이 때려잡은 분체가 있으니 완전한 상태는 아니겠지만.
“분체가 하나라도 사라지면 온전히 부활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얼마 전 남해의 해저에서 생긴 엄청난 해일은 인술라를 넘어 대륙의 남부 해안까지 덮쳤다.
그리고 그 재앙이 지나간 뒤에, 오러익시더의 극에 달한 이들은 남해의 어딘가에 살 떨리는 기세를 뿜어내는 괴물이 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주 빌어먹도록 고생하게 생겼네.”
“랑켄 평야에 있는 동료들을 불러야 하는 거 아냐?”
“그러다 거기서 질투가 튀어나오면?”
“그럼 타이니만이라도…….”
모두가 긴장한 듯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아, 타이니 경은 이미 이쪽에 있을 겁니다.”
우렁우렁하게 울리는 코끼리 수인의 말에, 8대 기사와 세 명의 마도사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뭐요?”
“여러분이 몰려가신 이후에 또 하나의 포인트를 발견해서 제가 부탁드렸지요. 그곳을 처리하러 가셨습니다.”
이어진 말에 그를 바라보던 모두의 눈이 부릅떠졌다.
“혼자!?”
거의 동시에 터져 나온 반문에는 깊은 우려가 담겨 있었기에, 우란 누드의 회색 피부에서 한순간 굵은 땀방울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아니, 마도사님들은 혹시나 하는 사태에 대비해 여기서 결계를 만들고 계셨고……. 다른 분들은 처음 발견된 포인트에 몰려가셨고…….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걸 혼자……!”
“……타이니 경이 그 포인트를 정리하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뭐?”
이번에도 모두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반문이 튀어나왔다.
“예. 어인족 인편을 통해 그렇게 연락받았습니다. 그 뒤에 들릴 데가 있다면서 어디론가 가셨다고 하니, 이 변화를 느끼셨다면 랑켄 평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으로 오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우란 누드가 그렇게 말을 보탰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모두가 황당한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을 뿐.
그러다.
“그걸? 혼자?”
“그쪽에는 약한 놈만 갔나?”
“아니면 여왕의 분체들 사이에도 무력에 차이가 있다거나?”
“이건 아무리 녀석이라도 말이 안 되는데?”
“대체 뭘 처먹은 거야, 그사이에?”
동시에 쏟아져 나온 푸념들에는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중 현재 있는 이들 중 가장 강한 이들.
오러익시더의 극에 이른 크롬벨과 검제, 저릭은 그럼에도 표정이 살짝 굳어 있었다.
막연하게 느껴지는 남쪽의 거대한 위협.
그 기세를 느낄 수 있는 이들로선 찜찜한 느낌이 오히려 더 강해진 것이다.
‘그럼 7분의 1이 아니라 2가 깎여 나갔는데도 저 정도라는 건가.’
시선이 마주친 세 사람은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내 웃음으로 다시 분위기를 띄웠다.
“뭐, 그나마 다행이군요.”
“타이니 녀석, 오러마스터라도 된 거 아냐?!”
“공작, 그건…….”
“아니, 당연히 그냥 해 본 말입니다. 어쨌거나 녀석이 온다니 다행입니다. 정말.”
“흠. 그래도 나태, 솜누스는 양보하지 않을 겁니다. 그놈은 제 몫입니다.”
“일단 내가 도끼로 찍어서 간 좀 보는 건, 괜찮겠지?”
피식.
“푸하하하하.”
“그래. 인어족이 별거냐? 이제 와서 뭐.”
서로를 바라보며 짓던 작은 미소가 이내 진심 어린 웃음으로 변해 다시 장내를 호쾌하게 휘어 감았다.
몇 번이나 함께 사선을 넘어 오며 다져진 동료에 대한 신뢰가, 위기 상황에서도 서로의 자신감을 채워 주고 있는 듯했다.
특히 초인들 사이에 겉도는 듯하던 크롬벨마저 이젠 완전히 동화되어 동료애를 느끼고 있었다.
다만 그 와중에도, 이곳의 현지인들만이 그 훈훈한 분위기에 동참하지 못했다.
“그, 한 명 더 온다는 거 맞지? 군단 아니고.”
“……어.”
“근데 왜 저렇게 좋아하지?”
“몰라, 인마.”
광휘의 기사 타이니.
양 대륙에 걸친 인류 최강의 기사에 대한 소문을 모르는 남해 어부 연합의 인물들만이,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겉돌 뿐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인어족이 몰려옵니다!!!”
인술라에 전쟁이 벌어졌다.
* * *
싸아아아아.
철썩.
지난 며칠간 미칠 듯이 몰아치던 해일이 이제는 사라졌다.
여느 때와 같이 평온하게 밀려오는 바닷물.
하지만 그 너머 남쪽의 바다를 바라보는 인술라의 주민들, 그리고 전투원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저게 다 몇 마리야?”
“수면 밑에도 있을걸.”
“젠장. 이게…….”
해수면에 둥둥 떠 있는 수많은 사람의 얼굴들.
대충 봐도 만 단위는 훌쩍 넘을 것 같은 괴물들이 끝도 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차라리 저게 다 시체였으면 좋겠다.”
“미친놈아, 그럼 더 무섭지!”
“그런가…….”
일반 주민들이 술렁이고 있을 때.
그 전면에서 인어의 대군을 바라보는 초인들의 표정도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각오는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요.”
검제와 크롬벨은 다른 이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한숨을 내쉬지 않기 위해 억지로 표정을 관리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여왕이 부활하면서 머맨이나 세이렌이 인어로 바뀐 거지? 그런데 왜 저 녀석들의 무장은 죄다 새것처럼 보이지? 물가에 비치는 거 봐. 녹도 없어.”
하이넨이 드워프다운 의문으로 분위기를 가라앉혔고.
“하나, 둘. 셋, 에이씨. 쳐 죽이다가 날 새겠네.”
저릭의 투쟁심은 잘못된 방향으로 튀어 사기를 더 다운시켰다.
“우리가 물 밖이고 놈들이 물 안이면 좋지. 내 벼락으로 다 지져 버리면 되니까.”
유일하게 올바르게 투지를 불태우는 실버 팽의 뒤에서, 웨폰 마스터그리드 반 셀던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하이넨 공, 오시죠. 우리가 먼저 합시다.”
“음. 그건 움직이는 적을 대상으로는…….”
인어족 무구에 대한 미스터리에 집중하던 하이넨이 그의 제안에 떨떠름하게 답하는데.
“수가 저리 많은데 무슨 상관입니까? 저 정도면 벽이나 마찬가지지.”
“그렇……긴 하지. 하, 참. 그래, 화끈하게 한 방 날려 봅시다.”
그리드의 한마디에 그대로 진영의 정면으로 튀어나온 하이넨이 웃음 지을 때.
웨폰 마스터가 가진 다섯 개의 초월무구가 동시에 호응하며 장검으로 모여들었다.
“제가 먼저 갑니다. 목표는 저 균열 방향으로 정확하게 500m 뒤!”
“알아들었소!”
“하!!”
웨폰 마스터의 기합과 함께.
초월무구 연계, 빙하의 검 프리즈&태그 속성 극대화.
혹한의 파도, 일점 집중.
하얗다 못해 푸르게 느껴지는 빛이 쏘아지는 순간.
하이넨 역시 테그멘의 왼손에 장착된 붉은 원통형의 초월무구에 힘을 집중했다.
“합!”
우우웅.
호응하는 오러와 함께 초월무구 테그멘의 힘까지 모두가 불벼락에 모여들자마자.
전투 기갑 테그멘 풀가동. 초월무구 연계, 불벼락 풀 차징.
오러&마법 극대화 증폭. 오러 레이저.
그 모든 힘이 붉은빛으로 변해 앞으로 쏘아졌다.
찌이이이이잉!
그리고 그리드가 쏘아 낸 푸른 냉기의 힘이 바닷물과 만나는 점을 정확하게 타격했다.
그저 500m라는 막연한 좌표를 설명했을 뿐인데도 그대로 적중시키는, 신기에 가까운 전투 예지.
그 결과.
빙염 속성 합일. 증폭.
극대소멸파.
우우우우우웅.
꽝————-!
콰콰콰콰콰콰콰.
새까맣게 바다 표면을 메우며 돌진해 오던 인어족 진형의 한가운데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반경 500m의 바닷물을 그대로 터트려 버리는 놀라운 충격파가 개전의 신호를 울렸다.
– 꾸에에에엑!
인어족들의 비명 소리가 뒤늦게 섬으로 울려 퍼지는 순간.
녹색의 그림자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우리도 질 수 없지. 사림!!”
“이름 부르지 말……. 에이씨!!”
저릭식 도끼 살법, 최종 오의.
월광만천하(月光滿天下).
저릭이 앞으로 튀어나가며 은빛의 보름달을 만들어 내자.
실버 팽은 불만을 토하면서도 그 즉시 따라붙어 할버드, 라이트닝 로드를 휘둘렀다.
실버 팽, 비전 오의. 천둥 늑대의 포효.
은빛의 오러가 만들어 낸 거센 참격의 바람을 돌파한 샛노란 전격의 오러가, 전면의 균열 전체를 뒤덮을 듯한 거대한 벼락의 세례를 쏟아 냈다.
몇 년 전 제국의 들판에서 쏟아 내던 때보다 더욱 강력하고 멀리까지 뻗어 나가는 새하얀 벼락.
실버 팽이 오러익시더에 오르면서 더욱 강력해진 합격기가 사신의 벼락이 되어 바닷물을 향해 쏟아질 때.
서로 눈빛이 마주친 워로드와 문 나이트는 이 기술을 알려 준 동료를 동시에 떠올렸다.
– 나는 그걸 이렇게 불렀어.
– 뇌광진천하(雷光振天下).
꽈아아아아아아앙!
새하얀 벼락이 바다를 떨쳐 울리며, 일대에 감전된 인어족의 사체를 대량으로 생산해 냈다.
그러나.
그 사체는 금세 더 많은 수의 인원들에게 밀려났고, 그렇게 인술라 앞바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