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32
432화. 기사란…….
갓 핸드는 인술라의 최전선에서 사흘간 하루도 쉬지 않았다.
정확히는 쉴 필요가 없었다. 성물을 하사받으며 성자급의 경계를 넘어선 그의 성력은 사흘 치 피로 정도야 쉽게도 씻어 버렸으니까.
“하!”
촤아아악.
갓 핸드가 뿌린 신성 오러에 전면의 인어들이 일제히 무너졌고, 그 순간 생겨난 틈을 타 그의 몸에서 신성력이 솟구쳤다.
“여신이시여!”
스아아아아.
“신의 빛이다!”
“우와아아!”
지쳐 가던 어부 연합의 전투원들도 그 빛을 받을 때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빛은 아군들의 피로를 씻어 내고 경상을 단숨에 완치시켰으며, 중상자 역시 증세를 완화시켜 뒤로 이탈할 만한 여유를 만들어 주었다.
자연스레 갓 핸드를 중심으로 방어선이 구축되었지만, 사방에서 인어들이 몰려오는 마당에 그가 혼자서 모든 전선을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갈수록 병력들의 피로가 쌓이면서 전선이 서서히 무너져 가는 것이, 그의 감각에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찌해야 합니까. 여신이시여…….’
성자급 신성력이 피로를 씻어 준다 해도 엄연히 한계가 있었다.
신의 힘은 무한하나 그것을 사용하는 그는 엄연한 인간, 아니 실제론 그보다 못한 속죄자의 신세였다.
끊임없이 뿜어내고 있는 신성력이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 그는 속이 텅 빈 인형이 되어 그대로 쓰러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은, 그가 모든 것을 쏟아 내야 할 결전장도 아니었다.
고민하던 그는 이내 결론을 내렸다.
‘여신의 뜻은 분명하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마왕을 막아 내야 한다는 것.’
마왕에 비하면, 그 섬찟했던 인어 여왕도 그리 중요한 적이 아니었다.
심지어 부활한 인어 여왕도 아니고 그 졸개들만이 끝없이 쏟아져 오는 지금 상황에서 목숨을 걸 수는 없는 것이다.
‘후퇴해야 한다.’
흘깃 뒤를 돌아본 그의 시선에 연합군의 지휘관인 검제의 얼굴이 들어오는 순간.
번쩍.
꽈아아아아아아앙!
먼바다에서 노을빛 폭발과 함께 거대한 물보라가 솟구쳤다.
‘음!?’
뒤이어 그 폭발의 희미한 충격파가 바람에 실려 전해져 오는 걸 감지할 수 있었으니.
갓 핸드는 피부에 소름이 돋는 느낌과 함께 다시 바다 쪽을 향해 획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한 단계 더 성장한 지금으로서도 가늠이 되지 않는 힘의 흔적이, 그를 긴장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번쩍.
콰아아아아아아아.
콰콰콰콰콰콰콰.
다시금 사방을 비추는 노을빛과 함께 충격파가 퍼져 나가더니, 그것만으로 해일이 일어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고.
그에게도 익숙한 목소리가 바다 저편에서 아련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에라이 X발 새끼들! 끝이 없어, 끝이!!! 일주일 동안 쳐 죽여도 도통 줄질 않아!!
짜증 가득한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아는 자들의 얼굴은 일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타이니 경!?”
그가 이렇게 강했던가!?
갓 핸드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멈춘 채 멍하니 그 노을빛을 바라보고 있는데.
뒤쪽의 지휘부에서 다른 초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타이니다!
– 광휘의 기사가 왔다!
– 이런 미친……!
물론 그들이 타이니의 등장에 흥분한다 한들 어부 연합의 인원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왜?”
“아군인가?”
“맞는 거 같긴 한데…….”
“왜 저러는 거야? 초인들이…….”
하지만 그러던 이들도 머지않아 체감할 수 있었다.
밀려오던 인어족들이 공세가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번쩍.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그것이 바다 저편에서 간간이 터져 나오는 노을빛 폭발 때문이라는 걸.
“인어들이 줄어든다?”
“뒤로 가고 있다!”
“놈들이 바다로 돌아간다!”
“우와아아아!”
대체 누구인지는 몰라도, 바다에서 인어들을 박살 내고 있는 존재가 그 대군의 흐름 자체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검제 영감! 튈 생각 하지 마! 내가 여기서 인어족 끝장낸다! 버티기만 해!]누군가에게 전하듯 섬 전체에 울려 퍼진 영파까지.
– 미친놈…….
헛웃음을 짓는 검제의 표정이 최전선에서도 느껴지는 듯했다.
다만 그 헛웃음에서도 긍정적인 감정이 묻어난 것 같다면 착각일까.
하지만 갓 핸드는 마냥 안심할 수 없었다.
‘무모해. 혼자서 뭘 어쩌려고…….’
그의 시선이 다시금 바다로 향했다.
지금의 전투는 아무리 강하다 해도 한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인어들이 그야말로 끝이 없는 인해전술을 펼치고 있는 상황.
사흘간의 전투 끝에 이제야 기사급들이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여기서 얼마나 더 몰려올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이건 설령 여신께 서임받은 오러마스터가 온다 해도 무리다.’
신화시대에나 존재했다던 신의 기사, 오러마스터가 현신한다 해도 저 압도적인 숫자의 폭력은 이겨 낼 수 없을 터였다.
갓 핸드는 광휘의 기사가 분전할 것임을 예상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바다 저편의 전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번쩍.
꽈아아아아아아앙!
‘과연 얼마나…….’
번쩍.
콰아아아아아아앙!
‘이제 슬슬 지칠 때가 됐…….’
번쩍.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콰콰콰콰콰콰콰.
“하……?”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간간이 터져 나와 수평선을 물들이는 밝은 노을빛은, 끊임없이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인어족들을 박살 내고 있었다.
그에 따라.
“$!@#!!”
“!@$!!@#!”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바다 쪽으로 후퇴하는 인어들의 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인술라의 전선에는 사흘간 없었던 여유가 찾아왔고.
정신없이 싸우던 이들도 그제야 이 기현상의 원인을 확실하게 눈으로 보게 되었다.
“우와아아아!”
“구원자다!”
“누구랬지!?”
“과, 광 뭐였는데?”
“광휘의 기사 만세!”
연달아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한 귀로 듣고 흘린 채, 갓 핸드는 멍하니 타이니가 있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그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글러터니를 박살 냈던 때의 그 파멸의 빛을 쓰는 건 아닌 듯했지만, 저만한 에너지를 연달아 소모하는 것도 생물에게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
자연스레 그는 무거운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광휘의 기사가 이곳에서 자신의 생명을 갈아 넣고 있다.’
왜? 어째서?
인술라에 있는 10만의 인구 때문에, 대륙의 희망인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려고 하는 건가?
용납할 수가 없었다.
“타이니 경! 돌아오시오!! 그대가 목숨을 걸어야 할 전장은 여기가 아니야!!!”
그래서 바다 저편에서도 들리도록 오러까지 실어서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사방에서 화살 같은 시선이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알 바 아니었다.
신이 내린 사명은 지엄한 것이니.
“그대는 마왕을 상대해야 할 몸이오! 여기서 생명력을 갈아 넣어서는 안 돼!!!”
찌이이이잉.
– 돼애애애애!
오러가 실린 음파가 사방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피아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귀를 틀어막게 만들었다.
다행히 그 고함이 통하기라도 한 듯.
번쩍.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해상에서 폭발을 일으키는 노을빛의 근원이, 인술라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그는 타이니가 자신의 말을 받아들인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그대가 죽어야 할 자리는 여기가 아니야. 절대.’
– 마왕을 막을 수 없다 여겨진다면, 성물과 함께 제물을 바쳐라. 가장 강력한 초인,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초인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술식은 성물을 희생하여…….
– 제물을 바치고 나면, 일시적으로나마 신의 권능이 너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순간 그 누구에게도, 설령 교황이라 해도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신탁이 갓 핸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솔직히 그 스스로 생각해도 위험한 명령이었기에 잠시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광신자는 금세 마음을 바로잡았었다.
처음에는 여신의 사도였던 용사, 크롬벨 라이언하트가 그 제물인 건가 싶었지만.
고대 최강의 영웅은 현시대 최고의 영웅에게 존재감에서 밀렸다.
그는 자연스레 신탁의 대상이 타이니라고 확신했다.
미약하게 들던 죄책감은 금방 사라졌다.
‘그도 영광스러워할 것이다.’
이 신탁을 당사자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저 인간의 생존 본능이 신의 사명을 거부하게 만들까 봐 우려했기 때문일 뿐.
광신자는 스스로의 이성과 감정조차 자신의 신앙에 맞춰 재해석했으니.
‘그래, 그래서일 뿐이다.’
마왕을 물리친 뒤 영광된 천계에서 광휘의 기사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도 결국 자신에게 감사를 표하리라.
갓 핸드가 그렇게 생각하며 가슴속에 품고 있던 신탁을 다시 되새기고 있을 때.
해상에서 다시 한번 노을빛이 번져 나가더니, 늑대를 탄 기사가 바다 위에 가득한 인어들의 시체를 밟으며 달려오는…… 아니, 쏘아져 오는 것이 보였다.
노을빛 유성이 되어 날 듯이 쏘아져 오는 기술.
메테오 스트라이크라는 이름이 더 없이 어울리는 그 기술이, 인술라에 상륙한 인어들 사이에 떨어졌다.
번쩍.
꽈아아아아아아앙!
우르르르르르르릉.
지진이 난 것처럼 지면이 흔들리고 흙먼지가 솟구치는데.
그 사이에서 인어 떼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가루가 되어 비산하는 광경이 모두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흙먼지 안에서 자신감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우, 징글징글하네 이놈들! 성기사 영감! 날 걱정해 준 건 고마운데, 당신이나 쉬시죠!! 여긴 내가 맡을 테니!”
창백한 안색의 광휘의 기사였지만,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쌩쌩한 모습이었다.
“아니, 어떻게…….”
“그리고 걱정하지 마시죠. 난 여기서건 어디서건, 죽을 생각 없으니.”
동대륙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슨 일을 겪었기에 이토록 강력한 기사가 이런 지구력까지 가지게 되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가 목숨을 갈아 넣고 있는 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좋았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나 역시 괜찮으니.”
“뭐……. 그래 보이기는 하네요. 그래도 쉴 수 있을 때 쉬시죠. 곧 본대가 들이닥칠 테니.”
“무슨 말입니까?”
“오합지졸들 따위야 내가 다 터트릴 수 있거든요. 지금이야 끝도 없이 몰려오지만, 이대로 계속 대책 없이 덤비면 기껏 부활한 인어족이 내 손에 씨가 마르게 될 겁니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만하게까지 들리는 말.
하지만 지금까지 엄청난 대기술을 연달아 써 댔던 것을 보면 허언 같지는 않았다.
폭발이 만들어 낸 여파가 가라앉고 흙먼지가 내려앉는데도, 타이니의 주변을 둘러싼 인어들은 그의 시선에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하찮은 것들도 모이면 참 귀찮단 말이죠.”
타이니가 도발하듯 비웃었지만, 놈들은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
그 순간이 되어서야, 갓 핸드는 타이니가 모종의 수단을 동원에 지구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것에도 대가가 있음을 깨달았다.
‘마치 지금 쌓여야 할 피로도를 미래로 미뤄 버리는 듯한 느낌.’
물론 그것만으로 모든 걸 설명한 순 없겠지만 분명히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강력한 기사가 이 싸움을 치른 후에 감당해야 할 피로는 단순히 탈진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갓 핸드는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왜,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굳이 왜 여기서?”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을까.
검은 머리 기사가 얼굴에 쓴웃음을 띠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뭐 다른 데서는 이래도 되고, 여기서는 안 된다는 건가요?”
“아니, 힘을 쏟아야 할 전장이 따로 있지 않겠…….”
“그런 게 어딨습니까? 눈앞에 깨부술 적이 있고 등 뒤엔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싸워야지. 그게 기사 아닙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갓 핸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대화가 끝났다고 여겼는지, 광휘의 기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기사 영감이나 좀 쉬시죠. 그동안은 내가 막을 테니……까!”
대화를 주고받은 그 짧은 시간만으로도 어느 정도 기력이 충전된 것일까.
번쩍.
꽈아아아아아앙!
다시 노을빛 유성이 되어 인어들을 향해 튀어 나간 타이니가, 다른 쪽 전선의 일각을 그대로 붕괴시켰다.
우르르르르릉.
콰콰콰콰콰콰콰.
‘놀랍군.’
그 기술의 여파만으로 지면이 흔들렸지만, 그런 건 더 이상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인류의 희망이 더욱 강해졌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은 일.
그런데 갓 핸드는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 눈앞에 깨부술 적이 있고 등 뒤엔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싸워야지. 그게 기사 아닙니까?
더없이 당당한 ‘기사’의 말.
그리고.
– ……제물로 바쳐라. 가장 강력한 초인,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초인을.
그것과 완전히 대비되는, 솔직히 ‘거부감’이 느껴지던 신의 계시.
‘무엇이 옳은가…….’
그 대비가 갓 핸드의 맹신에 미약한 균열을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신의 손. 신의 뜻을 행하는 대행자.”
그는 다시 스스로 계율을 되새기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모든 것은……. 신을 위하여!”
검과 방패를 고쳐잡은 그가, 머릿속의 혼란을 쏟아 내듯 인어족의 전선을 향해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