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36
436화. 진정한 오러마스터
[이놈, 네놈만큼은!]기품 있는 인간을 흉내 내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괴물처럼 포효하는 모습.
인술라의 섬 절반이 증발한 뒤 생긴 바다 위에서 살기를 뿜어내는 인어 여왕은 확실히 여유가 없어 보였지만.
[네놈만큼은! 가만두지 않겠다!!!]그 살벌한 분노만큼은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타이니 입장에서도 당혹스러운 경험이었다.
‘빅뱅의 범위에 완벽하게 휩쓸렸는데도 살았다고?’
나태 장군의 수장 놈이 마계로 도망치는 걸 봤을 때부터 찜찜하던 기분이 눈앞에 재앙이 되어 현신한 느낌이었다.
그 많던 인어족의 정예들과 나태의 장군들을 소멸시킨 뒤 여왕에게도 치명타를 입혔다는 사실은 그다지 위안이 되지 않았다.
꽝!
“컥!”
들고 있던 삼지창은 어디로 갔는지, 새파란 오러가 넘실거리는 여왕의 거대한 왼손이 타이니의 몸을 후려쳤는데.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가볍게 하며 철신갑을 전개하고도 엄청난 충격을 느끼며 뒤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젠장, 불굴만 쓸 수 있어도…….’
아찔한 통증 속에서 이를 악물며 날아가는 몸을 억지로 컨트롤하려는데.
다행스럽게도 후속타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 귀찮은 것들이!!]콰콰콰콰쾅!
간신히 중심을 잡고 고개를 들어 보니, 여왕의 배후를 습격한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에 여왕은 이전에 비해 초라한 기세로나마 하늘과 바다를 잇는 듯한 벼락을 연달아 쏟아 내고 거친 파도를 일으켜 그들의 움직임을 방해하는데.
“어림없다!!”
공간을 밟듯 뛰어오른 실버 팽의 라이트닝 로드가 하늘을 향하는 순간.
쏟아져 오던 벼락이 모조리 그의 몸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아드드득.”
실버 팽이 그렇게 몸을 떨며 벼락을 흡수하는 사이, 파도를 밟듯이 달려나간 저릭과 검제가 여왕의 좌우를 오가며 은빛과 붉은빛 오러의 공세를 정신없이 퍼부었고.
여왕이 그것을 막아 내느라 허점을 보이면, 거대한 부엉이 날개를 단 크롬벨이 그 빈틈으로 날카로운 신성 오러를 꽂아 넣었다.
동시에 이제 반으로 줄어 버린 인술라 섬의 저편에서 쏟아져 온 붉은 레이저가 간간이 여왕을 강타했고.
마찬가지로 쏟아져 온 냉기가 파도를 얼리며 여왕의 움직임을 구속하고 있었다.
[내가, 내가 이대로……!]그 와중에도 여왕은 섬뜩한 눈길로 오직 타이니만을 바라보는데.
[수천 년이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쪼개져서 갇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렇게는 안 돼! 절대 무너질 수 없다!!]피를 토해내는 여왕의 분노가 대기를 울리는 순간.
타이니는 그 분노를 향해 오히려 돌진하기 시작했다.
– 컹!
‘걱정하지 마. 할 수 있어.’
이젠 월랑을 소환할 여력도 없고, 불굴이나 바다의 왕을 활성화시킬 최소한의 기력도 없다.
하지만 바다 대신 허공을 밟고 돌진하는 그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게 그가 접근하는 순간, 다시금 여왕의 눈이 뒤집혔다.
[네놈! 네놈만큼은!]‘역시.’
지금 여왕은 제정신이 아니다.
콰콰콰콰쾅.
타이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허점이 노출되어 다른 초인들의 공세에 타격을 입는데도, 여왕의 몸은 여전히 그를 향해 돌진해 왔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는 여왕의 오른쪽 상박을 보고 있었다.
‘낫지 않는다. 아니, 도리어 악화되고 있어.’
멸살의 권능이 더해진 빅뱅의 일격이, 안 그래도 영혼이 온전치 못하던 여왕의 최후를 앞당기고 있었다.
‘여왕은 이대로 둬도 확실히 죽는다.’
확정된 최후.
아마도 그것이 여왕을 미치게 만들고 있는 듯했다.
[너만은, 너만은 죽인다!]그러니 저렇게 광기를 보이는 거겠지.
바다 위 공간을 한순간에 압축하듯 사라졌다가 타이니의 눈앞에 다시 나타나는 여왕.
지금 그의 몸 상태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지만.
‘광전사의 움직임이야 예상하면 그만이지.’
여왕이 자신을 향해 왼팔을 휘두른 순간, 타이니는 달리던 방향을 꺾어 아예 옆으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쩌어어어억.
콰콰콰콰콰콰.
마치 공간이 쪼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여왕의 손톱이 스친 자리의 해수면이 두 쪽으로 갈라져 나갔다.
눈에 띄게 많은 기력을 소모한 큰 일격이 허망하게 빗나간 것이다.
그리고.
“나이스!”
동료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 하찮은 것들이……!]콰콰콰콰콰콰쾅.
연이어 쏟아지는 공세가 여왕을 완전히 침몰시키기 시작했다.
여왕의 분노에 찬 눈은 여전히 타이니를 향해 있다가도, 거듭 피를 토하며 기력을 다해 갈수록 그가 아닌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캬아아악! %!#@?!@#”
[저주스럽다! 여신이여!! 왜 나를……!]스각.
“커흑.”
쿨록.
한탄하는 듯한 그 목소리는, 검제의 붉은 오러 블레이드가 울대를 스치는 순간 붉은 핏물로 화해 쏟아졌다.
그렇게 쏟아진 핏물이 바다 위를 뒤덮을 때.
[긴 세월이, 간악한 여신의 봉인이 내 신성을 약화시키지만 않았어도!!! 내 영혼이 쪼개지지만 않았어도! 너희들, 너희들 인간 따위!!!]여왕은 갈라진 목을 부여잡은 채 한을 토해 내더니, 자신의 최후를 재촉하는 인간들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 분노한 눈길과 영파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기세는 미약하기만 했다.
– 끝났다.
모두가 그리 확신하며 여왕을 노려보는 순간.
‘저거?’
영격만큼은 이미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타이니만이, 여왕의 영혼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챘다.
그리고.
“피해!!”
그가 고함을 지르며 여왕의 앞으로 돌진하는 순간.
[여신을, 너희들을 저주한다!!]퍼어어어엉!
그 영파와 함께, 한순간 여왕의 거체가 터져 나가며 사방으로 핏물을 쏟아 냈다.
얼핏 보면 그냥 자폭 같았지만, 타이니는 그 안에 담긴 지독한 악념을 느낄 수 있었다.
휴브리스가 검선의 영혼을 갉아먹게 만들었던 것과 같은 방식의, 오직 영력으로만 이루어진 저주.
하지만 생명을 대가로 발현한 만큼 더욱 악랄한 신성이 담긴 저주였다.
‘어차피 주 타깃은 나야.’
[내가 받아들이겠다!]타이니는 대놓고 영혼의 존재감을 부풀려서 쏟아지는 핏물이 모두 자신을 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푸화하하학.
그렇게 대량의 핏물을 뒤집어쓴 순간부터.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그의 머릿속에 여왕의 사념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영혼을 갉아먹히는 듯한 느낌.
“큭.”
그에 대항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는 순간.
풍덩.
모든 기력이 빠져나가며 그의 몸이 바닷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타이니!!”
퍼어엉.
바닷물을 박살 내듯 흩어 낸 검제가 그의 몸을 끌어 올리는데.
타이니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주변이 금세 소란스러워지는 가운데.
“타이니 경이 여왕의 저주를 뒤집어썼습니다! 빨리 육지로!”
파아아앙.
유일하게 얼추 상황을 파악한 크롬벨이 타이니의 전신에 신성력을 뿌리며 그를 부축했다.
우우우웅.
“조금만 버티세요, 타이니 경. 속죄자가 가진 성물의 힘이면 그 저주를 떨쳐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타이니의 귀에 전혀 들리지 않았고, 신성력 또한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죽어. 죽어. 죽어라. 너만은 죽인다!]그 순간 타이니는 여왕의 사념을 억지로 견뎌 내면서, 자신이 영혼을 갉아먹는 저주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눈을 떠도 감아도 온통 여왕의 얼굴만 떠오르는데, 그러면서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쥐어짜이는 고통이 느껴졌다.
‘젠장, 큰일 났다. 계산을 잘못했어.’
그 고통 속에서 낭패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혼자 저주를 뒤집어쓰더라도 일단 기력을 회복한 후 불굴을 사용하면 쉽게 떨쳐 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그 저주 때문에, 권능을 발동할 만한 영력과 마나가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빌어먹을, 내가 이대로 질까 보냐!’
타이니는 남은 모든 영력을 동원해서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는 저주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외부의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동료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 이겼다!
– 우리가 이겼다!
– 인어족을 이겼어!!
– 우와아아아아!
이름조차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
그것이 타이니의 영혼에 묘한 진동을 일으켰다.
사람들의 추앙에 의해 세상에 새겨진 그의 ‘업적’이 영혼을 울리는 듯했다.
아니, 영혼이 그 울림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타이니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수천 년 만에 부활한 인어족, 그 여왕을 주도적으로 척살했다.
인류의 입장에서는 더없이 선한 업(業), 그리고 인어족의 입장에서는 더없이 악한 업.
기준에 따라 선악은 달라지겠지만 분명 세상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그 업적이, 거대한 카르마(Karma)를 만들어 냈다.
인간의 몸으로 신성을 담기에는 아직 부족했던 그에게 마침내 카르마가 부여되면서, 승격을 위한 단 하나의 조건이 달성된 것이다.
그러자 진작에 자격을 갖추고 있던 영혼은 저주에 의해 갉아먹히는 와중에도 그 변화를 깨닫고 본능적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그 누구보다 강력한 마나를 품고 있던 타이니의 마나바디, 즉 염체(念體)였다.
검선이 양신(養神)이라는 말로 부르기도 했던, 마나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몸.
염체는 곧 스스로 품고 있던 마나를 모조리 토해 내더니, 그 대신 세상의 이면에 흐르는 카르마를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웅.
세상을 구성하는 존재력, 카르마가 타이니의 영혼과 몸에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전에 없던 신성(神性)을 빚어냈다.
동시에 그가 억지로 만들었던 권능인 ‘바다의 왕’이 사라졌고, 온전한 그만의 권능인 ‘불굴’이 대신 영혼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시 마나가 몰려들어 오면서,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던 저주의 목소리가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카르마를 흡입하여 신성을 빚어낸 양신은, 그 신성을 움직여야 할 육체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우드드득.
그의 머릿속에서만 울리는 소리와 함께, 육체가 근본적으로 태(態)를 바꾸기 시작했다.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신성이 신체의 가장 작은 단위부터 스며들면서 그의 몸이 재정립되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타이니는 온몸에 엄습하는 고통을 담담히 견뎌 내었다.
그리고 다시 올바르게 조율되어 가는 육체의 형태를 하나하나 영혼에 새겼다.
우웅.
그 와중에 영혼의 구석에서 존재감을 어필하는 ‘파편’도 보였지만.
타이니는 웃으며 무시했다.
‘너는 나중에 다른 데에 써 주마.’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영혼과 육체의 조율이 모두 끝났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타이니의 눈이 가볍게 떠졌다.
우우웅.
그리고 그는 몸 안에 넘쳐흐르는 힘을 느끼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게 진짜 오러마스터…….’
편법으로 잠시 올라섰던 때와 달리, 오만하고 폭급한 성정은 따라오지 않았다.
그저 자연히 얻어야 할 것을 얻은 느낌.
앞선 한 번의 경험 덕분인지 몰라도, 타이니는 자신의 변화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쿵.
뉘여 있던 침상에서 자연스레 몸을 일으키는 순간.
쨍그랑.
갑자기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자신을 보고 넙죽 엎드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허업!?”
“으, 은인을 뵙습니다.”
“으으으으.”
구릿빛 피부의 남자들부터 시종들까지.
거친 바다에서 살아온 거친 사람들 모두가, 은인을 대하는 태도라 보기에도 과할 만큼 예를 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타이니는 자신이 자연스레 뿜어내는 기세가 그들의 심령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흠.’
그는 슬그머니 기세를 거두며 눈앞의 시종들에게 말을 건넸다.
“제 동료들을 불러 주시겠습니까?”
“헛!?”
“아, 아. 음, 예! 당연하죠!”
“알려! 알려라!”
“은인이 깨어났다!”
땡땡땡땡.
괜히 어색한 자세로 예를 표하던 바다 사나이들은, 자신의 상태에 의문을 갖기 전에 큰 목소리로 반가운 소식을 외부에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