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47
447화. 은밀한 강림
‘정말 더럽게도 많네.’
꽈아아아아앙!
우르르르릉.
콰콰콰콰콰.
자신이 만들어 낸 파괴의 향연 속에서 끝없이 인어족을 쓸어 가면서도, 타이니는 질색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번식 능력 때문에 결국 여신이 제재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인어족.
그 전설이 사실이라는 게, 싸움을 거듭할수록 피부로 와닿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타란에서 첫 폭발을 일으키자마자 인어족 전체가 갑자기 후퇴를 하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
고작 한 놈이 자신을 보면서 뭐라 소리쳤을 뿐.
그 이상의 신호를 주고받는 것도 보이지 않는데,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바다로 후퇴하던 인어족.
‘영혼으로 통한다더니…….’
강력한 적이 나타난 곳에 아예 병력을 빼 버린다는 전략은 굉장히 비효율적이지만 효과적이기도 했다.
아무리 오러마스터가 된 자신이라 해도 대륙 동부 전선 전체에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었으니까.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간단한 해결책이 있었다.
[내가 여왕을 죽였다!!!]그가 에너지 필드를 최대한 넓혀서 영파를 퍼트리는 순간.
그 범위 내에 있는 모든 인어족이 다시 눈이 벌게져서 그를 향해 돌진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는 그저 학살의 반복일 뿐이었다.
꽈아아아아앙!
노을빛 유성은 육상과 바다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폭격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꾸르르르륵.
물속에서도 거품을 내뿜으며 벌건 눈으로 미친 듯이 달려드는 인어족들의 모습은 정말 질릴 정도였다.
자신이 나타나자마자 전체 후퇴를 할 정도라면, 이미 에낙센에서 죽어 간 인어족의 소식이 놈들 종족 내에 다 전해진 것일 터였다.
‘확실히 지능도 있다는 뜻이고.’
그럼에도 여왕을 죽였다는 도발 하나만으로 죽음을 도외시하고 달려드는 인어족의 모습은, 과거 색욕 러스트가 죽었을 때의 몽마 군단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였다.
아니, 그에 비해 이놈들은 이성이 남아 있는 듯하면서도 더욱 진득한 살기와 광기가 느껴졌다.
굳이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가장 소중한 연인 혹은 가족을 죽인 원수를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그런 눈빛을 가진 지성체들을 대단위로 학살하는 일은 그에게도 찝찝함을 남겼으니.
자연스레 기계적으로 기술을 발동하며 딴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여왕은 어떤 의미일까?’
여신은 본래 인어족을 어떻게 하려 했으며, 왜 여왕을 소멸시키지 않고 봉인했을까.
고대의 여왕이 정말 여신에게 닿을 정도로 강했기에 죽일 수 없었던 것일까.
노을빛 유성이 된 그의 머릿속에서 온갖 상념이 맴돌다가도.
콰드드드드득.
쾅.
그 잡념 때문에 유성 떨구기의 진행이 막힐 때에는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것은 넓게 보면 각자의 생존을 위한 전쟁이다.
상대가 마족이든 인어족이든, 이대로 공세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저 싸울 뿐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내가 여왕을 죽였고, 너희 종족을 멸종시킬 멸살자다!! 전부 덤벼라!]우르르르르릉.
다시금 강해지는 유성의 노을빛.
타란을 덮친 인어족의 군대가 모조리 박살 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
파아아아아아앙!
콰콰콰콰콰콰콰콰.
[나는 다른 전선으로 간다! 저릭, 정리를 부탁해!]큰 물보라와 함께 하늘로 솟구친 유성이 멀리 날아간 순간.
솟구친 파도와 해일, 그리고 시체 더미를 내성 밖에서 멍하니 바라보던 타란의 병력들은 그제서야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정말 괴물이 되었구나, 타이니.’
저릭은 지면에 커다랗게 패인 크레이터들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탈진해 죽을 때까지 전력을 뽑아내면, 저 삼분지 일이나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오러마스터라도, 지속적으로 저런 힘을 뿜어내는 게 말이 되나?’
한 사람이 만들어 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그 전장의 변화는 용맹한 전사들의 장, 워로드에게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가능성이 생겼구나.”
갈수록 답답해져 가는 이 전쟁에 큰 희망의 빛이 생겼다는 사실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환한 웃음이 나오는데, 옆에 잡혀 있던 놈은 그것을 전혀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포, 폭뢰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살려 주신다면서요!?”
대머리 록펠의 비명이 조용한 전장에 울려 퍼지고.
“푸하하하하!”
뒤이어 들려오는 워로드의 웃음소리가 커져 갈 때 즈음에서야, 타란의 성벽을 지키던 병사들이 하나둘씩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기 시작했다.
“너도 봐, 봤지?”
“어, 당연하지.”
“그게 한 사람이 한 일이래. 그것도 마법사도 아니고 기사라는데.”
“어, 나도 들었어.”
기적을 목격한 이들이 막막한 절망과 긴장감 속에서 희망을 찾기 시작할 때.
대륙의 한구석에서는, 너무나도 오래전에 끝난 전투 때문에 하품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 * *
“왁!”
“흡!?”
챙!
균열 앞에서 경계를 서며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리던 블루윙의 기사 토렌은, 갑자기 귓가에서 터진 고함 소리에 화들짝 놀라 검을 휘둘렀다.
다른 데에 집중하고 있던 상황에 비해 놀랍도록 빠른 반응이었지만, 그 검이 향한 곳에는 불행히도 아주 잘 아는 얼굴이 있었다.
‘억!?’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았지만, 이미 전력을 다해 날린 검을 회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행히.
턱.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듯, 그 사람이 토렌의 손을 막아 냈다.
“호오. 토렌, 자네 실력이 많이 늘었네?”
“아, 가렌 님! 깜짝 놀랐잖습니까!?”
토렌은 자신도 모르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본래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평기사인 자신에 비해 부단장은 신분부터 다른 진짜 귀족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가렌 클레멘 경은 보통 귀족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하하. 가만히 균열을 지켜보고만 있으면 졸리지 않나? 이 정도 긴장감은 줘야지. 어때, 정신 좀 확 들었지?”
“……어, 예. 확실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죄,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야. 온통 안 좋은 소식만 들려오니 불길하기도 할 거고, 또 그 와중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 상황이 답답하기도 하겠지. 무엇보다 계속되는 교대 감시에 지치기도 했을 테고.”
피식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가렌의 말에 토렌은 차마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다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야, 토렌. 정신 차리게. 좀 전처럼 멍한 눈빛으로 허공을 보다가 드렉슬러 그 친구한테 걸리면 뼈도 못 추릴 걸세.”
“예, 명심하겠습니다!”
“음. 잠도 깰 겸, 재밌는 얘기 해 줄까?”
“……예?”
“지금 동부에서 날뛰는 광휘의 기사 말이야. 그 친구가 요만~한 꼬마일 때 황궁에서 벌인 일, 들은 적 있지?”
어디 한두 번 들었을까.
황궁의 비사를 막아 낸 영웅.
광휘의 기사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퍼진 것이 그때쯤이었으니, 모를 수가 없는 이야기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한편으로 그에게 아쉬움이기도 했다.
“예? 예, 들었습니다. 하필 제가 휴가 중일 때에…….”
살짝 울적해지려던 때에.
“사실 그때, 광휘의 기사가 자네 이름을 썼어.”
정말 잠이 확 깰 만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예?”
“뭐, 황궁에 들어가자니 신분 위장은 해야겠고. 혹시나 조사 들어올 수도 있으니 실제로 있는 이름을 써야겠고……. 그래서 자네 이름을 썼지.”
“예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내가 추천했거든. 그때 자네는 미성년으로 입단한 천재였으니까.”
“아. 하. 하. 그랬군요.”
토렌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어진 말이 그를 멍하게 만들었다.
“나는 자네가 최고의 기사라고 될 것이라 믿어. 그래서 그 괴물 같은 재능을 가진 타이니 경에게 네 이름을 추천했던 거야. 팍 떠올랐거든. 물론 그도 이 사실은 모르겠지만.”
“……저를 그렇게 높게 평가하시는 겁니까?”
“아……. 하하, 그렇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래도 그 괴물하고 비교하는 건 너무 과장이겠지?”
역시…….
다시 시무룩해지려던 찰나.
“하지만 자네라면 적어도 우리 단장의 뒤를 이을 재목은 될 거라고 믿어. 그러니 정신 집중하게, 토렌. 괜히 졸다가 허무하게 죽으면 우리는 블루윙의 미래를 잃는 거니까.”
가렌이 빙긋 웃으며 이어 나간 말은, 그의 가슴에 부푼 꿈을 불어넣어 주었다.
“옙!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불침번 한 시간은 짧지만 길어. 초반에 너무 정신 쏟지 마. 어차피 칠죄종이라는 괴물이 강림할 때는 그만한 존재감이 풍길 수밖에 없으니까. 자네는…….”
“저 자신을 경계 경보기로 생각하겠습니다!”
“……뭘 그렇게까지. 흠. 흠. 아무튼 정신 바짝 차리자고. 저기서 나올 괴물은, 우리 블루윙 모두와 단장의 힘에 세계수의 수호자와 사신이 힘을 합쳐야 상대가 가능할 것이라 예상되는 강적이니까.”
“옙!”
“그래, 수고해!”
“충!”
어느새 졸음을 완전히 쫓아낸 토렌은, 돌아서며 다른 불침번 동료들에게 향하는 가렌의 뒷모습을 보며 경례를 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시선이 잠깐 돌아가던 찰나, 균열에서 희미한 일렁임이 발생했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가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해도 착각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을 만한, 작은 일렁임이.
‘빌어먹을. 이게 무슨 수모인가.’
그린 아이는 부서져 내리는 지팡이와 반투명화된 자신의 몸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는 본래 전대의 질투에게 선택받아 ‘재탄생’하면서부터 데스 나이트로 거듭난 마계의 귀족이었다.
그 뒤로도 진화를 거듭하여 데스 로드가 되었다가 또 권능을 이어받으며 그 이상의 존재에까지 다다랐던 그가, 지금은 권속 중 하나인 고스트 킹의 형체를 취하고 있었으니.
당당한 마계의 군주가, 중간계에 몰래 숨어들기 위해 고육지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죽음의 주인이 되면, 자신의 육체를 구성하는 언데드 종족을 한 번은 바꿀 수 있다고 알고 있다.
– 네 종족을 유령 형태로 바꾸고 은신 전용 데모닉 웨폰을 아예 소모시킬 작정으로 오버히트 시키면, 차원의 파장도 최소화할 수 있다.
– 숨어드는 것 정도는 당연히 가능하겠지?
슬로스, 아니 그분의 명령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일.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 네 선택을 존중한다. 아니, 일찌감치 받아들여야 했어.
– 너는 겁쟁이가 아니다. 인정하지.
자신의 선견지명을 드디어 인정한 슬로스 놈의 사과도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 한몫했다.
솔직히 놈과 동시에 강림하려 했을 때도 이런 방법을 취할 생각이었다.
균열을 지키고 있는 인간족 병력의 규모가 생각보다 너무 작다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새삼 아쉬웠다.
‘당장 권속으로 삼을 만한 것들이 셋이나 느껴지는데.’
거기에 더해, 조금 부족하지만 얼추 병력으로는 쓸만한 것들도 200이 넘게 있었다.
아직 익숙하지 못한 고스트의 형태로도 죽이고 재탄생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한 것들.
하지만.
‘쯧.’
그는 속으로 혀를 차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 균열 앞에 인간족이 존재하더라도 절대 소란을 피우지 마라.
– 너는 늦게 발견될수록 좋다.
– 죽은 자들의 군대를 모아, 인어족을 상대하는 인간족의 뒤를 쳐라.
– 최대한 조심히 움직여야 한다. 과하게 인간을 학살하지 말고, 먼저 군단을 재건하는 데 힘써라. 숫자보다 질을 신경 쓰란 말이다. 인간족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 그리고 그때, 내가 강림하겠다.
‘치사한 새끼.’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겠다는 것이 아닌가.
후에 공을 평가할 때 이 부분을 마왕께 강력히 주장하리라.
그린 아이는 그렇게 다짐하며 투명한 몸을 움직여 동쪽으로 향했다.
대륙의 동부, 랑켄 평야.
질투의 균열에 변화가 일어났지만, 아무도 눈치채는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