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49
449화. 일단 급한 불은 껐는데
타이니의 활약으로 동부 해안의 전선이 안정화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최악의 소식이 연합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 보급이 끊기고 있다.
– 대륙 중부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서고 있다.
아직은 연합의 지휘관들에게만 전달되는 소식.
하지만 피해가 너무 컸으니, 이대로라면 병사들이나 민간에 알려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쾅!
“젠장! 이건 또 무슨 일이야!”
검제는 오랜만에 또 평정을 잃고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 상황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실종된 보급 부대 대다수가, 눈앞에 안개가 낀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해 왔습니다.”
“마법인가?”
“죽은 자들이 되살아나기까지 했다니, 아마 흑마법이겠지요. 시국이 이러니 악마추종자들이 부활한 게 아닐는지요.”
그나마 한 기사가 내어놓은 답이 그나마 진실에 가까워 보일 뿐이었지만.
“남은 보급은!?”
“식량은 아껴 먹어도 일주일 치, 화살은 사흘 치……. 폭탄은 이틀 치도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그들에겐 그 주장의 진위를 판별한 여유도 없었다.
“빌어먹을! 테르티우스에 연락해! 거기엔 좀 여유가 생겼다고 하니, 그곳의 정예들을 차출해서…….”
어쩔 수 없이 추측만으로 명령을 전달하려 할 때.
쾅!
“각하, 급보입니다! 블……!”
회의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기사가 있었다.
수많은 시선이 쏠리는 순간 말끝을 흐리는 기사.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 태도였다.
블루윙의 기대주라 하길래 바쁜 정예 대신 부관으로 데리고 다니고는 있는데, 검제는 그가 영 마음에 차질 않았다.
“그냥 보고해! 지금 이 시국에 뭘 가리는 게야!”
“예, 옛! 블랙윙 전용 통신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보급 부대 파견 요원이 살아남았는데…….”
라프탄?
“결론만!!”
“중부 보급 부대를 습격하고 있는 죽은 자들의 군세……. 그 원인이 바로 질투, 그린 아이라는 유령 형태의 칠죄종이라고 합니다!”
“뭐!?”
그 보고가, 모든 결론을 바꾸게 만들었다.
* * *
콰아아아아앙!
‘지겨운 것들.’
타이니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제는 정말로 인어족의 얼굴만 봐도 토가 나올 것 같았는데, 여전히 놈들의 숫자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였다.
‘아니, 그래도 조금은 줄었나?’
그렇다 해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벌써 일주일째 한숨도 자지 않고 인어족이 대량으로 출몰하는 곳에서 학살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대군을 몰살시킨 뒤 다른 곳을 지원하는 동안, 비슷한 규모의 군대가 이곳에 또 쳐들어왔다.
불과 이삼일 사이에 만 단위의 병력이 충원돼서 밀려오는 느낌이랄까.
‘대체 저 넓은 바닷속에 인어족이 얼마나 있는 거야!?’
일방적으로 때려잡고 있는 입장에서도 울화가 쌓일 지경이니, 이제야 조금씩 줄어드는 기미가 보이는 것으로는 위안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예상은 했지만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소식까지 들은 상태였으니까.
– 검선 어르신께서, 칠두룡을 잡고 나서 승천하셨네.
– 자네를 도우라고 하셨…….
끄르륵.
그 통신을 다시 떠올리는 순간, 상황이 상황인 만큼 애써 눌러 놓았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아 올랐다.
‘젠장!’
마침 그 분을 풀 적들도 눈앞에 가득한 상황이니.
타이니는 더는 자제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전부 더 덤벼!]콰아아아아앙!
그가 여태 눌러 두었던 분노가 애꿎은 인어족에게 쏟아졌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자신이 그랜달을 처리한 그 날, 스승은 칠두룡을 잡고 이미 명을 다했다고 했다.
애초에 그는 스승이 아니었다면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도 못했을 테고, 결국 그랜달의 손에 목숨을 잃었거나 마왕에게 녹턴을 빼앗겼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었다.
실로 다 갚지도 못할 은혜를 입은 것이다.
그런데, 이제 더는 보은할 방법이 없었다.
‘한심한…… 한심한 놈.’
스스로에게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젠자아아아아앙!]부글부글.
분노를 터트린 순간 주변의 바닷물이 끓어오르고.
[내가 너희 여왕을 죽인 원수다!!!]꽈아아아아앙!
그만큼 더욱 큰 유성이 된 타이니가 바닷속을 용암처럼 들끓게 만드는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콰콰콰콰콰.
또다시 온 바다에 해일이 일어나고, 증발한 바닷물이 용오름이 되어 하늘에 먹구름을 만들어 낸다.
이런 식으로 난리를 치면 해안가의 도시나 마을에 난리가 난다는 것은, 지난 경험상으로도 알 수 있었다.
스스로 발휘하는 힘이 자연 현상을 움직이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철저하게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이전과 달라진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면, 자연스레 그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이 또 떠올랐다.
‘이렇게 또 한 번의 전투를 마무리해 봤자…….’
인어족을 다 잡으려면 한 세월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더구나 동대륙에서 들려온 소식은 스승의 귀천만이 아니었으니.
– 마충 군단이 그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네. 마룡 군단의 잔당들도…….
– 마충의 수가 이미 너무나도 불어나서 셀 수 없을 지경…….
‘빌어먹을.’
자책과 분노, 짜증.
타이니는 그 모든 감정이 뒤섞인 스트레스를 지금 당장 인어들에게 풀어 버리고 싶었다.
[내가 오늘 너희들을 끝장내 주마!]콰아아아앙!
유성으로 화해 바닷속을 파고들면서, 그는 가능한 한 넓은 범위에 영파를 뿌렸다.
[내가 너희들의 여왕을 죽였다. 전부 덤벼라!!]그 도발적인 영파가 계속해서 인어족들을 자극하는데.
그에 대한 반응은, 이제까지 그래왔듯 극적이었다.
– 크락투스!!
콰콰콰콰.
끝없이 밀려오는 인어들.
하지만 타이니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그 인어들을 바로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여기에 있다! 여왕 살해자가 여기에 있다!]대륙 동부의 바다를 남북으로 가로지르길 반복하며, 도발에 응한 인어들을 끝도 없이 끌어모았다.
그렇게 한나절을 내달린 결과.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는 대양 한가운데의 심해에 자리하게 되었다.
전후좌우는 물론 위아래까지, 시야가 닿는 모든 곳에 물보다 인어가 더 많이 보이는 상황인데.
이상하게 미소가 나왔다.
“크.”
꾸르르르르.
입가로 삐져나오는 거품조차 기분 좋게 느껴지는 순간.
그렇게 많은 인어들이 오직 타이니만을 노리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 크락 투스!!!
[원수를 갚자!!!]바닷속에서도 확실히 들리는 음파와 함께.
수많은 인어들의 의지가 선명한 영파로 변해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 말이 그 뜻이었냐.’
뭐,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사정은 서로 다르지만, 인어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분노 역시 이미 한계까지 쌓여 있었다.
세계를 찢어도 좋다.
지금 이 마음을 풀지 않으면, 자신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 크락투스!
콰콰콰콰콰콰쾅.
타이니는 팔방에서 쏟아지는 인어족의 공격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 냈다.
그리고 그사이.
우우우웅.
녹턴에 스며든 노을빛이 상서로운 서광을 불규칙적으로 발하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번쩍.
————!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에너지가 어두운 심해를 밝히며 터져 나왔다.
* * *
한바탕 밀려왔던 인어족의 대군이 어느새 빠져나간 뒤.
피곤한 표정으로 전장을 정리하던 어느 병사가 문득 바다를 향해 시선을 던지다가 눈을 크게 떴다.
“무, 물이 빠져나갑니다!”
“뭔 소리야? 썰물 때도 아닌데.”
“하, 하지만…….”
병사의 말에 헛웃음을 짓던 기사는, 그를 따라 바다 쪽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로 갑자기 바닷물이 쭉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그가 쭉 살아온 에낙센의, 아니 바닷가의 상식을 무시하는 광경이었다.
한창 밀물이 들어와야 할 시간에 물이 빠진다니.
그것도 끽해야 100m 정도의 대륙붕이 드러날 뿐이던 평소의 썰물과도 달리, 지금은 거의 그 두 배에 달하는 범위에서 물이 빠지며 갑자기 푸르른 산호들에게 강제로 직사광선을 쬐게 만들고 있었다.
주변을 쭉 둘러보니, 그의 시야가 닿는 모든 해안가 전체가 비슷한 상황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현상을 마주한 기사는 두려움에 몸이 떨려 왔다.
“이, 이게 또 무슨…….”
마치 바닷속에서 엄청난 괴물이 바닷물을 왕창 삼켜 버린 느낌이랄까.
지금은 바야흐로 재앙의 시대.
온갖 괴이한 일들이 난무하고 인류의 명운을 뒤흔드는 재앙이 연달아 일어나는 시기에 또 벌어진 불길한 일에 기사의 눈빛이 흔들리는데.
“기사님, 저기…….”
“어?”
전장을 함께 정리하던 병사들이 멍한 눈길로 수평선 너머를 가리켰다.
그에 따라 고개를 돌려보는 순간.
먼바다에서 하늘 위로 구름을 뚫고 솟구치는 노을빛 서광이 보였다.
이제 이곳 에낙센에서는, 아니 인류 연합의 군대가 주둔하는 곳이라면 어디서건 노을빛은 승리의 상징으로 통했으니.
“광휘……?”
“그, 그렇지 않을까요?”
무심결에 나온 말에 병사들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안심한 기사는 두려움을 떨쳐 내고 따스한 햇살을 보듯 노을빛 기둥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러면서 약간 위화감은 들었다.
바닷사람의 후예로서 어림짐작하기에, 빛살이 솟구친 지점은 수평선 너머의 한참 먼 곳 같았는데.
‘그게 여기서도 저렇게 보일 정도라면…….’
바다 한가운데에 거의 카룬만 한 크기의 구멍을 뚫어 버린 게 아닐까 싶었으니까.
하지만 이내 그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직접 눈으로 본바, 광휘의 기사가 싸울 땐 끝도 없는 폭발이나 해일과 굉음을 동반하기 마련이니.
지금처럼 고요하게 노을빛 기둥이 솟구친 정도라면 전투가 벌어진 건 아닐 것 같았다.
어릴 때 이후로 뱃일을 하지 않았으니, 아마 자신의 거리 감각이 부정확해진 것일 터였다.
“……광휘의 기사님이 어디 신호라도 보내시는 모양이네.”
“가, 가까이 계신가 보죠?”
“그런 듯해.”
“그럼 보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작 각하께서……!”
“아!”
기사는 그제야 아침에 받은 명령을 떠올리고는 황급히 내성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몇 시간 뒤.
노을빛 기둥이 솟구친 곳을 향해 출발하려던 배가 항구를 떠나기도 전에.
“저, 저기!”
하늘을 나는 늑대가 그들의 눈앞에 다가왔다.
“오!”
검제는 눈을 크게 뜨며 미소를 짓다가.
“이런!?”
이내 월랑이 공중에서 비틀거리다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추락 지점을 향해 다급히 내달리기 시작했다.
쿵.
“크윽, 더럽게 무겁…….”
추락하던 타이니를 간신히 받아 낸 검제가 인상을 찡그리며 창백한 안색의 그를 바라보았다.
“흐……. 좀 무리……했네요, 영감님.”
“너 안 지친다며!!”
“반동이 있어요. 일주일 내내, 싸우다 풀었으니……. 뭐, 크. 이 정도면, 약과죠.”
신성을 얻으며 같이 획득한 권능.
오러마스터 9단계의 경지를 반신의 경지라 한다.
그리고 반신이라 함은, 온전한 신이 아님을 뜻하기도 하기에.
“권능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영감님. 나 좀, 쉴게요.”
“……빌어먹을 놈이. 안 그래도 네놈이 필요한 일이 있었는데.”
“하루면 돼요. 인어족은 이제 한동안은 안 올 테니까…….”
“그래. 일단은 쉬고 보자꾸나. 급한 일이니, 회복에나 집중해. 너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흐.”
“왜 웃냐? 정말 심각한 일이…….”
“이제 영감님이라고 해도, 짜증 안 내시네. 흐.”
“이런 썩을 놈이!!!”
버럭 고함을 지르는 사이, 어느새 고로롱거리며 잠들어 버리는 타이니.
검제는 그런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끝내 무거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온 대륙에 죽음을 뿌리며 숨어 다니는 칠죄종이 나타났다. 불과 사흘 사이에 벌써 수십만이…….”
기절한 타이니를 앞에 두고 멍하니 말을 잇던 검제는 이내 이를 악물고는 그의 몸을 들쳐 업었다.
그러자 뒤늦게 따라온 기사와 병사들이 기함하며 소리를 질렀다.
“가, 각하! 저희가……!”
“너희들은 무리다.”
“예?”
당황해하는 병사들을 보며 검제는 담담히 내성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업혀 있는 타이니가 들으라는 듯이, 담담한 목소리로 무거운 이야기를 꺼냈다.
“너만이 놈을 찾을 수 있다, 타이니. 오직 너만.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일어나야 해. 동쪽에서 온다는 마충 군단은 우리가 어떻게든 막아 보마.”
더없이 무리를 하고 온 동료, 아니 제자에게 더 큰 무리를 시켜야 하는 상황.
검제로서는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런 그조차, 스스로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남해의 한 섬에 균열이 하나 더 남아 있고.
최강의 칠죄종이 아직 이 땅에 강림하지 않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