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58
458화. 인어족이 물러간다
“이때다! 뚫어!”
“하!!”
제나스의 지시에 따라, 이제 200여 명밖에 남지 않은 블루윙 기사들이 동시에 지하도를 내달렸다.
본디 인간이 타는 거대한 말은 이 테르티우스의 공도를 달리기에 적합하지 않았지만.
그 말들이 하나같이 희미한 오러에 코팅되어 있다면, 길이 좁은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히이이이잉!”
기수까지 태운 채 좁은 공도의 벽을 밟고 뛰어오른 말들은 마치 전설 속의 페가수스처럼 허공을 비행하며, 밀려오는 인어족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쾅!
“캬악!”
콰직.
“!@#!!”
스가각.
“크락투스!!”
실제로 그 말들을 감싼 새하얀 오러들은, 전설 속 그 천마(天馬)의 날개처럼 보이기도 했다.
“허?”
“저게 무슨!?”
“무슨 말들이……!”
“아군이다! 블루윙이다!”
그 순간 테르티우스 남쪽 입구에서 인어족들의 공세를 틀어막고 있던 드워프의 엘로랑 전사단과 오크의 바토르 전사들, 그리고 수인족 친위대가 여유를 얻기 시작했다.
“밀어붙여!!”
“하!”
“인어들을 쓸어 내자!!”
콰지직.
콰콰쾅!
뿔 달린 작은 말 엘로랑을 탄 드워프 전사들이 특유의 무구들을 빛내며 최전선에서 인어들을 밀어붙이고.
“질 수 없지!”
“가자!”
“하!”
오크 중에서도 최정예로 꼽히는 바토르의 전사들은 저마다 형제 동물의 형상을 온몸으로 그려 내며 그 뒤를 받쳤다.
“비스트 폼!”
“벽으로 내달려라!”
우드드득.
그리고 그에 질세라, 동물이나 맹수의 모습을 취한 수인족 왕실 친위대가 블루윙 기사단들처럼 벽을 타고 인어족 전열의 중심부나 뒤를 덮치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테르티우스 남부의 입구, 즉 최전선에 선 전사들의 눈에 바깥의 햇빛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할 때.
그 가장 선두에 선 제나스의 머리 위로 보랏빛 머리의 하프 엘프가 불쑥 나타났다.
“지휘관급, 전부 제거. 인어들, 물러서려는 듯.”
제나스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뒤를 돌아보며 크게 고함을 질렀다.
“아르곤 경!!!”
“오케이,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대열의 가장 뒤쪽에서 마정석을 쌓아 놓은 채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고 있던 아르곤의 머리 위로, 일곱 빛깔의 화려한 이팩트가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그 빛깔들은 서로 섞여 들더니 이내 초월무구 케레브룸, 일명 동글이에에게 흡수되었다.
동시에.
“알아서 피하쇼!!”
[破滅(파멸)]아르곤의 초월무구 마기아가 거대한 동대륙 문자를 그리는 순간, 동글이의 몸에서 노을빛에 가까운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거대한 광선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히이이잉!”
약속된 신호에 아군의 전사들이 모두 말까지 쓰러트리며 엎드리고.
찌이이이이잉.
그 위를 지나친 파멸의 빛이 그대로 전면의 인어족을 휩쓸고 테르티우스 남부의 입구를 통해 바깥세상의 하늘까지 솟구쳐 올랐다.
콰콰콰콰콰콰콰.
광선이 지나간 뒤의 후폭풍만으로도 사람을 비틀거리게 만드는 대마법.
적들이 쓸려 나간 자리를 확인한 아군들이 아르곤을 돌아보며 감탄하는데.
정작 그런 위업을 이뤄 낸 아르곤은 창백한 안색으로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역시 흉내도 쉽지 않네.”
“빅뱅, 흉내?”
어느새 그의 그림자에서 솟아난 루나의 말에 아르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굳이?”
“우리 중에 다른 누구라도 그 기술을 쓸 줄 알면, 싸움이 훨씬 쉬워질 테니까.”
“아…….”
감탄하는 루나의 모습이 괜히 어색한 아르곤은 이내 입구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 다른 아군들을 가리켰다.
– 우와아아아아아!
테르티우스를 지키러 돌아왔던 인류의 최정예 부대들과 그 뒤를 따르는 드워프 상비군들의 모습이, 루나와 아르곤의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안 가 봐도 돼? 다른 이들은 다 진군하는데?”
“인어족들, 좀 강해 보이는 애들 백 명 정도 죽이니까 알아서 퇴각하고 있어. 타이니가 동해에서 전멸시켰다는 게, 농담이 아닌가 봐.”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아르곤은 곧 무언가 생각난 듯 놀란 눈으로 루나를 바라보았다.
“어? 너 이제 안 끊어서 말한다?”
“내가? 진짜?”
순간 깜짝 놀라는 루나.
그리고 이내.
“드디어, 극복해 가는, 건가? 엑.”
스스로 뱉은 말에 다시 시무룩해졌다.
그 모습이 참 귀엽다는 생각을 하면서 애써 시선을 돌린 아르곤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도 계획에는 없었던 일인데, 뭐.”
랑켄 평야에서 유령처럼 조짐도 없이 강림한 칠죄종이 대륙 중부에서 대량 살상을 일으킨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가장 놀란 것은, 아무래도 당시 랑켄 평야에 대기하고 있던 초인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서둘러 놈을 찾아내려 했고, 에스티나의 수색 범위에 정밀 탐색 능력까지 더하기 위해 아르곤까지 가세했다.
그러다가 테르티우스의 상황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일단 이곳을 돕기로 했던 것이었다.
그즈음 에스티나와 아르곤의 탐색은 이미 중부 지방을 남북으로 세 번은 훑었는데도 숨은 칠죄종을 찾지 못했으니.
– 반신급 마족이 작정을 하고 숨었다. 우리 능력으로는 무리야.
지금은 당시 느낀 자괴감을 인어족을 상대로 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호자님이 있었으면 더 쉽게 끝냈을 텐데.”
“올케, 타이니 소식 듣고 갔잖아. 그건 못 말려. 그동안 몇 번이나 참았는데.”
음.
‘이번에도 안 끊어 말했네?’
하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기로 했다.
다행히 말을 돌릴 화제는 많았으니.
“우리가 놓친 칠죄종을 그 녀석이 잡았다니, 할 말도 없지.”
타이니와 월랑의 소울 사이트라는 능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그가 찾아낸 것은 둘째 치더라도 거의 혼자서 잡기까기 했다고 들었다.
“정말 오러마스터라는 게 그리도 대단한 건가?”
“곧, 만나면, 알게 되겠지.”
쩝.
……확실히 고쳐진 건 아닌가 보다.
속으로 생각하는데, 루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넌, 더 조심해야 되고.”
“왜?”
“내 동생. 외롭게 살아온 아이. 내가 먼 핏줄이라는 것만으로도, 많이 아껴. 쉽게 허락 안 할 거야. 그러니 너 조심.”
“음……. 엑!?”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던 아르곤이 그 말의 뜻을 곱씹어 보다가 화들짝 놀라 다시 루나를 바라보았다.
“그, 그러니까. 지금. 그 말은…….”
왜 내가 루나처럼 말을 절지? 싶을 때.
“어! 신호다.”
“……야!”
뜬금없는 소리와 함께 루나가 그대로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루나가 사라진 곳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르곤은, 한참 뒤에나 하늘 위에서 터지고 있는 오러의 불꽃을 발견하였다.
전시에 넋 놓고 있느라고 신호를 놓친 셈이니, 그것은 치명적인 실책이 될 뻔했지만.
“하…….”
다행히도 그 불꽃은 승리의 신호였다.
지금 그의 마음만큼 기분 좋은 신호.
* * *
“우와아아아!”
“이겼다!”
“♬♪!!”
공용어와 요정어가 섞여서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함성.
테르티우스의 남문 밖으로 빠져나온 연합군은 멀리 남부 해안가 바닷속으로 후퇴하는 인어족 대군을 응시하고 있었다.
“수고 많았네, 여러 친구들!”
“특히 나중에 가세한 인간들! 대단했어!”
“그 마법은 대체 뭔가?”
오늘로 모든 전투가 끝난 건 아니건만, 드워프들은 전쟁이 끝난 것처럼 왁자지껄하기 시작했다.
재앙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순간의 기쁨은 존재하는 법이니.
어찌 생각하면, 짧은 승리의 여운이라도 한껏 즐기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
제나스는 빙긋 웃으며 달려드는 드워프들의 인사를 일일이 다 받아 주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 아까 그 작전은 저기 아르곤 경에게 물어보시지요.”
“물론 마법도 아르곤 경에게…….”
“아르곤 경이 상세히 잘 알고 있습니다.”
……말 많고 뽐내기 좋아하는 동료에게 전부 떠넘긴 거였다.
그리고 최대한 담담한 안색으로, 자신의 뒤를 따르는 블루윙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가렌 경, 드렉슬러 경.”
“예! 단장.”
“희생은요?”
“……루멘, 달리아, 로첸까지 셋 경상. 사망자는 없습니다.”
“하아…….”
드렉슬러의 말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재앙을 거듭 겪으며 백여 명의 동료를 잃은 블루윙의 단장으로서, 정말 이제는 단 하나의 동료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다행이군요.”
“모두가 단장님의 특성 덕분입니다. 이제 허접한 놈들에게 죽을 블루윙은 없습니다!”
진심과 아부성이 섞인 가렌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면서, 제나스는 그제야 눈을 들어 늘어선 기사단원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수고 많았다. 그리고, 죽지 않아 줘서 고맙다!”
쿵. 쿵.
블루윙의 기사들이 일제히 왼쪽 가슴을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대륙 최고 기사단다운 엄정한 군기를 보여 주는데.
그 와중에.
“다, 다쳐서 죄송합니다!”
금발 머리 미청년이 부러진 팔을 붙잡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뼈가 부러진 상처. 세 명의 경상자 중 한 사람이다.
“로첸, 이 애송이 자식!”
“맨날 다쳐, 젊은 놈이!”
부단장 둘이 웃으며 타박하는 말에 기사단의 분위기가 다시금 훈훈해지는 듯했다.
“그럼 다친 자는 상처를 치료하고, 나머지도 휴식을 취한다. 상시 전투 상황이라 가정하고 언제든 출동 대기한다. 이상!”
“충!
쿵. 쿵.
다시금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늘어서 있던 기사들의 전열이 조금 흐트러지는 순간.
돌아선 제나스는 다시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품 안에서 작은 인형을 꺼내 들었다.
붉은 머리에 치마를 두른, 누군가를 본뜬 인형.
꼭 빼닮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제나스는 그 작고 투박한 인형을 볼 때면 익숙한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 비비안이 오빠 주려고 부적으로 만든 건데. 차마 말을 못 하고 감춰 두길래 제가 대신 드리는 거예요. 잘 간직하세요, 제나스 경. 아니, 제나스 오빠.
자연스레 미소가 나오는 기억.
‘덕분인가.’
묘하게도, 이 부적을 가지고 간 첫 전장에서는 ‘일체화 영역’을 개척하여 수많은 동료의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이 재앙이 끝나기 전까지는 계속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취미가 있었습니까?”
“헙!?”
히이이잉!
깜짝 놀라 고삐를 당기는 순간, 어느새 옆에 다가온 아르곤이 불퉁한 표정으로 그를 째려보고 있었다.
“뭐, 뭡니까?”
“저한테 수다쟁이 드워프들 죄다 몰아넣고서 넋 놓고 계시길래. 혼자 맛난 거 드시나 했습니다. 그런데…….”
“아, 아니. 이건 가족이 준 부적입니다. 부적!”
“흠. 뭐 그렇다 치죠.”
그렇다 치다니?
제나스는 다시 한번 제대로 해명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 루나, 사신은 어디로 갔습니까?”
“아…….”
어쩐지 그다지 친분도 없는 자신에게 굳이 말을 건다 싶더니.
“사신은 인어족이 후퇴하는 것을 완전히 확인하러 간다고 뒤를 쫓았습니다. 뭐, 그녀라면 문제없겠죠.”
“하, 진짜. 사람 마음만 싱숭생숭하게 해 놓고.”
“예?”
엉뚱한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이상하게 아르곤의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아, 아닙니다. 어쨌거나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 일체화 영역이라는 거. 정말 사기적이네요.”
다행히 그가 더 이상 인형을 가지고 놀리지는 않을 것 같았으니, 제나스도 느긋한 태도로 대답했다.
“경의 마법도 놀라웠습니다. 마치 타이니 경의 그…….”
“빅뱅 흉내 낸 거 맞습니다. 정확히는 흉내 내다 실패한 것이지만.”
역시 이 친구도 타이니 경의 뒤를 쫓는 것인가.
세기의 괴물. 그 발자취가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도 영향을 끼치는 것을 체감한 제나스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키가 허리춤에나 오는 꼬마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리 많은 변화가 생겼을까.
시간을 거슬러 왔다곤 해도, 새삼 감탄이 나오는 어린 친구였다.
그렇게 제나스와 아르곤이 같은 사람을 각기 다른 이유로 떠올리며 미소를 짓고 있던 순간.
해안가에서 한 줄기 그림자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어!? 아르곤 경, 저기.”
“아, 예. 루……!”
두 사람이 동시에 그 그림자를 보며 소리를 지르려는데.
[도와줘! 당장! 크롬이 빈사 상태야!]그들의 귀에 드리워진 작은 그림자 속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