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61
461화. 깨어난 크롬벨
– 끼에에에에에!
인어족과의 전투 때부터 인류의 최전선이 된 에낙센.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이, 높은 울음소리가 갑자기 들려온 서쪽 하늘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중 대다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독수리의 크기에 놀랄 뿐이었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그 정체를 알아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엘프의 대정령이다!”
“세계수의 수호자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몇몇은, 그 위에 타고 있을 다른 사람의 정체까지 짐작하고 있었다.
“광휘의 기사가 왔다!!!”
“우와아아아!”
루소에서보다 반응이 더욱 격렬했다.
도시를 가득 채운 시민인지 병사인지 모를 사람들과, 해안선과 도시 밖에 진을 치고 있는 병사들까지 모두가 소리높여 환호성을 질렀다.
아무리 도시치고는 큰 자유 도시라 하나, 각지에서 몰려든 연합군의 수십만 병력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모습.
“너무 여기로만 몰려온 거 아냐? 마충 군단이나 인어족이 다른 곳에 상륙하면 어떡하려고?”
그 말에 에스티나가 바로 답해 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칠죄종이 둘이나 남은 상황에 무의미하게 병력을 흩어 놓을 수는 없다. 마충 군단장을 잡고 나태를 쓰러트릴 때까지, 인류의 최정예들은 모두 한자리에 뭉친다. 적들이 쳐들어올 확률이 가장 높은 곳에……. 그게 검제를 비롯한 지휘부의 의견이야.”
“그런…….”
“덧붙여, 최근에 현자의 탑에서 찾은 자료가 근거가 됐어. 고대 마계 대전의 자료인데, 마족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인류의 정예가 뭉친 곳으로 쳐들어왔었다고 하더라고. 무슨 업적이니 뭐니 하면서…….”
그 말을 듣자 대번에 이해가 갔다.
“……카르마.”
“카르마?”
“음, 전에도 말했잖아. 세상을 유지시키는 이면의 에너지. 영혼들이 살아가며 쌓아 가는 인과의 힘.”
“아…….”
말을 하면서도 더 확신이 들었다.
물론 이전의 그 탐욕의 군세, 그림자 군단과 같은 예외도 있겠지만.
‘홀로 움직였던 질투도, 언제든 언데드 군단을 만들 수 있는 놈이었으니까.’
그 또한 종국에는 카르마를 쌓기 위함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벌레나 인어족이 그럴 수는 없을 테니까.”
“응?”
마인족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그들의 군세에도 이제 장군급이나 악마급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냐, 납득했어. 그런데 나태는? 여전히 안 나타난 거지?”
“응, 소식이 없어. 그게 좀 불안한데…….”
그래,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그리 생각하며 하늘에서 내려다본 에낙센의 전경은 든든하기도 하고, 또 불안하기도 했다.
* * *
카일룸의 위에서 뛰어내린 타이니가 내성 안쪽으로 낙하하는데.
파아아아앙.
그의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동료들이 뛰쳐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늦었습니다!”
탁.
이미 완벽하게 조정되는 중력 속성은 킬로미터 단위의 자유 낙하에도 착지할 때 가벼운 발소리만 만들 뿐이었지만.
“타이니!!”
“늦었잖아!”
“드디어……!”
검제와 저릭, 그리고 실버팽은 큰 소리로 타이니를 환영하며 요란한 소란을 일으켰다.
“동생!!”
“왔네? 젠장, 어쩌지…….”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웃으세요.”
방방 뛰는 루나와 불퉁한 표정의 아르곤, 그 옆에서 미소를 짓는 제나스의 모습도 보이는데.
어느새 친해진 것인지, 웨폰 마스터 그리드와 드워프 하이넨은 무언가 대담을 나누다가 슬쩍 시선을 던지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그를 환영하러 튀어나온 것은 아니었다.
갓 핸드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시장 관저 안에서 무언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세 명의 마도사들은 자신이 도착한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모든 초인들이 모여 있는 광경만으로도 타이니는 가슴이 든든했다.
“많이 늦진 않은 것 같군요.”
“그래, 마충 군단은 왜인지 카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에스티나에게 가벼운 목례로 인사한 검제가 바로 그를 잡아끌었다.
‘카룬…….’
그 말에 그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는 순간, 아차 싶었는지 검제가 헛기침을 했다.
“크흠. 오늘내일 중으로 신전의 교황 성하와 고위 사제들이 전부 이곳으로 올 예정이다. 그리고 이게 현재 우리 인류가 모을 수 있는 최정예들이다.”
“인류에겐 든든한 정예 병력이겠지만, 마족들에게는 완벽한 진수성찬이기도 하겠네요.”
“그래. 네가 말한 그 카르마를 생각하면 그렇지. 칠죄종 정도 되는 놈들이라면 곧바로 이곳으로 올 거라 생각한다. 너를 안중에 두지 않는다면 말이야.”
“……예?”
“칠죄종을 넷이나 때려죽이고, 하나에게 치명상을 입혀 동대륙에서 죽게 만든 너. 이젠 오러마스터의 경지에까지 오른 너를 놈들이 신경 쓰지 않는다면 말이다. 쯧.”
“아…….”
검제의 말에, 타이니는 여태 간과하고 있던 사실을 그제야 떠올렸다.
항상 정면에서 덤벼 오는 마족들만 봐 왔기에 고려하지 않았던 일.
“……놈들이 절 피할 수도 있다 생각하십니까, 영감님?”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고위 마족들도 생각이라는 걸 할 텐데 말이다.”
“아…….”
아군, 그것도 검제로부터 듣는 극찬에 가까운 평가는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 내가 뭘 어째야 하는데?
새로운 변수에 타이니가 당황스러워하고 있을 때, 이내 검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만약의 사태를 말하는 것뿐이다. 네 말대로 나태의 장군 하나가 돌아갔는데도 나태는 홀로 강림했고, 크롬벨 경과 싸운 후 사라졌다. 저 벌레들의 군주가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태도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구나. 거기에 기대를 걸어야지”
“그래도…….”
질투라는 예외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물으려던 타이니는 검제의 표정을 보고는 바로 말을 삼켰다.
검제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 마음을 읽은 듯, 검제는 바로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토해냈다.
“병력을 흩어 놨는데 칠죄종 둘이 동시에 들이닥칠 경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아. 이게 최선의 수다. 혹시 다른 방법이 있다면 누가 말을 해 줬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없더구나…….”
그 말에는 기대와 희망, 절망이 고루 섞여 있었다.
듣고 있던 모두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지는데, 검제는 그때 오히려 피식 웃었다.
“인상 찌푸리지 말거라. 이제는 네가 왔고, 지금 상황을 보면 나태는 크롬벨 경에게 소멸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니. 어쨌거나 희망이, 승산이 더 크다.”
하지만 그 또한 희망사항일 뿐이었으니.
그에 타이니는 바로 그 말속에서 다른 화제를 찾았다.
“아. 크롬, 용사는 어디 있습니까?”
“중태야. 관저 중심에서 사제들이 돌아가며 신성력을 쏟아붓고 있는데도 생명을 붙잡아 두는 것이 고작이야.”
대답을 듣고 보니, 오히려 가장 먼저 꺼냈어야 할 얘기였던 듯싶다.
“내가, 생명 유지술, 써 보려 했는데, 그것도 무리일 정도로 약해졌어. 크롬.”
루나가 보탠 이야기를 듣는 즉시, 타이니는 그 자리에서 기감을 동원해 크롬벨의 위치를 찾았고.
“이런……!”
그의 상태를 파악한 즉시 관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 *
“나의 주께서 굽어살피시오니…….”
“여신이시여.”
“여기 이 사람을…….”
시장이 쓰던 너른 침실.
그 방의 한 가운데에서는 창백한 안색의 금발의 남자가 침대에 어울리지 않는 중갑을 입은 상태로 침대에 누워…… 아니, 파묻혀 있었다.
‘신성 갑옷……. 성기사단의 물건 중에서 상급으로 가져온 건가.’
받아들이는 신성력을 증폭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그다지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타이니가 인기척을 내는 순간, 기도를 올리던 사제들이 움찔하며 돌아봤다.
“엇?”
“치료 중입니다, 기사님. 엇?”
“과, 광휘의 기사!”
“비켜 주시죠. 저도 해 볼 만한 것이 있는지라.”
“예, 옛!”
교단의 사제들이 자신의 말 한마디에 우르르 비켜서는 것은 이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거기에 감회를 느낄 새도 없었다.
타이니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의식이 없는 크롬벨에게 다가갔다.
한눈에 읽히는 그의 상태는 타이니의 표정을 더 어둡게 만들었다.
루나의 말이 맞았다.
‘이건 답이 없다. 그냥 전체적으로 생명력이 확 줄었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크롬!?’
견적이 단번에 나왔다.
어떻게든 살리더라도, 이전의 쿼드러플 8단계 용사로서의 역할은 기대할 수 없다.
상극에 가까운 성격으로 만날 때마다 날을 세웠던 이지만, 그만큼 든든한 동료이기도 했다.
그런 크롬벨의 처참한 모습에 타이니는 잠시나마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타이니 경?”
“아, 예.”
“방금 뭘 해 보신다고……?”
“크흠. 예, 일단 의식을 돌아오게 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사제들의 얼굴에 의구심이 서렸지만, 타이니는 대답 대신 바로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그대로 성큼성큼 다가가 크롬벨의 몸에 손을 댔다.
‘살려야 한다.’
성격이 부딪치는 것은 둘째 치고, 크롬벨이 여태껏 쌓아 온 공로를 무시할 수는 없다.
고대에 인류를 구했다는 대단한 업적뿐만 아니라, 현생에 도움을 준 것만 해도 참고 넘쳤으니.
‘교황과 최고위 사제들이 내일쯤 온다면, 늦는다.’
적어도 ‘동료’를 이대로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우우웅.
그 순간 크롬벨에게 쏟아지는 노을빛 오러.
“타이니 경!”
“무슨 짓을……!”
타인의 몸에 오러를 쏟아 넣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 사제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이내 노을빛에 전신이 휩싸이더니 편안해지는 크롬벨의 얼굴을 보며 급격히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사제들의 멍한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며, 타이니는 크롬벨의 몸에 정신을 집중했다.
오러 바디로 신체를 복사하고 그것을 토대로 신체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기술.
그것은 그만이 할 수 있는 경이적인 마나 컨트롤을 이용해 파괴의 권능을 생명의 힘으로 바꿔 가는 과정이었지만.
지금 크롬벨의 상태는, 과거 타이니가 실버 팽을 되살려 냈던 때와 큰 차이가 있었다.
몸이 망가졌을 뿐이던 최강의 수인족과 근본적인 무언가가 소실된 보통 인간의 몸은 확연하게 달랐던 것이다.
타이니는 사제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신성력 최대치로!”
“예. 옙!”
그 순간 사제들은 또다시 기도에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아아아아.
큰 방을 가득 채운 따스한 신성력이 크롬벨의 몸 안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타이니가 오러 바디로 복제한 ‘건강한 상태’의 크롬벨의 몸을 토대로 회복력을 극대화시키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크롬벨의 몸 안에서 파열음이 들려오며 뼈와 근육이 미세하게 제자리로 조율되는 동안, 타이니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역시.’
심장의 서클이 아예 사라져 있고 신성력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몸에서 오러로 변환될 만한 마나도 극히 미량만 느껴질 뿐이니.
잘된 점이라고는, 신경에 거슬렸던 그 마기 서클이 사라진 것뿐.
여태까지 살아 있던 것이 기적이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크롬.’
타이니의 안타까운 시선 속에서 크롬벨이 울컥 썩은 피를 토해 냈다.
“끄으으.”
신음과 동시에 그의 얼굴에 빠르게 혈기가 돌기 시작하는데.
“오!”
사제들의 감탄사 속에서, 오랜 시간 의식을 잃었던 용사가 서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그가 타이니의 얼굴을 보는 즉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 내는 말은 너무 의외였다.
“타, 타이니 경? 잘됐……. 끄응. 나태의 권능은, 불멸이 아니라 속임수. 그 본질은…….”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작고 작아 가장 가까이 있던 타이니조차 억지로 귀를 기울여야 간신히 들을 정도였는데, 그 내용만큼은 놀라웠다.
그리고 그 권능에 대한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허, 그럴 수가? 그럼 나태가 죽지 않았다는 거야?”
“지, 지금쯤……. 내가, 후욱. 휴, 흉내 낸…… 빅뱅의, 후유증을 다스리고, 있을 겁니다. 그것보다, 내 말 기억했……?”
흉내 낸 빅뱅?
당황스러운 그 말조차 지금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놈의 권능에 대한 말을 전하려고 버티고 있었던 거냐? 미친 새끼…….”
욕이 튀어나왔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안타까움뿐이었다.
“흐……. 그래야 하니까. 당신도 모르고 있으면, 당할…….”
“이제 알았으니 됐어. 안 당할 테니까, 일단 살아라. 정신 붙들어. 다시 정신 잃으면 정말 끝이야, 끝.”
“흐, 흐흐. 그, 그럴 겁니다.”
“전쟁이 끝나 간다. 네가 전한 정보는 큰 도움이 될 거야. 이제 쉬어.”
“그럴 수야, 없지요. 마계 대전을, 종식시키는 것이, 내 사명…….”
“크롬, 넌 지금…….”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자신의 감각으로 볼 때, 지금의 크롬벨이 회복되어도 정상인처럼 움직이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그렇게 말하려 했지만,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창백한 얼굴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해서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눈으로…… 후읍, 보지 마시죠. 난, 용사……. 수없이 기적을 만들어 왔습니다. 내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
“그러니 기다리세요. 난, 다시 돌아갑니다. 반드시……. 이대로 끝낼 수는 없으니까요. 절대로.”
그녀를 위해서라도.
작게 흘러나온 마지막 목소리는 도무지 뜻을 알 수가 없었지만, 크롬벨의 각오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대답도 정해져 있었다.
“기다리마. 하지만 빨리 와야 할 거야. 내가 마왕의 골통을 빠개 버리기 전에.”
울컥하는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몸을 돌려 뱉어 낸 말.
그에 대한 대답은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돌아왔다.
“흐.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군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신 붙잡으라고. 몸 회복되기 전에 정신 잃으면…….”
“지금 누구한테, 충고를 하는 겁니까? 흐.”
기껏 생각해서 해 준 충고에 대꾸가 저따위다.
‘역시 저 새끼는 마음에 안 들어.’
타이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왜인지 조금 미소가 나왔다.
어쩌면 고대의 용사가 자신도 모르는 기적을 발휘해서 다시 강력한 모습으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기대와 함께.
하지만 그가 그렇게 기분 좋게 관저를 빠져나온 직후에는.
또 한숨이 터져 나오는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 대륙 각지에서 흉폭한 벌레 떼가 갑자기 번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
인류의 최정예들이 동쪽 끝 도시 에낙센에 모여 있는 동안, 대륙 전역에서 괴물 벌레 떼가 창궐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농작물을 초토화시키고, 숲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번식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빠르다고…….”
“X발, 대체 언제 내륙으로……!”
소식을 전해 들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크롬벨이 왜 마충 군단을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했던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