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62
462화. 우리가 개 X로 보이나 본데…….
“각지의 예비 병력만으로는 벌레들을 토벌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마법사들을 동원해서 불태워야 하는데…….”
비상이 걸린 최고 지휘부에서 회의가 줄곧 이어지고 있었지만,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그것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것.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최대한 빨리!”
“벌레 떼마다 번식의 중심이 되는 여왕이 있을 거요. 그걸 잡으면…….”
“누가 그걸 모릅니까!?”
당혹스러운 사태에 그 누구도 확실한 해결 방안을 내놓지 못하던 그때.
에낙센에 일단의 인물들이 행차했다.
“추, 충! 교황 성하의 왕림, 아니…… 바, 방문을 환영? 아무튼 존경합니다!”
“뭐라는 거야. 미친놈아…….”
일부 추기경들과 소수의 호위 기사들만 대동한 교황 일행.
예정보다 하루나 빠르게 도착한 신전 최고위층의 방문에 당황한 병사들이 횡설수설했지만, 교황의 일행은 그런 반응에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크롬벨 경은!? 용사님은!?”
“보, 보고 드리겠습니다!”
“됐네. 같이 가세!!”
기다란 법관을 쓴 교황이 다급한 표정으로 병사를 앞세우자, 얀센 추기경이 진이 빠진 얼굴로 교황의 발목을 잡았다.
“이제 도착했으니 좀 쉬시지요, 성하. 신성력도 체력이 받쳐 줘야 온전히 발휘된다는 것 잘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그걸 따질 때입니까!? 용사님이 의식 불명이라는데! 다시 제 머리가 빠지고 있단 말입니다!”
……어느 쪽이 중요한 것일까.
왜 후자가 더 강조된 것 같지?
얀센을 비롯해 교황의 고함을 듣고 있던 추기경들이 한순간 멍한 표정을 지을 때.
“그. 용사님, 크롬벨 경이라면 아까 의식을 찾으셨다고…….”
“뭐?”
안내하던 병사의 말에 일행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 * *
결론적으로, 교황과 추기경 일행이 무리를 하면서까지 하루빨리 에낙센에 찾아온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다.
스아아아.
막 의식을 되찾은 크롬벨이 인류 최고급 신성력의 보유자들에게 집중 치료를 받게 된 덕에, 생명력이 줄줄 새어 나가던 몸을 거의 다 회복할 수 있었으니까.
그 말은 이제 그가 잠들었다가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감사합니다, 성하.”
“별말씀을.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여신께서 굽어살피심이 틀림없습니다.”
대머리 교황이 거의 울 듯한 기세로 크롬벨을 끌어안자, 그의 얼굴에는 쓴웃음만이 떠올랐다.
– ……만약 그 모든 추앙을 여신께 돌리지 않고 네가 가져갔다면, 너 역시 신성을 얻었을 거야.
타이니의 그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으니까.
물론 여신의 사도인 자신에게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
“흐.”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금 다잡은 크롬벨은 이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당장이라도 쓰러져서 자고 싶었지만, 그럴 때가 아니었으니까.
“끄응.”
“요, 용사님. 그래도 지금 바로 움직이시는 것은 무리…….”
“괜찮습니다. 아까부터 바깥이 시끄러워서 말입니다.”
“예? 아, 예.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요란스레 방문해서…….”
교황의 너무 지나친 저자세에 크롬벨의 표정이 더 어색해졌다.
또 무슨 신탁이라도 받은 것일까 싶었지만, 굳이 캐묻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고대에도 겪었던 문제를 지금의 인류가 또 겪는 듯해서 말입니다.”
“예?”
“이런 몸으로도 당장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비틀거리며 억지로 걸음을 옮기는 크롬벨.
교황은 그런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성기사들에게 눈짓하여 부축하게 만들며 그 뒤를 따랐다.
* * *
“……하지만 이제 와서 벌레들을 잡자고 고위 전력을 빼내요? 그게 말이 됩니까?”
“그렇다고 벌레 떼를 내버려 둔다면, 마계 대전을 이겨 낸다고 해도 인류가 멸망하게 될 겁니다. 먹을 식량이 없어서요!”
“그 정도랍니까?”
“아니, 지금까지 뭘 들었습니까!? 지금……!”
12대 기사와 마도사들을 비롯한 인류의 지휘부 모두가 모여 있는 회의실.
초인들이 무거운 눈으로 지켜보는 와중에 참모들이 점차 목소리를 높이고.
그 사이 대전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그리고 그것에 가장 빨리 반응한 것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회의 속에서 인상을 찡그리며 머리를 긁적이던 타이니였다.
“크롬? 벌써!?”
그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는지, 그 순간 대전의 목소리가 잦아들며 시선이 모였다.
“크롬벨 경?”
“신전의 용사?”
“뒤에는 교황 성하…….”
“우어억!”
“서, 성하를 뵈옵니다. 자비로우신 여신께…….”
“모두 조용.”
회의실의 분위기가 갑자기 미사처럼 변해 가려 하는 것을 검제가 바로잡았다.
“근데 용사는 거의 죽어 간다고…….”
“닥쳐, 미친놈아!”
퍽.
우당탕.
사소한 소란이 더해진 난리 통 속에서 크롬벨은 창백한 얼굴로 쓴웃음을 지었다.
“도무지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나름 분위기 전환을 위해 던져 본 말인데, 순간 싸한 공기만 흘렀다.
그런 분위기에서 회의를 주도하던 검제가 크롬벨 뒤쪽의 교황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데.
“먼저 인사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교황 성하. 보시다시피 상황이 이러하여.”
“괜찮습니다. 난리의 와중에 찾아온 저의 잘못이지요. 소드 엠퍼러의 위명은 그사이 더욱 빛을 발하더군요. 물론, 가장 큰 빛은 다른 분이시지만…….”
교황의 시선이 타이니에게 옮겨 가며 덕담이 이어지려던 찰나, 검제는 빠르게 용사에게 말을 걸었다.
“크흠. 회복하셔서 다행입니다, 크롬벨 경.”
“어……. 음.”
말이 끊겨 괜히 뻘쭘한 교황이 머쓱한 표정으로 버벅거릴 때.
“뭐, 한가롭게 안부 인사나 할 시국은 아닌 것 같군요. 공작.”
크롬벨은 인사치레를 생략하고서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옆 방에서도 대충 들리더군요. 하도 시끄러운 바람에. 하하.”
큰 소리로 한번 웃어 봤지만, 아무도 반응해 주지 않았다.
“험, 험. 마충 군단의 대륙 잠식 전법은 고대에도 행해졌던 것입니다.”
“……예?”
“분노는 주둔지에서 번식할 수 있는 소수의 벌레들만 대륙 각지로 이동시켰을 겁니다. 그걸 사람의 눈으로 일일이 다 잡아낼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 말에 다시 모두의 눈이 빛났다.
“설마, 해결책을 알고 계십니까!?”
검제의 목소리가 모두의 귀까지 쫑긋거리게 만드는데.
크롬벨은 쓴웃음으로 답했다.
“해결책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너무 속셈이 확실한 전법이라서 말이죠.”
“예?”
“급속도로 번식하는 벌레 떼의 중심이 되는 여왕 벌레는 분노의 군주도 무한정으로 생산해 낼 수 없습니다. 고대의 경험에 따르면 그 수는 343마리. 그 여왕 벌레를 죽일 때마다 분노의 군주에게도 타격이 들어가니, 전부 흩어 놓지도 않았을 테고요.”
“그 말씀은…….”
“아마 일부를 몰래 대륙 각지로 이동시켰을 겁니다. 많아야 100마리 정도. 그렇지 않나요?”
크롬벨의 시선이 목소리를 높이던 부관들을 향하자 그중 하나가 바로 대답했다.
“큰 소란이 보고된 곳이 100군데가량……. 맞습니다!”
“그렇게나……?”
그제야 소식을 듣게 된 교황이 크롬벨의 뒤쪽에서 탄식을 흘리는데.
초인들은 도리어 눈을 빛냈다.
“그럼 그 여왕 벌레들만 토벌하면 이 벌레들의 난리를 진압할 수 있다는 뜻인가?”
성질 급한 저릭이 가장 먼저 소리를 지르는데.
“일단은 그렇죠.”
“일단은?”
그 애매한 대답에 모두가 눈살을 찌푸리자, 크롬벨이 다시 쓴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분노, 벌레의 군주와 연결된 여왕 벌레가 343마리라는 겁니다. 놈들이 군주와 멀어져서 본격적으로 번식을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추가로 여왕 벌레를 생산할 겁니다. 물론 ‘연결’되지 않은 여왕 벌레의 번식력은 오리지널에 비해 크게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중간계의 자연을 망치는 데는 충분한 괴물이 됩니다.”
“그렇게나…….”
“고대에도 마계 대전이 끝난 후에 그 마충들을 처리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일부는 지금도 남아 몬스터가 된 걸로 알고 있고요.”
“아, 자이언트 킬러 비?”
하이넨이 꺼낸 말에 모두의 머릿속에 한가지 몬스터가 떠올랐다.
맹수들을 사냥감으로 여긴다는 괴물 벌이.
“그런…….”
“그래서 제가 마충 군단은 제1순위에 두고 토벌해야 한다고, 누군가에게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얘기를 했는데 말이지요.”
“크흠, 그 말을 왜 지금…….”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는 검은 머리 기사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고.
그 옆에 선 엘프는 도끼눈이 되어 그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거기다.
“크롬, 나빠. 우리, 진짜 고생했어.”
어느새 그림자에서 불쑥 튀어나온 루나가 화가 난 표정으로 눈앞에서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크흠, 농담이었습니다. 거참, 농담할 분위기가 아니네요. 아무리 힘들어도 웃어야지 힘이 좀 날 텐데요.”
“……재미없어. 크롬, 이런 캐릭터였어?”
꽉 막힌, 성격의 용사만을 기억하던 루나는 이제 숫제 그의 볼을 쿡쿡 찔러 가면서까지 의심스러운 눈길을 던졌다.
그에 크롬벨은 그녀의 손길을 피하지도 못한 채 한숨을 내쉬며 마저 말을 이었다.
“답은 간단합니다. 그 여왕 벌레들을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토벌해야 합니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럼…….”
“탐지 마법이나 감각을 이용해서 ‘연결’된 여왕 벌레를 찾아낼 수 있고 토벌할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대륙 각지를 최단 시간에 오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지치지 않는 체력이, 필요하겠네?”
그에 루나의 눈길이 자연스레 뒤로 향하고.
“지금 당장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면서 대량의 벌레 떼를 토벌할 수 있는 사람이라…….”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모였다.
그게 모두 가능한 사람은 그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회의실에 모인 초인 중 그나마 머리를 잘 굴리는 이들이 동시에 무언가를 알아채고는 이를 갈았다.
– 설마, 이건?
“타이니를 벌레 퇴치로 내보내고 나면, 그때 우리가 있는 곳에 들이닥치겠다? 하…….”
검제의 분노 어린 탄식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에게서까지 짜증 섞인 고함이 튀어 나오게 만들었다.
“벌레들도 머리를 쓰네.”
“그러게 말이다. 흐.”
“하, 이거. 타이니가 없으면 우리가 개 X으로 보이나 본데?”
“크르르르.”
분노하는 초인들을 보며 크롬벨이 다시 한번 말을 보탰다.
“벌레들의 군주는 그 명칭답게 그리 교활하게 머리를 굴리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종의 특성이 그러하니 이번 대의 분노도 비슷하겠지요. 지금은 분명 그 옆에 머리를 쓰는 자가 존재하는 겁니다. 이를테면…….”
“나태라든가 하는, 다른 칠죄종 말입니까?”
가만히 있던 웨폰 마스터 그리드의 말에 크롬벨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지부진하던 회의에 결론이 나왔다.
“벌레 퇴치하고 와라, 타이니!”
“그럼. 그 사이에 우리가 그 벌레 두목을 박살 내고 있을 테니까!”
“벌레 새끼들이 우릴 개무시해?”
“아오, 열 받아!”
크르르릉.
진동하는 초인들의 살기 속에서 타이니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견을 내놓을 수는 없었으니,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그런데 그런 와중에.
[이거 타이밍이 조금 곤란한데……. 얘기 좀 하자, 타이니.]갑작스레 익숙한 영파가 들려왔다.
[예? 영감님, 또 뭐요? 다 결정된 거 아니었어요?] [그래. 타이밍상 널 꾀기 위한 것이기도 한데 말이야……. 너 잊은 거 없냐?] [예? 뭘?] [네가 녹턴이 이제 신성을 먹을 수 있다면서 동대륙에 부탁한 것이 있지 않느냐!? 내가 대신 전달하게 한 거!]“아!”
갑자기 혼자서 탄성을 지르는 타이니의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 하하. 당연히 제가 간다고요. 하하. 하.”
아니, 겨우 그거 가지고…….
[그거 때문에 영파로 말하는 겁니까? 소심하시긴.] [소심은 무슨!! 미친놈이냐, 너!? 교황 앞에서 신성을 먹느니 뭐니 할 거냐고!!]씁.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쩔 거냐? 그게 정말 네게 힘이 된다면,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취하는 게 맞아. 카룬을 피해 돌아간다 해도 지금의 너라면 하루 이틀이면 되지 않겠느냐?] [상황이…… 씁, 그런다고 지금 벌레 퇴치를 그만큼 미룰 수도 있는 건 아닌데 말이죠.] [그렇다고 네가 안 가면 누가……. 어?]영파로 대화를 나누던 타이니와 검제의 시선이 동시에 한 사람을 향했다.
“……왜?”
타이니의 옆에 서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녹색 머리의 엘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