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71
471화. 빨리, 조금만 더 빨리
“으와아아압!”
마룡 군단이 등장하며 벌레 떼들보다 먼저 돌진해 왔을 때, 저릭은 이미 앞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아군의 초인들 중엔 그보다 공중전에 능한 이들이 몇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복잡한 계산보다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지금은 내가 나서야 할 때다.’
그는 은빛 바람의 오러를 휘감고 최전선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먼저 솟구친 검제의 옆으로 함께 뛰어올라, 머리가 셋 달린 와이번을 향해 도끼 아너를 휘둘렀다.
월광만천하(月光滿天下).
타이니가 지어 준 이름이 아깝지 않게 전력을 다한 그의 도끼질이 새벽녘의 하늘에 달빛을 만들어 낼 때.
[오크가……?] [제법…….] [그래 봤자지.]비웃는 듯한 정신파와 함께 마기가 일렁이더니, 놈의 앞에 검고 투명한 암흑 오러의 막이 세 겹이나 생겨났다.
하지만.
꽈아아아아앙!
콰드드득.
“끼엑!?”
“크롸롸롸!”
“캬악!”
오크의 대전사가 평생을 정련한 기술은 악마급 괴물이 대충 만들어 낸 3중의 방어막을 흔적도 없이 부숴 버리고 놈의 머리 하나를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그러나 저릭에게 그 결과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칫.
‘얕았나.’
탁.
저릭이 다시 지상에 내려서는 순간, 그의 머리 위로 화염과 벼락, 냉기가 섞인 브레스가 쏟아졌다.
콰아아아아아앙!
한순간에 외성벽의 일각이 무너지고 수십 명의 병사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몇 배에 다다르는 병력이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 혼란에 빠졌다.
“아아아악!”
“피해!”
젠장.
그 사이 다시 허공을 향해 솟구친 저릭은, 폭염이 만들어 낸 연기 사이로 세 머리 와이번의 가운데 머리를 노리며 다시금 은빛 보름달을 그려 냈다.
그러나.
[두 번은…….] [안 통한다!]쩌어어어엉!
세 겹의 짙은 암흑 오러의 막이 다시 생성되며 그의 공격을 비스듬히 흘려 냈고.
그 반동을 이용한 거대한 와이번이 순식간에 몸체를 휘돌리자, 끝에 철퇴 같은 것이 달린 기다란 꼬리가 그대로 저릭의 옆구리를 후려쳐 왔다.
‘빌어먹을.’
바람의 오러를 운용해 허공에서 급격히 몸을 비틀어 보지만.
삼두 와이번의 그 반격은 너무나도 의외였고 또 빨라서, 아찔한 충격을 각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파아아아앙.
“X발, 난 벌레들 태워야 하는데!”
어느샌가 나타나서 그의 몸을 밀어 낸 친구, 실버 팽의 도움으로 그 철퇴 같은 꼬리는 둘 사이의 허공을 스치고 지나갔다.
“크하하! 그래, 고맙다!”
회전하는 시야 속에서 저릭이 웃으며 소리치는데.
정작 대답하는 실버 팽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빌어먹을 놈, 난 대기조라고! 여기서 힘쓰면 안 되는데!”
“늑대 폼 안 되냐!? 그것만 되면 내가 이놈 정도는……!”
“닥쳐!!”
[이놈들이!] [감히 어디서…….] [한눈을!?]콰아아아앙!
허공에서 서로의 발을 박찬 그들이 다시금 쏟아지는 마법 공세를 피해 내는 순간.
콰콰콰콰쾅!
“아아악!”
위이이이이잉!
어느새 에낙센에 상륙한 벌레들의 군세가 연합의 군대와 충돌하기 시작했다.
“제엔장! 저릭, 어떻게든 버텨 봐!”
번쩍!
우르르르르릉.
콰아앙!
그 순간 할버드에서 그대로 뿜어져 나간 실버 팽의 결전 기술, 천둥 늑대의 포효가 허공을 뒤덮은 마충 군단의 일각을 그대로 태워 버렸다.
‘어쩔 수 없지.’
그런 동료를, 저릭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광범위한 공격이 가능한 이들은 모두 벌레들을 청소하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으니.
칠죄종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전방을 향해 쏟아지는 엄청난 화염의 태풍과 화살들.
그리고 그보다 많은 벌레 떼.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강자들을 잡는다.’
위이이이잉.
최전선에서 싸우는 초인들의 감각마저 어지럽히는 엄청난 숫자의 벌레 떼들을 뚫고, 저릭은 다시 한번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끼이?”
“끄륵?”
콰뜩.
콰직.
“흥!”
약자 멸시라는 특성이 있는 한, 그는 한참 경지가 낮고 심지어 육체의 질량도 떨어지는 벌레들의 이빨이나 침에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는다.
‘지금은 이것들보다는…….’
그랬기에 그는 그 상황에서도 바람의 속성을 극대화하여, 사방에 브레스를 토해 내고 있는 삼두 와이번의 뒤를 쫓을 수 있었다.
아니, 사실 벌레들 사이에서 놈을 쫓기란 어렵지 않았다.
[벌레들…….] [귀찮게.] [같이 태워!]콰아아아아앙!
삼두 와이번은 아주 호쾌하게 인간과 벌레를 가릴 것 없이 풍비박산을 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쉿, 덩치. 저거, 내가 처리해.]그 순간 그의 귓가에 드리운 그림자가 익숙한 목소리를 전해 오더니.
벌레 떼에 휩싸인 삼두 와이번의 등 뒤에서 사신, 루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내.
“크롸롸롸!”
“캬아각!”
“크롹!?”
[대체, 어떻게!?]삼두 와이번이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흐, 뭘 어떻게 한 거지?’
분명 지켜보고 있었는데도, 대체 저 거대한 괴물이 왜 추락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얼핏 보기엔 그냥 등을 푹푹 찌르는 것 같았는데.
물론 지금 그걸 연구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칫!”
쩌어어어억.
감탄하면서도 또 목표를 잃은 그의 도끼는 애꿎게 사방에 가득한 벌레들을 토막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마침.
“크락투스!”
“!@#!$!”
무너진 성벽 쪽에서 인어족들까지 침입해 오기 시작하니.
“어딜!”
꽈아아아아앙!
성벽을 막아선 저릭의 도끼가 벌레들과 인어를 가리지 않고 토막을 치기 시작했다.
콰드드드득.
물론 그런다고 성에 찰 리는 없었고.
“아아악!”
인간이 상대하기 힘든 곤충 떼에 의해 연합의 일반 병사와 기사들이 속속 쓰러지는 것만이 눈에 아프게 들어올 뿐이었다.
‘강자를 찾아야 한다!’
본디 회의에서 정해진 그의 역할은 칠죄종들의 정면에서 그 공격을 받아 내야 할 전사.
하지만 정작 예상했던 칠죄종은 보이지 않고 벌레 떼들만이 눈앞에 가득하니, 가슴만 답답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꽈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익숙한 얼굴이 벌레들을 날려 버리며 그의 곁으로 튕겨 나왔다.
“큭.”
온몸으로 붉은 오러를 뿜어내는 검은 갑옷의 기사가 입으로 피를 토해 내는데.
“공작!?”
갑자기 그 앞에 뿔 달린 사마귀가 나타나자, 저릭은 반사적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꽈아아아앙!
[이건 또, 뭐?]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반전한 사마귀가 아너를 튕겨 내는데.
“흡!”
사마귀의 앞발이 또 움직인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저릭은 감각에 몸을 맡긴 채 다시 한번 아너를 휘둘렀다.
카드드드득.
한순간에 아너의 표면을 몇 차례나 긁고 지나가는 날카로운 공격.
저릭은 등 뒤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찾았다.’
그제서야 제 역할을 되찾은 것 같았으니까.
놈의 정체는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칠죄종 둘이 동시에 나타날 경우에 웨폰 마스터와 기갑왕, 성령 기사가 같이 맡기로 했던 마충 군단의 장군.
하지만 이런 무식한 속도가 특기라면, 오러유저 수준의 그들은 반응하지도 못할 터이니.
“이놈은 내가 맡겠소!”
호기롭게 소리쳤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사이 다시 날아오른 검제는 이미 가장 커다란 와이번과 공중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었으니까.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꽈아아아앙!
[누굴 맡아? 네가? 이 엑시드 님을?]굉음 속에서 사마귀의 몸이 사라진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콰콰콰콰콰.
카드득.
본능에 따라 반사적으로 움직인 도끼가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쏟아지는 공세를 전부 막아 냈다.
콰콰콰콰콰.
그 충돌에 따른 충격파가 주변의 벌레들과 인어들까지 쓸어 내는데.
그 순간 저릭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빠르지만, 할 만해.’
하이넨의 전투 예지처럼 적의 움직임을 미리 간파해 내진 못해도, 그의 본능적인 감각과 강력한 육체 능력은 모자란 스피드를 충분히 보완해 주고 있었다.
더구나 놈의 긴 칼날 같은 오른팔에 비해 마치 잘려 나간 듯 짧은 왼팔은 콩알 같은 오러 탄을 쏘아 내고만 있었으니.
그로선 한결 방어하기가 편했다.
콰드득.
“흐.”
촤촤촥.
“피부색이 같다고…….”
까드드드득.
“봐주는 거냐? 고맙게!”
적의 패턴이 익숙해지는 순간, 그는 찰나의 틈을 노려 사마귀의 몸통을 향해 일격을 날렸다.
쾅!
그 공격은 아쉽게도 막혔지만.
[감히!!!]갑자기 사마귀의 녹색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니, 도발은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게다가.
[죽어!!!]낫처럼 굽어진 앞발의 공격 패턴은 지극히 단순했으며.
여섯 개의 다리와 엄청난 속도가 만들어 내는 그 찬란한 변주도 이미 그의 눈에 익숙해져 있었다.
더구나 놈이 흥분한 상태라면.
‘기회!’
하나, 둘, 셋…….
‘지금!’
쩍.
재빨리 왼발을 반걸음 뒤로 옮기며 고개를 낮춘 순간.
파아아아앙!
머리 바로 위를 사마귀의 낫이 스쳐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느낌이 들기 전부터, 그의 도끼는 이미 우에서 좌로 그어지고 있었으니.
살짝 날아오른 상태로 저릭의 목을 향해 낫을 휘두르던 사마귀의 몸통이, 그대로 아너의 회전 반경에 걸려들었다.
쩌어어억.
“취이……!?”
[이, 이럴 수가!?]상반신과 하반신이 나눠진 사마귀의 몸에서 빠르게 생명력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그래, 속도가 이따위면 다른 부분이 좀 약해야지.
“짜릿했다. 사마귀.”
“취르…….”
[웃기지 마라! 네놈 따위! 그 늙은 인간에게 왼팔을 당하지 않았었다면…….]늙은 인간?
눈에 빛이 꺼져 가는 사마귀는 끝까지 헛소리를 지껄였다.
하지만 더 이상 놈에게 관심을 둘 시간은 없었다.
위이이이이잉!
“!@#!$!”
이제는 사방에서 다시 몰아치기 시작하는 괴물 곤충 떼와 인어족들의 모습이 더 신경에 거슬렸으니까.
“아아악!”
사방에서 쓰러지는 연합의 병사들을 보니, 다른 강자를 찾는 것보다 저 잡졸들을 정리하는 게 더 급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강자보다, 벌레와 인어들의 수를 줄여야 한다.’
저릭은 본능에 따라 사방으로 다시 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전부 뒈져라!”
쩌어어억.
콰아아앙!
“으라차차!”
무너진 성벽을 중심으로 몰려드는 적을, 벌레와 인어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박살 냈다.
다만 그러면서도 간간이 감각을 곤두세워서 멀리 전선 너머를 훑어보았다.
‘왜, 왜 움직이지 않지?’
반신급의 악마, 칠죄종이 둘이나 있다고 들었는데.
하나는 존재감이 느껴지지만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하나는 아예 느껴지지도 않았다.
‘에이, 내가 생각해 봤자지.’
고민은 검제나 크롬벨 같은 사람들에게 맡긴다.
‘우리는 그저 눈앞의 적들을 쳐 죽이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렇지, 타이니?’
그렇게 이곳에 없는 친구를 떠올리며 열심히 도끼질을 하는데.
문득 자신의 도끼질에 쓰러지는 적들의 숫자가 너무 적게만 느껴졌다.
그에 자연스레 주변 상황에 집중해 보니.
본능적으로 전투의 흐름을 읽어 낸 그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보였다.
자신이 좀 더 빠르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면, 비교적 강한 벌레나 인어만 쳐 죽이며 반전을 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 그 녀석처럼 말이다.
“젠장! 늑대만, 형제만 있었어도!”
꽝!!
눈앞에 가득한 적들을 신경질적으로 부숴 가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던 순간.
찌이이이이잉!
쾅!
갑자기 쏟아진 붉은빛과 함께, 그의 눈앞에 꿈에 볼까 무서운 흉악한 인상의 거인이 나타났다.
회색빛 피부에 커다란 코. 온몸에 검은색 털이 뭉텅뭉텅 돋아나 있는 괴인.
“우란 누드!?”
“늑대만 있으면 되겠습니까? 이 상황을…….”
쾅!
우드드득.
“……반전시키려면 말입니다!”
덤벼드는 인어와 벌레들을 그대로 으스러트리며 뱉어 낸 우란 누드의 말은, 저릭이 등을 맞대고 싸우면서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당연하지! 하지만…….”
“그럼 타십쇼.”
“뭐!?”
우드드득.
갑자기 거인의 덩치가 조금 줄어든다는 느낌에 돌아보니.
그의 눈앞에는 코끼리 수인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검은 늑대의 정령이 있었다.
[무슨 생각이냐, 우란!?]“이럴 생각입니다.”
우우우웅.
검은 늑대의 정령, 펜릴이 그대로 실체화하는 순간.
“고맙다!”
그 뜻을 알아들은 저릭이 바로 펜릴의 등에 올라탔다.
[이게 무슨……!]펜릴은 그를 거부하려다가도, 그 순간 저릭의 몸에서 은빛 늑대의 형상이 솟구치며 육체 능력이 급상승하는 것을 느끼고는 말끝을 흐리며 붉은 눈을 빛냈다.
“부탁한다, 임시 파트너.”
[……대단한 오크군. 좋다.]“그런데 우란, 당신은?”
“저는 정령 없이도 강합니다.”
쾅!
“이 정도야…….”
쾅!
“……식은 죽 먹기죠.”
콰앙!
우란 누드는 달려드는 인어족 기사를 주먹으로 으깨 버리며 저릭의 물음에 답했다.
그에 히죽 웃은 저릭은, 그대로 펜릴과 자신의 몸에 은빛 바람을 휘감은 채 엄청난 속도로 최전선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