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76
476화. 나태 (2)
“합!”
쾅.
오크의 대전사 저릭의 전력을 다한 공격이 손짓 한 번에 튕겨 나간다.
쩌어어어엉!
부르르르.
[이건 제법?]타이니를 제외하면 인간 중 최강이라 불리는 검제의 붉은 오러가 손가락 하나에 막힌다.
“이것도 견디나 보자!”
아우우우우우!
번쩍.
우르르르르릉.
쾅!
[짜릿하네.]피식.
실버 팽의 할버드, 라이트닝 로드가 쏟아 낸 전격의 오러 속에서 태연히 걸어 나오기까지 한 슬로스는 피식 웃더니.
스슥.
한순간에 모습을 감췄다.
“밑!”
저릭의 말에 따라 초인들의 시선이 지상으로 옮겨 가는 순간.
쩌어어어억.
에낙센의 부두에 나타난 슬로스의 손짓 한 번에 근방부터 외성벽의 일부까지 검은 선이 그어졌고.
우르르르르릉.
콰아아아앙.
“으아아아악!”
무너지는 성벽의 끝에서, 그 선에 걸려 반쪽이 난 시신을 옆에 두고 용케 살아남은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맛보아라.]뒤이어 짜릿한 미소와 함께 슬로스의 손에서 검은 불꽃이 솟구치는 순간.
그 발밑의 그림자에서 솟아난 단검이 그의 발바닥을 쑤셨지만.
[하!?]그것은 슬로스의 인상을 조금 구겨지게 만들 뿐이었다.
쾅!
우르르르릉.
그는 그대로 발을 굴러 그림자 주변의 지반 전체를 내려앉게 만드는데.
파바박.
그사이 다른 그림자로 이동한 루나가 다시금 그에게 접근해 수도 없이 공격을 퍼부어 보지만.
그 모든 공격은 슬로스의 들어 올린 손 하나에 막혔다.
[재밌는 재주군.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은데.]슬로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는 순간.
뻐어억.
“컥!”
정확히 그 주먹 끝에 나타난 루나가 복부를 강타당해 그대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것조차 슬로스의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호? 견뎌?]서늘한 미소와 함께 사라진 그의 몸이 간신히 몸을 멈춰 세운 루나의 앞에 나타나는 순간.
번쩍.
우르르르르릉.
쾅!
“내 앞에서 속도를…….”
전격을 휘어 감은 실버 팽이 무서운 속도로 할버드를 휘두르며 슬로스를 압박했고.
쩌저저적.
갑자기 근처에 나타난 회색 구체가 놈의 발목 아래에서부터 소름 끼치는 냉기를 만들어 슬로스의 전신을 휘어 감았다.
[음!?]쩌저저적.
“마족!!!”
번쩍.
동시에 창백한 안색의 아르곤이 눈이 벌게진 채로 튀어나오며 얼어붙은 슬로스 위로 일곱 가지 색깔의 오러 블레이드를 내리꽂았다.
그리고 뒤늦게 따라붙은 검제와 저릭이 그 위로 다시 전력을 다한 공격을 쏟아 냈다.
꽈아아아아앙!
콰콰콰콰콰콰.
우르르르르르릉.
충돌의 여파로 폭풍이 몰아치고 옅은 지진까지 일어나는데.
쩌저저저적.
그 안에서 검은 오러로 모든 공격을 받아 낸 슬로스가 몸에 남은 얼음을 털어 내며 씩 웃었다.
그의 시선은 가장 먼저 일곱 빛깔 오러를 빛내며 붉어진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아르곤을 향했다.
“벌써 치료를 했나? 그래도 그 몸으로 나를 잡으러 나오신 건가? 이 요상한 단체 스킬의 중심이? 이거 영광이군.”
아르곤의 뒤에서 간신히 몸을 추스른 루나가 다시금 죽음의 오러를 일으키고.
검제와 저릭, 실버 팽이 이를 갈며 적과의 간격을 재는데.
“내 현대어가 어색한가? 분명히 조율했는데? 왜들 답이 없지?”
[이놈이 왜 멀쩡한지 이해하시는 분 계십니까?]분노한 표정과는 달리 무서울 만큼 차가운 어조의 아르곤의 메시지 마법이 동료들 모두의 귓속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크롬벨 경이 우리는 알아 봤자 소용없다며 입을 다물었었다. 타이니가 해결해야 한다고.]검제의 영파가 동료들에게만 몰래 전해지는데.
“무슨 얘기를 그리 조용히 나누시나.”
꽝!!!
“큭!?”
“컥!?”
슬로스의 몸에서 한순간에 퍼져 나온 검은 오러가 그를 포위한 초인들을 단숨에 사방으로 날려 버렸다.
각기 수십, 수백 미터를 날아간 초인들을 보며 슬로스는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제법이긴 한데…….”
[라스가 이렇게까지 무능하지 않았다면, 내가 너희들 따위를 상대하러 직접 나설 필요도 없을 텐데. 귀찮게.]들으란 듯이 전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슬로스의 영파.
그 영파가 군단 스킬 ‘희망의 빛’의 정신 방벽을 뚫고 병사들의 얼굴에 서늘한 공포심이 깃들게 만들었다.
모두가 전장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갓 핸드와 웨폰 마스터에게는 신전의 사제들이 달라붙어 있고.
개개인으로서는 무력이 다소 떨어지는 초인인 제나스와 하이넨, 마도사들은 차마 끼어들지 못한 채 그런 그들을 지키고 서 있다.
그나마 우란 누드가 펜릴을 보내 저릭을 돕고 있는 것이 전부.
사실상 지금 활동 가능한 모든 초인들이 합공을 했음에도 인간형 마족 하나를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군단 스킬의 버프를 받아 가면서까지.
그 분위기를 읽었을까.
[일단 최대 출력으로 합공을 이어 간다. 여력을 아끼지 마라.]검제의 영파가 동료들에게 전해지는 순간.
다섯 가지 다른 빛의 오러가 슬로스를 향해 미친 듯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쾅!
콰콰콰콰콰콰.
번쩍.
우르르르르릉.
온갖 빛깔의 오러가 휘몰아치며 범접할 수 없는 충격파와 바람을 몰고 오는 전투.
그것이 계속될수록, 공포에 질렸던 인류 연합군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지기 시작했다.
쾅!
초인들 사이에서 슬로스의 몸이 허공으로 튕겨 나올 때까지만 해도, 지켜보는 이들의 기대는 커지고만 있었다.
하지만 이내.
[정말 짜증나게 제법이긴 해. 합도 잘 맞고.]다시금 소름 끼치는 영파가 울려 퍼지더니, 허공으로 튕겨 나간 슬로스의 몸에서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듯한 거인의 주먹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콰콰콰콰콰콰쾅!
한순간에 싸우던 공간 전체를 아예 날려 버리는 듯한 공격에, 이번에는 초인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쿨럭.
그중 가장 먼저 한 방 먹은 루나가 다시금 허용한 타격에 비틀거렸다.
“루나!”
“괜찮, 집중.”
검은 단검, 움브라-테그멘을 들어 올리는 루나의 보랏빛 눈동자는 투지를 잃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의 머릿속은 암담해질 수밖에 없었다.
– 이놈, 충격을 전혀 받지 않는다.
전체적인 실력의 고하를 떠나서, 아예 공격이 먹히지 않는 느낌에 전투의 베테랑들 모두가 당황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불멸이면 튕겨 나가면서 힘을 흘릴 이유도 없다. 특히 우리 중 사신의 공격에는 꽤 불쾌한 감정을 내보인다. 뭔가 있어.] [예, 불멸은 아닐 겁니다.]“좀 더 가지고 놀고 싶지만, 이제 슬슬 끝내지. 거참 그놈, 이상하게 빨리 처리했단 말이지…….”
번쩍.
슬로스의 알 수 없는 중얼거림과 함께, 놈의 몸에서 하늘을 꿰뚫을 듯한 검은 기둥이 나타났다.
우르르르릉.
“마기가…….”
지켜보는 모든 이를 질리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기운.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 뿜어낸 기운만으로 사방을 침묵하게 만든 슬로스가 눈을 빛내는 순간.
[타이니만 정리할 수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시도해 볼 방법이 있습니다! 시간을 끌어 주세요! 어떻게든 5분만!]아르곤의 간절한 메시지가 다른 이들의 귓가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합!”
꽈아아아아아앙!
기합과 함께 슬로스의 발밑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더니, 사라진 그의 몸이 비틀거리는 루나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우선 하나.]시각으로나 간신히 따라잡은 속도.
반사적으로 비스듬히 들어 올린 움브라-테크멘이 슬로스의 주먹을 간신히 비껴 냈다.
물론.
꽝!
그럼에도 루나의 몸은 쏜살처럼 뒤로 튕겨 나가는데.
초월무구인 단검이 쩌저적 금이 갔고, 그 단검을 놓지 않은 손은 피에 적셔져 기이하게 비틀려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슬로스의 성에는 차지 않은 듯했다.
[막아?]검은 불길을 휘감은 듯한 슬로스가 다시금 루나의 전면으로 따라붙는데.
마치 그것을 예상한 것처럼, 그 앞에 샛노란 벼락을 휘감은 할버드가 내리꽂히고 있었다.
꽈르르르르르릉!
물론, 소용없었지만.
[너부터 죽고 싶으냐, 짐승!?]스스로 쏟아 낸 공격의 충격에 튕겨 나가는 실버 팽.
그런 그가 몸을 바로 세우기도 전에 슬로스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쾅! 쾅! 쾅!
첫 일격으로 문 아머가 터져 나갔고.
두 번째 일격은 반사적으로 방어한 실버 팽의 두 팔을 부러트리며 그를 땅에 내리꽂았다.
그리고 세 번째 일격으로 내지른 주먹은 그대로 그의 복부를 관통했다.
“끄으으으…….”
실버 팽은 붉게 달아오른 눈으로 그런 슬로스의 팔을 부여잡았고.
어느새 놈의 뒤쪽에서는 새하얀 오러를 품은 도끼가 반원을 그리고 있었다.
물론.
콰아아아앙!
그조차 통하지 않았다.
[아까부터 거슬렸다, 오크! 아니, 펜릴!]콰콰쾅!
“컥!”
검은 늑대, 펜릴을 탄 저릭은 슬로스의 공세 세 방을 채 막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그 자체만으로도 슬로스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펜릴! 고작 오크 한 놈 살리겠다고 존재력을 깎아!?]저릭이 수십 미터 튕겨 나간 상태로 몸을 바로 세우면서도 어리둥절한 눈으로 슬쩍 자신의 몸을 내려다볼 때.
슬로스의 뒤쪽으로 붉은 벼락이 내려앉았다.
꽈르르르르릉!
콰콰콰콰쾅!
[하?]졸지에 적과 대등한 수준으로 합을 나누던 슬로스는, 정신없이 몰아치는 붉은 번개 속에서 실시간으로 새하얗게 변해 가는 검제의 머리카락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이놈은 생명력을 스스로 불태워?]쾅!
일격으로 검제를 튕겨 낸 슬로스는 한순간 다시 사방을 포위하듯 다가온 초인들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죽이기 전에 알아서 자멸하겠다는 건가? 이 미친 것들이!”
웃고는 있었지만, 그의 몸에서 넘실거리는 검은 불꽃은 지극한 분노와 짜증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죽고 싶다면, 죽여 줘야지!]“아주 비참하게 말이야!”
꽝!
그때부터, 일행의 처절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우드득.
“캭!”
쾅.
루나는 한 손으로만 싸우다가 그 손마저 부러지자 너덜거리는 손대신 팔꿈치로 전투를 이어 가고.
“크르르.”
실버 팽은 구멍 뚫린 복부를 틀어막아 가며 붉어진 눈으로도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며 전격을 쏟아 내는데.
“전사는 빚을 지지 않는다!”
저릭은 자꾸만 작아지는 펜릴의 덩치를 그제야 인식하고 자신의 생명력을 뽑아 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장 앞쪽에서 슬로스의 공격을 차단하고 있는 검제는 이미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 상태에서 얼굴에 주름까지 깊어지고 있었다.
[이 지독한 놈들이!]그렇게 지옥처럼 고통스러운 시간이 영원하게만 느껴지던 어느 순간.
[지금!!!]아르곤의 메시지에 따라 초인들이 동시에 슬로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합!”
검제가 중력을 반전시키며 슬로스의 몸을 튕겨 올릴 때.
“하!”
그 밑에서 저릭의 새하얀 오러가 완연한 보름달을 그리며 발판을 만들었고.
번쩍.
그곳을 향해 실버 팽이 전격을 쏟아 내자, 그 옆에서 루나가 죽음의 기운을 흘려 넣었다.
꽈르르르르르릉.
[이것들이……!]절묘한 순간에 이루어진 4인의 영역 동조.
새하얀 바람과 검은 기운을 휘감은 벼락의 용이 하늘을 향해 승천하는데.
파아아아앙!
상공으로 밀려 올라간 슬로스의 오만한 영파가 퍼지는 순간.
그 정점에서, 불그스름한 빛이 섞인 노을빛 광선이 겹쳐졌다.
번쩍.
콰아아아아아아앙!
“됐다!”
기진맥진한 일행의 뒤편에서 아르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목소리를 듣는 모두가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연합군 전체에 축복의 힘을 뿌리던 희망의 빛. 그 여력의 대부분을 집중시킨 대마법이 방금 적을 요격한 것이라고.
그런데.
[너도 그 파멸이라는 것을 흉내 낼 줄 아는구나. 하지만 흉내뿐이야.]싸늘한 영파와 함께, 상공에서 멀쩡한 모습의 슬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놈과 싸우던 초인들부터 지켜보던 연합군까지 모두의 얼굴에 질린 표정이 떠오를 때.
[내가 저번에 그것 때문에 시간을 너무 낭비했었는데, 이건 좀 질이 많이 떨어지는군.]슬로스는 전장의 크롬벨과 아르곤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이게 전부라면, 다음을 기약할 필요도 없겠는데? 그놈이 오기 전에…….]그의 여유로운 시선이 바다를 향하고.
때맞침.
– 크롸롸롸롸롸롸!
바닷속에서 엄청난 물보라가 솟구침과 동시에 거대한 촉수 하나가 잘려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금 바닷가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인어족들까지.
[그냥, 오늘 전쟁을 끝내야겠다.]슬로스의 미소와 함께 전장에 절망감이 내려앉을 때.
번쩍.
– 아우우우우우!
늑대 울음소리와 함께, 서쪽 하늘에서 노을빛 유성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