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77
477화. 나태 (3)
“아우우우우우우!”
하늘을 질주하는 월랑의 울음소리는 평상시의 호쾌함보다는 다급함을 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타이니는 최근 들어 빠르게 상승하는 영격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굳이 그 이유를 연구해 보진 않았다.
대신 그 힘을 어디에 활용할지에만 집중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발전한 것이 마나와 생명의 상태를 파악하는 감각이었다.
질투의 권능 사자부활(死者復活)을 반복해서 써 오면서 언데드와 산 생명을 직접 다뤄 본 덕에 더욱 빠르게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그랬기에, 그는 전장에 도착하기 직전에도 동료들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무기 영감이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다. 아니, 죽은 건가? 성기사 영감은 이미 죽은 것 같은데, 왜 움직이지?’
그중 가장 심각한 두 사람의 상태만 봐도 마음이 다급해지는데.
‘루나가 최소 중상이고 검제와 저릭의 생명력도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다. 실버 팽도 마찬가지. 젠장! 아르곤은 뭐 한 거야!? 제나스 경이랑 하이넨 영감은 왜 가만히 있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에스티나는 왜 아직도…….’
온갖 상념들이 머릿속에서 부딪쳤다.
수작을 부렸던 적들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온 걸 텐데, 그사이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심지어 전장에 더 가까워지고 나서는.
– 꾸어어어어어어.
바닷속에서 크라켄의 촉수가 잘려 침몰하는 것까지 느낄 수 있었다.
“젠자아아아앙!”
콰아아아앙.
1초가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순간, 그 심정을 반영하여 더욱 가속한 월랑 덕에 머지않아 전장을 직접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상공에서 여유롭게 전장을 내려다 보는 붉은 머리 인간이었다.
전장의 대군들보다 오히려 눈에 들어오는 존재감.
[생각보다 훨씬 빨리 왔군. 이런…….]놈을 보는 순간, 분노로 끓어오르던 머릿속이 차갑게 식는 듯했다.
‘저놈이 나태.’
아마도 바닷속에서 크라켄을 상대로 날뛰고 있는 커다란 존재감이 분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밑으로.
“크락투스!”
“!@#!$!!”
왜인지 이제야 바닷가에 상륙하기 시작한 인어족의 군대.
그리고 그 최전선에서 비틀거리는 루나와 검제, 실버 팽, 저릭.
‘다행이다. 너무 늦진 않았어.’
특이한 점이라면, 벌레들의 군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바닥을 새까맣게 메운 시체들을 보니 어찌 처리한 모양인데.
‘어쩌다가 저렇게 밀린 거지?’
하지만 군단 스킬을 개량했다는 말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데 비해, 이미 연합군을 감싼 축복의 힘은 미약하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인어족의 군세를 상대하기에는 어림도 없어 보이는 수준이었다.
신경을 건드리는 나태 놈의 영파가 들려오는 순간.
“흥.”
파아아아앙.
우드드드득.
질주하던 타이니의 몸이 그대로 부풀어 오르며 머리카락이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도 아니었다.
질투와의 결투 때와는 달리, 불굴의 후유증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인어족을 상대할 때처럼 계속해서 유성 떨구기로 몸을 내던질 생각도 없다.
‘그런 게 통할 놈도 아닐 거야.’
또한.
‘불굴의 권능이 있는 한, 월랑이 역소환당해 타격을 입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월랑의 소환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서.
우드득.
그의 몸과 함께 월랑의 덩치 역시 조금 더 커지며 전신에 노을빛 갑옷 형상의 오러까지 덧씌워지고 있었다.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며 더욱 견고해진 영혼의 연결을 통해, 기승 상태의 출력이 한층 더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쿠우우웅.
온몸에 충실하게 차오르는 에너지.
단기 결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내는 이 전투 형태는 그저 내달리는 것만으로도 큰 에너지를 소모했지만, 그의 영혼 속에서 빛나는 별, 불굴의 권능이 그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게 만들었다.
[호오?]놈의 감탄사가 들렸지만, 타이니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놀라긴 아직 일러.’
전장이 너무 불리하니, 아무래도 저놈을 때려잡기 전에 크게 힘부터 써야 할 것 같았다.
후으읍.
“내가 왔다!!!!”
그의 고함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순간, 그 음파를 따라 노을빛 마나가 전장에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노을빛이 기적을 만들어 냈다.
지친 연합군의 피로를 씻어 내고, 경상을 완전히 치유하고, 중상자는 경상자로,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이는 그나마 중상자로 만드는 동족 강화의 권능.
“모, 몸이…….”
“광휘의 기사다!”
“여신의 반려다!”
“인중신!!”
“우와아아아!”
한순간에 연합군의 사기가 다시금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병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동족 강화의 권능은 아무래도 동료들에게 크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생명력을 크게 소모한 동료들의 얼굴에 약간의 화색이 돌기 시작하고.
보기만 해도 아파 보이게 박살 난 루나의 팔이 순식간에 형태를 되찾았다.
물론 그 순간에도 웨폰 마스터 그리드 반 셀던은 가장 많은 에너지를 때려 넣었음에도 생명력이 희미하기만 했다.
뿌드득.
‘늦어서 미안합니다, 무기 영감님.’
그리고 그가 걱정했던 또 한 명의 동료는 아예 그 힘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갓 핸드의 정체가 새삼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것을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눈앞에 보이는 적, 나태는 절대 만만한 자가 아니었으니.
[흐, 그래 봤자지.]눈썹을 꿈틀거리며 달려오는 자신을 맞이하려는 듯 허공에서 자세를 잡는 나태.
하지만 타이니에겐 아직 놈을 더 놀래 줄 준비가 남아 있었다.
“흐…….”
그는 놈의 비웃음을 마주 비웃어 주고는 다시금 일정한 카르마를 소모해 전장에 추락한 벌레들을 향해 권능의 힘을 투사했다.
[일어나라, 벌레들아.]우우우우웅.
위이잉.
비틀거리며 날아오르기 시작하는 마충의 사체들.
왜인지 몰라도 사체들은 성에가 낀 채로 동사한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생각보다 많은 수의 벌레들이 되살아났다.
– 억!?
– 마충 군단이!
– 젠장!
기껏 끌어올린 연합의 사기가 다시 떨어지는 것이 보였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가라, 인어족을 공격해라!]재차 이어진 타이니의 영파에 마충들이 바닷가로 몰려드는 인어들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할 때.
어느새 눈앞에 검은 오러를 두른 주먹이 다가와 있었다.
쾅!!!!
반사적으로 팔꿈치를 들어 막았는데, 질주하던 몸이 허공에서 강제로 멈춰지는 것이 느껴졌다.
“컹!”
파바바박.
뻐억.
쾅!
한순간에 어지럽게 휘둘린 놈의 주먹이 타이니의 왼손을 강타하는 순간.
그 틈을 타, 녹턴이 놈의 머리가 존재하던 공간을 터트렸다.
아깝게도, 공간만.
‘빠르다.’
타이니의 눈이 가늘어진 순간, 떨어져 나간 슬로스의 표정은 완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네놈, 네놈이 어떻게 그린 아이의 힘을……!?”
“맞아 죽을래, 그냥 줄래? 하니까 그냥 주던데?”
“헛소리!”
맞아. 헛소리.
쾅!
어느새 다가온 놈의 주먹을 어깨로 받아치고 녹턴을 휘두르는데.
[털어놓지 않겠다면, 영혼을 뜯어내서 물어봐 주마.]그 짧은 순간, 팔다리로 연타가 13번이나 들어왔다.
콰콰콰쾅!
놈과 부딪치고 떨어지길 반복한 그 짧은 순간, 주변의 구름이 쭉 밀려나는 것이 보였다.
“컹!”
그래, 잘했어.
월랑이 돕지 않았다면 초전부터 몇 대 얻어터지며 시작할 뻔했다.
물론 짐작되는 경지에 비해 그리 무거운 주먹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더 빨라.’
오러 신경망으로 반사 신경을 극도로 끌어 올리고 있음에도 간신히 반격하는 게 고작이었다.
‘아니, 그게 아닌가? 조금 이상한데? 이게 그 짝퉁 불멸이랑 관련이 있나?’
뭔가 묘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하는데.
상대방은 그와는 달리 이제야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설마, 네놈……. 그, 그분의 무기를 정말로 제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거냐?!”
놈의 몸에서부터 검은 불길이 사방의 모든 것을 불태울 듯 번지기 시작했다.
뭔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길래, 타이니는 조금 더 기름을 부어 주기로 했다.
“덕분에 감사히. 죽은 네 부하 놈이 큰 도움이 됐다.”
[……네놈이 명을 재촉하는구나.]아니, 이건 진짠데.
쾅!
다가온 주먹을 쳐 냈을 뿐인데, 팔꿈치에 검은 불길이 옮겨붙었다.
그사이 다시 녹턴을 휘둘렀지만 놈은 그대로 피해 버리는데.
파바바바방.
콰콰콰콰콰.
뒤이어 한순간에 사방을 점유하고 쏟아져 오는 공격은 목소리를 내뱉을 틈도 주지 않았다.
[너, 불멸의 권능을 가지고 있다면서 왜 자꾸 피하지?]기껏 영파로 물어봐 봤자.
[농락하면서 천천히 패 죽여 주마. 그랜달의 몫까지.]흐.
대답다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서 쏟아 내는 공격은 딱 예상만큼 아팠다.
꽈아아아앙!
완벽한 전투 태세가 자아낸, 산을 뚫는 공격도 막아 낼 방어막을 뚫고 내장이 울렁거릴 정도로 말이다.
반면에 타이니의 공격은 거의 허공을 스쳐 지나갔다.
괜한 공기만 터트리면서.
퍼어어어엉!
월랑의 앞발과 기동력까지 동원해서 상대하고 있음에도 속도전에서 밀리고 있는 것이다.
‘젠장.’
예전의 크롬벨 녀석이 생각났다.
상성이 매우 안 좋다는 말이다.
쾅!
가끔씩 과하게 녹턴을 피하려는 놈의 움직임을 노리고 반사적으로 뻗은 주먹이나 몸통 박치기가 먹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뻐어어억.
크롬벨이 말해 준 놈의 특성 ‘불멸’은 그 공격에 정말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은 듯했다.
다만 하나는 확실했다.
꽤 강력한 공격에도 타격을 받지 않는데도 뒤로 튕겨 나가는 듯한 움직임.
그리고 녹턴의 공격만큼은 철저히 피하는 회피 동작까지.
‘크롬벨의 말이 맞았어. 불멸이라는 이름은 속임수다.’
다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같은 오러마스터인데 이렇게까지 속도 차이가 난다고?’
심지어 오러 신경망을 전개해 놨는데도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퍼버버버벅.
꽝!
‘컥!’
놈의 주먹이 턱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머리가 아찔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에 오러 신경망이 흔들리면서, 타이니는 그제야 실수를 깨달았다.
실수를 깨달았으면 고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자 곧.
쾅!
처음으로 녹턴의 공격이 먹혀들었다.
“네놈…….”
파르르 떨리는 눈썹을 보니, 어깨 방어구를 깨트린 것이 놈을 꽤 놀라게 만든 듯했다.
그리고 어깨 부근의 공간에서 일렁이는 검은 기운까지.
여전히 타격은 전혀 받지 않은 듯했지만, 타이니는 그것을 보며 슬쩍 웃었다.
자신의 주먹에 실린 멸살의 권능은 티도 나지 않았지만.
‘역시 녹턴으로 직접 가하는 멸살의 권능은 확실하게 ‘누적’이 되는군.’
놈의 특성인 불멸, 아니 가짜 불멸의 정체를 그 순간 완벽하게 확인했으니까.
하지만 일단은 그 사실은 숨겼다.
“내 오러 신경망을 오히려 교란해서 감각을 혼란시키다니, 나랑 비슷한 수법 쓰는 적이 많았나 봐?”
그저 지금 알아낸, 너무 심한 속도 차이에 대한 정보만 넌지시 던지며 자신감에 찬 미소를 보였다.
“그런데 어쩌나? 내가 마나 다루는 건 또 자신 있거든, 교란에 교란을 섞어 봤는데, 재밌지? 자, 수 싸움 계속해 보자고.”
언제나 경지를 뛰어넘는 힘으로 상대를 압살해 온 그였지만.
이놈의 경우는 그럴 수가 없었다.
‘월등한 속도에, 거의 무적에 가깝다 착각하게 만드는 방어력까지.’
아무리 속임수를 간파했다 한들,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적은 아니었다.
“컹!”
한순간에 가속하는 월랑의 속도를 그대로 살려 녹턴을 휘둘러 보지만.
[그래 봤자.]퍼어어어엉!
놈은 쉽게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다만,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콰콰콰콰쾅!
더 이상 일방적인 공격을 허용하지는 않고 있다는 것.
놈이 철저히 피하는 녹턴을 미끼 삼아 휘두른 뒤, 월랑이나 주먹의 공격을 연달아 적중시키고 있긴 하지만.
그조차 놈이 쏟아 내는 타격에 비하면 오분의 일 정도밖에 안 되는 비율이었다.
‘그래, 고작 오 분의 일.’
꽈아아아앙!
그래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 공격이 먹히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의 공격도 당장은 놈에게 통하지 않았고.
뻐억!
반대로 놈의 공격도 지금 자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꽈아아아아앙!
콰콰콰콰콰콰콰.
두 사람이 서로에게 크로스 카운터를 먹인 순간, 후폭풍이 일어나며 그들의 몸이 수백 미터 이상 튕겨 나갔다.
하지만 자세를 바로잡은 둘 모두의 얼굴에는 어떤 타격을 받은 흔적도 없었다.
그저 타이니의 몸에 옮겨붙은 검은 불꽃의 크기가 조금 더 커졌을 뿐.
[묘한 권능이구나. 하지만 그래 봤자 지옥의 불꽃을 끌 순 없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슬로스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을 때.
“흥.”
화르륵.
타이니는 온몸에 타오르는 검은 불꽃을 염체로 흡수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런 거 나한테 안 통해.”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만큼 슬로스의 표정은 굳어 갔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충돌.
“하!”
꽈아아아아앙!
어지간해서는 끝날 것 같지 않은 그 싸움의 변화는, 엉뚱한 곳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