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79
479화. 불멸의 정체
– 전세가 기울었다.
느껴지는 군기만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슬로스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자신조차 한동안 고생하게 만들었던 그 파멸의 빛의 원래 주인.
놈의 실력은 상정했던 최대치이지만, 어디까지나 예상 범위 안쪽이었다.
문제라면 그 예상에 그분의 무기, 피니스가 들어가 있지는 않았다는 것.
‘강탈했다 해도 능력이 봉인됐거나, 억지로 휘두르는 수준일 거라 생각했는데…….’
쾅!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피니스의 기운은 여전히 섬뜩하기만 했다.
물론.
뻐어어억.
동급의 상대가 거대한 워해머를 휘두르는데 맞아 줄 자신은 아니지만, 상황이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제대로 복부를 가격당해 튕겨 나가는 놈의 표정은 분명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다시 허공을 박차고 돌진해 오는 놈의 기세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어떻게 된 놈이…….’
콰아아아앙!
이번엔 놈의 정령을 노려 보았지만,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크르르르.
늑대 정령은 통증 속에 이빨을 드러내긴 했어도, 그 현신체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콰콰콰콰쾅!
설마, 피니스의 영원성까지 놈에게 옮겨 갔을까.
‘그럴 리가?’
잠시 딴생각을 하는 순간, 주고받던 공방의 박자가 미묘하게 어긋났다.
그리고 그 틈에.
꽈아아앙!
놈의 주먹이 처음으로 자신의 턱에 닿았다.
‘큭!’
파아아아앙.
[걸렸다!]물론 그 충격은 전부 흘려 냈지만, 습관적으로 뒤로 몸을 날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놈의 주먹에도 미약하게나마 멸살의 권능이 실려 있었으니, 최대한 충격을 분산시키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피니스를 제외해서 생각하더라도 방심할 수 없는 놈이었다.
[지겨운 놈.] [너 역시.]끝도 없이 가속한 채로 싸우다 보니, 공기의 흐름부터 상공에 번지는 에너지의 파편과 먼지까지 모든 것이 마치 멈춘 듯 보이는데.
쾅!
꽈르르르릉.
한순간에 스치는 놈의 주먹이나 정령의 앞발, 그리고 무엇보다 좀처럼 맞지 않음에도 끈질기게 몸을 내던지듯 휘두르는 해머가 꽤 위협적이었다.
[계속 처맞으면서 싸우면, 굴욕적이지 않나?] [계속 도망만 치는 게 부끄럽겠지.]목소리가 싸움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탓에, 도발하기 위한 대화마저 정신파를 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전투는 바깥과 전혀 다른 시간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꽈아아아앙!
거대한 해머가 휘둘러지는 틈으로 파고든 슬로스의 팔꿈치가 놈의 안면을 그대로 찍어 버리는데.
콰득.
정령의 이빨이 성가시게 다리를 무는 순간 연격이 저지되었고.
놈은 인상을 팍 찡그리더니 그대로 머리를 들이박았다.
‘흡!?’
쾅!
반사적으로 또 물러서다 보니, 다시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거의 비슷하게 반복되는 패턴.
‘대체 무슨 권능이지? 아무래도 보호용인 것 같긴 한데…….’
통증을 느끼는 것을 보니 자신의 불멸처럼 사기적인 능력은 아닌 듯했지만, 당최 지치지를 않으니 성가시기 짝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찢어발기고 싶지만…….’
그보다는 천천히 정보를 쌓아 나가며 확실한 틈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준비한 그것을 꺼내 끝장낸다.
슬로스는 끓어오르는 짜증과 분노를 완벽하게 다스리며 정신을 칼날처럼 가다듬기 시작했다.
하지만.
[슬로스……!! 적이……!]바로 바닷속에서 전해져 온 멍청한 벌레 놈의 영파가 그 결심을 흔들었다.
칠죄종이라는 놈이 격하의 적들을 상대하면서 도움을 청하다니.
‘저 멍청한 새끼가……?’
순간적으로 차라리 라스를 죽게 놔두고 그분의 강림이 빨라지게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지.’
자신이 이대로 인류의 정예들을 박살 낸대도, 혼자만 남아서는 그 후에 강림하실 그분을 볼 낯이 없다.
‘어쩔 수 없다.’
단순히 그분이 벌하실까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신께서 고작 인간들과 드잡이질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 자체가 슬로스에게도 모욕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네놈의 한계는 뻔히 보이니까. 여기서 끝내자.]쾅!
한순간 전력을 분출해 적의 몸을 튕겨 낸 슬로스가 손을 까닥이며 도발했다.
[기다려 줄 테니, 그 파멸의 빛을 한번 꺼내 보지 그래? 정면에서 부숴 주마.]오러마스터라면 자신의 비기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기 마련.
그런데.
놈은 피식 웃더니 그대로 가속하며 노을빛 오러에 덮인 해머를 휘두를 뿐이었다.
처음에 싸움을 시작할 때의 그 모습 그대로.
‘이래서야 시간이 또 길어진다.’
이렇게 된 이상, 적당히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발동.’
슬로스는 가까워져 오는 피니스를 보면서도 태연히 손을 내밀었다.
준비한 것을 풀어놓을 시간이었다.
꽈아아아앙!
콰드드득.
[오!?]적의 감탄사 속에서 슬로스는 태연한 얼굴로 검은 불꽃의 오러를 끌어 올렸다.
[여태 이걸 감당하지 못해서 피하기만 한 줄 아느냐?]파지지지직.
피니스의 권능과 지옥의 불꽃이 서로 상쇄되며 파열음을 만들어 내는데.
슬로스는 그 모습 그대로 발을 뻗었다.
동시에 정령의 앞발이 마주 휘둘러져 왔지만.
뻐어어어억!
한순간에 훨씬 강해진 그의 힘에, 놈은 그대로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그대로 죽어라!]슬로스는 날려 보낸 적을 향해 그대로 돌진하며 계속해서 지옥 불꽃의 오러를 키워 나갔다.
마치 이제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이 한순간에 두 배로 강해진 자신의 오러에 적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럴 만했다.
반신은 온전한 신이 아니기에 권능 또한 완전하지 않다.
그렇기에 소모값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놈의 권능이 무엇이건 간에 끝없이 타격을 입히면 결국 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원래는 놈의 비기의 허점을 찔러 자멸시킬 생각이었지만, 그게 아니어도.
‘끝없이 충격을 누적시켜서 부숴 버리면 된다.’
멍청한 벌레를 구하기 위해 준비한 것을 벌써 풀어놓는다는 것이 조금 찜찜했지만.
진리는 진리이기에 진리인 것이다.
슬로스는 약간의 찜찜함을 무시한 채 그대로 미친 듯이 공세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싸움의 양상이 확실히 변하기 시작했다.
꽈아아아아앙!
쾅!
뻐어어어억.
전장의 중심에서 서로 치열하게 치고받던 전투가 갑작스레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보다 더…….’
갑자기 적이 훨씬 빨라지고 강해졌다.
한순간에 밀리기 시작한 타이니는 조금이라도 반전의 기회를 찾기 위해 감각을 곤두세웠다.
이번엔 아까 전처럼 놈이 오러 신경망을 조작해서 감각을 혼란시킨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정말로 놈의 출력이 훨씬 올라간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해야지.’
결심하는 순간, 그의 좌우로 두 개의 분신이 튀어나왔다.
꽈아아아앙!
[하!? 분신!?]속도에서 밀리면, 숫자로 응수해 줄 수밖에.
꽈과과광!
한순간 쏟아지는 공세를 세 명의 타이니가 동시에 분쇄해 버리자, 슬로스의 눈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환영이 아니로구나. 하지만…….]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놈의 움직임이 그 순간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큭!’
츠츳.
한순간 분신을 한 기 더 늘려 보았지만,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월랑까지 소환한 상태로 전력을 다하고 있으니, 실체 분신의 수는 이것이 한계.
콰콰콰콰.
쾅!
그럼에도 슬로스는 분신들의 공격을 적당히 쳐 내 가며 본신만을 집요하게 공격해 왔다.
‘역시 이 녀석도…….’
자신 못지않게 감각을 타고난 것 같았다.
짜증 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불굴의 권능이 견딜 수 있는 충격의 총량이 빠르게 채워지고 있다는 현실도.
‘수를 내야 해.’
뻐버버버벅.
콰콰콰.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와중에도 머리가 빠르게 굴러 갔다.
그러다 보니.
‘아!’
나태가 갑자기 이렇게 빨라지고 강해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힌트는 크롬벨이 말해 준 놈의 권능.
그것을…….
‘역으로 풀어놓은 거군.’
하지만 이유를 알았다 해도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는 않았다.
놈의 권능을 박살 내기 위해서는 빅뱅과 멸살의 권능을 합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수단.
하지만 적이 대놓고 그것을 시전하라고 도발하고 있는 마당에 정말 빅뱅을 쓸 수는 없었다.
전투의 기본은 적이 가장 싫어하는 짓을 하는 것이니까.
무엇보다, 지금처럼 이런 무시무시한 속도로 움직이는 놈에게 빅뱅을 맞힐 자신도 없었다.
‘누가 좀 이놈을 잠시만 잡아 주면 좋겠는데.’
그렇게 가당치 않은 상상을 떠올리다가.
결국 타이니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해야지. 흐, 피를 봐야겠구먼. 꽤 아프겠어.’
자신이 무리를 해야 한다는 것.
물론, 권능을 역으로 풀어놓고 있는 적 역시 무리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일 터.
그렇다면 이 전투는 이제.
‘개싸움이 된다.’
누구의 권능이, 누구의 힘이 먼저 다할 것인가의 싸움.
그리고 그런 식의 개싸움은 그에게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다.
‘안 그래?’
– 컹!
결심이 서는 순간, 타이니의 분신 하나가 그대로 나태의 주먹을 향해 몸을 던졌다.
푸우우욱.
그대로 가슴을 꿰뚫린 분신은, 그러면서도 나태의 팔을 붙잡았다.
[귀찮게!]쾅!
에너지로 이뤄진 분신이 그대로 터져 나가는 순간, 타이니도 아찔한 충격을 받았다.
실체화한 분신이 가지는 약점이란 그런 것.
하지만 이미 각오하고 있었기에 다음 움직임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뒤이어 슬로스를 껴안으려는 듯 달려든 나머지 분신 둘이 놈의 공격을 받아들이며 그 움직임을 아주 잠시간 묶어 두었다.
그리고 분신 셋이 연달아 전부 소멸하는 아찔한 충격을 받으면서도, 타이니는 놈의 머리를 향해 녹턴을 휘둘렀다.
쾅!
미처 피하지 못한 슬로스의 한쪽 어깨 갑옷이 그대로 깨어져 나가자, 놈의 어깨에 타오르던 불꽃이 한순간 확 죽어 버렸다.
‘역시.’
[감히!]쾅!
‘컥!’
아찔한 충격과 함께 나가떨어지면서도 미소가 지어졌다.
다시금 눈앞까지 다가온 적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진 것이 보였으니까.
[역시, 권능을 역으로 풀어 버리는 바람에 방어력이 약해졌나 봐?]그 한마디에, 주먹을 뻗어 오던 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꽝!
덕분에 안면에 정통으로 한 방 먹고 나가떨어지는데도 생각보다 아프지가 않았다.
그리고.
[헛소리나 하면서 맞아 죽어라!]애써 말을 돌리며 다시 다가온 적 앞에서.
스슥.
타이니는 다시 세 개의 분신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쾅!
콰직!
푸욱!
다시금 자폭에 가까운 돌진을 감행하며 나태를 한순간 경직되게 만들었고.
꽈아아앙!
곧이어 다시 한번 휘두른 녹턴의 일격이 검은 불꽃을 확 줄어들게 만들며, 놈에게 좀 더 창백한 안색을 선물했다.
콰아아아앙!
그 일격 후에 뻗어 온 놈의 주먹은 이전에 비해 확실히 위력이 줄어 있었다.
큭.
타이니는 튕겨 나가면서도 다시금 셋의 분신을 만들어 냈고, 자세를 고쳐 잡기 무섭게 분신들과 함께 몸을 돌렸다.
조금 전에 비해서 확실히 느려진 슬로스를 향해서.
[이제 방어력에 신경 쓰기에는 너무 멀리 온 거 아닌가, 나태!?] [미친! 이렇게 소모전을 펼치겠다고!?] [내가 지구력은 자신 있거든.]쾅!
뻐어억.
쾅!
안색이 창백해져 가는 타이니의 자폭 같은 돌진이 나태의 얼굴을 붉게 달아오르게 만들 때.
놈의 위로 다시금 녹턴이 떨어져 내렸다.
꽈아아아앙!
[흥! 내 불멸 앞에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다시금 전신에 검은 불꽃을 피워올린 나태가 허세를 부리는 게 보였지만.
이미 그 불꽃은 이전에 비해 현격하게 기세가 줄어 있었다.
그리고 이내.
[불멸? 웃기시네. 그냥 모든 충격을 나중으로 미뤄 버리는 것뿐이지 않아?]통렬한 비웃음이 담긴 그 한마디가, 나태의 허세를 깨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