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81
481화. 신화경의 무인들이 남긴 권능들
극도로 올라간 집중력이 다시금 시간을 느리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화살에 매달린 것이 무엇인지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음?’
창천검제와 무적권마의 유물.
동대륙에서 신화경에 오르자마자 천사들에게 살해당했던 절대자들이 남긴 유산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통해 새로운 권능을 얻는다고 해도, 솔직히 지금 이 상황에서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였다.
솔직히 새로운 권능을 얻는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방법이 생기기는 하겠지만, 역량 자체의 본질적인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지에 이르지 못했던 때라면 모를까 지금 타이니는 이미 자신만의 권능, 즉 신성을 완성한 상태이니.
애초에 단순히 유물을 부숴서 그 안의 신성을 삼키는 것만으로도 역량이 급격히 상승할 것이라 기대했다면, 그는 마충들을 처리하는 대신 직접 유물을 가지러 갔을 것이다.
아니면 신전의 반발을 무시하면서까지 서대륙의 성물들을 먼저 취했거나.
‘아마 저것들을 둘 다 부숴서 삼키더라도, 내 역량 상승은 미미할 것이다.’
그러니 기대하는 것은 하나뿐.
‘두 사람의 권능 중에 이 상황에 도움이 될 힘이 있을지도…….’
사실 그조차 기대치가 낮았다.
창천검제와 무적권마는 그야말로 신화적인 무명을 쌓아 신성에 닿은 인물들이지만, 오러마스터의 경지인 신화경에 오르자마자 천사들에게 살해당했다.
유물에 담긴 사념을 통해 그들 권능의 일부를 본 것 같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뭐든 변화가 필요해.’
에스티나의 화살은 두 유물을 매단 채 녹턴의 망치 머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세상의 상처 밖에서 자신과 녹턴의 위치까지 파악하고 화살을 날린 묘기에 감탄할 틈도 없었다.
‘흡!’
우우웅.
타이니의 왼손에 어리던 노을빛이 오른손으로 옮겨 가더니, 이내 그 손에 쥔 녹턴으로 모여들며 맥동하듯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콰드득.
“쿨럭”
급격한 힘의 이동에 육체 내부에서 파열음이 울리며 피가 토해져 나왔다.
빅뱅을 사용하려고 이미 반쯤 에너지 분열을 시작한 힘이었으니, 아무리 그가 절대적인 에너지 감지력과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육체에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콰드드득.
맥동하는 노을빛, 약식 빅뱅에 두 유물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콰직.
그리고 녹턴이 그 안에 담겨 있던 권능을 씹어 삼켰다.
그대로 그의 몸에 스며드는 권능의 파편들.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영혼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
칠죄종을 처리할 때는 한 번도 없었던 일.
이내 타이니는 위대했던 절대자들의 기억을 읽었던 때보다 훨씬 더 진하게 느껴지는 사념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게 되었다.
* * *
세상의 어둠을 걷어 내고 푸른 하늘을 가져온 절대자 창천검제.
그는 세상의 명성에 연연하지 않고 은둔을 택했지만, 그랬기에 오히려 더욱 큰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이기 시작한 추앙은 그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성에 닿는 디딤돌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신화경에 다다른 순간…….
살해당했다.
– 나는 한때 암살자였고, 또 평생을 암살자들과 싸워 왔다.
– 보이지 않는 검. 보이지 않는 독. 보이지 않는 적.
– 언제나 등 뒤의 칼날과 숱한 함정을 돌파하면서 살아온 인생이다.
– 감각을 속이고 농락하는 암살자들을 상대하며 내가 연마한 것은, 모든 감각을 초월하여 현상을 파악하는 인지 능력이었으니.
– 만약 내게 경지를 수습할 시간이 있었다면, 나의 힘은 아마 초월적인 예지 능력이나 감각으로써 열매를 맺었을 것이다. 하지만…….
– 내게는 그럴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제1 천사장이라는 놈과 그 부하들에게 최후의 수법을 쓰면서 함께 죽게 되었던 그 마지막 전투.
이미 한 번 읽었었던 그 기억이 다시금 타이니의 머릿속에 전해졌다.
그리고 그 끝에서 느꼈던 창천검제의 절망감도.
– 하늘 위에 괴물들이 있다.
– 누군가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신성력을 느끼지 못하는 동대륙인은 자신의 사념조차 읽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
이전에 읽은 것은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이번엔 거기서부터, 전에는 듣지 못했던 목소리가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아직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닿지 못했던 때에는 전해져 오지 않았던 목소리.
– 용납할 수 없다.
최후를 맞이하게 된 순간, 창천검제는 천사들에 대한 증오를 넘어 세상에 대한 염려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 평생을 바쳐 온 인간의 세상이다. 그런데 인간도 아닌 것들이 몰래 통제하겠다고?
그에게는 천사들이 평생을 싸워 온 암살자들의 집단, 암천일세와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그랬기에 간절히 바랐다.
자신의 뜻을 잇는 후인이 그 천사들을 배제하고 다시금 온전한 인간의 세상을 열어 주기를.
천사들과 공멸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부러진 검에 그 바람과 함께 남은 힘을 담았다.
평생을 걸쳐 쌓아 온 경험과 그 결실이 담긴 권능을.
– 신성을 얻은 이라면, 나의 마지막 유산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내 경험과 지식, 그리고 힘을 후인에게 전하노니. 부디 후인은 이런 일을 겪지 않기를.
– 인간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죽기 직전의 신화경의 무인이 아직 채 형성되지 않는 권능을 억지로 비틀어, 자신의 무기 안에 그 힘을 담았다.
– 권능, ‘전이(轉移)’.
– 그 대상은 내 유산을 최초로 접하는 신화경의 무인.
그리고 그 최후의 힘이, 지금 고스란히 타이니에게 옮겨 오고 있었다.
‘후으읍!’
창천검제가 겪어 왔던 수많은 전투 경험이, 단순히 사념으로 전해지는 정보가 아닌 농밀한 ‘체험’이 되어 몸에 새겨지고 있었다.
우우우웅.
영혼에 새겨지는 경험과 지식 속에서 타이니는 탄식했다.
‘굳이 녹턴으로 부수지 않아도 됐을 거야.’
창천검제는 신성을 얻은 이가 접했을 때 그의 권능을 얻게 되는 유산을 남긴 거였다.
하지만 정작 그 힘을 받아들이는 타이니의 표정은 안타까움으로 일그러졌다.
‘이건 나한테 큰 효용이 없어…….’
칠죄종을 상대할 수 있는 천사장과 그 군단을 막 신화경에 오른 상태로 혼자서 전멸시킨 강자, 창천검제.
하지만 그의 전투 경험은 속도와 기교, 그리고 감각을 중시하는 ‘검술’이 대부분이었다.
크롬벨이라면 모를까, 타이니가 굳이 참고할 만한 것은 기(氣), 즉 마나를 다루는 기법 정도뿐.
그런데 다음 목소리가 이어지는 순간, 그는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 내 상태가 상태인 만큼, 다른 힘은 온전히 전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그대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을 때 들었던 세상의 목소리와는 다른, 오직 한 사람의 목소리.
그것이 그의 영혼 전체를 진동시켰고, 이윽고 막대한 신성이 밀려왔다.
녹턴을 통했다면 원래의 십분지 일도 얻지 못했을 신성이, 고스란히 그에게 전해진 것이다.
우우우웅.
창천검제의 신성이 그대로 자신의 영혼에 더해진다는 것이 느껴진 순간.
‘읍!?’
우드드득.
타이니의 영혼이 급격히 성장하며, 신체의 한계까지 확장되기 시작했다.
오롯이 인간의 추앙만으로 신성을 손에 넣은 이의 카르마가 그의 영격을 강제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권능 불굴의 힘이 두 배 가까이 상승하며, 그의 육체 역시 그만큼 더욱 강하고 질기게 변화하는데.
‘우오오오!’
그 변화가 끝나 갈 때쯤.
또 다른 목소리가 다시 그의 영혼을 울렸다.
– 하늘 위에 적이 있다. 빌어먹을 것들. 내가 미리 알고만 있었어도.
무적권마의 목소리는 자신이 신화경에 오른 그 영광스러운 순간에 똥물을 뿌린 천사들에 대한 증오로 점철되어 있었다.
무적권마의 그 격렬한 분노가 뇌리를 스친 직후.
역시나 예전에는 듣지 못했던 목소리가 이어졌다.
– 신화경에 닿은 이라면 내 진짜 유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적권마는 창천검제처럼 권능을 변화시키지 않았다.
아니, 그는 애초에 신화경에 오르면서 스스로 권능을 완성했기에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두 손으로 펼치는 모든 기술의 힘이 ‘다섯 배로 증폭’되는, 아주 단순하지만 상리를 무시하는 권능을.
설령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는 자신의 것을 남에게 양보할 성정이 아니었다.
대신 그는 죽기 직전에 얻은 마지막 깨달음을 남겼다.
기기묘묘한 무구들을 가진 천사들과 전투를 벌인 끝에 기껏 애병에 신성을 남겨 놓았더니 한쪽이 강탈당하는 광경을 보면서 느낀 깨달음을.
– 무기는 의미가 없다. 저 빌어먹을 것들을 쳐 죽이려면, 직접 인간의 손으로 하라.
– 신화경의 무인이라면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 ‘하늘을 깨트릴 손(破天手)’을.
– 뼈대를 마련해 놨으니, 부족한 부분은 후인이 알아서 채워 넣어라. 저 빌어먹을 하늘 것들을 모조리 쳐 죽일 수 있게.
오직 두 주먹으로 제국을 멸망시켰던 신화경의 초인.
그가 삶의 끝에서 필생의 깨달음과 분노를 담아 만든 수법이, 타이니의 영혼에 그대로 때려 박히듯 새겨졌다.
그리고 그것은, 그보다 앞선 시대를 살았던 창천검제의 경험과.
‘이건 불굴의 권능이나 멸살의 권능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것을 받아들인 타이니의 경험을 토대로 순식간에 완성이 되었다.
거기다 녹턴이 무적권마의 반쪽 권갑에 남긴 신성을 먹어 치우고 그의 권능, ‘증폭’을 얻게 된 순간.
타이니의 영혼과 육체를 상승시킨 창천검제의 신성이, 그 모든 것을 결합시킨 힘을 그의 손에 그대로 심어 버렸다.
그리고.
우우우웅.
[……기대 이상이군. 기다려, 티나. 모두들.]세상의 상처 너머에 있을 동료들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알린 타이니가 녹턴을 잡지 않은 왼손에 노을빛 오러를 집중시켰다.
다시 한번 빅뱅을 시도하는 것이지만, 이전만큼의 초조함은 없었다.
그가 받아들인 창천검제의 고절한 무학이, 움직임 없이도 전력을 토해 낼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이윽고 무적권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깨달음이 깃들며 변화한, 말 그대로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손(不滅手)’에서 노을빛 파멸이 토해졌다.
그리고.
번쩍.
쩌어어어어엉!
그 빛은 신을 먹는 공간이라는 회색의 공간을 일순간 다시 한번 찢어발겼다.
그러자.
쿠드드드드득.
이전보다 더욱 맹렬한 기세로 급격히 그 공간이 쪼그라드는 순간.
‘이크.’
자유를 얻은 타이니는 가속된 시간 속에서도 급격히 압축되는 회색 공간을 보면서 소름 끼치는 공포를 느꼈다.
그 공간 안에서 자신을 집어삼켜서 다시 상처를 회복할 양분으로 삼겠다는 세계의 의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 먹어라. 일부만.’
타이니는 그 순간 분신을 만들어 냈다.
그 분신은, 부서져 신성의 껍데기만 남은 창천검제의 부러진 검과 무적권마의 권갑의 흔적들을 가득 안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
이윽고.
콰득.
회색 공간이 그 분신과 흔적들을 집어삼키며 보이지도 않는 작은 점으로 수렴하는 순간.
타이니의 몸은 스스로 만들어 낸 회색 균열을 뚫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