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84
484화. 어쩌라고, X신아!
“네놈!?”
“못 간다고.”
히죽.
우드득.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자세 그대로 나태의 발목을 움켜쥔 새하얀 머리의 근육질 기사, 타이니가 멸살의 권능과 함께 자신의 오러를 강제로 나태의 몸에 흘려 넣었다
우우우웅.
“이까짓 거!”
파지지직.
검은 마기와 노을빛 오러가 힘겨루기를 시작하는데.
본래 총체적인 마력량으로는 우위에 서던 나태의 마기가 타이니의 손에서 흘러나온 오러에 오히려 밀리고 있었다.
파지지지직.
“끄으윽.”
[대체 어떻게……!?]나태가 신음과 함께 흘린 그 정신파에는, 타이니가 세상의 상처를 벗어난 방법과 그 엄청난 오러 출력에 대한 의문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타이니의 대답은 간결했다.
“잘!”
스스로 불러낸 크롬벨의 빅뱅에 의해 왼팔을 잃고 멸마의 빛에 왼쪽 발목까지 잃은 나태의 상태 역시 정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차이를 만든 더 큰 이유는.
‘불멸수(不滅手). 쓸 만하네.’
무적권마의 권능과 마지막 깨달음에 창천검제의 경험과 타이니의 재능이 합쳐져서 만들어 낸, 상리를 벗어난 또 하나의 권능이었다.
“넌 오늘 죽는다. 쓰레기.”
콰아아아앙.
[빌어먹을!!]이내 노을빛에 완전히 휩싸인 나태는 마기를 모아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데 집중했다.
[그래 봤자, 내 권능은 어쩔 수 없다!]“지랄.”
발악 같은 영파를 타이니는 썩은 미소 하나로 받아쳤다.
그리고.
슈우우우우웅.
그대로 부여잡은 나태의 발목을 이끌고 빠른 속도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중력에 의한 자연스러운 추락이라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
동시에 타이니의 몸까지 짙은 노을빛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네놈, 지금 뭘 하려고…….] [뭐긴, 네놈을 죽을 때까지 패려고 그런다.] [웃기지 마라! 그런다고 내가……!] [내가 웃기려는 것 같아?]혼란에 빠진 나태의 영파에도 타이니의 살벌한 미소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세상의 상처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다급한 마음에 그림자 도약을 썼고, 그때 눈앞에 보인 놈의 발목을 얼떨결에 붙잡았다.
놈의 마기가 만들어 가는 패턴을 보니, 손을 놓는 순간 튈 것이 자명한 상황.
그렇다고 당장 빅뱅을 쓰자 하니, 놈의 저항을 힘으로 찍어 누르는 와중에 정신을 통일시키면서 중력과 폭발 속성을 연계시켜 정교한 패턴까지 짜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나태의 발목을 붙잡은 타이니가 그대로 노을빛 유성이 되어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수면에 도달하는 순간 한 번 ‘휘둘러’진 나태의 몸이 해수면을 폭발시키며 해일을 만들어 냈다.
나태의 몸을 무기로 삼아 발동한 유성 떨구기.
전심전력을 다해 오직 파괴만을 위해 휘둘러지는 전생의 필살기가 주변의 환경을 말 그대로 터트려 버렸다.
그리고 그 한 방으로 끝도 아니었다.
그대로 잠수해서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타이니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향해 나태를 휘둘렀다.
그 주된 대상은 바다를 꽉 채운 인어족들이었는데.
꽈아아아아앙!
쾅!
우르르르릉.
– 캬아악!
– 크락투스!
– 락크투스!
어찌 된 건지, 인어족들은 그 무자비한 폭력을 피하지 않고 도리어 달려들어 왔다.
[여왕의 원수, 왕의 원수 죽여!!!]셀 수 없이 많은 인어족들이 동시에 뿜어내는 의지가 영파가 되어 그의 머릿속을 두들겼다.
‘왕의 원수는 또 뭐야?’
그 뜻은 알 수 없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나태를 휘두르는 족족 이상하게 그 몸을 향해 달려드는 것 같은 인어족의 모습은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꽈아아아앙!
꽈아아앙!
우르르르르릉.
강해진 만큼 더욱 진해지고 빨라진 노을빛 유성이 바닷속의 인어족들 사이를 휘저으며 연신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폭발을 가장 먼저 감당해야 하는 것은, 타이니가 평상시에 쓰던 녹턴 대신 잡고 휘두르는 사람 형태의 무기(?)였다.
[아무리 그래도 내 권능을…….]꽈아아아앙!
[……어쩔 수는…….]꽈아아아앙!
[없다!!]콰아아아아앙.
폭발이 이어질수록, 나태의 영파 역시 점차 줄어들어만 갔다.
그리고 그 발악에도 아랑곳없이, 타이니는 무기(?)에 과부하가 걸릴 때까지 사방을 터트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래 봤자! 네놈이 지치는 순간, 그때야말로 끝이다!]이미 완전히 제압당한 상대의 시답지 않은 협박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저 끊임없이 나태를 압박하는 오러를 유지하며 놈의 몸에서 유성 떨구기를 터트리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꽈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콰르르르르르르.
우르르르르릉.
거듭된 폭발에 해류의 흐름이 바뀌고, 지진이 난 듯 해저의 바닥까지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그 어느 순간부터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꽈아아아아앙!
폭발과 함께 시뻘겋게 달아오른 놈의 주변.
놈의 몸을 세상과 괴리시키는 듯한 붉은 선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곧 한계인가 봐?]콰아아아아아앙!
그대로 비웃음을 날려 주는데도 나태는 응답이 없었다.
아니, 두 눈을 아예 꽉 감은 채 무언가 인내하는가 싶더니.
콰아아아아아아앙!
끝내 심해의 바닥에 놈을 틀어박는 순간.
타이니는 한순간 허전해지는 손의 느낌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하……?!’
분명히 휘두를 때까지 중량감이 느껴졌었는데, 놈을 바닥에 처박은 직후 그의 손아귀에 남아 있는 것은 으스러진 각반과 핏물이 배어 나오는 놈의 발목뿐이었다.
그리고.
우우우우우웅.
콰콰콰콰콰콰.
그 발목에서부터 솟구친 거대한 마법진이 사방에 새까만 마기를 흩뿌리며 타이니의 감각을 흐트러트리고 있었다.
대충 느끼기에도 8서클의 대마법을 가뿐히 상회하는 거대한 마력을, 오직 감각을 흐트러트리는 데만 특화한 마법.
그 패턴은 8서클 마법치고는 그리 정교하지 않았지만, 무식하게 많은 양의 마력이 그 단점을 메꾸고 있었다.
‘어이가 없네…….’
나태, 아니 인류의 배반자 솜누스가 마법을 쓴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
눈앞의 상황은 분명 현실이었다.
그리고 느긋하게 연유를 추론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쾅!
심해의 바닥을 거세게 구른 타이니의 오른손이 쫙 펴져서 좌우로 휘둘러지는 순간.
그 손에서 노을빛 마나가 돌풍처럼 뻗어 나오며 사방의 어둠을 그대로 지워 버리듯 밀어 냈다.
자욱한 마기 안에 담겨 있던 독기와 저주까지 한 톨 남기지 않고 그대로 지워 버리는 노을빛 돌풍.
창천검제가 끝없이 쏟아지는 연막탄과 독탄이나 비침의 세례를 걷어 내던 수법, 천풍장(天風掌)이 서대륙의 심해에서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는 순간.
타이니는 단번에 걷어 낸 마기의 한참 위쪽에서 이미 해수면 근처까지 도달한 나태의 기척을 확인했다.
[미꾸라지 같은 놈이!!]쾅!
쩌저저적.
그대로 도약하는 순간 심해의 바닥이 터져 나갈 듯이 갈라지고.
우르르르릉.
타이니의 몸은 그야말로 심해를 가르는 노을빛 번개가 되어 해수면을 관통하듯 솟구쳐 올랐다.
콰아아아아아앙!
[지독한……!]그 기세에 떠밀리듯 튕겨 나간 나태가 허공에서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멀리 날아가려 할 때.
마치 관성이 없는 것처럼 허공에서 직각으로 꺾인 유성이 공간을 단축하듯 그의 바로 뒤로 따라붙었다.
[……놈!]스아아아.
파지지직.
반전하듯 돌아선 나태의 손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또다시 시야를 가리는 검은 안개, 그리고 살상보다 감각 교란을 목적에 둔 검은 번개의 세례였다.
[갑자기 마법쟁이가 되셨어?]슬로스는 적의 비웃음에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반신급이라 한들 사지 중 셋이 잘려 나간 무투가가 무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동급의 강자를 상대로 말이다.
‘……동급의 강자?’
슬로스는 자신이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는 것 자체에 놀랐고.
그 순간, 생사의 위기 속에서 치열한 집중력으로 만들어 내던 정교한 마법에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잡았다!]새하얀 치아를 드러낸 타이니의 살벌한 미소가 그의 눈에 보이는 순간.
복부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가해졌다.
꽈아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슬로스에겐 다른 소리도 들렸다.
쨍그랑, 하는 유리창이 깨어지는 듯한 소리.
그것은 천오백 년 전에 완성한 이래 그를 무적의 칠죄종으로 만들어 주었던 권능, 게으른 시간이 깨어지는 소리였다.
‘커헉!’
2천 년 전의 마계 대전 이후로 느껴 본 적 없는 엄청난 통증이 온몸을 관통했다.
스스로 불러낸 크롬벨의 빅뱅에 팔이 날아갔던 때나, 인류 연합이 마지막으로 쥐어짜 낸 멸마의 빛을 왼쪽 발목에 몰아넣어 터트렸던 때의 고통.
그 모두를 합한 것보다 더한 충격이 전신을 내달리며 그의 마지막 남은 마력을 뒤흔들었다.
쾅!
뒤이어 무언가가 거세게 부딪혀 오더니.
꾸구구구궁.
콰아아아앙!
콰르르르르릉.
그 충격에 멀리 튕겨 나간 자신의 몸이 어딘가에 깊숙이 틀어박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방을 울리는 여진에 흙더미가 무너지는 느낌까지.
우르르르르릉.
그 순간 온몸을 내달린 통증이, 그가 2천 년 동안 잊고 있었던 공포를 상기시켰다.
– 죽는다.
‘정말로 죽는다.’
그럴 순 없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
그 강렬한 생존 의지가 마지막 마력을 짜내서 폭발을 일으키게 했다.
콰아아앙!
눈앞의 흙더미를 걷어 냄과 동시에, 그의 몸은 어디선가 비쳐 들어오는 밝은 빛을 향해 쏘아지듯 튕겨 나갔다.
마치 순수한 어둠을 향해 몸을 던지던 2천 년 전의 그때처럼, 지금의 슬로스는 한 줌도 안 되는 빛을 향해 몸을 던졌다.
생존 의지가 모든 것에 우선하던 그때.
그 빛의 가운데서 살벌한 웃음을 짓는 새하얀 머리의 인간이 보였다.
[이야, 이래도 안 죽어?]섬찟한 영파와 함께 등줄기를 내달리는 공포.
그것이 아련한 기억을 불러왔다.
그는 언젠가 지금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2천 년 전, 모든 것이 변했던 그 순간.
– 내게 와라.
지금과 같은 빛이 아닌, 짙은 어둠.
그 안에서 조용히 미소 짓던 ‘공포’를 마주했을 때의 기억.
시간을 거슬러 인류의 영웅이 되었던, 수없이 많은 위기를 헤쳐 왔던 전사 솜누스가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직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분의 모습.
– 이건 결코 굴복이 아니다. 순리를 따르는 것뿐.
그때부터 그는 스스로를 속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얻은 영생과 영화를 즐겼다.
크롬벨이건 그녀건, 모두 순리를 거부한 여신의 혐오스러운 노예로 치부했다.
2천 년 동안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결국 그 본질은…….
쾅!
강렬한 통증과 함께 몸이 허공을 날았다.
그 순간 직감했다.
내장이 모두 터져나갔다는 것을.
털썩.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하나 남은 손을 움직여 바닥을 기었다.
“사, 살아…….”
모든 것을 버리고 얻은 영생이다.
배반자가 되어, 친구나 동료는 물론 심지어 자신까지 속여 가며 살아온 세월이다.
이대로 죽기는 싫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인류의 배반자로 죽을 수는 없었다.
“난, 살아야 해…….”
콰득.
땅을 구르고 기면서라도, 어떻게든.
슬로스의 시선은 오직 적이 없는 공간만을 향해 있었다.
“정말 끝까지 쓰레기답구나.”
적의 비웃음도 당장은 수치스럽지도 않았다.
‘살아서, 그녀를 만나야 한다. 내가 옳았다고, 당당히 말해 줘야 해…….’
하지만 그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시야를 가리는 그림자가 다가오는 순간에는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날 죽이면, 그분이 바로 강림하실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나온 말.
하지만 또한 진실이기도 했다.
“나, 난, 마족에 대해! 그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날 살려 주면, 어떻게든…….”
말을 하다 보니, 적이 자신을 살려 놓을 이유가 충분하다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게 그 기대감에 화색이 돌기까지 하는데.
“어쩌라고, X신아.”
돌아온 대답은 살기에 찬 미소, 그리고 커다란 워해머가 시야를 가리는 광경뿐이었다.
– 꽈아아아아아아앙!
그것이 인류의 배반자 솜누스이자 칠죄종의 나태, 슬로스의 마지막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