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96
496화. 모든 재앙의 끝
‘다르다.’
신위에 올라선 뒤 그 힘을 수습하면서 다시 눈을 뜨는 순간.
타이니는 세상을 인식하는 모든 감각이 바뀌어 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었다.
정령 합신으로 부풀렸던 몸이 다시금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전혀 약해진 것 같지는 않았다.
권능 불굴은 이제 온전히 완성되어 더 이상 절대 지치거나 다칠 것 같지 않았고.
발휘할 수 있는 힘은 이전에 비해 몇 배 이상 상승한 것 같았다.
동시에, 마왕이 몇 개의 권능이 박살 나면서도 타격을 받지 않았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본래의 권능이 아니었던 거야.’
아마도 마왕이 가진 진짜 권능은.
‘멸살의 권능 하나.’
그 사실이 자연스레 느껴졌다.
또한, 녹턴을 만들고 수없이 많은 권능을 수집한 것이 마왕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것도.
‘신성 역시 한계가 없는 것이 아닌데.’
권능을 많이 수집할수록, 그 권능들을 유지하기 위해 신성을 더 잘게 쪼개야 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마왕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생각을 하자마자 머릿속에 그 이유가 떠올랐다.
마치 세상이 직접 그에게 설명을 해 주는 것 같은 느낌.
신화시대의 신들이 ‘전지(全知)’의 힘을 자랑했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라 짐작되었다.
‘여신이 직접 손을 쓰지 못한다면, 결국 마왕이 상대해야 할 것은 반신급의 천사들 정도일 테니.’
다양한 특성을 가진 반신급이나 격하의 많은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다양한 권능을 모으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지.’
우우우웅.
‘아, 널 버리겠다는 건 아니야.’
진동하는 녹턴을 달랜 타이니는, 몸 안에 자리 잡아 가는 권능들 가운데 질투와 나태의 권능을 덜어 내서 세상 속에 흩어 버렸다.
또한 아직 녹턴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던 때에 억지로 삼켰었던 폭식, 탐욕, 색욕의 신성도 그 흔적까지 깨끗하게 치워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온전히 자신만의 신성인 불굴을 채워 갔다.
우우웅.
그러자 그제야 마왕의 눈길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네놈!?]꽈아아아아아앙!
순식간에 코앞에서 휘둘러지는 워해머.
반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다행히 대신 막아 주는 친구가 있었다.
[뭔가를 준비하는 거겠지? 뭔지 몰라도 최대한 빨리 끝내! 오래는 못 막아!]콰콰쾅!
[비켜라!] [웃기지 마!]찬란한 신성력을 뿜어내는 용사, 크롬벨이 어느새 그의 앞에서 연신 마왕의 해머를 흘려 내는데.
이전의 자신에게도 버거웠던 마왕의 속도를 크롬벨은 용케도 따라잡고 있었다.
[모두 타이니를 지킵시다!] [오케이!]꽈아아아앙!
저릭과 실버 팽 역시 여전히 합체 상태(?)를 유지하며 무서운 속도의 전투에 간간이 끼어들었는데.
크롬벨은 자신의 주변에 보호막을 덧씌우고 저릭과 실버 팽에게 축복까지 걸어 주면서, 마왕을 상대로 수세를 유지하며 버티고 있었다.
[대체 고대의 망령이 왜……!]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를!]모든 축복이나 기술들이 적에게 실시간으로 분쇄되는 가운데, 크롬벨은 눈을 의심할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그 빈틈을 메워 가면서도 마왕이 타이니에게 접근하는 것을 치열하게 방해하고 있었다.
그러자 이내, 마왕의 기세가 바뀌었다.
[흥, 그래. 어디 이것도 막아 봐라!]마왕의 워해머에서, 타이니도 한 번 보았던 요사스럽게 응축 회전하는 마기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진짜 멸살의 권능.’
그랬기에 저걸 막아 내고 살아났다는 것에 마왕이 놀랐던 거겠지.
‘막아도 막을 수 없어야 하는 권능인데.’
자신은 녹턴이 있었기에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입술을 질끈 깨문 크롬벨이 온몸의 신성력을 끌어올린 채 그 정면으로 다가서는 것이 보였다.
‘왜……?’
못 막는다는 것을 알 텐데?
[한 번 막아 내는 게 내 한계다.]응?
[만나서 반가웠다. 친구.]이런, 씨…….
순간 울컥하는 마음과 더불어 온갖 감정이 솟구쳤고.
그 감정의 격동만큼 빠르게 신성이 수습되면서, 몸의 감각이 온전히 재정립되었다.
그리고.
[비켜!]콰아아아앙!
타이니는 그 순간, 크롬벨까지 밀어 내 가며 마왕의 공격에 정면으로 맞섰다.
크기만 다른, 똑같은 형태의 워해머.
맥동하는 노을빛 구체와, 응축하며 회전하는 마기의 구체.
똑같이 검은 머리에 살벌하게 미소짓는 얼굴까지.
[뒈져라!] [너야말로!]묘하게 서로 닮아 있는 그들이, 힘을 아끼지 않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 꽈아아아아아아앙!
하늘의 구름을 모조리 소멸시키고 바다에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는 충격.
그것은, 처절했던 격전의 마무리를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마왕은 빅뱅의 일격에 무기와 오른팔이 날아간 이후에도 한동안 발악하듯 싸웠다.
하지만 어떤 공격도, 심지어 멸살의 권능도 타이니의 불굴을 뚫어 내지 못했다.
결국 당연하게도.
콰드드드득.
[이런……. 이렇게…….]가시 면류관 탈과 함께 한 줄기 어둠으로 변해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놈은 최후의 힘을 짜내 저주를 남겼다.
[반드시 다시 섭리의 반동이…….]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저주의 대상은 그의 마지막 메시지를 깔끔하게 무시해 버렸다.
“거기까진 내 알 바가 아냐.”
꽈아아아아아앙!
2차 마계 대전.
길었던 전쟁은 그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정말 끝난 거야?”
“그렇…… 겠지?”
“허…….”
“이걸 본 게 우리 셋뿐이라는 게 억울한데.”
“크르르! 셋이라니!! 진짜 날 탈것 취급하는 거냐!”
최후의 전장에 자리했던 4인은 흩어진 어둠의 잔재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드디어 끝났구나.”
“알려야지?”
“그럼.”
하나둘씩 환한 미소 속에 짙은 피로감을 지우며, 자신들이 돌아가야 할 북쪽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 * *
최후의 결사대와 함께 대기하다가 사라졌던 용사가 에낙센에 돌아오는 즉시.
갑자기 쏟아지는 해일과 기상 변화 속에서 긴장감 가득하게 대기 중이던 연합군 전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사정이 얼추 전달되자마자, 환호성은 훨씬 더 커졌다.
“빛의 기사가 마왕을 죽였다!”
“마계 대전이 끝났다!”
“평화가 찾아왔다!!!”
“우와아아아아아!”
최후의 결사대에 속한 성령 기사, 갓 핸드가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죽었다는 사실은 대다수 인간에게 슬픔 거리도 되지 못했고.
병력들은 그를 그저 영광스러운 영웅으로서 칭송할 뿐이었다.
슬퍼하는 이들은 오직, 갓 핸드를 오랫동안 봐 왔던 신전의 고위층들뿐이었는데.
“그분이 결국, 그렇게…….”
“여신이시여…….”
“모두 기뻐합시다. 그분께서 천국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실 터이니…….”
교황과 추기경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찬송가를 불렀는데.
그런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정말 기쁨일지 지극한 슬픔일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성기사 영감, 끝까지 얼굴을 못 봤어.’
아마 울면서 웃고 있는 저들도 그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기사 영감님, 천국 갔을까?”
루나가 왜인지 울적한 얼굴로 불쑥 물었지만, 타이니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믿어야지.”
이제는 신과 천사, 마왕이 얽힌 내부 사정을 얼추 알게 된 데다 진짜 신위에까지 오른 타이니는 신전의 기대가 헛된 것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굳이 슬픔을 더해 줄 필요는 없었으니까.
“어쩌면 그 영감님, 우리…….”
“음?”
“아, 아냐. 아무것도.”
루나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에스티나의 눈짓을 받고는 말을 멈췄다.
궁금했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으려는 눈치였다.
긴 세월의 전쟁은 막을 내린 뒤에도 모두에게 지극한 피로감을 남겼으니.
온전한 신성을 손에 넣은 타이니 역시도 그 정신적 피로감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쉬자. 우리 모두.”
“그래.”
“타이니, 엘븐하임 갈 거지?”
“이 와중에?”
“뒷정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 이를테면 검제 영감님이라든가.”
“너까지 영감님이라고 부르는 거야? 그런데 너 나이가…….”
콰직.
“억!?”
오러까지 동원한 그녀의 꼬집기는 신조차 통증을 느끼게 하는 데 성공했고.
“어우, 뭘 이렇게까지…….”
얼얼한 옆구리를 쓰다듬는 타이니의 표정은 그것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입가에 작은 미소를 만들어 냈다.
그에 헛웃음을 짓던 타이니는, 복귀하자마자 일선 지휘관들과 무언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검제를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영감님! 저희 먼저 떠나도 됩니까!?”
“이놈이 그걸 말이라고……!”
반사적으로 벌컥 화를 내던 검제는 이내 타이니의 곁에서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는 에스티나의 눈빛을 보며 급격히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가 결국.
“……당장 급한 일은 없지만, 그래도 네가 연합의 상징이 되어 줘야 하는데……. 그, 그런데. 흐, 씨. 젠장! 가라! 대신 필요하면 부를 거다? 그땐 무조건 날아와야 한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는 검제를 보며 타이니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옙! 엘븐하임에 있을 테니 연락 주세요!”
그런데.
“아! 안 돼! 그 전에 아세리안 먼저!”
루나가 바로 태클을 걸었다.
“……왜?”
“그, 가문 복원, 해 준다고, 연락받았단 말이야. 얼마 전에.”
에스티나가 쏘아보는 눈초리에 루나는 휙 딴청을 부리면서도 더듬더듬 말을 이어 갔다.
“그, 황후랑, 황제 폐하랑 다 약속한 건데…….”
그러다 당사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는 자신감이 생긴 듯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조카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가문부터!!”
꽝!
“악!”
루나가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를 지르는 순간, 분노의 주먹질이 그녀의 머리통에 작렬하며 다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이제 모두 돌아가자.”
“그래야겠지.”
일행의 대다수는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우리 오크 전사들은 내버려 두면 알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거다.”
“우리 수인족 역시 마찬가지.”
“드워프들은 이미 준비 중이다.”
“엘프들도 마찬가지예요. 아마 모였다고 분란을 일으킬 종족은 인간뿐이겠죠.”
“……오크도 있는데?”
“충분히 싸웠으니까요. 그들은.”
“끙.”
인간족을 향한 비난 같았지만, 엄연한 사실이라.
움찔한 아르곤과 타이니는 검제와 제나스를 슬쩍 바라보았다.
도착하자마자 일선 지휘관들에게 붙잡혀 이런저런 지시를 하는 검제의 주름진 얼굴과, 그 옆에서 정신없이 무언가를 받아 적고 있는 제나스의 모습.
그 광경을 본 두 사람은 동시에 눈을 마주치고는.
– 철저히 모른 척하자.
굳이 메시지를 전할 필요도 없이, 눈빛만으로 서로의 뜻을 확인했다.
다만 뒤이어 아르곤이 입을 연 순간.
“커흠. 그럼 나도 제국으로…….”
“네가 왜?”
이후의 진로에 대한 의견은 어긋났으니.
“그, 루나가 간다며?”
“그런데 네가 왜?”
“그러니까 나도…….”
“그러니까 네가 왜?”
타이니의 철저한 방어에 아르곤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 변해 가기 시작했다.
“그냥 좀 같이 가면 안 되냐!!”
“시룬데?”
“으……아아아악! 악!”
아르곤이 차마 칼을 뽑지도 주먹을 휘두르지도 못한 채 갑작스레 괴성을 지르자, 가뜩이나 몰리던 시선이 더욱더 많아졌다.
그러다.
“짓궂어. 그냥. 같이 가.”
옆구리를 쿡 찌른 루나의 찌푸린 얼굴에 타이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쓰읍. 하, 저거 마음에 안 드는데.”
“내가 마음에 들어.”
“컥!?”
갑자기 칼에라도 맞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 루나를 바라보는 타이니와, 악을 쓰던 와중에도 귀를 쫑긋하며 얼굴을 붉히는 아르곤.
결국 제국행이 결정된 네 사람은 모두 함께 카일룸이 올라탔다.
그리고.
“우와아아아아!”
“감사합니다!”
“빛의 기사를 찬양하라!”
“12대 기사에게 영광을!!!”
쩌렁쩌렁한 환호성을 받으며 그들이 하늘 위로 날아오를 때.
문득 생각난 듯이 에스티나가 타이니에게 물었다.
“아, 신위에 올랐다면 신명 같은 게 붙지 않아?”
“신명?”
“그 신의 특성을 설명해 주는 호칭 같은 거 말이야.”
“그런 게 있겠어? 그건 사람들이 불러 주는 거 아냐?”
아르곤이 딴지를 걸었지만, 타이니는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있구나!?”
그에 루나 역시 신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고.
“그럼 신명은 뭐야? 전투의 신? 해머의 신?”
장난스러운 에스티나의 물음에 타이니는 멋쩍은 얼굴로 뒤통수를 긁으며 느릿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불굴의 신.”
“푸하하하. 그게 뭐야, 애매하게!”
“닥쳐, 아르곤.”
툴툴대기는 했지만, 타이니는 결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두 번의 생에 걸친 삶의 길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그 신명이, 사실은 꽤나 마음에 들었으니까.
“이제는 굳이 그리 저항할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 것이다.
반드시.
Fin.
*에필로그 1~4화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