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500
500화. Real Epilogue
“지금 그 말, 무슨 말이죠? 설명해 주시죠.”
“그게…….”
빛나는 은빛 머리카락을 가진 기사 아저씨가 그 말을 한 직후부터, 모녀의 생활 공간이 대번에 바뀌었다.
비좁은 다락방에서, 귀빈실로.
그리고 하녀에서 손님으로.
심지어 마계 대전의 영웅 소드 엠퍼러가 그녀와 아이를 만나기 위해 직접 발걸음을 하기까지 했다.
“저, 저는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리.”
새하얀 머리에 주름진 얼굴, 하지만 위풍당당한 체격의 귀족을 보자마자 엄마는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그에 반해 아이는 멀뚱멀뚱한 눈으로 무서운 인상의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분명 험한 인상인데, 왜인지 무섭지가 않았다.
“귀엽구나. 타이니를 안다고?”
“저 말고, 엄마가요. 친구랬어요.”
아무리 영특하다 해도, 아이는 아직 광휘의 기사라는 사람이 가진 이름의 무게를 체감하지 못했다.
그저 엄마가 유명한 사람의 친구라는 사실을 자랑스레 말할 뿐이었다.
“정말인가?”
“예, 예. 친구와 타이니를 어렸을 때 돌보긴 했습니다.”
“호오…….”
엄마의 대답에 귀족 할아버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에요!”
“리나!”
“왜! 사실 맞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엄마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말을 보탠 거였는데, 무서운 인상의 할아버지가 씩 웃었다.
“그렇군.”
이상하게 포근한 느낌이었다.
“엘븐하임에 연락할 테니, 그동안 정중히 대우하도록.”
“각하, 여태 사기꾼들이 많지 않았습니까.”
“그 말은, 제나스가 실수했다는 건가?”
“아, 아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끄럽고, 대우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
“하지만…….”
“하……. 자네, 자식 안 낳아 봤지?”
“예? 예. 그런데 왜 갑자기…….”
“어떤 부모도 자식이 보는 앞에서 죄를 짓지는 못해. 특히 저런 눈빛의 어미는.”
아이는 무서운 인상의 할아버지와 집사 아저씨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웃음이 나왔다.
왜인지 무서운 할아버지가 엄마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할아버지의 틀린 말을 지적해 주기로 했다.
“아니에요!”
“응?”
“할부지, 틀렸어요!”
“내가?”
의아해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아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때리는 건 죄죠?”
“리나!”
엄마가 기겁한 표정으로 손을 저었지만, 아이는 보지 못했다.
“어, 어. 응, 그렇단다. 그런데 왜……? 설마?”
할아버지의 눈빛이 집사 아저씨를 향하는 순간, 집사 아저씨가 기겁을 했다.
“절대, 절대 아닙니다, 각하! 제가 어떻게 아이를…….”
놀란 집사 아저씨가 손을 막 내젓자.
이내 할아버지의 무서운 눈빛이 엄마를 향했다.
그러자 아이는 바로 그 앞을 가로막았다.
“엄마 아니에요!”
“으, 응?”
“아빠가요. 엄마랑 저, 많이 때렸어요.”
“응?”
“부모도 죄지어요. 자식이 봐도.”
“…….”
아이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할아버지에게 웃어 보였다.
– 우리 딸. 진짜 똑똑하네.
틀린 말을 지적해 줬으니, 엄마가 늘 해 주던 칭찬을 할아버지도 해 줄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왜인지 그 순간 할아버지의 표정은 너무 무거워 보였다.
그때 엄마가 뭐라 말을 꺼내려 했지만, 할아버지가 손을 들어 막았다.
“아가, 그래서 네 아빠는? 지금 어디 있니?”
그 순간 왜인지 따뜻한 방 안이 살짝 추워져서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아이는 다시 씩씩하게 대답했다.
아빠를 떠올리면 지금도 무서웠지만, 이제 그 아빠는 세상에 없었으니까.
“천벌 받았어요.”
“응?”
그 대답에 할아버지가 당황했다.
그래서 더 자세히 설명을 해 줬다.
“천사님이 빛이 쫙, 하니까 아빠가 넘어져서 안 일어났어요!”
그 순간 할아버지의 표정이 다시 변했다.
“……천사? 빛?”
“아, 각하. 그러니까 마족들이 일으킨 그 재앙을…….”
“자넨 닥치게.”
“옙.”
무서운 할아버지가 갑자기 집사 아저씨를 혼냈다.
“아가, 천사를 봤니?”
“아뇨!”
“그런데 어떻게 그걸 천사라고…….”
“그냥, 그런 것 같아서……. 아니, 에요?”
예상치 못한 추궁에 아이의 표정이 시무룩해지는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헛웃음을 짓더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 아니야. 네 말이 맞단다. 재밌구나, 참.”
천벌이 재밌는 건가?
역시 무서운 할아버지 같았다.
그런데, 이어진 할아버지의 말은 의외였다.
“여기 있는 동안 편히 쉬거라. 할아버지가 자주 놀러 오마.”
“할아버지가요?”
“그래. 널 보니, 내 딸이 어릴 때가 생각나는구나. 놀러 와도 되지?”
그 순간 정말 신이 났지만, 아이는 엄마의 눈치를 봐야 했다.
“예에! 그런데, 엄마랑 저는 일을 해야 하는데요.”
“일은 안 해도……. 잠깐만, 너도 일을?”
“엄마 도와야 해요! 엄마 일 많이 해요!”
그 순간 무서운 할아버지가 집사 아저씨를 돌아보았고.
집사 아저씨는 왜인지 갑자기 꽁꽁 얼어붙은 것처럼 보였다.
“아직 어린 아이한테 일을……? 네놈이 지금 발렌티아의 명예에 똥칠을 해?”
할아버지의 모습은 뒤통수밖에 안 보였지만, 어쩐지 더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이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저, 저는 시, 시킨 적 없습니다. 그냥 애가 멋대로…….”
“시끄럽고, 네놈 바로…….”
아이는 언젠가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엄마에게 화를 내던 아빠의 뒷모습.
그다음에는 매번 폭력이 이어졌었다.
‘안 되는데…….’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게 분위기가 따듯했고, 자신의 말을 처음으로 잘 들어 준 남자 어른이었다.
두 눈을 꼭 감은 아이가, 그때는 내지 못한 용기를 발휘해 할아버지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리고 소리쳤다.
“화, 화내지 마세요!”
“응?”
“화, 화내면…… 무, 무서워요.”
바들바들 떨리는 몸으로 두 눈을 질끈 감은 아이는 울지 않기 위해…… 아니, 우는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아빠는, 울면 보기 싫다고 더 때렸었으니까.
그런데.
“아, 아니야 아가. 할애비 화 안 내. 그럼. 절대 화 안 낸단다. 울지 말렴. 뚝.”
무서운 할아버지는 아이를 따듯하게 안아 들고 달래 주었다.
험하게 생긴 할아버지가 억지로 웃는 얼굴을 보니,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캬하하! 할부지. 우, 웃겨요.”
“그, 그래?”
엄마가 울다 웃으면 X꼬에 털 난댔는데.
왠지 웃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 아이는 평생 먹어 보지 못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따뜻한 물로 목욕을 했으며, 푹신한 침대에서 엄마를 꼭 끌어안고 단잠을 잘 수 있었다.
행복했다.
그 이후로 할아버지는 약속대로 매일 놀러 왔다.
그런데 엄마 친구의 소식은 통 들려오지 않았다.
“엄마 친구가, 원래 있던 곳에서 떠났다더구나.”
“예에?”
“뭘 찾는다는데, 소식이 닿는 대로 여기로 올 거야. 할애비가 그 녀석이 뭘 찾는지 알아보고 도우라고 말해 놨다.”
목마를 태워 주던 할아버지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었지만.
엄마는 한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듯했다.
아니, 아예 끙끙 앓기까지 했다.
“엄마? 왜 그래?”
“아냐. 괜찮아.”
괜찮다곤 했지만, 엄마는 그날 또 잠꼬대를 했다.
“내가 피해를 주면, 안 되는데…… 미안해…….”
왜 친구를 만나는데 피해를 준다는 걸까.
궁금했지만, 물어봐도 엄마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별채에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
평소처럼 다정한 눈빛은 아니었다.
“검은 머리, 검은 눈……. 몇 살이라고 했지? 5살? 6살?”
놀란 눈빛이었다.
고개를 끄덕여 주자, 할아버지가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녀석이 찾는 것이 너였구나, 너였어. 그 녀석의 누나. 불행한 삶, 검은 머리 성녀. 허, 허허…….”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예에?”
“아니, 아니다.”
할아버지가 말을 돌리는데, 그것이 불안했다.
늘 자상하던 할아버지가 평소 같지 않았다.
“저, 뭐, 자, 잘못했어요?”
엄마 말도 잘 듣고 착하게 지냈는데.
이 행복이 깨질까 봐 두려웠다.
그런데.
“아니, 아니야. 잘했지. 너무 잘했지.”
“에?”
“네 덕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았단다. 아니, 세상이 구원을 얻었지.”
“에에?”
“지금은 몰라도 된단다. 하지만……. 고맙구나, 아가.”
그 말을 듣고 나니 더 이해하기 힘들어졌지만, 상관없었다.
할아버지는 끝내 평소 같은 눈빛으로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으니까.
“헤헤.”
그리고 그날 오후에.
엄청 덩치 큰 두 아저씨가 별채에 찾아왔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것처럼 정원에 갑자기 나타났는데.
한 사람은 마치 이야기 속 기사님 같은 금발이었고, 한 사람은 아이와 똑같은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였다.
커다란 무기를 등에 메고 있었는데, 아이는 왜인지 그 아저씨들이 무섭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상하게 반가웠다.
“헤…….”
저도 모르게 조금씩 걸어서 다가가는 순간, 떨리는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던 두 아저씨가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이, 이럴 수가……!”
“저, 정말? 이게……!”
왜인지 자신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짓는 두 아저씨.
가까이 가서 보니, 잘생긴 금발 기사 아저씨도 왜인지 어디서 본 것 같았다.
두 사람 모두 따뜻하고 그리운 느낌.
“타이니!”
“왔구나!”
그때 별채에서 엄마와 할아버지가 뛰어나오는데.
검은 머리 아저씨가 엄마를 보고 놀랐다.
“엠……마?!”
역시, 엄마 친구가 맞았다.
그런데.
“타이니, 미안해. 너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었어. 찾으면 안 되는 걸 아는데…….”
이유는 모르지만, 엄마는 검은 머리 아저씨 앞에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할아버지가 또 무서운 눈으로 검은 머리 아저씨를 노려봤다.
“설마, 저 애가 너……!”
그 순간 검은 머리 아저씨가 버럭 화를 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영감! 내가 그때 몇 살이었는데!”
그러자 아이는 무서움에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으아아앙!”
그 순간 모든 어른들이 아이에게 집중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엄마였는데.
“우, 울지 마. 뚝. 에리나. 울면 안 돼.”
“에리나?”
검은 머리 아저씨가 놀라고, 엄마가 주춤했다.
“어. 그렇게 이름 지었어. 나도 그이, 아니 그놈도 검은 머리가 아니었는데. 놀랐어. 그리고…… 닮았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검은 머리 아저씨와 금발 아저씨가 동시에 다시 멍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정말, 정말이구나…….”
“그래, 그 이름이었…….”
검은 머리 아저씨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데.
무서울 만도 한 그 상황에서, 아이는 왜인지 자신의 눈에 똑같이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그 감정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우선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검은 머리 아저씨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문득 그 아저씨의 모습 위로 자신보다 작은, 아주 작은 검은 머리 아이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이유 모를 눈물이 자꾸 나오는데, 울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꾹 참고, 울고 있는 아저씨의 눈물부터 닦아 주었다.
“허, 허으……?”
그러자 아저씨가 아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덩치 큰 아저씨의 품속은 답답하기보다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아……. 아흐, 아흐흐흑.”
눈물을 닦아 주었는데도 아저씨는 더 많이 울었다.
“왜 울어? 울지 마요.”
“누나. 에리나, 누나……. 나 진짜, 진짜 노력 많이 했거든? 그래서……. 흐윽, 흑. 진짜,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무슨 말인지는 몰랐지만, 느낌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가 해 주던 대로 했다.
“참 잘했어요. 그러니까, 뚝.”
등을 두드려 주려 했는데 손이 닿지 않아, 아이는 커다란 아저씨의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왠지 익숙한 느낌.
그러자 아저씨가 울면서 웃었다.
“허, 흐흑. 흑. 그, 그래. 그럴게.”
그러다 X꼬에 털 난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그 옆에서 여전히 혼자서 울고 있는 금발 아저씨도 똑같이 다독여 주었다.
“에리나……. 그래, 그 이름이었지. 정말, 정말 미안해. 나는 당신 이름도 기억 못 하고…….”
이렇게 많이 우는 남자 어른들을 처음 봤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나오는데 이상하게 행복했다.
처음으로, 정말로 처음으로.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Fin.
지금까지 더 해머를 사랑해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인사드립니다. _(__)_
1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덕분에 지치지 않고 달려올수 있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최선의 마무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궁금한게 남았다! 마계대전이 끝난 이후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애들이 있다! 싶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신작 준비중이라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에 각자 행복을 찾아갈 이들의 소식도 따로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