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503
3화. 테르티우스
“그란돌 님이다!”
“대장인 그란돌…….”
“초월무구를 만들었다는…….”
“정말로 수염이 하나도…….”
“쉿, 그게 뭐가 중요해? 실력이 중요하지.”
귓가에 울려 오는 동족들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그란돌의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그러자 그 표정을 보며 혀를 차던 요한나가 그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익!?”
“좋냐?”
“……좋지 그럼. 내가 이 맛에 산책하는데.”
소꿉친구의 한심하다는 표정을 보면서도 그란돌은 꼿꼿이 고개를 들었다.
비록 사신의 무기 움브라-테그멘은 마계 대전에서 부서지고 말았지만, 수많은 마족의 생명을 거둔 그 초월무구를 그가 만들어 냈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요한나도 그것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더구나 최근에는 ‘또 하나의 성과’도 일궈 냈으니.
“그래. 잘났다, 정말.”
“그럼, 잘났지.”
그란돌의 말은 오만했지만, 그에겐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수염이 없는 장애 드워프에서, 초월무구를 만들어 낸 대장인으로.
자신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아버지까지 모시고 테르티우스에 금의환향한 게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앞으로 20년은 더 어깨에 힘주고 다닐 거다. 그것도 최소로 잡아서.”
“……그러시든가. 다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뭔지는 알고 있는 거지? 대장인님?”
으쓱대던 그란돌의 어깨가 그 순간 살짝 처졌다.
“그을음이 나타날 조짐을 감지하는 장비. 빨리 만들어 내야 해.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어. 테그멘 개조 이후로 너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단 말이야.”
“……그게 말이 쉽지, 마탑에서도 못 찾고 있는데.”
“그러니까 대, 장, 인, 님께서라도 뭘 하셔야죠.”
“아니, 그놈들이 뭐 시체라도 남겨야 연구를 하든 말든 할 텐데…….”
“저기요, 핑계는…….”
“쳇, 알아.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머리 식힐 겸 산책하고 있는 거잖아.”
그란돌은 요한나의 시선을 피해 가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문제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으니까.
‘솔직히 이건 답이 없는데.’
그을음.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자기 어디선가 툭 튀어나오는 까만 연기 같은 괴물들.
그것들은 아무리 작은 개체라도 오러나 대마법이 아니면 소멸하지 않는다.
그나마 평범한 인간 형태의 작은 그을음 정도야 전사들이 어떻게든 방어하고 사람들을 대피시키면 되지만.
어느 순간 그것들이 뭉쳐져서 거대화하면, 그때부터는 진짜 재앙이 된다.
“하이넨 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고 있어. 빨리 대책을 찾아야 돼.”
“……나도 알아.”
9대 기사의 일인이자 드워프 최강의 전사, 기갑왕 하이넨이 테르티우스 근방에서 쉴 새 없이 그을음을 사냥하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그을음은 좀처럼 박멸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외부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안다니까…….”
그을음은 결코 테르티우스만의 문제가 아니니.
그 문제가 점점 심각해질수록, 인중신 타이니를 찾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타이니 그놈은 뭐 하고 있는 거야 대체?”
인간에서 신이 된 최강의 기사.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그란돌이었지만, 요한나는 타박하지 않았다.
인중신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쓰던 해머를 만든 것 역시 그란돌이었으니.
이후 타이니의 무기는 그 유명한 녹턴으로 바뀌긴 했지만, 어찌 보면 그란돌도 그의 전우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엘븐하임에서도 사라진 지 3년이 지났다는 거…….”
“알아. 안다고. 근데 그 그을음들이 나타난 것도 그때부터잖아. 최근엔 점점 심해지고 있고. 혹시…….”
“그만, 그란돌. 그 이상은 선을 넘는 거야.”
“……그래. 그럴 리야 없겠지. 하지만 그래도……. 젠장, 그놈이 있었으면 그을음 같은 건 문제도 아닐 텐데.”
그란돌이 한탄하듯 내뱉은 그 말은, 사실 현재 모든 인류가 한 번쯤은 떠올려 봤을 생각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을음이 아무리 문제가 된다 해도, 마계 대전의 악마들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으니.
하지만 또 웃기는 것은.
– 광휘의 기사, 불굴의 신은 대체 무얼 하는가?
그런 말을 대놓고 떠드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에 신이 실존하면, 혹시라도 입을 잘못 놀렸다가 그 신이 빡쳐서 직접 대가리를 깨러 올 가능성을 따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성격 화끈하기로 유명한 광휘의 기사가 신이 되었으니…….
“누가 빡치게 하면, 타이니 님께서도 모습을 드러내실까?”
“어떤 미친놈이 그러겠어.”
마계 대전 당시, 왕국이 파산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지원을 끊으려 했던 가리온 왕실을 타이니가 힘으로 설득(?)한 일화는 지금도 전설로 남아 있다.
덕분에 현재 사방팔방에 빚을 져 ‘땅거지 왕실’로 유명한 가리온 왕실에서는 타이니의 이름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되고 있을 정도.
“아! 예전의 그 미친놈 같은 게 또 나타나면, 타이니 님도 어디선가 나타나시지 않을까?”
“뭐?”
요한나가 갑자기 꺼낸 그 말에 그란돌이 순간 움찔했다.
“그 있잖아. 해머교인가 뭔가를 만들어 가지고 헌금을 걷던 미친놈.”
“아…….”
“그런 놈이 또 나오면, 타이니 님께서는 열 받아서라도 튀어나오시지 않을까?”
“……그 미친놈이 맨정신으로 얼굴을 갈리는 영상이 아직도 귀족가에 떠돈단다. 그보다 더 미친 게 아니면 감히 누가…….”
그가 헛웃음을 짓던 순간.
– 쿠우우우웅.
북문 근처에서 육중한 울림이 퍼졌다.
“뭐, 뭐야?”
“침입자!?”
“설마……!”
드워프 전사들이 한순간에 북문으로 우르르 몰려 나가는데.
“어째 느낌이 쎄하네…….”
“무슨 일이야 있겠어?”
그란돌과 요한나는 괜히 솟구치는 불길한 예감을 억누른 채, 발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 * *
또르륵.
창백한 안색의 늙은 드워프가, 타고 있는 강철 거인의 팔을 움직여 찻물을 따랐다.
거대한 덩치에 비해 아주 작은 찻잔을 움직이는데도 흔들림 하나 없을 정도.
“테그멘이 훨씬 커진 것 같습니다. 안에서 느껴지는 마나도 강렬해진 것 같고, 움직임도 좀 더 부드러워진 듯 보이는데요.”
“새로운 대장인의 솜씨지. 그란돌이라고, 너도 들어 봤을 텐데?”
“예?”
“루나 무기를 만들었던 녀석 말이다.”
“아……. 근데 이미 존재하는 초월무구를 업그레이드하는 작업도 가능한 거였습니까?”
“그러니까 그놈이 신기한 거지.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다른 초월무구는 안 돼. 그 녀석이 원래부터 이 테그멘을 동경해 왔던지라, 구조를 잘 알아서 가능했다고 그러니까.”
“아, 예. 뭐……. 씁, 아깝네요.”
“뭐, 근황이야 이쯤 하면 됐고. 슬슬 따질 걸 따져 보자.”
탁.
찻잔을 내려놓은 하이넨은 인상을 찡그리며 아르곤을 노려보았다.
“바로 안 열어 준다고 문을 부수려고 해? 네 녀석이 타이니냐?! 어째, 성격이 점점 그놈 닮아 가?”
“아니, 좀 성급했던 점은 사과드립니다만, 그렇다고 무슨 그런 쌍욕을 하십니까?!”
“거봐라. 소리 지르는 싸가지도 그렇고, 딱 그놈인데.”
“윽…….”
그런 말까지 듣게 되자, 움찔한 아르곤은 잠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야, 그만큼 급한 일이니까 그렇죠……. 아무튼 죄송합니다.”
그에 끌끌 혀를 찬 하이넨이 턱짓으로 아르곤의 뒤에 있는 하일론을 가리켰다.
“설명해 봐라. 저 뒤에 있는 인간은 또 누구고, 왜 이렇게 갑자기 들이닥쳤는지. 아스란 제국도 그리 형편이 좋지는 않다고 들었는데 네가 여기까지 오다니.”
“저야 날아다닐 수 있으니까 시간에는 크게 구애받지 않죠. 뭐……. 어쨌든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중요한 일?”
“직접 들으시죠. 일어나라, 하일론.”
빠지지직.
“끄아악!”
아무런 보호 조치 없이 한나절 동안 고속 비행에 시달린 끝에 기절해 있던 하일론은, 전기 쇼크를 받고는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어떤 새……!”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고함을 지르려다가.
“……롭고 기발한 방법으로 저를 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르곤 님. 오, 뒤에 계신 분은 그 유명한 기갑왕님이시군요!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웃기지도 않는 태세 전환.
깨어나자마자 몇 초 되지 않아 상황을 파악하고 바로 아부를 하는 꼴을 보니, 녀석에 대한 신뢰도가 더욱 하락하는 느낌이었지만.
지금 일은 하일론 개인에 대한 신뢰를 따질 문제가 아니었다.
“하이넨 공에게 설명해 드려라. 네가 받은 계시라는 것에 관해서.”
“아, 벌써 테르티우스입니까? 역시 마도 기사…….”
“괜히 아부로 시간 끌면 뒈진다.”
파지지직.
“……옙!”
아르곤의 손끝에서 퍼져 나가는 전격을 보는 순간, 하일론은 그 즉시 자신이 받은 계시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하루 뒤, 테르티우스에 거대한 그을음이 갑자기 등장할 것이다? 심지어 그게 타이니의 계시다?”
하일론의 설명을 모두 들은 하이넨의 표정은 좋을 수가 없었다.
뜬금없이 자신의 고향 한가운데에 재앙이 벌어진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당연한 일.
“……저런 헛소리를 듣고 여기까지 왔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보여 드려라, 하일론.”
“예?”
이럴 때만 눈치 없는 놈.
아르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다시 한번 손을 움직였다.
파지지지직.
“끄아아악!”
“신성력 말이다, 신성력!”
“마, 말로 하시지! 아, 알겠습니다.”
“진짜 하는 짓이 딱 그놈 스타일인데…….”
“아니, 전 효율을 따진 것뿐입니다. 무슨 비교를……!”
“타이니 놈도 항상 그랬지.”
“…….”
말 한마디로 아르곤을 닥치게 만든 하이넨 앞에서, 하일론은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세상을 구한 만인의 어버이께 비옵니다…….”
동시에 피어오르는 신성력. 그리고 놈의 빛나는 머리 위에 솟구치는 작은 해머의 형상.
“이런 미친……?!”
그 광경은, 피곤한 얼굴로 앉아 있던 하이넨을 벌떡 일어나게 만들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 * *
“모두 외곽으로 대피해! 중심부 공방은 중요한 물품들을 모두 옮겨라!”
망치 의회에서 갑작스레 전해진 명령에 드워프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갑자기?”
“또 무슨 일이래?”
하지만 곧.
“일단 옮기자고.”
“이유가 있겠지.”
“그럼…….”
그들은 특별히 토를 달지 않고, 명령에 따라 순순히 집과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전 같았으면 이사를 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똥고집을 피웠을 드워프 종족이었지만.
10년 전에 끝난 마계 대전과 현재까지 이어진 재난은 그런 고집을 부릴 여유조차 없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테르티우스의 중심부가 텅 비워지는 데에는, 고작 한나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이러고 만약 그을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손실분은 전부 네놈한테 청구하겠다.”
하이넨이 콧방귀를 뀌며 하는 말에 하일론이 순간 얼어붙었다.
“……그, 그게 얼마가 될까요? 그래도 고작 하루 정도인데, 큰 금액은 아니겠……죠?”
그 자신 없는 태도가 하이넨의 짜증을 부추겼다.
“설마 거짓을 말한 거냐?!”
“그, 그럴 리가요! 다, 다만…….”
“다만, 뭐?!”
“저도 계시를 받은 건 이번이 두 번째란 말입니다! 제발 맞았으면 좋겠는데…….”
울상을 짓는 하일론의 말에 아르곤과 하이넨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공방 100여 개 정도니까, 하루 손실쯤이야 네놈이 한 30년 정도 무급 노동하면 메꿔질 거다.”
하이넨은 그 와중에도 확실한 계산을 내놓으며, 하일론의 얼굴을 더 울상으로 만들었다.
“네 계시가 맞다면 걱정할 일은 없겠지. 정확한 시간이 언제냐?”
“그, 그게…… 테르티우스에서는 태양이 안 보여서 시간을 정확히 알기가…….”
“아깐 낮이라며!!?”
“그거야, 느낌이 그렇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 느낌으로 볼 때 몇 시겠냐고!!”
“그러니까. 그게…….”
하일론을 응시하는 하이넨과 아르곤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지기 시작하는데.
“……지금쯤인 것 같은데요.”
“뭐?”
그 자신 없는 대답이 두 초인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던 그때.
쿵.
테르티우스의 한가운데에, 거대한 검은 거인이 갑작스레 등장했다.
– 그오오오오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