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504
4화. 또 어디라고?
쿵.
우르르르르릉.
– 그오오오오!
높이가 100m가 넘는 테르티우스의 천장이 낮아 보일 정도로 거대한 인간형 그을음.
쿵.
그런 괴물이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자기 튀어나와 테르티우스 중심부의 건물들을 무너트리는데.
“젠장, 그 헛소리가 진짜였다고!?”
쾅.
그대로 땅을 터트릴 듯 박차고 질주한 강철의 거인이 왼손에서 거대한 화염의 불길을 쏟아 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 고오오오오오!
괴물은 불길에 휩쓸리며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다가도, 텅 빈 눈동자로 하이넨을 응시하며 그 거대한 발을 뻗어 왔다.
그대로 걷어차려는 듯한 모양새.
“흥!”
그 움직임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빨랐지만, 몸이 큰 만큼 사전 동작이 모조리 읽혔다.
콰아앙!
우르르르릉.
하이넨은 지면을 터트리는 괴물의 발을 살짝 피함과 동시에 강철 거인의 손에서 거대한 해머를 뽑아 냈고.
“넘어져라!!”
꽈아아아아앙!
과거보다 월등히 커진, 흡사 녹턴을 연상시키는 해머가 그의 넘실거리는 갈색 오러를 싣고 그을음의 거대한 발을 그대로 터트려 버렸다.
– 그오오…….
쿠우우웅.
우르르르르릉.
허망하게 기울어지는 거대한 그을음이 다른 건물들을 깔아뭉개려던 찰나.
[極大消滅(극대소멸)]갑자기 칠채색의 빛이 괴물의 몸에 커다란 글자를 그렸고.
번쩍.
우우우우우우웅.
이내 새하얗게 빛나며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아앙!
– 그으……?
파스스스스.
그대로 소멸해 버리는 그을음.
2차 공격을 준비하던 하이넨이 그 장면을 보며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더 강해졌구나, 아르곤.”
그 감탄에는 약간의 허탈함이 섞여 있었다.
사실, 오러익시더 겸 대마법사인 아르곤은 30대 중반밖에 되지 않은 나이라는 게 이상한 수준의 괴물이다.
다만, 세상에 그보다 더한 괴물이 둘이나 있기에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 검제도 지금쯤이면…….’
복잡한 마음을 갈무리하며 뒤를 돌아보자.어느새 하일론의 목덜미를 집어 든 아르곤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이걸로 증명은 된 것 같습니다. 그쵸?”
“……그래. 그런데 그놈은 또 왜 저러냐?”
그가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본 대머리는, 눈을 감은 채 다시금 희미한 아지랑이 같은 신성력을 내뿜으며 머리 위로 작은 해머를 그려 내고 있었다.
“계시……를 받는 거겠지요. 아마.”
“저 해머, 아무래도 타이니 녀석 신호가 확실한 거 같지?”
“예. 아마 못 알아볼까 봐 저런 웃기는 형상을 만들어 낸 거 같은데, 아직도 의문입니다. 왜 이 사기꾼을 택했는지…….”
“신이 하는 일을 인간이 어찌 알겠냐……라고 말하기에는, 우리가 타이니 놈을 잘 알지. 아마도…….”
“예. 별생각 없이 저지른 거겠지요. 이놈은 얻어걸린 거 같고. 대체 어디서 뭘 하는지. 하…….”
두 초인이 그렇게 한탄하던 찰나.
“뜨헉!”
괴상한 비명과 함께 하일론이 다시 눈을 떴다.
그러더니 버럭 고함을 질렀다.
“에낙센! 그리고, 어디 평야 같은 데에 또 하나! 이번엔 둘입니다! 각기 다른 지역에요!”
“둘!?”
그 말을 들은 두 초인이 동시에 깜짝 놀라는데.
그중 하이넨은 유독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젠장. 난 테르티우스를 지켜야 돼. 안 그래도 상황이…….”
“괜찮습니다! 제가 갑니다! 근데 에낙센은 알겠는데, 평야? 무슨 평야? 그 근처 풍경을 확실히 말해!”
“그게…….”
하일론은 확신하지 못하는 듯 말끝을 흐리다가, 이내 자신이 본 풍경을 하나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듣고 있는 모두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할 때.
“……랑켄 평야 같은데요?”
불쑥 끼어든 목소리가 있었다.
무너지지 않은 근방의 건물들 사이에서 불쑥 얼굴을 내민 두 명의 드워프.
그중 옆에 있는 여자 드워프보다 수염이 없는 둥글둥글한 얼굴의 젊은 드워프가 한 말이었다.
“그란돌!? 너 이 녀석, 여기서 뭐 해!? 분명히 대피하라고……!”
“뭘 제대로 보기라도 해야 탐지기를 만들든 말든 하죠!”
“맞아요, 하이넨 님! 어차피 처리하실 줄 알았다고요!”
“하. 이 철없는 것들을…….”
하이넨이 이마를 짚는데, 아르곤의 반응은 달랐다.
“랑켄 평야? 확실합니까?”
“예! 아버지랑 쫓겨났을 때 지났던 곳 중 하나입니다. 지나가는 데만 한 열흘이 걸려서, 노숙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확실히 납니다.”
“거긴 언데드 군단이 묻혔을 텐데…….”
“그래도 지형지물은 별로 안 변했네요. 그리고 용사님께서 정화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어쨌건 그것으로 아르곤의 다음 목적지는 확실해졌다.
“남쪽 끝에서 다시 동쪽 끝이라……. 거기다 이번에는 두 군데. 전 바로 갑니다!”
“미안하네. 내가 도움이 못 돼서.”
“아닙니다. 다만 저희 가문에 연락만 제대로 해 주십쇼. 제 아내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사정 설명 좀 제대로 해 주시고요.”
“뭐, 그거야 물론이지. 그런데 왜 자네가 직접 안 하고…….”
“그만큼 급한 일이니까요! 가자!”
“꿱!?”
버럭 고함을 지른 아르곤이 그대로 하일론의 덜미를 잡고 날아오르는데.
하이넨이 보기에는, 어쩐지 누군가에게서 도망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느낀 것은 그만이 아닌 것 같았다.
“마누라한테 혼날까 봐 튀는…… 건가?”
“에이, 설마.”
“아냐. 네가 화나서 나 찾는다는 소리 들었을 때, 내가 딱 저런 기분…… 헥!?”
“뭐 인마!?”
“……실수야, 실수! 말이 헛나왔어!”
“너어…….”
친구의 아들인 대장인과 자신의 양녀이기도 한 비서의 소란스러운 만담을 헛웃음을 지으며 지켜본 하이넨은, 이내 안색을 굳히며 아르곤이 사라진 북쪽을 바라보았다.
‘타이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뭐, 어떻게든 이 재앙을 해결할 수만 있으면 좋은 거겠지만.’
답답한 마음은 여전히 가시지가 않았다.
* * *
– 꾸어어어어어엉!
깊은 바닷속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음파.
그 음파의 주인은 드넓은 바다의 바닥을 거의 메꿀 정도로 거대한, 왕관을 쓴 문어 형상의 괴물, 크라켄이었다.
그 분노가 섞인 울음소리에 사방의 모든 물고기들이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하는데.
오직 범고래 한 마리만이, 지느러미를 파닥거리며 그 거대한 괴물의 눈앞에서 알짱거리고 있었다.
마치 겁도 없이 괴물을 놀리는 행동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것은 그들이 소통할 때 쓰는 일종의 몸짓 언어였다.
범고래의 그 손짓, 아니 지느러미 짓과 꼬리 짓을 해석하자면.
[지상에서도 이것들 때문에 난리야. 그러니 진정해.]이런 의미였다.
지금 크라켄은, 해양의 질서를 위협하는 거대한 검은 괴물을 해치웠는데도 먹을 것이 하나도 나오지 않자 그 불만을 울음소리로 표현하고 있는 거였다.
– 꾸어, 꾸어엉, 꾸엉!
[대부, 말 때문에, 참는다.]파닥파닥.
[고맙다!]간신히 크라켄을 달랜 범고래, 아니 범고래 형상의 수인족 후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무슨 대부냐. 베이비시터지.’
물론 이 새끼답지 않은 크라켄, ‘크리미’는 보기보다 훨씬 유순한 성격이었지만.
요즘 바닷속에도 등장하는 그을음들 때문에 녀석의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지고 있어 걱정이었다.
크라켄은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해양 마물을 잡아먹으며 허기를 달래는 생물.
그런데 최근에는 거대 해양 마물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고, 대신 바닷속에 빠진 거인처럼 허우적대는 영양가 없는 그을음들만 나타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는데…….’
만약 이대로 해양 마물들이 더 나타나지 않는다면, 크리미는 저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긴 잠에 빠져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잠은, 적어도 후셀의 인생으로 가늠할 수 없는 시간 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건 싫다.’
종은커녕 생물로서의 격도 다른 녀석이었지만, 대부 소리를 들어서인지 적어도 그렇게 갑작스러운 생이별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래 봬도 이 녀석은.
– 꾸어, 꾸어어, 꾸엉.
[난, 괜찮다. 대부.]보글보글보글.
수많은 거품을 뿜어내며 전신을 간지럽히는 애교도 부릴 줄 아는, 제법 귀염성 있는 자식이었으니까.
파닥파닥.
[걱정 마라. 이 대부님의 부하들이 해양 마물을 찾고 있으니까.]– 꾸어엉!
[믿는다!]어인족들이 아무리 바다를 뒤진다 한들, 마물의 기척에 훨씬 민감한 크라켄의 감각을 따라잡진 못한다.
그런 것을 알고 있을 텐데도 허풍 섞인 위안에 응답해 주는 착한 자식이었다.
그러니.
‘대책을 찾아봐야 해. 마탑이나 제국 쪽에서는 무슨 방법을 찾아냈겠지?’
그을음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해양 마물이 줄었다.
그러니 그 그을음만 해결하면…….
파닥파닥.
[나갔다 올게!]– 꾸어어엉!
범고래 후셀은 지느러미를 빠르게 움직이며 해수면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그의 희망 섞인 기대는, 그저 기대에 그치고 말았다.
“아직도 말입니까!? 약속과 다르지 않습니까, 대장군!”
후셀의 말에, 통신구 속 은빛 늑대인간, 실버 팽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약속이라니? 후셀, 말조심하게. 내가 노력한다고 했지, 어찌 그런 일을 약속까지 할 수 있겠나.]“아, 죄송합니다. 마음이 급해서…….”
[대륙도 지금 난리야. 그을음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오러나 7서클 이상의 마법뿐인데 어쩌겠나. 마탑의 현자들도 지금 그을음 사냥에 정신이 없는 수준이야.]“그 정도입니까?”
사실 반문할 것도 없었다.
통신구에 보이는 실버 팽의 눈도 빨갛게 물들어 있었으니, 저게 버서커 상태가 아니라면 과로를 한 탓일 것이다.
[그래. 그나마 바닷속에서야 그을음이 제대로 활동을 못 한다지만, 대륙은 다르지 않나? 나만 해도 지금 정신없이…….]“워로드 저릭 공과 ‘함께’ 활동하신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쾅. 지지지직.]간단하게 덧붙인 말에, 통신구 너머 영상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잡음이 들려왔다.
그러다가 이내 분노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끄응. 워낙 넓은 범위를 커버하려다 보니 합을 맞춰야 했던 것뿐이다. 내가 그놈 탈것이 됐다는 이상한 소문 따위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결코!]……그런 건 묻지도 않았습니다만.
뒤늦게 다시 나타난 실버 팽의 두 눈은 더욱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는데.
‘저게 피곤한 건가. 열 받은 건가.’
뭐든 간에, 차마 거기다 더 말을 보탤 수는 없었다.
“아무튼 바다 쪽은 그 문제 아니면 별거 없습니다. 인어족은 저희와 어부 연합의 통제를 확실히 따르고 있으니까요.”
[……크흠. 그래, 그건 다행이군. 또 왕이나 여왕 같은 개체가 만들어지면 바로 보고해.]“물론입니다. 그런데 본토에 간 우리 아이들은…….”
[잘 적응하고 있다.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주기적으로 방문한다고 들었는데?]“그래도 걱정이 되는 게 어른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네 제일 큰 자식, 바닷속 그 녀석이나 잘 관리해. 웨어비스트의 일반인들도 이제 어인족이 결코 인어족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 가고 있으니.]“그런가요……? 아직 부족해 보였습니다만…….”
그 말에 실버 팽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포유류라는 개념을 철저히 교육하고 있네. 무엇보다, 최근에 태어난 어인족 아이 천여 명 중 버려진 아이는 셋뿐이야. 물론 자식을 버린 쓰레기 같은 부모는 엄벌에 처하고 있고.]“……그 점은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무얼. 모두가 우리 종족과 나라를 위함인데. 사실상 해양은 우리가 지배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게 다 자네들 공이야.]“예. 그 점에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 좋아. 조금만 더 애써 주게. 아, 그리고 이게 단서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말이야…….]“예?”
[거대 그을음이 나타나는 곳을 예언하는 놈이 생겼다더군.]“예!? 아니 무슨…….”
그럼 왜 바다 쪽은…….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교차했지만.그 많은 생각들은 이어진 실버 팽의 말에 쏙 들어가고 말았다.
[심지어 그놈이 사이비, 아니 해머교의 교주라던데……. 마도 기사가 그놈을 데리고 에낙센으로 향하고 있다.]“혹시 그럼…….”
[놈이 불굴의 신, 그러니까 타이니에게서 비롯된 신성력을 쓴다는 말도 있고. 일단 확인해 볼 가치는 있겠지. 에낙센이라면, 리베르타스에서 가깝지?]“물론입니다!”
후셀은 그 순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만약 그 애송이…… 아니, 신 타이니 모르스가 다시 세상에 나오기만 한다면 다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 때문이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