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530
30화. 노을빛 성화
번쩍.
쾅.
콰득.
콰콰콰콰콰.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다시금 익숙한 소음이 그녀를 반겼(?)다.
몸 안의 기운은 달라진 것이 없다.
하지만.
“꾸루루루루루!”
“오투스…….”
크롬벨의 새로운 정령.
‘펜릴은 어디 가고…….’
자신을 태운 정령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빛은 이전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그리고.
“이 정도면 충분하지.”
화르르륵.
이내 그녀의 몸 위에서 노을빛 성화가 피어올랐다.
– 발사가 아닌 발화!
크롬벨이 자신에게 전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지금의 그녀는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아마도 크롬벨은, ‘현재의 에리나’가 가진 능력의 한계를 살짝 벗어나는 일을 요구한 것일 터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그녀의 감각은, 저 안개 속 종말의 사도가 10년 전의 마왕 못지않은 강적이라는 것을 확실히 말해 주고 있었다.
‘존재의 종언. 지독한 권능을 가지고 있군.’
필멸자에게는 마왕보다 더 무서운 힘.
신성이라는 불멸의 에너지가 없다면 대항조차 불가능한 파멸적인 힘이다.
안개를 뚫고 나오는 기세만 봐도 직전까지의 에리나를 공포에 떨게 할 만했다.
저놈이 포위를 뚫고 뛰쳐나간다면, 근방의 모든 생명이 죽어 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말 그대로 종말(終末).
그러나.
‘지금의 나는 달라.’
그녀는 순리를 어긴 천계가 중간계에 간섭할 권리를 잃어 가던 신화시대의 말미에도 일곱 천사장을 동시에 강림시킨 적 있는 성법의 천재였다.
성력으로 움직이고 생활하는 천사들마저도 감탄해 마지않았던, 인간계 최강의 신성력 보유자.
그리고 지금은.
“나의 신은 오롯이 이 세상에 존재하신다!!”
그 성자급의 신성력이, 그녀의 손끝에서 새로운 성법으로 태어났다.
전생부터 현생까지 이어져 온 경험과 재능.
그 모든 것이 합쳐져서 즉석에서 새로운 성법을 만들어 낸 것이다.
화르르르륵.
그녀의 손끝에서 노을빛 성화가 불타오르고.
“나, 우리 주의 적에게 그분의 권능으로 철퇴를 내리니……!”
그 신의 특기를 그대로 모방하여, 파멸의 힘을 싣고 떨어져 내렸다.
“파멸 성법……. 크게(Big), 한방(Bang)!”
– 꽈아아아아아앙!
사방을 감싼 안개가 크게 부풀어 오른 순간.
그녀는 피할 수 없는 파멸이 종말의 사도의 몸에 적중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감히!!!!!!!!]콰콰콰콰콰콰콰.
영혼에 직접 때려 박히는 분노한 영파와 함께, 안개 속에서 광풍이 일기 시작했다.
‘역시, 종말에게 파멸은 상성이 좋지 않은가.’
물론 그녀의 신이 직접 나섰다면 사도 따위가 버틸 리야 없었겠지만.
성법으로 흉내 낸 타이니의 특기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으니.
“우리 주, 불굴의 신의 축복이 그분의 사도들에게 임한다!!”
번쩍.
그녀의 손에서 시작된 세 갈래 성화가, 안개 속 아군들의 몸에 임했다.
그녀의 신의 신명대로, 무너지지 않는 끝없는 힘이 되어서.
* * *
꽈아아아아아앙!
한순간 종말의 사도를 중심으로 엄청난 힘의 파장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집중 견제를 당하며 밀리던 크롬벨이 잠깐이나마 여유를 찾았다.
‘타이니? 아니, 아니다. 에리나의 짓이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기대치 이상의 엄청난 타격에 자연스레 미소가 나왔다.
물론 진짜 타이니의 것이 아닌, 성법으로 흉내 낸 빅뱅은 저 끔찍한 존재를 어떻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크롬벨은 그대로 전신의 힘을 끌어 올리며 아군에게 영파를 보냈다.
[서 공! 지금!]그 순간.
마법도 아닌 기묘한 수법으로 믿을 수 없는 기동력을 보이던 동방제일검 서일산이 한순간 움직임을 멈추더니, 그 몸에서 강렬한 기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감히!!!!!!!!]살벌한 영파와 함께, 여전히 멀쩡한 종말의 사도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그 몸은, 새까만 인간 그 자체.
‘이런.’
대번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놈의 힘이 어느 정도 줄어든 것은 분명했고.
놈이 의미가 담긴 영파를 쏟아 낸 게 처음이라는 사실도 오히려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
– 꾸어어어어엉!
그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 난입한 거대한 문어의 촉수가 파멸적인 물리력을 동원해 종말의 사도를 강타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앙!
동시에.
‘나이스 타이밍.’
거대한 마룡을 베어 버리기 위해 만들어진 서일산의 권능이 전개되었다.
마룡참(魔龍斬).
번쩍.
그 거대한 일검(一劍)이, 주춤하던 종말의 사도를 정통으로 갈랐다.
뒤이어 그 뒤쪽으로 쇄도하는 검제와 사신의 움직임도 느껴졌다.
‘좋았어!’
가장 적극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해 가며 종말의 사도가 자신을 주목하게 만든 보람이 제대로 느껴지는 순간.
[너부터, 죽는다.]안개에 가려 보일 리가 없는, 새까만 인간의 텅 빈 눈동자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이제까지와 달리 확실한 살기가 느껴지는 영파를 싣고.
‘이런……!?’
위기감 속에서 가속되는 의식.
그 느려진 시간 속에서, 크롬벨은 종말의 사도가 가진 힘이 이미 2할 가까이 줄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힘은 초전에 비해 이미 절반 가까이 떨어진 상황.
‘젠장. 멀쩡할 때 미리 권능을 전개했어야 했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성검을 휘둘러 보지만, 의식이 빨라진 것 이상으로 몸은 느려진 것 같았다.
자신이 휘두르는 검이 너무 굼뜨게만 느껴지던 그때.
그의 전신에 노을빛이 어렸다.
그리고.
꽈아아아아아앙!
“큭!”
크롬벨은 갑작스러운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을 달리 말하면, ‘고작’ 외마디 신음만 흘릴 정도의 통증이었다는 뜻이다.
‘이게 대체…….’
당혹감을 느끼는 순간.
우우우웅.
절반 이하로 떨어졌던 기력이 빠르게 다시 차올랐다.
그리고.
[성법, 불굴. 의지가 다하지 않는 한 쓰러지지 않습니다. 설마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 포기하실 분? 없죠?]익숙하고 명량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피식.
‘당연하지.’
다시금 텅 빈 눈동자의 새까만 인간이 눈앞까지 다가왔지만, 크롬벨의 전의와 기력은 이미 하늘 끝까지 솟구쳐 오른 뒤였다.
지치지 않는다면, 권능을 아낄 필요가 뭐가 있을까.
우우우웅.
그의 심장에 뿌리내린 이능의 엔진, 세계수 위그드라실이 끝도 없이 에너지를 뿜어내고.
효율을 고려하지 않고 쏟아부은 그 거대한 힘이, 순식간에 그의 권능을 현실화시켰다.
권능 전개…….
번쩍.
그를 중심으로, 새하얀 빛이 전장 전체로 뻗어 나갔다.
크롬벨의 삶과 신념을 고스란히 반영한 그만의 권능이.
* * *
어려서부터 신전에서 자랐다.
고대의 신전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였다.
신들이 실제로 왕왕 강림하기도 하며 상시 수많은 천사들이 오고 가는, 지상에 자리한 천계의 일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신과 괴이(怪異)가 넘쳐나던 그 시대의 말미.
신들이 세상을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면서, 남겨진 약자들의 삶은 더욱 힘겨워졌다.
나약하기만 하던 인간들은 괴이들의 싸움에 휘말려 죽어 나가기 일쑤였다.
크롬벨도, 그렇게 고아가 된 아이 중 하나였다.
그것도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우울한 아이.
정확히는.
– 내, 내가 도망쳤어요, 선생님. 엄마 아빠를 두고, 도망쳤어요. 도왔어야 했는데……. 으흐흑.
스스로의 과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기 자신을 혐오하던 불쌍한 아이였다.
신전의 한 사제는 그런 그를 맡아 성심껏 돌보았다.
– 어쩔 수 없었던 거야, 크롬벨. 너희 부모님도 네가 살길 원하셨을 거야. 다음부터는 도망치지 않으면 돼.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어디서나 앞장서면 되는 거란다.
말 한마디로 치유될 상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성심은 아이가 자라 소년이 될 때까지 꾸준히 이어졌고.
그 끊임없는 따스함이, 끝내 소년을 바깥세상으로 끌어내 주었다.
– 크롬벨, 이제부터 네 성은 라이언하트야. 사자의 심장을 가지고 용기 있게 사는 거야.
– 나도 사제님처럼 될래요. 어떻게 하면 되죠?
– ……여신의 품으로 귀의하면 된단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품으시거든.
모든 신이 떠나도 홀로 지상에 남아 세상을 돌보는 대지의 여신.
아니, 이제는.
– 유일신, 가이아 님에게.
그 말이 소년의 삶의 지침이 되었다.
이후 소년은 여신의 성기사가 되어, 인류의 구원에 앞장섰다.
자신이 겪은 것과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세상이 빨리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야말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어느 날, 마계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는 예언이 신전에 내려졌다.
– 크롬벨, 이제 나도 중간계에 남아 있을 수는 없어요. 그러니 그대를 내 사도로 임명합니다. 내 힘을…….
여신은 무도한 섭리에 의해 천계로 강제 추방되었고.
살아남은 인간들은, 다가오는 멸망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다행히 그의 곁에는 동료들이 있었다.
– 크르르. 나는 신의 늑대. 짐승 신의 첫 번째 발톱이다. 최초의 정령인 나와 계약하겠는가, 여신의 사도여.
– 정령?
– 그래. 너를 통한다면 나는 힘을 극대화시킬 수 있고…….
– ……뭐든, 도움이 된다면 좋아.
이 세상을 떠나면서도 피조물들을 걱정하여 권능의 한 조각을 남기고 간 신도 있었고.
– 여신의 사제 에리나예요. 제가 전력을 다하면, 여신님은 몰라도 천사장 분들은 잠시나마 소환할 수 있어요. 협력해요, 사도님.
천사보다 신성력을 잘 다루는 여사제도 있었다.
그렇게, 인류를 구하기 위한 전장에 온 세상의 영웅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 나를 따라와. 내가 다 알고 있어. 한 번 겪어 봤으니.
창조신의 힘으로 시간을 거슬렀다는 인류 최강의 전사, 솜누스가 있었다.
왜 여신께서는 솜누스가 아닌 자신을 사도로 지명하셨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솜누스는 10년간 온갖 이변의 전조들을 미리 알아채고 변란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인류의 전력은 그를 중심으로 모여, 마계 군단의 강림에 맞설 준비를 하기 시작했는데.
정작 첫 번째 강림을 마주했을 때.
마계의 문을 향해 내달려간 솜누스는, 믿을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크하하하하! 이제 나도 신이다!!!]– 솜누스!!! 네놈이, 네놈이 어떻게!!!
인류 연합군 절반이 증발하고, 대륙 전체에서 수천만 인구가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솜누스가 만들어 낸 인류의 거대한 상처는 연합군에게 최악의 절망을 드리웠다.
무엇보다, ‘파편’의 힘으로 세상에 잠시간 등장했던 마왕의 힘은 모두를 공포에 떨게 했다.
– 아무리 마왕이라 해 봤자. 신들만 하겠어?
아직 신들의 흔적이 세상에 남아 있던 그때, 마왕의 등장은 절망 그 자체였다.
그 어떤 신과도 비할 수 없는 엄청난 힘으로 단숨에 수천만의 희생자를 만들어 버린 재앙.
물론.
[곧 다시 보자, 필멸자들.]마왕은 곧 사라졌지만, 그때 인류 연합군은 이미 전의를 잃은 후였다.
그리고 뒤이어, 마수병단을 이끄는 트리플 헤드 드래곤, 굴라가 강림하여 그런 인류를 짓밟았다.
마수병단의 테라포밍에 의해 대륙의 절반 이상이 마기에 물들었고, 그 위에서 온갖 마수들이 횡행했다.
인류 연합군은 그 이후로 패배를 거듭했다.
그리고 크롬벨은, 그 가장 큰 원인을 마왕의 힘이 아닌 솜누스의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놈만 아니었어도 해볼 만했었어. 그놈만 아니었어도!’
그 배신감과 증오는 그때부터 그의 마음 안에 뿌리를 내었다.
어쩌면 그랬기에 현세에 다시 부활했을 때 흑마법의 마기에 휘둘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을 극복한 지금에 와서도, 당시의 충격은 완전히 잊히지 않았으니.
그랬기에 그의 권능은…….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