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534
34화. 포교 (1)
“포교라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서진의 국왕 진사량은 이를 갈며 소리를 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자국의 영해에서 한바탕 바다를 뒤집고 국토를 뒤흔드는 격전이 벌어졌었다.
그 여파로써 서쪽에서 전해져 오는 짜릿한 살기에 온 국민이 몸을 떨었고, 많은 작물이 시들었다.
서해 쪽에서는 아예 죽은 물고기들이 떠올라 바다 위를 가득 메웠다고 들었다.
그 미친 격전을 끝낸 서방의 오랑캐들이 만만치 않은 작자들이라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서방제일검을 신으로 섬기는 종교라니. 그게 말이 되느냐!!!”
쾅.
지금은 영락했다지만, 왕년에 백대 고수였던 내공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분노한 왕이 손바닥을 내려치는 순간, 왕좌의 팔걸이가 부서져 가루가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았다.
“용사와 성녀라는 이들이, 다친 이들을 손짓 하나로 일으켜 세우고 중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그 살벌한 격전을 끝낸 이들이 실제로 기적을 보여 주는 탓에, 그 망치교라는 이상한 종교가 실시간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서방의 사제라는 것들이 벌이는 요술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왜……!”
“그 서방의 사제라는 것들은 이미 힘을 잃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과거의 그 사제들의 요술도 저희 동대륙인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았었습니다만…….”
“그런데?”
“지금 성녀와 용사의 요술은 실제로 압도적인 기적을 보이고 있으니, 아프거나 다친 자들이 그들을 만나기 위해 전국에서 수도로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이 진사량의 심기를 더욱 자극했다.
“당장 치워 버려! 내 나라에서 그딴 짓을 벌이고 있는 놈들을 그냥 둬!? 그게 말이 되느냐?!”
그로서는 지극히 타당한 주장이었지만, 그 말에는 차가운 냉소가 돌아왔다.
“그럴 수 없습니다, 전하.”
“무슨 말이오, 외숙부?”
저 지독한 간섭쟁이 대장군이 또 괜히 찬물을 뿌리는가 싶었지만.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이어진 말에는 더욱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불가능하다니 무슨 뜻이오! 숙부가 나서고, 무사들과 병사들까지 가세해 압박하면……!”
“저를 비롯한 무사와 병사들이 전부 죽겠지요.”
“……뭐라?”
너무 황당한 이야기라 잠시간 이성이 마비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장군은 아랑곳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성녀도 만만치 않지만, 그 용사 하나만으로도 왕실을 절단 내기에 충분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게 말이……!”
“신화경에 오른 고수입니다. 심지어 서방의 요술조차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흐. 그렇게나, 그렇게나 차이가 난다고!?”
“일전의 대련에서 제가 일격을 버티지 못하는 것을 보셨잖습니까. 석년의 서방제일검도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서방제일검은 이제 신이 되었다고 합니다만.”
대해제일검(大海第一劍), 서진의 최고수인 모용원호의 입가에는 쓴웃음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는 실제로 얼마 전 서쪽에서 일어난 전투에 몰래 참여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장소에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죽음의 위협을 느꼈으니까.
실제로 그와 동행하려 했던 서진의 정예들 다수가 전장 근방에 접근하려 ‘시도’한 것만으로도 실신하여 일어서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막대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리고 그런 존재감을 풍기던 괴물이, 용사와 성녀 일행에게 끝장이 났다.
그런데 어찌 감히 그들을 무력으로 압박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거기에 더해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
– 그놈이 끝이 아닙니다. 그놈은 사도일 뿐. 그 본질이 되는 종말의 신이 이 세상을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께서 그것을 막고 계시죠.
– 해머교를 전파하고 우리의 신께 힘을 실어 주시지 않는다면, 세상은 곧 멸망할 겁니다.
그런 엄청난 힘을 보여 준 이들이 시답지 않은 말장난을 할 리는 없었다.
“왕실을 보존하고 국가의 기틀을 유지하시려면, 그들을 어찌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셔야 합니다.”
“뭐?”
“성녀가 자격이 있는 이들에게 사제의 직위를 부여하면, 그들 역시 미약하나마 기적을 사역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뭐라?”
“과거 서방의 사제들은 저희 눈에 보여주지도 못했던 신성한 힘, 노을빛 성력을 우리 동방인들도 쓸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차라리 망치교의 전파지로서 위치를 선점하고 가장 먼저 국교로 선포하시면, 국력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아뢰옵니다.”
모용원호의 그 외침에 대전이 한순간 침묵에 잠겨 들었다.
* *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성녀님.”
“모두가 그분의 은총이니, 그분을 믿으십시오.”
“예. 예. 믿겠습니다, 성녀님. 탄……. 탄니 님?”
“타. 이. 니. 가장 작은 이름을 가지신, 가장 큰 우리의 신이십니다.”
“예, 예. 타이니 님. 명심하겠습니다.”
“불굴의 신을 따르는 망치교의 교리는 오직 하나.”
“포기하지 않는다.”
평생 앓아 오던 절름발을 고친 노파가 에리나의 말을 그대로 복창했다.
“우와아아아!”
“가장 작은 이름을 가진, 가장 큰 신!”
“우리 주, 타이니를 찬양하라!!”
“불굴의 신!”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가 오랜 지병이나 불치병을 앓아 오던 이들. 그리고 에리나의 손짓 하나에 그 병을 치유한 이들이었다.
물론 그 광경을 모두가 달가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언제봐도 신기하구나. 그 짧은 시간에 동대륙어를 이리 자유롭게 하다니…….”
크롬벨의 한숨 섞인 말에 에리나는 쓴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환생을 반복하며 거쳐 온 고난의 삶은 오직 서대륙에 국한된 게 아니었으니.
지금 자유롭게 동대륙어를 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얻은 능력 중 하나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었으니.
“말했잖아요. 단어는 이미 익혔고, 문장은 구사하다 보니 되더라고.”
“……그래, 그랬지. 하지만…….”
크롬벨의 시선은 ‘구원’을 받기 위해 늘어서 있는 줄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간절한 열망에 차 있는 이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그것이 줄 보상이었다.
만약 신앙이 그 보상을 줄 수 없게 된다면, 저들 중 태반은 바로 믿음을 저버릴 것이다.
“이게 정말 옳은 방법일까, 에리나?”
“……아니죠.”
고민하며 뱉은 말에 의외로 빠른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어요. 어떤 방향으로든 해머교를 전파해서 신자의 수를 늘려야 해요. 그러니 타이니 아저씨 동상도 빨리 만들어 주세요.”
그 말에 크롬벨은 다시 한숨을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연거푸 한숨을 내쉬는 이유는 사실 다른 게 아니었다.
‘내가 어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마법으로 빚어지고 강화된 거대한 해머를 든 기사의 조각상들이 그의 손에서 만들……. 아니, 찍혀 나오고 있었으니.
“감사#!@#!”
“감사합!@#!”
에리나의 성법으로 치료를 받은 이들이 그 조각상을 소중히 품에 안고 가는 것을 보면 솔직히 한숨을 안 쉬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마법으로 한순간에 조각상을 찍어 내는 일조차 기적의 일부로 취급받는 듯했으니.
“빨리 커다란 동상을 만들어서, 큰 도시마다 퍼트려야 해요.”
“……그리고 저 교리조차 모르는 어설픈 사제들을 전국으로, 세상으로 퍼트리고?”
크롬벨은 에리나의 성력에 반응해 노을의 성력을 일부나마 품게 된 이들을 바라보며 비꼬듯 말했다.
“교리가 왜 없어요? 포기…….”
“그래. 포기하지 않는다. 그놈의 신념이지. 불굴의 신다운 목표고. 하지만 그게 전부잖아? 무슨 종교가…….”
“말했듯이, 시간이 없어요 크롬벨. 우리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해머교를 세상에 퍼트려야 해요.”
또 은근슬쩍 이름을 부르는 에리나.
그게 살짝 마음에 걸렸지만, 그 말에 틀린 점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그녀의 계획에 관해서는 다시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나라마다 백 명의 사제를 만들고, 그 사제들을 대륙 전역에 퍼트려 사람들을 치료하게 해서 해머교를 퍼트린다?”
“예. 선 제국은 3백 명은 만들어야겠지만요.”
“하지만 이곳 서진에는 얼마 전 전투의 흔적을 온몸으로 느낀 이들이 태반이라지만, 대륙 본토는 아닐 거야. 그게 가능하겠어?”
“충분히 가능해요. 크롬벨 당, 아저씨가 살던 신화시대와는 달리, 현시대에는 소외된 계층이 훨씬 많거든요. 예전에도 성력의 수혜를 받지 못한 동대륙에서라면, 초보 사제가 베푸는 치유의 기적만으로도 민간에 빠르게 뿌리를 내릴 거예요.”
“……그래도 각 왕실과 황실의 협력은 필수적이겠지.”
“예. 하지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잖아요.”
에리나의 결연한 눈빛에 크롬벨 역시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각 나라로 돌아간 9대 고수들이 각 왕실에 상황을 전했을 것이고.
설령 그들이 협조를 받아 내지 못한다 해도.
“그래. 싫다 해도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겁박을 해서라도 말이다.
각오를 다지는 순간, 크롬벨의 심장에서 발현된 에너지가 그에 호응하듯 사방으로 막대한 기세를 내뿜었다.
우우웅.
그를 신성에 닿게 만든 카르마는 사라졌지만.
그것을 품어 본 경험만으로도 그의 몸 안에 뿌리내린 위그드라실은 한층 강화되고 성숙해졌다.
“우오오오!”
“신의 !@#!@#!”
“신의 사자시다!”
멋모르는 촌민들이라도 그 엄청난 힘을 느끼며 전율할 정도로.
그 모습을 보며 에리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예, 우리는 지금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니까요.”
“지금도 타이니는 싸우고 있는 거야?”
“예, 끊임없이 피를 흘리면서요.”
“상황이 그리 심각해?”
“하지만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있어요. 그 아이답게.”
그녀의 표정에는 안쓰럽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어지러이 뒤섞여 있는 듯했다.
하지만 크롬벨은 그보다 다른 것이 더 신경 쓰였다.
‘그 아이?’
당혹스러운 단어.
실수라고 볼 수도 있지만, 종말의 사도를 처리한 이후부터 그런 실수가 잦아지고 있었다.
자신을 부르는 호칭도 그렇고.
‘설마…….’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지만, 그래도 당장은 그것을 따지고 들 때가 아니었다.
종말의 위기는 말 그대로 현재 진행 중이었으니까.
‘이 위기를 넘기고 나면…….’
확실히 확인해 봐야겠다.
크롬벨은 그리 생각하며, 다시금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타이니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거 같으냐?”
“모르죠. 그 아저씨답게 영원히 버틸 수도, 아니면 어느 한순간 무너질지도. 이제 아시잖아요? 신성이라 해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걸.”
“……그렇지.”
지금은 또 본래 부르던 호칭으로 돌아왔다.
그에 다시금 마음속 의문이 머리를 내밀었지만, 어찌 되었건 눈앞에 있는 이는 에리나다.
전생의 연인이자 동료, 그리고 현생의 제자.
언제나 자신이 가장 최우선으로 아끼고 배려해야 할 사람.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물론 그 상념을 털어 버리고 나니 바로 다른 걱정이 떠오르긴 했지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서대륙의 포교를 그 대머리 사기꾼에게 맡겨도 되겠어? 차라리 우리 둘 중 한 명이라도…….”
오투스에 검제와 루나만 태워 보내는 것만으로 과연 충분할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에리나는 빙긋 웃음을 보일 뿐이었다.
“문제없어요. 왜냐하면…….”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