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535
35화. 포교 (2)
“그분께서 저에게 그렇게 막중한 임무를 맡기시다니! 목숨을 걸고 수행해 내겠습니다!”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하일론을 보며, 루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이런 놈에게?’
그저 아부할 생각밖에 없어 보이는 간사한 대머리.
이놈이 해머교를 퍼트리면서 세상에 얼마나 큰 민폐를 끼칠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해야지. 어쩔 수 없잖아.”
남편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쓴웃음을 짓고.
“그렇네. 멸망을 막기 위해서라도.”
다른 마도사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
“좋습니다. 아스란 제국은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연합을 비롯한 각 왕국은 알아서들 설득해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그 검제마저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판이다.
그러니 그녀도 호응하는 수밖에.
그래도 마냥 안심할 순 없었다.
“난 이놈이 개수작 부리면, 일 끝나고 바로 죽일 거야.”
엎드린 하일론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지만, 최소한 이 정도 안전장치는 두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 하일론 그 사람도, 이젠 타이니 아저씨를 진심으로 따르게 되었을 거예요.
에리나의 말만으로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대머리, 네가 사제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건 확실하지?”
“물론입니다! 불굴의 신께서 제게 그런 자격을 허가하셨습니다!”
고개를 바짝 든 하일론의 표정에는 진심이 흘러넘치는 것 같았지만.
놈의 전적 때문인지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신뢰성과는 별개로, 해머교의 포교는 신속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 * *
그을음이 사라진 서대륙에 새로운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신의 사도와 성녀, 9대 기사가 협력하여 그을음의 원인을 제거했다. 불굴의 신 타이니 모르스의 가호가 세상을 지켜 낸 것이다!
마계 대전이 끝난 지 10년.
인간들 사이에서 탄생한 신의 존재에 대해 모두가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국을 비롯한 각국의 왕실에서 적극적으로 그 신의 존재를 우상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
여신교를 대신할 새로운 종교, 해머교의 신자 중에서도 자격이 있는 이들은 성력을 다룰 수 있다!
신성력의 상실과 함께 무너진 여신교.
그 존재를 대신할 종교에 대한 기대감이 퍼져 나가면서, 해머교의 신자가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주교 하일론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대를 해머교의 새로운 사제로 임명하노라.”
사방을 비추는 노을빛 신성력이 대머리 대주교의 손끝에서 퍼져 나오자.
그 손끝에 닿은 청년의 몸 전체에서 노을빛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우오오오!”
“신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
“불굴의 신!”
“타이니 모르스 만세!!”
환호하는 사람들.그들의 눈빛에는 한 점의 의심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노을빛 성력으로 인한 기적은 세상의 공증을 받았고.
대주교 하일론의 옆에는 무려 인중신의 누나, 루나 모르스와 그 매형이라는 마도 기사 아르곤 모르스가 함께하고 있었으니.
“자, 이로써 새로운 사제 100인의 임명식이 끝났습니다. 그대들은 각지로 나아가, 그분의 가르침을 널리 퍼트리시기 바랍니다. 그 가르침이 무언지는 모두가 알고 있지요?”
“포기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다 보면, 그분의 가호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하일론의 일장 연설을 바라보는 부부의 얼굴은 그저 무표정하기만 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서로 은밀히 대화하며 작금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이거, 세상을 속이는 사기야.] [어쩔 수 없잖아. 참아.] [올리 보고 싶어.] [나도 그래. 하지만 참아. 장모님께서 잘……. 허읍!?] [뭐야? 알고 있었어?] [알고 있……? 당신도 알고 있었어? 그런데 허락한 거야?] [그거야…….]무표정하던 부부의 눈빛에 갑자기 불꽃이 튀기 시작할 때.
“여러분이 내신 헌금은, 각지에 신의 동상을 세우고 신전을 건설하는 데 쓰일 것입니다. 제 이름을 걸고 맹세코, 우리 신의 역사가 영원토록 굴하지 않고 뻗어 나갈 기틀을 마련하겠습니다 여러분!”
“우와아아아!”
하일론의 연설이 끝을 맺었다.
그렇게 그날의 일정이 마무리되었고.
그날 밤.
임시로 지어진 해머교 교단 건물의 심처에서 작은 움직임이 있었다.
타다닥.
연설을 끝내고 제단에서 내려온 하일론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곧바로 엄격히 보관된 커다란 헌금함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그림자에 숨은 루나가 고스란히 보고 있었다.
‘역시 이 새끼는 안 돼…….’
그렇다고 당장 죽이기엔 쓸모가 남아 있다.
하지만, 죽지 않을 정도로 족칠 수는 있다.
‘신성력이 있으니 자기 상처 정도는 치료하겠지.’
딱, 내일 연설을 하고 사제 임명을 할 수 있는 기운만 남겨 두리라.
루나는 속으로 스산한 살기를 품으며 하일론의 그림자를 향해 도약했다.
그런데 약간의 이상함이 있었다.
‘응?’
놈이 꺼낸 돈이 생각보다 적었다.
덩치 작은 하일론의 손에 뭉텅이로 잡힌 것은, 금화도 은화도 아닌 동화 한 움큼.
하일론은 그 동전들을 주머니에 담아 슬그머니 뒷문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지?’
그 궁금증에, 루나는 손을 멈추고 놈을 뒤따라가 보기로 했다.
하일론은 교단 건물의 뒷문으로 나가 뒷골목을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보다 더 작은, 허름한 옷을 입은 꾀죄죄한 아이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주교님!?”
“오셨다!”
“하일론 님!”
“쉿!”
하일론이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것을 보고, 루나는 그림자 속에서 눈에 쌍심지를 켰다.
‘이놈이!?’
그가 불쌍한 아이들에게 동전 몇 닢을 주고 몹쓸 짓을 시킨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도 이만큼뿐이다. 잘 나눠 가지고, 집에 먹을 거 사 가.”
“감사해요, 대주교님!”
“감사합니다, 하일론 님!”
“감사는 타이니 님께 드리려무나. 내가 과거에 지은 죄가 있어서, 아무리 회개를 해도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어. 지금은 이 정도밖에 해 주지 못한다.”
“아니에요. 저희는, 이것만 해도 정말…….”
“그럼 하루에 한 번씩, 하늘을 향해 기도해 주려무나. 타이니 님께서는 지금 세상을 지키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계시니까.”
“예! 그럴게요!”
“그래. 그거면 됐다.”
기뻐하는 아이들과 뿌듯해하는 하일론의 표정을 보는 순간, 루나는 그림자 속에서 뻗어 내려던 손을 그대로 거둘 수밖에 없었다.
* * *
어려서부터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랐다.
못 먹고 커 온 탓에 덩치가 작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타고난 얼굴마저 못생긴 것은 불행일 뿐이었다.
“으악! 뭐야, 이 추물은…….”
“꺼져, 거지새끼야!!”
너무 못난 외모 때문에 구걸조차 쉽지 않았다.
자연히, 그의 마음속에는 사회와 세상을 향한 분노가 쌓여 갔다.
물론 그것을 대놓고 표출할 수도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의 키는 웬만큼 잘 먹고 자란 청소년보다 작았고.
빈민, 아니 거지 신분으로는 무술이나 마나 같은 걸 접해 볼 기회도 없었으니.
누군가에게 그 분노를 드러내는 족족 두드려 맞기만 했다.
그래서 하일론은 참고 연기하는 법을 배웠다.
허드렛일로 번 돈으로 글자를 배웠고, 못난 얼굴로나마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덜’ 주는 언행과 표정을 연습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그는 못나고 비천한 신분으로나마 일반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받아 준 여관 주인 부부에게 충분히 신뢰를 쌓았다고 생각했을 때.
하일론은 그들의 전 재산을 훔쳐 달아났다.
“아이고 이놈아!!”
“갈 곳 없는 놈을 거둬 주고 재워 줬더니!”
흥.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항상 자신을 무시하기만 하는 인간들이 가진 것을 좀 뺏는 게 어째서 죄인가.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이지.’
그렇게 마련된 종잣돈(?)은 더 큰 사기를 치기 위한 자금으로 사용되었다.
떠돌이 보부상으로, 작은 상단의 주인으로, 혹은 글줄깨나 읽은 작은 영지의 관리로.
그렇게 신분을 바꿔 가며 사람들을 속였다.
처음엔 어설펐지만, 몇 번의 위기를 넘고 나니 사기에도 관록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세상이 혼란스러워졌다.
마계 대전이다 뭐다 하며 시끄러워졌을 때, 사기는 오히려 더욱 편해졌다.
모두가 다급해하고 긴장하던 시기에, 사람들의 이성은 그만큼 더 흐려졌으니까.
‘마계 대전? 흥. 어차피 세상은 지옥이야.’
세상이 망하건 말건, 그에게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삐끗하면 끝장나는 인생을 살고 있던 그에겐, 그 혼란 속에서 사람들을 등쳐 먹고 하루하루를 즐기는 것으로 족했으니까.
그러다 어느새 마계 대전이 끝났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만세!!”
“만세다!!”
“광휘의 기사 만세!!”
“10대 기사 만세!!”
“10대가 아니라 요즘은……!”
“닥쳐! 뭐든 만세!!”
환호하는 사람들, 떠들썩한 세상.
그건 그거대로 또 이용할 만했다.
“광휘의 기사께서 신이 된 건 아시죠?”
술자리에서 우연히 듣게 된 그 한마디가 힌트가 되었다.
머리를 굴린 하일론은 사람들을 모았고.
“불굴의 신께서 엘븐하임에서 칩거하시게 된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세상을 구했는데, 여러분이 그분을 따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사제를 자처해 가며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제가 여러분들의 성의를 모아 그분께 전달하겠습니다. 그분께서 다시 일어나시면, 이 힘든 세상에 질서가 바로 설 겁니다! 그분도 빈민가 출신이라는 것은 알고 계시죠?”
물론 헛소리였다.
모르스라는 엄연한 귀족 성을 가진 광휘의 기사가 어찌 빈민 출신이었을까.
하지만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전의 자신만큼 힘들고 어려운 빈민들.
마계 대전이고 뭐고, 당장 하루하루 먹고살기 급급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자신의 헛소리에 부응했고.
“이게 바로 그분이 내리신 신성력입니다!”
우연히 구한 저급한 환상 아티팩트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바람잡이와 배우 몇 놈을 섭외해서 기적을 흉내 내 주니, 주머니에 떼돈이 들어왔다.
심지어 그 소식을 듣고 영지의 주인이 병사를 보냈을 때도.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네놈, 정말 인중신의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있느냐!!”
목숨을 칼끝에 걸고 배짱을 한번 부리는 것만으로도 살아날 수가 있었다.
힘들 것이 하나도 없었다.
“푸하하하! 그래, 이거지. 인생 한방이야!!”
돈도 돈이지만, 항상 멸시하고 의심하는 시선만을 받아 오던 그에게 사람들의 숭앙은 거의 마약과 같았다.
그래서 자제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크게 한탕만 치고 빠지려던 계획에서 벗어나, 그 일을 몇 번이나 반복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당연한 대가였을지 모른다.
그가 팔아먹은 ‘신’이, 그를 직접 찾아온 것은.
“너냐? 감히 내 이름을 팔아먹는다는 쓰레기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극심한 통증이 일었다.
사람의 몸이 돌판에 갈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그러고도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반쯤 갈려 나간 자신의 몸을 통해서 말이다.
“사, 사알려……. 자, 자못했스니다. 사려…….”
아마 미친 듯이 빌었던 것 같았다.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온몸을 갈아 내고 또 재생시켜 버리면서 끝없이 가해지던 무한의 고통은 그 거짓 허세를 산산이 깨부숴 버렸다.
그리고.
“좋아. 뭐, 살려 주지. 네게 속은 사람들이 네놈을 어찌할지는 모르겠다만.”
그 신은, 차가운 미소와 함께 하일론이 모은 신도들 앞에 그를 던져두고 사라졌다.
뒤를 돌아봤을 때.
자신을 향해 쏟아지던 천여 명의 시선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