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540
40화. 그들은 왜……?
강림의 날로부터 5년 후 어느 날.
“각하, 정말 실행하실 겁니까?”
제나스의 물음에 검제가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야지. 너도 같이 듣지 않았느냐.”
“예. 하지만 지금은 너무 이르지 않을까요?“
“우리부터 실행해야 대세가 따라올 거다.”
“반발이 클 겁니다.”
“감수해야지.”
그 결연한 태도에 제나스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고.
검제는 곧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우선은 문관 가신들부터 시험으로 뽑는다. 마나를 다루지 못해도 응시할 수 있도록 하고. 그리고…….”
“5년 뒤부터는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기사……도 뽑는다고요?”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기사라니, 그 모순적인 말에 제나스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기색이 비쳤다.
“그래. 100년 뒤면, 기사는 그야말로 명예직이 될 테니까.”
그 말에 제나스는 다시금 한숨을 쉬었지만, 그 역시 마나 소실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발렌티아 공작가의 발표는 제국의 격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 마나를 다루지 못해도, 아예 느끼지 못해도 시험에만 합격한다면 공작가의 관리가 될 수 있다!
머리가 똑똑하거나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면 마나를 느끼는 것이 당연한 세상.
그랬기에 귀족이나 귀족가의 관리들은, 설령 온전한 마나유저나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일반인보다는 마나를 잘 다뤄야 했다.
마나 감지력의 유무는 그야말로 ‘일반인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는 근거였기에, 자연히 인재를 뽑을 때의 기본적인 자격 조건으로 굳어져 있었는데.
그런 세상에서, 제국의 가장 큰 가문이 혁신적인 조건을 내걸고 인재를 모집한 것이다.
안 그래도 최근 각지의 마탑에서는 불길한 소문이 슬금슬금 나돌고 있었으니.
세상의 마나가 옅어지고 있다.
이 일로 인해, 사람들은 9대 기사 중 1인인 검제가 그 소문을 인정한 것으로 여겼다.
그가 세상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그에 황실의 하급 관리들부터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했지만.
황제의 장인이자 오러마스터, 혹은 오러익시더의 최상급으로 여겨지는 9대 기사에게 대놓고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 * *
파아아앙.
가볍게 내리친 검격에 전면의 공기가 파열음을 내며 터져 나간다.
아무런 마나도 오러도 싣지 않은 검격처럼 보였는데도 말이다.
그것을 지켜보던 기사들은 ‘역시’ 하는 표정으로 감탄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검을 휘두른 검제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역시, 숨 쉬듯 자연스레 모이던 마나도 이젠 약간은 집중을 해야 모인다.’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반쯤 발을 걸친 자신이 이럴 정도면, 이미 하급 기사들은 발전이 더뎌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대로 100년이 지나면…….’
검제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때까지 살아 있지야 않겠지만, 그는 대가문의 가주이자 제국의 중추.
가문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걱정은.
‘그럼, 전쟁의 양상은 어찌 변할까.’
답은 간단히 보였다.
초인들이 사라진 세상의 전쟁에서 무엇이 중요한 역할을 할지는 뻔했으니.
‘무기와 숫자.’
그중에서도 마계 대전 말미에 활약했던 폭뢰 같은 무기가 앞으로 무력의 중심이 될 것 같았다.
‘일단 폭뢰의 제조법부터 확보하고…….’
자연스레 머리를 굴리던 순간.
문득 타이니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 세상의 혼란을 최대한 줄여 가며 인류가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돕는 것. 그게 우리의 역할입니다.
“하…….”
왜인지 스스로가 부끄러워진 검제의 눈앞에 타이니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10년 전 마계 대전 직후부터 조금도 늙지 않은 그 모습이.
그리고 그는 한 가지 사실을 상기했다.
‘3년 동안 쉼 없이 싸웠다고 하던가.’
그것도 어떤 에너지의 보급도 없이.
경지와 무력의 차이를 떠나서, 그것만으로도 이미 녀석은 ‘신(神)’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 신은 영원할 것이고, 아마 세상의 전쟁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내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건가 대체…….”
신이 현존하는 한, 그 신과 직접적인 인연이 있는 발렌티아는 번성할 것이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가만…….’
타이니가, 불굴이 신이 떡하니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데 사회에 혼란이 생길 수가 있나?
설령 혼란이 벌어진다 해도, 그것은 결코 사회의 격변이나 전쟁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타이니는 불굴의 신이라는 원래의 신명 대신 ‘전신(戰神)’이라고도 불리고 있었으니.
그 존재감이 너무나도 확고한 탓에, 실제로 지난 5년간 소규모의 국지전이나 분쟁 이외에는 세상에 어떤 전쟁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혼란을 대비하라고 하는 거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휘두르던 검이 멈춰 섰다.
“설마 그 녀석…….”
혹여나 이 불길한 추측이 사실일까.
뒤에 이어질 말은 차마 뱉어 낼 수가 없었다.
* * *
“동생, 떠나려는 거야.”
“켁?”
불쑥 나온 루나의 말에 아르곤은 사레가 들렸다.
그리고.
“아빠……?”
먹음직스럽게 잘린 고기가 자신의 입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꼬마 아가씨, 올리비아가 멍하니 아빠를 올려다보는데.
“아, 미안. 자!”
“냠!”
딸이 행복한 표정으로 고기를 먹는 것을 보며 슬쩍 미소를 짓던 아르곤은 그제야 다시 생각에 잠긴 아내를 바라보았다.
“뭔 소리야 갑자기?”
“그냥, 느낌이야.”
“뭔 느낌이 그래? 타이니 얘기하는 거 맞지?”
“……응.”
“요전에 엘븐하임에 다녀오더니, 거기서 뭔 일 있었어? 아니면 무슨 얘기라도 들은 거야?”
“별일 없었고 들은 말도 없는데, 느낌이 그래. 딱 떠날 사람 같은 느낌이었어. 둘 다.”
“에스티나 님도?”
“응, 올케도.”
“뭘 보고?”
“그냥……. 느낌?”
그 말에 아르곤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게 사실이면, 엘븐하임에 가는 순례자들은 난리 나겠네.”
“아빠, 타이니 아저씨네 어디 가?”
“아니, 안 가. 엄마가 또 이상한 소리 하는 거야.”
“아니라고!!”
“아씨, 깜짝이야! 애 놀라게 갑자기 왜 소리를 질…….”
“……아빠만 놀랐어.”
딸의 딴지에 아르곤은 과장되게 입술을 삐죽였다.
“항상 내가 챙겨 주는데, 맨날 저 엄마 편만…….”
“아니거든!? 메롱.”
“맞거든요. 요 녀석, 아빠도 좀 편들어 달라고.”
“히히. 간지러워.”
아르곤은 딸의 뽀송한 볼을 조몰락거리다가, 다시 자신을 노려보는 아내의 눈치를 보았다.
“크흠. 아니, 그러니까 근거가 뭔데?”
“이상하지 않아?”
“뭐가?”
“동생 부부, 아직…….”
“아직?”
“……아기가 없어.”
쿨럭.
진지한 대답을 기대하던 아르곤이 헛기침을 하고 말았다.
“아, 엘프랑 인간이잖아. 당연히 잘 안 생기지! 자기도 하프 엘프면서, 왜 그걸…….”
“알아. 하지만 이건 다른 얘기야.”
“다른 얘기?”
“올케는 아쉬워했어. 아이를 못 낳는 걸.”
“못 낳는다고?”
“응. 단순히 인간과 엘프 사이라서 그런 게 아냐. 타이니의 신성이 문제라고 했어. 이 세상에는 신의 아이가 태어날 수 없다고.”
“아……. 왜 난 못 들었지? 그것도 모르고 저번에 우리 올리 자랑 엄청 했는데.”
“아빠, 켁. 숨, 숨 막혀.”
“미, 미안.”
아르곤은 괜히 미안해져서 옆에 있는 딸을 꼭 끌어안다가, 괴로워하는 올리비아의 반응에 다급히 팔 힘을 풀었다.
“내가 따로 물어봤으니까.”
그리고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 대화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떠올리고는 다시 머리를 갸웃했다.
“하.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게 왜 떠나는 이유가 되는데?”
“저번에 갔을 때, 올케가 아기들 옷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어. 내가 올리 임신했을 때 느낌이라 잘 알아.”
“오! 그럼 임신한 거 아냐!?”
“아냐, 절대. 그러니까 이상한 거야.”
“……그게 뭐야.”
“분명 신의 아이는 태어날 수 없는 세상이랬어. 그러니까…….”
“떠날 거다? 엘븐하임 떠난다고 뭐가 달라져? 어차피 이 세상……. 설마……?”
말을 하다 말고 무언가를 떠올린 아르곤이 눈을 부릅뜨는 순간.
“그래. 엘븐하임이 아니라 이 세상을. 나는 동생 부부가 그럴 생각인 건 아닌가 싶어.”
“야. 큰일 날 소리. 지금 해머교 위세가 한창 대단한 데다, 그게 아니더라도 걔가 사라지면 세상은 난리 날걸. 에이, 설마…….”
“당장은 아니겠지. 책임감 없는 애가 아니니까. 하지만 우리더러 혼란을 대비하라고 했었잖아.”
“그게 뭐?”
“인중신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세상의 혼란이 커져 봤자 얼마나 커지겠어. 그런데…….”
“아…….”
그제야 아르곤도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추측이 근거가 없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으니까.
하지만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남편, 그럼 우린 어쩌지? 뭘 해야 돼?”
“……그냥 녀석이 부탁한 대로, 혼란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지. 우리가 올리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라도.”
어차피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만약 아이를 갖고 싶어서 이 세상을 떠나는 거라면, 우리가 어떻게 말리겠어? 그치?”
“……그럼. 우리도 올리가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데.”
“나 땜에? 행복해?”
“그래. 태어나 줘서 고마워, 우리 딸.”
“히히.”
부부는 웃고 있는 딸을 한 번씩 꼭 안아 주었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착잡한 듯 서쪽을 향해 눈을 돌리는데.
왜인지, 그 방향에서 친구가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
“……앞으로 백 년. 그 정도면 될 거야. 괜찮지?”
엘븐하임의 가장 높은 곳, 세계수의 가지에 앉아 있던 타이니가 옆의 아내를 보며 웃었다.
“응. 활동도 줄여야겠네?”
“음. 나는 이 완성된 세상의 이레귤러니까. 괜히 변수를 더 늘릴 필요는 없지.”
“세상의 구원자가 무슨 이레귤러야.”
“그러니까 세상을 구했지. 원하는 것도 다 이뤘고. 한 가지 빼고는 말이야.”
타이니가 아내의 허리를 슬쩍 끌어안아 무릎에 앉히자, 에스티나는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미소로 답했다.
“……백 년. 기다릴 수 있어. 충분히.”
“그래. 고마워. 그래도 힘들 거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둘씩 떠나는 걸 이대로 지켜봐야 할 거고.”
“잊었어? 나 엘프야. 자기가 힘을 내야지.”
“아……. 그렇지.”
헛웃음을 지은 타이니는 다시금 저무는 노을빛 석양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엘븐하임의 서쪽, 이전에는 마역과 끝없는 산만이 존재했던 세상의 끝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세상은 돌고 돌아 순환할 테고, 그 과정에서 변하지 않을 우리의 존재는 방해물이 될 거야.”
“세상의 이치가 우리의 방해물인 거겠지. 너무 스스로를 비하하지 마, 구원자 남편.”
에스티나의 말에 타이니는 다시금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러니 우리에게 알맞은 세계를 찾아야겠지.”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
“아니, 우리를 위해서.”
인중신과 그 반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무의 가지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변화하는 세상을 기대하며, 조금씩 저물어 가는 석양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이 세상도, 좋아지겠지?”
“그래. 아마도.”
“어떻게 변할 거 같아?”
“음, 그건…….”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