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544
44화. 에시르
“엄마…….”
“조금만 참아. 곧 도시에 도착하면…….”
비틀거리는 소년의 팔을 붙들고 이끄는 여인.
소년은 입술 밖으로 살짝 튀어나온 엄마의 어금니를 보면서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짐마차를 타고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신들이 경원시 되는 것 같았……. 아니 실제로 그랬으니까.
– 오크? 오크가 왜 여기까지?
– 애는 그냥 인간 같은데?
– 하긴, 요새야 웬만하면 다…….
삭막한 세상,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는 빈민들에겐 주변 사람들과 화기애애하게 떠들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소년, 에시르는 그 목소리를 다 ‘들을 수’ 있었다.
그 안에 담긴 미미한 적의도 소년에게는 너무 두렵기만 했으니.
“엄마…….”
본능적으로 보호자를 찾아 시선을 돌리자,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엄마가 보였다.
“쉿, 아무 말 하지 말라고 했지?”
“……응.”
엄마 역시 인간과 구별되는 점은 어금니뿐이었지만, 자신은 아예 인간 아이처럼 태어났다.
그것만으로도 ‘대전사 바타르’의 자손으로서는 결격 사유인데, 에시르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이상한 능력까지 있었다.
종족의 변화와 함께 쇠락해 가던 오크족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능력.
거기에 에시르의 결정적인 실수(?)가 더해졌다.
– 아저씨.
– 응?
– 왜 돈 생각만 하면서, 말로는 전사의 혼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전사의 혼이 돈이에요?
대전사의 후예로서 오크 왕국 건국을 제창하는 바타르의 ‘직계’에게 했던 한마디.
순수한 의문으로 한 말이었지만, 그 한마디 때문에 에시르와 엄마는 부족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게다가 그 영향력을 피해, 제국도 아닌 연합까지 넘어와야만 했으니.
“……미안해, 엄마.”
에시르는 엄마마저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 그 품에 꼭 안겨들 수밖에 없었다.
“뭐가 미안해? 그 속내 시커먼 늙은이 바란이 나쁜 거지. 괜찮아, 에시르. 넌 잘못한 게 없어.”
그런 아들을 토닥여 주는 엄마의 손길.
– 내 새끼. 넌 내가 지킬 거야. 꼭.
언제나처럼 굳건하게 전해져 오는 엄마의 사랑이 에시르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겉모습은 어금니밖에 남지 않았어도, 그 돈 생각만 하는 아저씨와는 다르게 오크의 혼을 간직한 엄마는 언제나 강인했다.
그것이 어린 에시르의 마음을 지탱하는 단단한 기둥이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현실은 쉽지 않았다.
“오크? 미안한데 오크면 못 써 줘.”
“더럽게 오크가 어딜!”
“다른 데 알아봐! 에이, 재수 없어!”
인간의 도시에서는 엄마가 일할 만한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그래서 항상 남들이 기피하는, 더럽고 힘든 일을 해야만 했다.
“에시르, 엄만 괜찮아. 엄마는 강인한 오크니까.”
– 힘들다. 그래도 힘을 내야 해. 아들을 위해.
방계이긴 하지만 마지막 대전사의 후예로서 나름 곱게 자라 온 엄마가, 인간들에게 괄시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전부 나 때문이야…….’
어린 에시르는 그런 엄마를 섣불리 위로할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는 마음을 읽는 능력을 쓰지 않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래서 최대한 엄마를 돕기 위해 애썼다.
피곤한 엄마에게 안마를 해 주기도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적은 돈이나마 벌려고 했다.
그런데 엄마한테 혼이 났다.
“에시르! 내가 그런 거 할 시간에 공부하라고 했지!!”
너무 서운해서 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날 밤.
“미안하다, 에시르. 엄마가 능력이 없어서…….”
등을 돌려 누운 채 애써 자는 척하던 자신을 쓰다듬는 엄마의 손길이 그 서운함을 녹였다.
– 어려서는 배워야 해. 에시르를 막일만 하고 자라게 둬서는 안 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엄마의 바람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그의 외모는 엄마와는 달리 인간들 사이에 섞여 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일하는 대신 학교를 다녔고, 미친 듯이 공부했다.
그 결과, 막 성인이 되던 열여덟의 나이에 연합에서 주최하는 1급 관리 시험에 합격하여 주변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쯤 세상, 아니 연합에 격변이 일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
“우리는 무능력한 지배자를 원하지 않는다!”
“왕실을 끌어내려라!!”
왕국 중에서도 역사가 가장 짧은 미하르 왕국.
에시르가 공부한 나라에서부터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강림의 날로부터 어언 150년, 마나의 힘을 기반으로 세력을 다졌던 초인과 귀족의 시대가 저무는 소리였다.
솔직히 오크 이민자 출신인 에시르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아니, 오히려 좋은 변화였다.
“역시, 자네 같은 인재들이 혁명의 이유지.”
완전한 이민자 평민 출신으로서 어린 나이에 1급 관리 시험에 합격한 에시르는, 그 출신 성분만으로도 혁명가들에게 중용되기에 충분했으니까.
그러나 다행이라 생각한 것도 잠시, 거기엔 생각지 못한 비극이 따라왔다.
그 ‘권리와 자유’를 주장하는 혁명가들은 괴상한 이념까지 앞세우고 있었으니.
“이제는 인간의 시대다! 아직 ‘진화’하지 못한 도태된 종족들을 처단하라!!”
이른바 인간 순수주의.
과격하기 그지없는 극단주의 사상이었다.
사실 그렇다 해도 겉모습만 봐서는 오크족 출신인 걸 알 수 없는 에시르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의 어머니가 문제였다.
“더러운 오크 같으니!”
“죽여!!”
“아, 아악!”
미하르 왕국이 가리온 공화국으로 바뀌던 그 혁명의 시기.
이제야 고된 일을 끝내고 아들의 덕을 좀 보려던 어머니는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에 휩쓸려 그 명을 달리했다.
에시르가 가장 사랑하고, 보은하고 싶었던 사람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털썩.
“어, 어머니…….”
에시르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피투성이 어머니의 시신을 만졌다.
미하르 왕국으로 도망치듯 이민 올 때만 해도 젊었던 어머니의 피부는 이미 주름지고 갈라져 있었지만.
에시르는 여전히 자신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었던 어머니의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야, 이제야 편히, 편히 모실 수 있게 되었는데…….’
“흑, 흐윽…….”
덜덜 떨리는 손 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리는 만큼, 가슴속에서 분노가 쌓여만 갔다.
‘순수주의자, 자칭 혁명가 놈들……. 전부 찢어 죽인다. 하나도 남김없이……!’
출세를 꿈꾸던 이민자는 그 순간부터 복수귀가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다.
급진적으로 세상을 바꾸려 하는 세력이 주도권을 쥐게 되면, 필연적으로 그 반대 세력도 생기기 마련이다.
에시르는 아주 손쉽게 그 반대 세력에 접근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
그것은 이능이 사라지기 전, 전설의 시대에도 흔하지 않던 독특한 초능력이었으니.
“대체 어떻게 우리를 찾아……!”
“고발할 생각이었다면 혼자 오진 않았을 겁니다. 이래 봬도 전 왕실 1급 관리, 현 통령의 비서실에 있는 사람이니까요.”
혁명의 반대 세력이 그의 유용성을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때부터 가리온 공화국은 미처 처리하지 못한 왕당파의 잔재들에게 무차별 테러를 당하기 시작했다.
‘마음을 읽는 자’는 당국의 수사망을 완벽히 피해 가며, 공화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그 혼자서 바꿀 수는 없었다.
“과거의 잔재에 집착하는 더러운 무리를 처단했다!”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 구 왕정의 잔재들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졌다.
그리고 그로 인해 결국, 에시르의 존재도 발각당하고 말았다.
* * *
“에시르 서기관. 나는 너를 충분히 존중하고 대우했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그따위 짓을 한 거지?”
철그럭.
사지에 묶인 쇠사슬.
모진 고문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그 목소리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통령…….”
“그래. 나다 에시르. 어째서 그랬느냐? 나는 정말로 그게 궁금해. 어째서, 새로운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너 같은 인재가 그따위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었느냐!”
고개를 드는 순간, 통령의 마음이 보였다.
언제나 그랬듯 그야말로 순수한 열정.
아니, 순수하기‘만’ 한 열정.
오직 위만 보기에 아래를 보지 못하는, 이상주의자의 마음이었다.
자신은 반드시 정당하고 깨끗하다 믿는 그 더러운 마음이 너무나도 역겨웠다.
“네놈들이, 내 어머니를 죽였다.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필요하냔 말이다!”
“뭐?”
“각하, 실은…….”
여태 그를 고문하던 고문 기술자가 통령에게 뭐라 속삭였다.
하지만 통령의 미간은 슬쩍 찌푸려질 뿐이었다.
그리고.
“오크라며? 진화하지 못한 덜떨어진 종족 아닌가? 네 발목을 잡을 장애물을 처리해 줬는데, 그걸 원한으로 생각한다고? 자네 같이 영민한 사람이?”
미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걸 말이라고……!?”
증오와 함께 욕설을 토해 내려던 에시르는 다시 한번 통령의 마음을 보았다.
정말로 한 점 의심 없이 그렇게 생각하는 광인의 마음을.
그리고.
– 유능한 놈이었는데, 그럼 추방으로 끝낼 걸 그랬나? 괜히 죽이라고 했군.
생각지도 못한 그 내밀한 속삭임까지도.
“네놈! 네놈이 한 거였……. 네놈이! 이 미친놈이!!! 어떻게 사람이……!”
쿨럭. 쿨럭.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쌓아 온 분노조차 제대로 토해 내지 못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군. 이놈도 내일 준비시켜라.”
“예!?”
“과거의 잔재를 완벽히 털어 낸다. 혁명의 불길을 연합에 퍼트리는 신호로 삼겠다.”
“아, 영민한 결단이십니다!”
착.
피를 토하는 그의 앞에서 원수는 그렇게 멀어져 갔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세상을 바꿀 것이며, 그 신호로……!”
단상에 선 통령이 모여든 군중을 향해 일장 연설을 하는 광경을, 에시르는 교수대에 꿇어 앉혀진 채로 지켜봐야 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끝없는 후회뿐이었다.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초능력을 가지고도 고작 이 꼴로 끝장나게 생겼으니.
왕당파의 잔재와 접촉할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통령의 반대 세력을 만들었어야 했나.
‘아니면 과거의 그때…….’
지나간 과거의 후회만 곱씹고 있을 때.
“보십시오. 저기, 타이니교의 성기사들 역시 우리를 응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통령의 손짓이 후회에 잠겨 있던 그를 깨웠다.
‘타이니교…….’
150년 전, 그리고 160년 전.
세상을 멸망시킬 뻔했던 두 번의 재앙을 막아 낸 살아 있는 신을 모시는 종교.
하지만 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으며, 민중을 돌보는 데만 힘쓰는 종교.
물론 그 신이 아직도 살아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만, 세상의 그 어떤 나라도 그들을 무시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유일하게 초인의 힘을 간직하고 있는 조직.’
그래. 저곳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그 힘으로 통령을 끝장냈어야 했는데.
타이니 교가 최근 십여 년간 아예 성기사를 뽑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에시르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나라면 할 수 있었어!’
사제들도 사람인데, 마음을 읽는 능력으로 무슨 방법인들 못 찾았을까.
통렬한 후회가 그의 의식을 잠식하고 있을 때.
“우리는 혁명의 불길을 세상에 퍼트릴 것입니다.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통령의 연설이 끝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으로써 세상과 싸울 것입니다. 우리의 무기는 신념이요, 우리의 승리는 세상을 바꾸는 혁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진격. 그 첫 번째 목표는 연합의 중심, 그리마 왕국이 될 것입니다!!”
“우와아아아!”
군중들의 함성과 함께, 군대의 총검이 하늘을 향하는 순간.
절망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에시르의 눈에, 노을빛 무언가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저건……?’
죽기 직전에 보는 환상일까.
무언지 모를 빛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그 빛이, 통령이 있는 단상으로 떨어졌다.
번쩍.
꽈아아아아아아앙!
우르르르르르릉.
“꺄아아악!”
“무, 무슨……!”
“무슨, 일이……!”
“통령님을……!”
우르르르릉.
지진이 인 듯한 요란한 진동과 함께 자욱하게 먼지가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한참의 소란 뒤에 흙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오!”
“역시!”
가장 먼저, 광장을 둘러싼 타이니교의 성기사들에게서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이 바라보는 광장의 중앙.
단상이 있었던 곳에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 내고 처박힌, 길쭉하고 단단해 보이는 무언가.
그것은 사람보다 훨씬 커 보이는 거대한 망치였다.
“설마…….”
에시르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어려서부터 듣고 자라 온 신화 속의 무기.
그리고 그때.
그 무기에서부터 뻗어 나온 노을빛 성화가.
하늘 위에 찬란한 글자를 새겼다.
[국가 간의 전쟁은 금지한다.]백 년 전 제국의 9대 기사 검제의 장례식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였다던, 신의 메시지였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