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545
45화. 신의 메시지
가리온 공화국의 군터 통령이 천벌을 받았다!
세상을 강타한 그 소문은 단숨에 혁명의 불씨를 잠재웠다.
단순히 소문만은 아닌 것이, 인중신의 무기 ‘녹턴’이 통령과 혁명 세력의 간부들을 단숨에 먼지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본 사람만 만 명이 넘었다.
그리고 그 현장에 없던 혁명 세력의 나머지 간부들은, 타이니교의 성기사들에게 그대로 ‘처형’당했다.
“신께서 전쟁을 금지하셨다!”
“전쟁을 획책한 혁명 세력의 간부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그들은 마계 대전 때도 활약했던, 폭뢰를 기반으로 개발된 화약 무기들로 저항했지만.
타이니교의 성기사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은, 전전긍긍하며 가리온 공화국의 행보를 지켜보던 주변 왕국들에게 희소식이나 다름없었다.
“이 틈에 가리온을 병합한다!”
“갈기갈기 찢어서 다시는 혁명 따위 생각도 못 하게 만들어라!”
각국의 국왕들은 이번 기회에 공화국을 멸망시키려 했다.
신분제를 폐지하고 모두가 평등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혁명의 불길은, 타국의 왕족에게도 위험 요소였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가리온의 통령을 벌한 신의 뜻을 곡해하고 있었다.
공화국이 천벌을 받았으니, 그들을 적대하던 자신들의 움직임이 정당화될 거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 착각은, 이 땅에 신의 망치가 정확하게 두 번 더 떨어지면서 무참히 깨져 나갔다.
꽝.
가장 적극적으로 공화국의 정벌을 주장하던 카일 국왕에게 한 번.
꽝.
그것에 호응하며 바로 군사 행동을 시작했던 그리마 국왕에게 또 한 번.
단 세 번.
하늘에서 떨어진 망치는 신의 메시지를 완벽하게 세상에 전달했고.
[국가 간의 전쟁은 금지한다.]그 후로, 그 누구도 감히 전쟁을 입에 담지 않았다.
백 년 넘게 소식이 없던 인중신의 등장에, 조금씩 기울어 가던 타이니교의 성세가 다시금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다만 그 모든 변화는, 한 사람에게는 허망하기만 했다.
“흐…….”
눈앞에 놓인 술잔을 바라보는 에시르의 눈빛은 텅 비어 있었다.
“신이라고……. 신……?”
또르륵.
벌컥벌컥.
“크…….”
빌어먹을 신.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면, 왜 그전에는 모른 척한 것인가.
‘신이란 자가 남의 불행을 즐기는가? 크크크.’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진작에 세상을 두루 살폈어야지.
이 황당하고 엿 같은 상황에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다 더 황당한 것은.
“에시르 님, 저희의 청을…….”
“시끄러!”
와장창!
통령의 손에 죽을 뻔하다가 신에게 구원받은 그 ‘재강림의 날’ 이후.
그가 이 난리를 수습할 상징적 인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기회를 잘만 이용하시면, 에시르 님의 왕국을…….”
“꺼지라고!”
와장창.
헛소리하는 놈들의 입을 찢어 버리고 싶었는데.
술에 취했는지, 던지는 잔마다 빗나갔다.
– 저놈을 이용해야 하는데…….
– 그래야 다시 혁명 세력에 불을…….
그대로 읽히는 더러운 속셈은 둘째 치고, 애초에 그는 이제 어떤 것에도 의욕이 솟지 않았다.
다행히 놈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더 엉겨 붙지 않고 돌아갔다.
물론 내일이면 다시 찾아올 테지만.
털썩.
“빌어먹을. 신이 있다면, 세상이 왜 이따위…….”
다시 바에 주저앉아 한탄해 보지만, 에시르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신세를 한탄하고 술을 퍼마신다고 해도 변하는 것은 없음을.
그리고 그것을 알기에, 자꾸 술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술기운으로 정신이 몽롱하게 풀려 갈 때.
“신이 원망스러우신가요?”
“당연히…….”
낯선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대답한 순간, 문득 고개를 돌려 보니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술에 취해 흐릿한 시야에도 확연하게 보이는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단발머리의 미인.
“누구……?”
“에나 모르스. 타이니교의 성기사이기도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술이 확 깨는 느낌.
“모르스? 성기사?”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타이니교의 성기사.
게다가 제국에서 최고로 꼽히는 두 가문 중에서도 모르스라면.
“신의 혈족……?”
현세에 최고의 대우를 받는 신분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죠. 엄밀히 말하면 먼 방계지만.”
그렇다기에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런, 분이 저를 왜……?”
“그날, 통령의 가장 가까이에 있었으면서도 살아남으셨다고 들었어요.”
“가장 가까이는 아니었습니다. 과장된…….”
“어찌 되었건, 그날 녹턴의 세례에서 살아남으신 분 맞죠? 처형 직전에.”
“그렇……습니다.”
“가만히 말씀을 들어 보니, 신의 뜻을 궁금해하시는 것 같던데요.”
“술주정을 듣고 계셨습니까? 귀하신 분께서?”
당황스러운 마음에 묻자, 여자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신분제 폐지를 주장하던 혁명 세력의 일원 아니셨나요? 귀한 분이라니, 재밌는 말을 쓰시네요.”
“그리고, 그 세력에 처형당할 뻔한 사람이죠.”
에시르의 쓴웃음에 여자, 에나가 피식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흠. 그리고 듣자 하니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여자의 그 웃음을 보는 순간, 술기운이 더욱 멀리 달아났다.
“당신도, 저를 이용하고 싶으신 건가요?”
“이용? 이용이라면 이용이겠죠. 다만 서로 윈윈하는 방향으로요.”
의심쩍었지만, 마음을 읽어 보니 그 또한 진실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 여자는 나타난 이래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신기하죠? 마음을 읽으신다고 들었는데.”
“예?”
“원래 제가 좀 솔직한 편이라. 가감 없이 속마음을 다 말하는 편이거든요. 저 같은 사람 별로 없는 걸로 아는데?”
어깨를 으쓱하는 여자의 태도에는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하지만 에시르는 그 자신감이 고깝게만 보였다.
‘제국의 공작가에 타이니교의 성기사. 누구한테도 아쉬운 소리 할 필요가 없었겠지.’
밑바닥을 구르면서 살아온 자신과 정반대의 배경을 가진 여자.
그렇기에 반감이 일었지만 차마 표현할 수는 없었다.
“당신 같은 분이 저게 뭘 필요로 하시는 겁니까? 굳이…….”
그런데.
“저도 신의 뜻이 궁금하거든요. 같이 찾아보시지 않을래요?”
여자, 에나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무슨…….”
“엘븐하임은 물론 세상 어디에서도 자취를 보이지 않던 신이, 백 년 만에 자신의 뜻을 지상에 내보였어요. 전란을 막기 위해서.”
그래. 그랬지.
그래서 내가 혼란스러워하는 거고.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교와 가문에서는 신의 뜻을 궁금해하고 있거든요. 아니, 정확히는 걱정하고 있는 거죠. 아직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요.”
걱정? 아직 다 말씀드릴 수 없다?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모든 말이 진실이었다.
“그런데 왜 저를…….”
“궁금하지 않으세요? 인간으로서 신이 된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말이에요. 당신의 능력이 통한다면…….”
그 말에 술기운이 확 가셨다.
“……신을 찾을 수 있을 겁니까?”
“예. 단서는 있어요.”
“신이 피한다면?”
“아마도……. 제가 그분을 찾아낸다면, 굳이 만남을 거절하지는 않으실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개인적인 직감이지만 확실하다고 생각하셔도 돼요. 이래 봬도 성기사이기도 하니까.”
자신 있는 이유가 그것뿐만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럼 좋습니다.”
왜 이따위 세상을 방관하고 있는지, 신에게 따져 묻고 싶다.
가슴속 깊이 묻어 두었던, 스스로도 근원을 알 수 없는 그 열망이 에시르의 마음에서 다시금 피어올랐다.
“그럼 내일부터 출발하는 걸로 알게요. 내일은 술 안 드실 거죠?”
“물론입니다.”
다음 날 오후.
“우리는 성물을 찾아야 해요.”
다시 만나자마자, 에나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성물? 타이니교에 성물이 있습니까? 들어 보지 못했는데.”
“아뇨. 타이니교가 아니라, 여신교의 성물이요. 마계 대전 때 항마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과거의 성물.”
“아. 그건 마계 대전에서 여신과 함께 사라진 것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아는 사람이 많지요. 하지만 아니에요.”
“그렇다 해도, 그게 불굴의 신과 무슨 관계가……?”
“과거 신력의 잔재를 모아서, 현세에 존재하는 유일한 신의 신성을 추적해 볼 생각이에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에시르 님의 역할이 중요해요.”
“제가요?”
“예. 한 가지 성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행방이 묘연하거든요. 단서는 있지만.”
“단서가 있다면 그걸로…….”
에시르는 막연한 거부감에 퉁명스레 대꾸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다행히 에나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을 뿐이었다.
“마법이 사라진 시대.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만큼 인간이 감춘 성물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게 있을까요?”
“……그렇군요. 그런데 인간이 감추다뇨?”
“여신의 성력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존재하지 않지만, 옛 성물은 그것 자체로 보물이거든요.”
“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야기였다.
“그럼…….”
“첫 번째 성물은 제국의 발렌티아 공작가에 있어요. 제국으로 가야죠.”
“엑!?”
“뭘 놀라요? 저도 모르스 가문 출신인데…….”
“그거야 그렇지만…….”
“겁먹지 말아요. 발렌티아는 우리 가문과 친하니까, 사실상 첫 번째 성물은 쉽게 얻을 수 있을 거랍니다?”
그럴 거면 나한테 오기 전에 미리 얻어 두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감히 내뱉을 수 없었다.
“……가시죠.”
“좋아요. 발렌티아까지 직행으로 가는 기차를 예매해 뒀습니다.”
“예?”
“설마 말 타고 갈 줄 알았어요? 이 시대에? 신문물을 써야죠.”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귀족들은 아직 마차를 애용한다고 들었는데.
그 말을 차마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에나는 그의 속을 짐작한 것 같았다.
“저는 그렇게 꽉 막힌 귀족이 아니랍니다. 물론 제가 신문물을 자주 이용하는 건 신의 뜻을 짐작하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작한 거였지만요.”
“그건 무슨 말입니까?”
“백 년 전, 신이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나서부터 세상은 급속도로 발전했답니다. 마나는 사라졌지만, 그것을 대체하기 위한 기술이 나오기 시작했죠. 그리고 불과 10년 전에는…….”
“증기 기관.”
“예. 그래요. 그것을 바탕으로 민중들이 귀족 이상으로 빠르게 모일 수 있는 이동 수단까지 만들어졌죠.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말입니까?”
“아무리 마나가 사라졌다고 한들, 신화시대 이후 2천 년 이상 답보하던 기술이 불과 백 년 사이에 이런 진보를 이루어 냈다는 게요.”
“……설마 그것이 신의 뜻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죠.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씁쓸한 미소를 짓는 에나를 보니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배경만 본다면 세상에 남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을 듯한 이 아가씨는 왜…….
“……왜 신의 뜻을 궁금해하는 겁니까?”
“예?”
고개를 갸웃하는 그녀를 보니, 그간 담아 두고 있던 근본적인 의문이 불쑥 입 밖으로 나왔다.
“저야 그렇다 쳐도, 에나…… 님은 부족함 없이 살아오신 것 같은데. 왜 신의 뜻을 궁금해하시는 건지, 저는 그게 궁금합니다.”
“음…….”
에나는 잠깐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냥요.”
“예?”
“사람으로서 신이 된 사람, 궁금하지 않아요?”
그 말 또한 진실이었지만, 그게 다는 아닌 듯했다.
그러나 에시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애초에 그에게 질문이란, 묻는 순간 끝이 나는 일방통행의 언어였다.
무심결에 툭 던진 질문에 상대방은 반사적으로 답을 떠올리기 마련이고, 그는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아, 저기 철도역이다!”
화제를 돌리는 에나의 뒤를 따라가는 에시르의 얼굴은 무겁게 굳어 있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