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546
46화. 신을 찾는 사람들 (1)
“제국 남부산 특식입니다!”
“제국에서 유행하는 간식을 맛보세요!”
“카룬에서 온 어포입니다! 맛 좀 보세요!”
퓨슉 퓨슉.
츠츠츠츠츠.
미하르, 아니 옛 가리온 공화국의 한 권세가의 저택을 개조한 기차역에는 온갖 소음이 가득했다.
증기를 뿜어내며 들어오는 기차.
승강장에서 온갖 물건, 특히 먹거리를 파는 상인들.
그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
그중에는 뾰족한 귀나 튀어나온 어금니를 가졌거나, 전신에 털이 나 있는 이들도 많이 보였다.
불과 한 달 전까지 혁명 세력, 순수주의자들이 지배했던 나라에서 말이다.
그 광경을 생경하게 바라보는 에시르의 시선을 느꼈을까.
묻지도 않았는데, 에나가 입을 열었다.
“숨어 있던 이종족들이 미하르, 아니 가리온을 떠나려고 슬슬 나타나고 있는 거예요.”
“……그보다는 무정부 상태인데 기차역이 운영되고 있는 게 신기하군요.”
“그거야 저희 타이니교에서 통제하고 있으니까요.”
“예?”
“정말 그동안 술만 드셨나 봐요? 가리온은 저희 교에서 임시로 통제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백 년 만에 처음으로 신께서 메시지를 보내신 곳이니까요.”
“아…….”
납득할 수 있었지만…….
납득하기 싫었다.
“정말 잘난 신이군요.”
삐뚜름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비꼬는 말을 뱉어 냈다.
속으로 아차 싶을 때.
“예. 잘난 신이시죠. 멸망할 뻔한 세상을 두 번이나 구해 냈으니.”
에나는 오히려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강림의 날 이후 불과 150년.
세상이 급변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기준으로도 불과 대여섯 세대 전의 일인 데다 당시를 기억하는 장생종이 아직 살아 있기도 하다.
신의 업적은 수많은 증거나 증인들을 통해 생생히 전해지고 있었으니.
다만 그 업적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의 가슴속에서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신이 왜…….”
“우리는 그걸 물으러 신을 찾는 겁니다, 에시르 님.”
“……예. 그렇지요.”
그 불만 가득한 표정을 읽었을까.
“에시르 님의 마음을 제가 다 짐작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분은 세상을 아끼시는 분입니다.”
“예, 예. 그렇겠죠.”
에나가 살짝 표정을 굳히며 불필요한 말을 더하자, 그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애초에 그분의 뜻이 아니더라도, 군터 통령의 야망은 실현될 수 없었을 거예요.”
“……예?”
“우리 성기사단이 왜 그날 광장에 갔을 것 같아요? 설마 진짜 혁명 세력을 응원하러?”
에나의 날카로운 눈빛에 그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 뭐 고작 300명도 안 되는 기사단으로 수만의 군대를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성기사가 두 다리로 성벽을 뛰어넘고 칼로 바위를 자르기도 하는 초인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들도 칼이나 총에 상처 입는 사람이다.
고작 300명으로는…….
“예,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혁명 세력을 전부 죽일 생각이었어요. 타이니교의 가르침은 전쟁을 허용하지 않으니.”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에나의 대답은 당당하기만 했다.
단순히 허세가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에는 확고한 자신감이 있었으니.
“……가능하다고요?”
“저희가 요즘 무력 활동을 잘 안 하다 보니, 에시르 님 같은 영민한 분들도 잘 모르는 거지요. 초인의 힘을 간직하고 있는 집단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래 봤자 총알 세례는…….”
그 말에 에나의 표정이 삐뚜름하게 변했다.
명백한 비웃음.
“어디서 견습 성기사 한 명이 총에 맞아 죽는 거라도 보셨나 보네요? 아, 미하르면. 그때 거긴가? 테우스시?”
“…….”
“맞군요. 그런데 그 후에 그놈들이 어찌 됐는지는 모르셨나 봐요?”
“그럴 리가요.”
모를 리가 없었다.
혁명 초기, 군터의 세력보다 먼저 민중 봉기를 일으켰던 이들이 타이니교 기사단에 의해 쓸려 나갔었다는 것을.
하지만.
“어쨌거나 초인에게도 총알이 통한다는 거 아닙니까.”
“아니에요. 그 로드니 경이 아직 견습이라 신성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뿐이죠.”
“그렇다 해도…….”
대군을 상대로는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반박하려 했는데.
“거기에 타이니 성기사단의 단체 스킬, 불굴의 기세가 더해지면?”
“……단체 스킬? 그거 단순히 기사단이 뭉쳤을 때의 시너지 효과를 말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아니에요. 실제로 존재하는 전투 스킬이죠. 성기사들의 내구력과 지구력을 5배 이상 증폭시키는.”
이어진 에나의 말에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테우스시에서 일어난 민중 봉기라면 에시르도 잘 알고 있었다.
정변 과정에서 자행된 대규모 학살에 분노한 그 로드니라는 성기사가 칼을 빼 들자, 봉기 세력 천여 명이 그를 처단하기 위해 동시에 총탄을 퍼부었는데.
그는 총탄의 세례에 죽어 가면서도 백 명이 넘는 인간을 참살했다고 한다.
그때의 그 사건은, 군터가 혁명의 와중에도 결코 타이니교를 건드리지 않게 만든 원인이 되었던 것이니까.
그런데 그자가 정말 견습이었고, 정식 기사단에는 그 단체 스킬이라는 것도 실제로 존재한다면.
“……정말로 고작 성기사단 300명으로 군대를 상대할 수 있다는 거군요.”
“상대하는 정도가 아니죠. 학살할 수 있어요. 그날 그분의 메시지가 아니었다면, 군터 통령뿐만 아니라 그 군대 전체를 저희가 지워 버렸을 겁니다.”
싱긋 웃는 에나의 모습에 에시르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그러면서 오기도 치밀어 올랐으니.
“그런 힘을 가졌으면서도 왜……!?”
“우리 교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전쟁만 아니라면요.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른 사회의 변화는 인간들이 스스로 이끌어야 한다고, 교리가 가르치고 있지요.”
거기까지는 에시르도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런 의미에서 군터 그자는 정말 교활했어요. 극단주의자들을 이용해서 테러를 저지르면서도 그것을 민중을 한데 뭉치는 동기로 사용했으니까요.”
이어진 말은 다시 그가 이를 악물게 만들었다.
“교에서는 알고 있었던 겁니까? 통령이 그 극단주의자들의 배후였다는 것을?”
“물론이죠.”
“그걸 알면서도 방관했다는 겁니까!?”
“사실 순수주의자들의 산발적 테러는 저희 기준에도 아슬아슬했거든요.”
“그래도……!”
“말했잖아요. 군터 그자가 교활했다고. 교의 눈치를 살피며 딱 선을 지킨 거죠.”
“빌어먹을…….”
신의 징벌에 죽은 원수. 그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자 간절하게 술이 당겼다.
누군가는 그리 말할지 모른다.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원수가 천벌을 받았으니 오히려 좋은 거 아니냐고.
하지만 에시르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목숨을 걸어서도 하지 못한 일을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신이 놈의 악행을 오랫동안 방치한 것으로 느껴졌다.
“……어머니께서 오크족이었다죠? 유감이에요.”
“어머니뿐만 아니라, 나도 오크족입니다. 태생으로 따지자면.”
“그야…….”
에시르의 신경질적인 눈빛을 본 에나는 작은 한숨과 함께 뒷말을 삼켰지만, 그 마음의 소리는 그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 어차피 모든 인류는 서서히 인간의 모습으로 수렴될 겁니다. 다시 백 년이 지나면 이종족은 전설로만 남겠죠.
그래, 그렇게 되겠지.
자신의 겉모습이 다른 인간들과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하지만.
‘이게 만약 신의 농간이라면…….’
신을 만나면, 주먹질이라도 할 것이다.
그게 불가능하면 욕이라도 한바탕 퍼부어 주겠다.
그 죗값으로 목숨을 내놓게 될지라도 말이다.
에시르는 다시금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승강장으로 들어섰다.
* * *
기차의 속도는 정말 대단했다.
제국의 발렌티노까지, 준마로도 한 달은 걸릴 거리를 고작 일주일 만에 주파했으니까.
하지만 그조차 에나의 마음에는 들지 않은 듯했다.
“에시르 님이 성기사였다면, 그냥 축복과 함께 말을 달리는 게 훨씬 빠르긴 했겠죠.”
“죄송합니다.”
“아니, 그런 말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니고요…….”
유독 말이 없는 에시르와 일주일을 넘게 동행하다 보니 많이 답답했던 것이다.
“애초에 제가 모신 건데요, 뭐. 아무튼, 드디어 제국이네요. 제국 처음 오시……. 아, 아니려나?”
“처음이나 다름없습니다.”
에시르는 발렌티노의 기차역에서 번화한 거리의 모습을 보며 잠시간 추억에 빠져들었다.
– 엄마, 나 힘들어……!
– 안 돼! 조금만 참아. 제국에서는 바란 숙부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어.
국경을 넘어 연합으로 향하던 어린 시절의 자신과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으니까.
“에시르 님?”
“아니, 아닙니다. 가시죠.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
“발렌티노에 와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왔었다기보다, 잠깐 지나쳤었지요. 이 기차를 타기 위해. 말씀드렸듯이 처음이나 다름없습니다.”
“……예.”
거리를 둘러보는 그 대답에는 왠지 모를 아련함이 담겨 있어, 에나는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에시르가 물었다.
“아, 오크 왕국 건립은 어찌 되었습니까? 얼마 전에는 거기도 가리온 공화국처럼 된다는 말이 돌았던 것 같은데?”
“아. 여전히 부족 체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바타르족 부족장인 바란이라는 오크가, 가장 강성한 부족장이 왕이 되어야 한다면서 물러서지 않고 있는 거죠. 그 사람도 대단해요. 얼마나 왕이 되고 싶은 건지. 벌써 이십 년도 넘은 것 같은데.”
그 대답이 에시르를 피식 웃게 만들었다.
“과연…….”
“이게, 재밌는 소식이었나요?”
“아니,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닌데? 흠, 에시르 님은 역시 특이한 분이네요.”
그런 게 정말 아닌데.
에시르는 그냥 또 피식 웃고 말았다.
바란 바타르.
‘외부에서는 누구나 그리 얕게 보고 있는 사람이…….’
고작 손자뻘인 아이가 직언을 했다고, 부족 밖으로 추방했다.
어렸을 때는 그것 때문에 자책하기도 했었는데.
‘그냥 사람이 못났다. 너무.’
에시르는 녹색 피부를 자랑하며 혈통을 강조하던 배불뚝이 장년인을 떠올리며 비웃음을 지었다.
‘지금쯤 노인이 되었겠지.’
그런데도 속이 간장 종지보다 좁으니, 왕이 아니라 부족장도 과한 그릇이었던 듯하다.
‘오크족이 어쩌다가 이리되었을까.’
타고 다니는 형제의 종족을 부족의 이름으로 삼고 전사의 실력으로 부족장을 뽑던 오크의 전통은 이제 없다.
흐려지는 오크의 핏줄을 보전한다는 명목으로 장자가 족장을 계승하도록 바꾼 폐단의 가장 큰 수혜자가 바란이 아닌가 싶었다.
“교에서는, 오크족이 이대로 분열되어 있으면 언제고 웨어비스트나 아스란 제국에 먹힐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도 초원 지대 오크 부족들은…….”
“대부분 제국과의 무역이나 관광 상품으로 먹고 살죠.”
“아, 그쪽 출신이셨나요?”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관심이 있으셨구나. 어느 부족이죠? 설마 바타르?”
“……잊었습니다.”
오래된 원한이었지만, 그 대상이 그토록 보잘것없다는 걸 알고 나니 허망하기만 했다.
한편으로는 급변하는 이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망가져 버린 자신의 삶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신은 무슨 생각인 걸까?’
에나에게 신을 찾으려는 ‘이유’가 있듯, 그의 마음에도 궁금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럼, 어서 발렌티아 가문으로 가죠.”
그런데 역시나 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여정의 첫 번째 목적지에서부터 뜻밖의 변수를 만나게 되었으니.
“신을 만난다라? 구미가 당기는 말이군요. 그럼 성물을 드리는 대가로 저도 같이 가게 해 주시죠. 무신(武神)을 직접 만나 이 시대를 극복할 방안을 묻고 싶습니다.”
발렌티아의 장남, 아드리안 폰 발렌티아의 제안에 그들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