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547
47화. 신을 찾는 사람들 (2)
신을 찾아간다고 하면 보통은 그냥 헛소리로 듣기 마련인데, 아드리안 폰 발렌티아는 아예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서 같이 합류를 청하니.
“아……. 아실지 모르지만, 이 상실의 시대를 가장 슬퍼하는 사람 중 하나가 저거든요. 명색이 ‘오러마스터’ 검제의 후예인데 마나 블레이드 정도는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글서글하게 웃는 금발의 미남, 아드리안의 얼굴은 그늘 한 점 없이 맑아 보였다.
하지만 그 속내는 다르다는 것을, 두 사람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아드리안 폰 발렌티아는 제국은 물론 인근 국가에서도 유명한 별종이었으니까.
아니, 좋게 말해 별종이지.
– 마나 소실의 시대에 검제의 비기를 재현하고자 하는 광인.
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일명.
‘세계 최고의 미남 또라이…….’
그 기행이 오죽 과했으면,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가문의 승계 구도에서 확 멀어졌다는 소문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두 사람이 발렌티아에 방문했을 때 사용인들이 보인 태도는, 그 소문이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으니.
– 아드리안 공자님이요? 그 괴짜 공자는 왜?
– 검술 수련 하고 있겠죠. 체력은 대단하신데…….
– 안타깝게도 얼굴만큼 뇌도 맑으신 분이라…….
고위 귀족가에서 사용인이 손님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드리안의 가문 내 입지를 말해 주고 있는 거였다.
물론, 그런 괴벽 덕분에 이미 세상에 잊힌 성물을 수집하고 있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좋은 일이었지만.
“그러니, 저도 그 여정에 꼭 따라가고 싶습니다.”
그 괴짜가 이렇게 나오고 있으니 난감할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되겠죠? 성물 ‘아모르(Amor)’는 제 소유니까요.”
주먹만 해 보이는 새하얀 보석.
그것이 과거 성물이 영락하고 남은 핵이라던가.
아드리안은 그 성물을 손에 쥐고 흔들어 보이고 있었으니, 동행을 허락하지 않으면 주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미리 얘기가 된 거 아니었습니까?”
“대가를 지불하고 가져가면 된다고 들었는데, 그 대가가 이런 걸 줄은 몰랐죠.”
아드리안의 잘생긴 얼굴이 흉해 보이기라도 하듯 에나는 인상을 구겼다.
그러자.
“애드라고 불러 주십시오, 에나 양. 우리 어릴 때는 그래도 좀 만나지 않았습니까?”
“예. 공자님은 여전하시네요.”
“하하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에나의 빈정거림에도 아드리안은 그저 웃기만 했다.
에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어색한 웃음으로 답할 뿐이었지만.
에시르는 웃을 수 없었다.
겉으로는 마냥 속없이 웃고 있는 것 같은 아드리안의 속마음이 보였으니까.
– 반드시, 반드시 가문의 비기를 복원해야 한다. 그래서 어머니를 살릴 테다.
웃고 있는 얼굴의 이면에는 피를 토하는 것 같은 절절한 외침이 있었던 것이다.
에시르로서는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소리.
“……같이 가시죠. 든든하겠네요.”
“에시르 님?”
“역시, 뉘신지 모르지만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뉘신지 모르는데 역시는 무슨 역시냐, 인간아.
뇌가 맑다는 말이 마냥 거짓도 아닌 듯하여 에시르는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궁금하긴 했다.
‘발렌티아 가문의 비기면 무술일 텐데, 그게 어머니를 살리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하지만 캐물을 수도 없는 노릇.
“발렌티아의 대공자님께서 함께하신다면, 일은 더 편해지지 않겠습니까. 예산에 여유도 생길 테고.”
“예산, 이요?”
그의 말에 아드리안이 움찔했지만.
“아, 그렇죠. 그렇긴 하겠네요.”
그가 뭐라 하기도 전에 에나가 재빨리 호응했다.
“아. 혹시 융통하실 예산이 없나요, 공자님? 그럼 곤란한데요. 저희도 빠듯해서.”
“하, 하하. 그럴 리가요. 충분합니다.”
굳이 마음을 읽을 필요도 없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에시르는 상관하지 않았다.
신을 찾는다는 목적만 달성한다면, 누가 함께하건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다행히도, 에나나 아드리안의 뜻도 결국은 비슷한 것 같았으니.
발렌티아에서 시작된 세 사람의 여정은 별 탈 없이 이어졌다.
두 번째 목적지는 증기 기관의 보급에 따라 석탄의 수요가 폭증하며 급성장한 광산 가문, 에페르였다.
덕분에 졸부라는 소리를 듣는 에페르 가문은 모르스와 발렌티아의 핏줄이 자신들에게 도움을 청하자 흔쾌히 만남을 허락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런데 귀하신 분들이 어쩐 일로……?”
돼지인지 사람인지 헷갈리는 모습의 록펠 에페르는 연신 눈알을 굴리며 에나와 아드리안의 눈치를 살폈고.
그사이, 에시르는 그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캐치했다.
‘귀족가와 사돈을 맺기를 원하지만, 그게 어렵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습니다. 일단은 연례 파티 초대장을 주고 가문끼리 직거래를 트는 정도면 될 듯합니다.’
에시르의 속삭임에 아드리안의 눈동자가 커질 때.
에나는 신속하게 그 제안을 수용했다.
자연히.
“하하하. 우리 에페르도 모르스와 발렌티아와 더불어 제국의 축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이렇게 헌앙하신 공녀, 공자님들을 뵙게 되니 그 길이 더욱 빨라진 듯하군요.”
그렇게 두 번째 성물, 유스티티아(Justitia)가 일행의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두 성물의 반응을 따라 남은 성물을 쫓으면 돼요.”
에나의 노을빛 성력의 자극을 받은 두 성물이, 세 번째 성물의 위치를 가리켰다.
그런데, 거기엔 작은 문제가 있었다.
“그 산에 가시려고? 도적 떼 본거지인데? 위에서도 예산이 없다고 방치하는 곳인데. 특히 아가씨처럼 예쁜 분이 가면 큰일 나요.”
시대의 변화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국경.
성물의 반응이, 그 언저리의 산에서 활동하는 도적 떼의 본거지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분은 여기서 기다리세요.”
그 예쁜 아가씨는 홀로 나서겠다고 말했고.
“기사로서 어찌 레이디가 홀로 싸우게 두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아드리안의 고집에 에시르까지 강제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괴, 괴물이다!”
“마녀다!”
“피해!!!”
바위를 칼로 자르고, 총알을 피해 내는 상급 성기사의 능력을.
심지어 에나 모르스는 그림자를 넘나드는 능력까지 선보이며 그야말로 귀신처럼 도적 떼를 학살했는데.
총 300여 명의 도적 떼가 전멸하는 데는 고작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 좀 적당히 할 걸 그랬나요?”
피투성이가 된 몰골로 씩 웃으며 주먹만 한 성물을 가지고 나오는 에나를 보며, 에시르는 움찔하며 물러섰고.
아드리안은 감동했다.
“그, 그건, 모르스의 비기! 성력으로도 가능한 거였습니까!?”
“뭐, 약간은요. 제가 체질이 잘 맞아서…….”
“젠장. 역시 성기사가 되어야 했어!”
“성기사요……?”
머리를 싸매는 아드리안을 보며 에시르는 궁금해했지만, 굳이 자세히 물을 필요도 없었다.
– 그때 시험에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성기사 뽑는데 왜 필기 시험을 보냐고!!
“…….”
아무튼 그렇게 세 번째 성물, 인둘투스(Indultus)도 그들의 손에 들어왔다.
“위대한 초인들의 후손이라? 반갑구려. 뭐, 적합한 대가만 주신다면야 유물은 넘길 수 있지.”
이제는 수인의 흔적만 남은, 늑대의 귀를 가진 웨어비스트의 방계 왕족은 돈을 요구했다.
“아드리안?”
“나, 나?”
“에나는 성기사잖아. 출가외인. 큰돈은 못 써.”
“그, 그렇지. 아. 하하. 뭐 간단하지.”
– 이, 이제 난 거지야……. 이러고도 비기를 복원하지 못하면 어쩌지?
그 와중에 몰래 눈물을 흘리는 아드리안이 있었지만.
‘왜 발렌티아의 대공자가 돈 걱정을 하는 거지……?’
에시르는 굳이 파고들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애써 외면했다.
그렇게 그들은 네 번째 성물 아니마(Anima)를 얻었고.
“이, 이딴 게 성물이라고? 그렇다고 해도, 내가 왜 너희들에게 넘겨야 하지? 그리 원하면 적합한 대가를 제시해.”
이제는 드워프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큰 키를 가진 드워프 구두쇠가 또다시 큰돈을 요구했을 땐, 울상 짓는 아드리안을 보며 에시르가 나섰다.
“제게 성물을 맡기시면, 아내분을 독살한 범인을 잡아 드리겠습니다.”
“뭐!? 너, 그걸 어떻게?”
“소문을 들었습니다.”
마음을 읽었다.
“흥. 이미 10년이 넘게 지난 일로 나를 현혹하려 하지 마. 당시에도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하지만 찾아낸다면요?”
“……그렇다면야. 그 찢어 죽일 놈을 대가로 유물 따위 넘겨 주지.”
그렇게 그 드워프를 설득하여, 다섯 번째 유물 노빌리타스(Nobilitas)도 얻을 수 있었다.
에나 모르스의 무력, 에시르의 마음을 읽는 능력, 거기다 모르스와 발렌티아 가문의 이름과 재력이 합쳐진 성과였다.
그렇게 그들은 고작 1년 만에, 마계 대전 당시 소실되었다는 후마니타스(Humanitas)나 코르(Cor)를 제외한 여신교의 5대 성물을 모두 손에 넣었다.
* * *
“자, 이제 시작할게.”
에나가 긴장한 표정으로 다섯 개의 성물을 자신이 그린 ‘마법진’ 위에 놓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아드리안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에나, 이 시대에 마법진이 작동해?”
“작동할 거야. 고조부님이신 아르곤 모르스 님의 이론이 맞다면.”
“……에시르.”
“음, 맞아. 적어도 에나는 확신하고 있어.”
“그런 걸로 마음 읽지 말랬지!”
동행해 온 1년 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일행은 꽤나 친해져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지금 에나가 하려는 일에 대해선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는데.
대마법사이자 오러익시더인 아르곤 모르스, 그리고 ‘오러마스터’ 루나 모르스의 후손인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성력으로 작동할 수 있는 마법진이야. 확실해. 성물을 마정석이라 생각하면 이론은…….”
중얼중얼.자신의 바람을 주문처럼 되뇌는 에나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지난 1년간의 동행 끝에 에나의 힘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된 에시르와 아드리안 역시, 긴장감 어린 눈으로 그런 그녀와 마법진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우우웅.
그녀의 손에서 시작된 노을빛 성력이 다시금 다섯 성물에게서 새하얀 빛을 이끌어 내고.
에나가 일주일 동안 필사적으로 그려 낸 마법진은 그 성력을 서서히 받아들여 가며 빛을 더해 갔다.
모두가 숨죽여서 그 빛을 바라보고 있던 와중.
“됐다!”
번쩍.
에나의 환호성과 함께, 마법진에서 거대한 빛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 빛줄기는 일행의 기대에 찬 시선을 받으면서 하늘 위로, 더 위로 끝없이 올라갔다.
성산 니두스(Nidus)의 꼭대기, 중앙 신전의 첨탑에서도 더욱 높은 하늘 위로.
– 오!!
첨탑 밑에서 대기하던 다른 성기사나 사제들의 감탄성이 들리는데도.
계속해서, 계속해서 위로만…….
그러자 그 빛을 지켜보는 세 사람의 기대에 차 있던 얼굴이 점차 애매하게 변해 갔다.
원래대로라면 그 빛은 신이 있는 곳으로 향해야 하니까.
“에나? 이거 제대로 된 거 맞아?”
“……마, 맞아. 그런데 왜…….”
혼란스러운 얼굴의 에나는 자신이 만든 마법진을 다시금 공들여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틀린 게 없는데, 어떡해…….”
울음 섞인 목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에나, 실망하지 마. 처음부터 차근차근…….”
“아냐. 다 완벽하다고!”
그리고 그때.
“달……인가? 설마?”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아드리안의 한마디에, 에나가 그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