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548
48화. 신은 어디에?
“그 아이들이 결국 찾아냈네.”
하늘 위 커다랗게 보이는 푸른 별에서 시작된 한 가닥 빛이 자신의 손가락에 달라붙는 것을 보며, 타이니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뭐, 그럴 거라 짐작했잖아. 그나저나 여신의 신성력, 정말 오랜만이네.”
다가온 에스티나가 빛이 닿은 손가락을 부드럽게 감싸며 그리운 듯 말했다.
“그래. 크롬이 떠난 것도 백 년 하고도 10년은 더 지났으니.”
“검제 그 사람이 그나마 오래 산 거지.”
“그래. 하……. 그 양반이 처음 중력 설명하던 때가 생각나네. 솔직히 지금도 완전히 이해는 못 하겠지만.”
눈앞의 푸른 별을 보며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는 그들.
백수십 년 전의 젊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부부의 얼굴에는 짙은 그리움과 피로감이 쌓여 있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할 거야?”
“음?”
“그 아이들이 이곳에 찾아올 수는 없잖아.”
에스티나의 말에 타이니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박하게 지어진 집과, 그 주변의 꽃밭과 나무.
행성, 판타지아라 이름 붙인 고향을 떠나 위성인 달까지 온 것은 번잡함과 인과율을 피해서였다.
어차피 백 년 전 검제, 에스가르드 폰 발렌티아를 끝으로 그들의 전우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모두 흙으로 돌아갔으니.
그래서 본디 생물이 살 수 없는 달의 일부 지역을 결계화하여 환경까지 바꿔 가며 집을 지어 놓은 것이다.
“그래. 찾은 것이 갸륵해서라도 만나 주긴 해야겠는데…….”
남편의 얼굴에서 작은 망설임을 읽은 에스티나가 그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렇게 걱정되는 거야?”
“……응. 에나 그 아이의 부탁은 애초에 들어줄 수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어차피 우리가 떠나야 할 시간은 곧 다가오는데.”
“그래, 그렇지. 그런데…….”
생각이 많아 보이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에스티나는 빙긋 웃었다.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거지? 당신이 떠날 세상이.”
“……그렇지.”
타이니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이나 목숨을 걸고 지켜 낸 세상이다.
애초에 생각했던 백 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세상을 지켜보고 있는 건, 그 변화가 짐작보다 훨씬 빠르고 급박해서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백 년 만에 녹턴을 던져 가면서 인세에 간섭하게 된 것도, 세계를 뒤덮을 것 같던 전화의 불씨를 꺼트리기 위함이었으니.
하지만.
“아무 인연을 맺지 않고 이대로 달에 있는다 해도, 이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1년 정도. 만약 판타지아로 외유라도 나가게 된다면 그 시간은 확 줄어들겠지.”
“우리가 떠나지 않고 버틴다면?”
“세상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겠지. 애초에 실패한 창세를 억지로 완결시킨 인과의 끝은 내게 머물러 있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어쩔 수 없잖아.”
서로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것은 남편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지만.
그럼에도 타이니는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새삼 확실히 느껴져. 내가 진짜 신이 아니라 그저 강한 힘을 가진 인간일 뿐이라는 게…….”
“충분히 할 만큼 했어. 우리도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꿈을 찾아야 하잖아? 어쩌면 괜한 걱정으로 오십 년을 미룬 것일 수도 있어.”
“그럴지도 모르지.”
어쩌면 전쟁이 일어나게 두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당장 많은 생명이 사라지더라도, 그것이 세상의 발전을 위한 순리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까지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마냥 내버려 두기에는 그의 인간성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체감하는 것이다.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당신을 찾는 아이들을 통해서라도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것이 그 아이들이 바라는 답이 아닐 텐데?”
“꼭 그들이 원하는 걸 줄 필요는 없어. 당신 말 그대로, 당신은 완전무결한 신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리고?”
“신 없이 인간이, 모든 생명이 서로 경쟁하며 걸어가는 세상. 그것이 진짜 창세의 끝이라고 당신이 말했잖아. 우리는 더 이상 인류의 보모가 될 필요가 없어. 답은 저들 스스로가 내리는 거지.”
“……그렇지.”
“그럼. 남편, 가 볼까?”
“……그래. 세상에 마지막 인사를 남기러.”
에스티나가 내민 손을 타이니가 맞잡는 순간.
파직.
가벼운 소리와 함께, 달에서 그들이 거주하던 보금자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푸른 별을 향해 솟구친 노을빛 유성은, 이내 작은 빛살이 되어 판타지아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달, 달이라니! 신께서 왜 달에 계신단 말이오!”
“난들 알겠습니까! 하지만 모든 증거가 그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대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웅성거리는 대전.
중앙 신전의 널따란 홀은 고위 사제들의 고성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무거운 눈으로 지켜보던 에나는, 눈빛보다 더욱 무거운 걸음으로 천천히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해결책은? 하, 역시나.”
“있을 리가……. 함부로 마음 읽지 말라고 했지!”
기다리던 ‘동료’ 에시르가 질문을 해 놓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한숨을 내쉬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전혀 오크로 보이지 않는 이 삐딱한 표정의 녹색 머리 청년이 가진 능력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해 왔는데도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자신은 나름 솔직한 편이니 마음을 읽건 말건 상관없을 줄 알았는데, 그런 생각은 이미 다른 차원으로 사라진 지 오래.
세상 삐딱하고 냉소적인 이 청년이 꽤나 똑똑하면서도 여린 구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과는 별개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달이라니. 역시 불가능한 거였나…….”
자신과는 또 다른 이유로 세상이 무너져 내린 듯 한숨을 내쉬는 금발의 귀공자.
이른바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미친놈’이라 불리는 아드리안 폰 발렌티아 역시 적응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쯤에서 얘기나 들어 보자. 가문의 비기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거야? 사실상 마나가 사라진 시대에 그걸 억지로 재현하는 게 무슨 의미가…….”
“너야 모르겠지!”
흠칫.
“넌 그 잘난 신성력으로 모르스의 비기를 사용할 수 있으니까, 초인이니까! 그러니까 알 리가 없지!”
거의 울 듯한, 아니 정말 울면서 소리를 지르는 아드리안의 모습은 또 처음이라.
에나가 흠칫하는 순간.
“어차피 이젠 다 끝이야. 어머니…….”
아드리안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휙 돌아서서 사라졌다.
‘갑자기 또 웬 어머니?’
당황스러운 눈으로 에시르를 바라보자.
묻기도 전에 다시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말해 줄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저 녀석이 진정하면 다시 얘기해 보자고. 솔직히 너도 저 녀석도, 엉뚱한 데서 답을 찾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어, 너도.”
“내가 무슨……?”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억울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반문해 보는데.
“그 신이 없어지면, 뭐가 크게 달라져? 그냥 초인의 힘이 사라질까 봐 걱정하는 거 아냐? 세상에는 큰 변화가 없을 거야. 어차피 막 돌아가는 세상이니까.”
에시르는 특유의 그 삐딱한 표정으로 예고도 없이 비수를 날렸다.
“너 그게 무슨 말인지 알기나 해!? 세상의 평화를 지탱하던 가장 큰 축인 우리 교가! 우리 타이니 교가……. 힘을 잃게 된다는 말이야. 알아?”
자신도 모르게 버럭 고함을 지르다가 끝에 가서는 급격히 목소리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아직은 상급 성기사나 상급 사제 이상의 지위를 가진 자들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으니까.
– 강림의 날 이후, 신은 백 년을 기약했다.
– 그 후에 우리 인간은 스스로 걸어야 할 것이라고.
어느 순간부터 비밀리에 내려져 오는 전승.
그 기한이 이미 50년 넘게 지났으니 무시해도 되지 않겠냐는 여론도 존재했지만.
에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절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그 전승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 타이니는 언제고 이 세상을 떠날 거라 말했다. 그 시기는 빨라질 수도 늦춰질 수도 있지만, 결코 다른 인간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긴 시간은 아닐 것이라고.
– 그리고 나는 마나가 사라져 가는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대마법을 사용했다. 오직 그 운명의 계산을 위하여.
– 타이니는 빠르면 나를 포함한 모든 친구가 세상을 떠나는 날이 될 것이고, 늦는다 해도 거기서 백 년 정도가 한계일 것이라 했다. 그 후로 인류는 신이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걸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때는 몬스터도 마족도 없겠지만.
바로 초대 모르스 대공, 그녀에게는 고조부가 되는 아르곤 모르스와 루나 모르스의 비망록.
그녀는 그 진본을 읽어 봤으니까.
그 비망록을 통해 그림자의 법을 일부나마 세상에 재현시킨 그녀이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오러마스터 에스가르드 폰 발렌티아가 세상을 떠난 지 이제 백 년, 비망록의 내용이 진실이라면 잘해야 올해까지야.’
최근에 보인 녹턴의 강림이 신의 마지막 행사가 아닐까.
그녀를 포함한 교의 상층부는 모두가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신께서 그저 존재하시는 것만으로 세상의 전쟁이 사라져. 그게 얼마나 큰 의미인 줄 알아? 그런 그분이 사라지면…….”
“알 게 뭐야. 어차피 망조가 든 세상이 더 빨리 망하게 되는 정도겠지.”
에시르의 본성이 순후하다는 것도, 그가 과거에 저리 삐뚤어질 수밖에 없는 아픔을 겪었다는 것도 이제는 알지만.
이럴 때는 정이 뚝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 너는 정말, 그래. 관두자.”
그대로 돌아서서 숙소로 향하는데.
잠시 뒤.
“에나, 정말 포기할 거야!?”
멀어진 에시르가 등 뒤에서 지른 고함에 울컥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럴 리가 있냐! 어떻게라도 달에 갈 방법을 찾을 거다!”
말도 안 되는 장담을 하며 버럭 고함을 지르자.
멀리서 피식 웃는 에시르의 모습이 보였다.
뭐라 중얼거리는데, 그 입 모양이 ‘그래, 그래야 너답지’라고 해석되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허약한 녀석이…….”
아무튼 사람 욱하게 만드는 데는 재주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차례 고함을 지르고 나자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물론 질러 놓고 본 그 목표는 여전히 막막했지만.
‘달에 가려면…….’
단서라도 찾아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하나뿐.
‘마법.’
마나가 사라진 세상에서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지만.
‘나는 사신의 후예이자, 마도 기사의 후예이기도 해.’
그림자의 법도 성력으로 재현해 냈다.
그렇다면 마법도 되지 않을까.
그녀는 이미 머릿속에 새겨질 정도로 달달 외운 초인부부의 비망록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중에도 마도 기사가 남긴 마법에 대한 서술을.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
‘달, 하늘에 관한 것도 있었는데. 그게…….’
기억이 났다.
– 하늘 위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어, 비행 마법으로 아무리 가속해서 날아가더라도 어느 고도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 중력. 그것으로 설명해야 할 것 같은 힘의 한계. 그 경계를 넘기 위해서는 거기까지 올라간 힘 이상의 순간 가속이 필요하다.
– 하지만 그것을 뚫고 그 경계를 넘어서게 되면 급격하게 공기가 희박해지며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 생존 주문으로 어떻게 버틴다 해도 달은 그 고도에서도 조금 더 크게 보일 뿐, 여전히 아득히 먼 거리에 있었다.
그 뒤의 일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만약 마도 기사가 달에 갔다면 기록을 남겼을 것 같았다.
즉, 마나가 넘쳐나던 시기에 대마법사의 힘으로도 가지 못한 달에 지금 성력으로 만든 가짜 마법으로 가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빌어먹을…….”
조금 전에 한 결심이 바로 꺾이는 느낌에 또다시 한숨이 나오는데.
그 순간, 어디선가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마치 숲속에 있는 것처럼.
하지만 중앙 신전이 있는 이곳 성산 니두스는 황폐한 돌산인데.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에서 숲속의 느낌을 받다니…….’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나 싶어서 고개를 드는 순간.
에시르의 그것보다 더욱 진한, 긴 녹색 머리의 여자가 보였다.
자신을 보며 웃는 여인.
그 여인의 유독 뾰족한 귀가 박혀들 듯 눈에 들어왔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