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550
50화. 신이 떠난 세상
– 그럴 리가 있냐! 어떻게라도 달에 갈 방법을 찾을 거다!
“그래, 그래야 너답지.”
에나의 고함에 혼잣말로 답한 에시르는 그대로 돌아서서 숙소로 향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에나가 답을 찾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달이라니…….’
터무니없어도 너무 터무니없다.
에나를 자극한 것은, 그저 그 씩씩한 친구가 기운이 없는 모습이 어울리지 않아 보여서였을 뿐이다.
결국.
‘우리의 모험은 이렇게 끝이 나는가.’
쓴웃음이 나왔다.
지난 1년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삶의 의욕도 없이 술에 취해 지내던 자신이 신을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좌충우돌 정신없이 보낸 시간이었다.
비록 그 끝이 흐지부지되었다 해도 미련은 없다.
다만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이젠 난 뭘 하지?’
엿 같은 세상.
더는 돌아갈 곳도 없고, 외톨이인 자신을 반겨 줄 사람도 없다.
특이한 능력이 있으니 먹고 사는 데야 문제가 있겠냐마는.
“……재미없어.”
세상도, 나도.
‘뭐, 문제 생기면 신이 금방 해결해 주겠지.’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가치 없게 느껴질 뿐이었다.
에나의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을 읽기는 했지만, 솔직히 자신이 신이라면 이 세상을 떠날 것 같지 않았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왜?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엿 같은 세상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뭘 하지?
“아, 몰라. 될 대로 되라지.”
이대로 모험이 끝나면, 적당히 벌어먹고 적당히 술 마시며 살다 죽으면 그만이다.
인생에서 뭐가 뜻대로 된 적이 있던가?
모험이 이렇게 끝나도 뭐 그러려니 할 뿐이다.
그렇게 자조하며 걷고 있는데, 문득 눈앞에 이상한 복장을 한 남자가 보였다.
신전에서 자주 보이는 석상의 모습 그대로의 거한.
‘신전에서 코스프레라? 거참 담대한 사람이네.’
대체 무슨 생각일까.
그냥 피식 웃고 지나치려 하는데.
습관적으로 그 거한의 마음을 읽어 버린 순간, 에시르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불굴의……신?”
떨떠름한 표정으로 남자를 올려다보는 에시르.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불신에 차 있었다.
마음을 읽는다고 언제나 진실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자신에게도 그렇게 보이니까.
‘신전에 별 미친 사람도 다 있군.’
놀란 마음을 애써 부여잡고 억지로 남자를 무시하려고 하는데.
“심안(心眼)으로 내 마음까지 읽다니, 마나의 시대에 태어났으면 유례없는 대마법사가 되었겠어. 아니, 오크라면 대주술사가 되었으려나?”
그 말이 덜컥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미친 사람이라고 여길 수 없는 또렷한 어조, 그리고 그 내용.
겉모습만 보고 자신이 오크족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날 찾고 있지 않았나. 물어볼 것이 있다면서, 에시르?”
빙긋 웃는 남자의 말, 그리고 그 마음.
놀란 에시르는, 그제야 주변 공간을 세상으로부터 격리하고 있는 노을빛 아지랑이를 눈에 담았다.
“서, 설마……. 지, 진짜?”
“그래, 내가 타이니다.”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이렇게 놀라웠던 적이 있었을까.
에시르는 신을 자처하는 남자를 잠시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뭐 하지? 따지고 싶은 게 많은 걸로 아는데?”
그 여유로운 웃음에 속이 뒤집혔고.
자연스레 삿대질과 함께 고함이 튀어나왔다.
“좋냐!?”
냅다 지르고 보니, 온갖 억울한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중 그를 가장 분노하게 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비참하게 죽은 어머니와 어이없게 죽은 군터 통령의 모습이었다.
“좋냐고! 멋대로 세상 주무르고 잘난 척하는 게! 이 X 같은 세상이 개판으로 돌아가는데, 방치하면서 혼자 X 치면 좋냐고! 이 변태 새끼야!”
진짜 신이라면 천벌을 내릴 텐데, 라는 생각은 뒤늦게 들었다.
오랫동안 담아 온 울화는 그렇게 급작스럽게 튀어나왔다.
그런데.
“당연히 좋지. 뭐, 그런 걸 보면서 애먼 짓 하진 않는다만.”
남자는 빙긋대는 웃음으로 그의 속을 더 뒤집어 놨다.
“X발! 그럼 왜 세상을 이따위로 버려둔 건데! 그게 신이야!? 이따위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X 같은지 알아!?”
에시르가 계속해서 울분을 쏟아 냈지만, 남자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내가 왜 너희를 챙겨야 하지?”
“……뭐?”
“내가 왜 너희를 돌보고 챙겨야 하냔 말이다, 에시르.”
“그, 그야…….”
신이니까?
떠오르는 답이 그것밖에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거기에.
“신이 너희를 하나하나 챙기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으면 좋겠어? 모두가 웃도록? 미안하지만 내게 그럴 능력은 없는걸?”
“그게 무슨……!”
“난 싸움 잘해서 신이 된 사람이야. 알 텐데?”
신의 자기 비하(?)까지 듣고 나니 더욱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힘이 있잖아!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세상을 좋게 만들면……!”
“아, 그러면 모두가 내 말을 듣긴 하겠지. 천벌 받기 싫어서라도 말이야.”
“그러니까……!”
“전부 내 말만 듣는 꼭두각시가 되어서 말이지.”
“……어?”
“난 가뜩이나 머리 좋다는 말도 잘 못 들어 봤는데. 세상이 내 멋대로 돌아가면 그 꼴 참 보기 좋겠다. 그치?”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나온 말에 에시르는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러자 신이 표정을 확 바꾸면서 그를 다독이듯 말을 이었고.
“만약 전지전능한 신이 있다면 네 말이 옳아, 에시르. 힘들고 괴로워하는 피조물을 만들어 놓고 즐기면, 그건 신이 아니라 변태 혹은 악마지. 하지만 난 안타깝게도 어느 쪽도 아니란다.”
– 이 세상을 떠난 창조주가 그런 존재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안타깝게도 그는 인간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졌던 것 같지는 않구나.
그 마음의 소리까지 더해졌다.
“어…….”
“나도 너처럼 괴로운 삶을 살았던 한 인간이란다, 에시르. 좀 더 강한, 아니 솔직히 무지막지하게 강한 힘을 가졌기에 신이 되었을 뿐.”
“그런…….”
“나는 네가 그런 운명을 겪었다는 것도, 네가 날 찾기 시작할 때쯤에나 알았단다. 그런데 이렇게 욕먹으면 난 좀 억울한데?”
그 능청스러운 웃음에 에시르가 그저 입술만 씹을 때.
“너 정말 그냥 세상이 엿 같아서 나한테 따지고 싶었던 게 전부야? 아닐 텐데?”
훅 하고 들어온 말이 그의 가슴을 울렸다.
“나는…….”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까만 눈동자. 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
아무 연관도 없는 신, 아니 사람에게 분노를 퍼부은 자신이 갑자기 우습게 보였다.
‘흐…….’
그리고 그 상황에서,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옛 생각이 떠올랐다.
애써 외면하려 했던 기억.
– 어머니, 안 오셔도 된다니까요. 제가 알아서 해요. 요새 시국 이상하다고, 집밖에 자주 나오지 마시라니까요. 그렇게 말씀드렸잖아요!
– 그래도 통 연락이 없으니, 걱정이 돼서…….
– 바빠요! 저 지금 중요한 때라서. 제가 곧 찾아뵐게요. 저 한동안 집에 못 와요. 그러니 그냥 가세요.
그땐 정말 바빠서 정신이 없긴 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고.
그러다가 자료를 가지러 잠시 들린 집에서,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어머니를 보았다.
오크족 전통 요리의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찔렀을 때, 스트레스가 폭발했고.
자신은 짜증스레 어머니를 밀어 냈었다.
멀리 수도까지 자식을 찾아온 노모는 그렇게 바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
–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정말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어머니를 그렇게 보낸 기억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혔다.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죄송, 죄송합니다. 으흐흐흑.
그러다.
어머니가 남겨 놓고 간 음식들이 쉬어서 썩어 들어갈 때가 되어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열심히 일해서 더 좋은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게 목표였는데.
그 과정에 빠져서 정작 어머니를 냉대했다.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복수심이 반, 자신에 대한 책망이 반.
그 마음이 그를 복수귀로 만들었었다.
그래.
‘그랬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허망하게 끝났을 때, 술독에 빠져 살았었던 것이다.
그런데 난, 지금 누구를 원망하고 있는가.
털썩.
“흐……. 흑…….”
참 못났다.
정말.
“묻고 싶은 게 없어? 정말?”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까만 눈동자.
그 안에, 자신이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가 지금 죽으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습니까? 천국이나 뭐 그런…….”
혹시나 신은 알까.
그리 물어보지만.
“아니. 천국도 환생도 없어, 이젠.”
그저 차가운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신이니까 거짓으로라도 좋은 말을 해 주고 싶었는데, 네 앞에서는 의미가 없잖아?”
아…….
“생명은 그저 생명일 뿐이야. 한 번뿐인 삶. 허상에 목매지 마.”
그 차가운 말이 다시 그를 더욱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럼, 전 어떻게,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합니까!”
어머니는, 어머니는 그렇게 비참하게, 슬프게 돌아가셨는데.
얼마나 나를 원망하셨을까.
얼마나 나를 미워하셨을까.
“그런데도 사과를 못 한다니…….”
“나는 잘 모르지.”
“그럼……!”
누가 아냐고, 버럭 고함을 지르고 싶었는데.
“하지만 어머니 마음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눈앞의 남자가 무심한 듯 한마디를 보탰다.
“……에?”
“걱정하셨겠지. 내 아들은 무사할까, 잘 살아야 하는데, 너무 슬퍼하면 안 되는데…….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그래, 그러셨을 것이다.
우리 어머니라면.
하지만 그 말을 직접 듣고 싶었다.
괜찮다고, 미워하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 사랑한다, 아들.
그 말을 다시 어머니의 목소리로 듣고 싶었다.
“흐, 흐…….”
“늦었지만, 어머니 일은 정말 유감이야. 에시르.”
“으……흑.”
또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때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에시르.”
“크흡. 흑. 그럴 능력, 없다면 서요.”
“그래. 없지만, 그래도 미안해.”
“흐……. 흐흐흐, 흐으윽.”
렇게 남자는, 아니 신은 서럽게 우는 그를 한참 동안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가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
에시르는 여전히 눈앞에 서 있는 신을 보며 물었다.
“왜……. 제게 오신 겁니까?”
그러자 신은 기다렸다는 듯 설명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알고 있겠지만, 나는 곧 이 세상을 떠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말.
“불완전한 신이라도, 내가 없는 것과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있겠지. 하지만 이제는 더 어쩔 수가 없다. 변화를 맞을 세상에서 너의 능력은 큰 도움이 될 거야, 에시르. 네 옆의 동료들과 함께라면 말이야.”
그 말에 에시르는 다시 멍하니 되물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희 운명은? 세상은?”
“응? 이미 알고 있잖아?”
그 반문에 에시르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이제는 안다.
스스로의 운명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비록 그것이 원치 않던 방향이라 할지라도.
“수많은 선택이 얽혀 만들어지는 불확실한 미래지만, 너라면 좀 더 좋은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렇지?”
무책임하고 헛웃음이 나오는 말이지만, 왜인지 아주 마음에 드는 말이기도 했다.
“예. 아마도.”
“그래, 그거면 됐어.”
그대로 돌아서는 남자.
그 뒷모습을 보자 한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데,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음? 나? 새로운 창세가 시작되는 세상으로.”
“예? 왜……?”
당혹스러운 대답에 되물어 봤지만, 신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보았다’.
– 그냥 제대로 가족을 이루고 싶어서 말이야. 170년 가까이 애가 없거든. 일종의 불임 치료라고 할까?
신이 남긴 지극히 인간적인 대답을.
“크크크크크크.”
자연스레 실소가 나오고.
“푸하하하하하!”
그것은 이내 커다란 웃음이 되어 사방에 울려 퍼졌다.
–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다. 그러니까, 뚝.
아주 어릴 적 어머니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다시 떠오르지만.
웃음 소리가 퍼질수록, 가슴속에 얹힌 묵직한 무언가가 조금씩 풀려나가는 듯했다.
외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