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70
70화. 크라켄 (2)
우르르르르릉.
단 세 번의 공격, 그리고 그에 이어진 지진.
그것만으로도 대도시 오르투스는 반파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주민 대부분이 이미 왕성 근처로 피신해 있었기에 인명 피해가 크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다시금 허공에 솟구친 ‘여섯 개’의 다리를 보는 백성들은 또 한 번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아, 안 돼!”
“신이시여, 제발!”
“흐흑, 어, 엄마!!”
창문 너머로 그 괴물의 촉수를 보는 백성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부들부들 떨었다.
평상시라면 꿈도 못 꿀 귀족의 화려한 저택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느끼는 감정은 불안감과 공포뿐이었다.
저 괴물의 다리가 왕성 근처를 직격한다면 모조리 죽을 것이요, 왕성이 아닌 곳에 떨어진다 한들 그들의 삶의 터전이 박살 나리라는 것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에게는 다행히도, 하늘로 솟구친 여섯 개의 촉수들은 갑자기 그대로 멈춰 섰다.
“뭐, 뭐지?”
“……어, 어떻게 된 거야?”
“으, 무서워…….”
“여신께서 응답하신 걸까?”
“으, 신이시여! 제발!”
사람들이 제발 괴물이 그대로 물러나길 바라며 신께 기도하던 그 시간.
간신히 위기를 벗어난 타이니는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제나스 경! 당신이 어떻게?!”
그럴 만한 일이었다.
어찌 블루윙의 기사단장이 여기까지 와 있을까.
본인 업무도 바쁠 테고, 카룬의 일에 간섭하면 정치적 문제도 생길 텐데.
그런데 정작 당사자의 답변은 간단했다.
“각하께서 명을 하셨으니까 여기에 있지요. 뭐, 다행히 늦지는 않았네요. 그런데 그새 말도 안 되게 자랐군요. 검은 머리가 아니면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
“아…….”
“물론, 더 놀라운 건 저거지만 말이죠.”
하늘에 떠 있는 크라켄의 촉수를 보는 제나스의 표정 역시 그리 밝지 못했다.
“그래도 당신이 여기에 계시면 혹시나 문제가…….”
“괜찮습니다. 그래서 변장도 했으니까요.”
제나스 프리웰, 제국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블루윙 기사단의 단장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허…….”
그에 타이니는 어처구니없는 한숨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복면으로 하관을 가린 얼굴. 그 위로 보이는 붉은 머리는 충분히 변장을 했다 볼 만했지만.
사람이 문제였다.
탐색 마법을 의식해서 마법이 아닌 염색을 한 것 같긴 했지만, 그게 별 의미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바로 제나스였다.
은빛의 마나와 차가운 바람이라는 특이한 이중 속성을 가진 젊은 얼굴의 챌린저급 기사라면, 세상에 둘 있기도 힘든 조건이었으니까.
‘……너 제정신이냐.’
그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지만, 아무리 그가 낯짝이 두꺼워도 자신을 구해 준 은인에게 막말을 할 수는 없었다.
“……뭐, 알아보는 이만 없으면 되죠. 더구나 상황이 이래서야…….”
타이니는 다시금 얼굴을 찡그리며 동쪽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허공에 멈춰 서 있는 여섯 개의 다리.
크라켄.
국가급 재난이 벌어졌는데, 돕는 이가 적군이건 아군이건 그게 뭐가 중요할까.
지금 타이니만 해도 제나스의 갑작스러운 등장보다는 당장 이 상황의 이상함을 생각하기에 바빴으니까.
‘왜 멈춘 거지? 그리고 아까는…….’
갑자기 멈춰 선 크라켄과 좀 전에 느낀 의구심이 섞이며 머릿속 한구석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무언가 생각이 날 듯 말 듯한 애매한 기분.
그렇지만.
“그나저나, 일단 여기서 이러고 있을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 움직이죠, 타이니 군.”
“……예, 예.”
제나스의 말대로 마냥 고민만 하고 있을 상황도 아니었다.
타이니는 다시 월랑을 소환했고, 이내 그와 제나스는 빠른 속도로 왕성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또 하나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이건……?’
서서히 속도를 내는 중에도 마나가 조금씩 차오르고, 탈진했던 몸도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다만 이상하게도, 마나를 느끼는 감각만 제대로 회복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월랑이 저 멀리에서 마기를 품은 놈이 다가온다고 알려 주는데, 자신에게는 그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달리는 속도를 보면 그리 강한 놈 같지도 않은데, 마치 유령처럼 존재감이 흐릿하기만 했다.
‘……가만!’
이런 경험을 전생에도 몇 번 해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을 습격하려는 암살자들이 주로 쓰던…….
“은폐 마법진!?”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다시금 감각이 확장되자, 그제야 오르투스 전체를 덮고 있는 흐릿한 기운이 느껴졌다.
섬 전체를 뒤덮은 대규모 마법진.
“이런!?”
그에 놀라 속도가 느려지자, 제나스가 돌아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타이니 군?”
지금 머뭇거릴 시간이 아니라는 뜻으로 주는 눈치.
하지만 타이니는 그것조차 알아채지 못한 채 좀 전의 일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도 놈들이 접근하는 것을 느끼지 못했어!’
악마추종자들, 그것도 보란 듯이 흑마법을 쓰고 마기를 움직이던 놈들을 근처에 접근하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몰라도, 마나 감응력을 타고난 타이니에게는 절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것을 자각하자, 오르투스 전체를 둘러싼 희뿌옇고 불쾌한 기운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크라켄의 짓일까?’
아니, 기운이 다르다. 그럼 이건…….
“마법진입니다! 주변에 마인들을 은폐하는 마법진이 깔려 있습니다. 놈들의 존재감을 완전히 가리도록!”
“아…….”
그 고함에 제나스는 어색한 웃음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악마추종자들! 놈들의 짓입니다! 자신들의 존재감을 감추고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어요!”
“……내가 말한다는 걸 잊어 버렸군요.”
“예?”
“놈들의 마법진, 하나는 나와 제이 공이 파괴했습니다. 또 제이 공의 말대로라면, 일곱 개의 합동 마법진 중 적어도 세 개는 파괴되었을 테니까…… 효율은 놈들의 목표 절반 이하로 떨어졌을 거예요.”
제이가?
아니, 그 전에 알고 있었다고?
“그런…….”
제나스의 대답에 타이니는 순간 김이 빠졌지만, 이내 다른 생각을 이어 갔다.
‘이게 절반 이상 떨어진 거라고? 대체 인원이나 자원을 얼마나 많이 동원한 거지? 그리고 왜?’
가만히 있으면 들키지 않을 정도로 마기 은폐 능력이 뛰어난 놈들이다.
거기에 굳이 또 은폐 마법진을 쓴다는 것은…….
‘마기를 대놓고 쓰겠다는 뜻?’
즉, 오르투스에서 무언가 일을 더 벌이기 위해서?!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컹!”
그를 태우고 달리던 월랑이 다시금 뜻을 전해 왔다. 지금 도시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질적인 움직임을 감지해 전달한 것이다.
‘……마기를 품은 놈들이, 왕성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마법진으로 은폐된 놈들의 움직임이지만, 월랑의 능력(Soul Sight)만큼은 막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크라켄이 저렇게 머뭇거리는 이유를, 이제는 깨달은 것이다.
“아……!”
하지만 머뭇거리는 그를 제나스가 두고 보지 않았다.
“타이니 군, 결계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목적이라면 좀 더 속도를 내야 합니다!”
질주하는 상태 그대로 뒤쪽의 허공을 한 번 바라본 제나스.
그답지 않게 조금 여유를 잃은 듯한 표정을 보며, 타이니가 입을 열었다.
“……제나스 경, 지금 크라켄의 상태가 왜 저런 것으로 보입니까?”
그 말에 제나스 프리웰이 다시 한번 허공을 바라보고는 짙은 갈색의 눈동자를 살짝 일그러트렸다.
“글쎄요. 마치 무언가 망설이는 사람의 움직임 같은데, 괴물의 심리야 알 수가 없으니…….”
“역시 그렇군요.”
“……짐작 가는 게 있나요?”
“예.”
그러면서 타이니는 검제의 말을 떠올렸다.
– 동방의 해상 왕국 카룬을 혼란에 빠트려 동대륙과의 교역을 끊는다. 그리고 대륙의 가장 강성한 국가를 혼란에 빠트려 자중지란을 유도한다……. 나중의 일을 따지지 않아도, 이게 다 한 맥락 같지 않더냐?
악마추종자들의 움직임은 그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크라켄이 멈춘 까닭은…….
“게일 엔더슨 님의 유산이 제대로 먹혀들긴 했나 봅니다. 정말 다행이군요.”
그에 제나스가 눈을 더욱 찌푸리며 타이니를 바라보았다.
게일 앤더슨이라니? 갑자기 실종된 해일의 마도사가 뭐?
“……무슨 말을 하는 거죠?”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아니면 머리를 다쳤나?
그런 생각이 여실히 묻어나는 눈빛에, 타이니는 순간 상황을 잊고 실소를 흘렸다.
“신화시대의 약속대로, 크라켄은 성물의 결계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겁니다. 그런데 자신의 새끼를 죽인 놈들이 그 근처에 모여들고 있는 상황인 거죠. 경의 말씀대로 망설이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야 제나스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크라켄의 새끼를? 놈들이?”
“예!”
“허, 망할. 그래, 그러니까 이따위 일이…….”
제나스가 납득한 듯한 표정을 짓는 것과 별개로, 타이니는 조금이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다행입니다, 게일 경.’
생전에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마도사가 어쩐지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러다 보니 또 다른 궁금증도 들었다.
과연 전생에도 게일의 작전이 성공했을까, 아니면 실패했을까.
‘게일이 국왕에게 전한 유언은 그저 자신이 최선을 다했음을 알리는 것뿐이었어. 내가 한 일도 새끼의 사체를 찾아내 크라켄에게 좀 더 빨리 전달한 것뿐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전생에도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어쨌건 전생에 카룬은 그 타격을 회복하지 못하고 멸망했다.
그리고 검제의 추측에 따르면.
‘이 혼란의 와중에 악마추종자, 그 쓰레기들이 결정타를 먹인 거겠지.’
수도 하나 타격을 입었다고 해서 그 부유하던 해상 왕국이 완전 박살 났다는 게 의아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납득이 갔다.
‘그렇다면, 아직 최악의 상황은 아니야.’
어쨌거나 지금은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 놓은 상태다.
그러니.
“빨리 왕성으로 가시죠, 혹시나 크라켄이 다시 움직이기 전에!”
어찌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적어도 전설의 마수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망설여 주길 바랄 뿐.
‘계속 멈춰 서 있어 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늘을 응시하는 타이니를 보며 제나스가 불쑥 물었다.
“크라켄이 고대의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모두가 끝장난다는 말 같은데, 그래도 왕성으로 가겠다는 겁니까?”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가야 합니다.”
굳건한 표정의 타이니를 보며 제나스가 묘하게 눈을 빛냈다.
“왜죠? 타국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건가요?”
그 말에 타이니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싶다고 구할 수나 있겠습니까?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지금 제 상태로는 어림도 없지요.”
그 말에 타이니의 마음을 떠보려던 제나스의 표정이 묘해졌다.
마치 상태가 이렇지만 않으면 가능하다는 말처럼 들리지 않는가.
“그럼……?”
“성물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뭐라고요?”
“성물이 있어야 인류의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으니까요!”
사정을 모르는 제나스에게는 그저 헛소리처럼 들리는데.
“크라켄이 약속을 지키지 않더라도, 성물만큼은 빼돌려야 합니다!”
타이니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한 탓에, 그로서도 쉽게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인류의 피해를 줄인다? 하, 인류요?”
“……그런 게 있습니다! 각하께서도 말씀하셨을 텐데요!”
그 말에 제나스는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주군의 말을 떠올렸다.
‘흠.’
– 세계의 명운이 달린 일이다. 타이니를 보호해. 최악의 상황이라도 녀석을 살리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 설령 네 존재가 드러나 국가적 문제가 된다 해도!
평소처럼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줄 알았는데, 자신의 짐은 이미 다 꾸려져서 주군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렇게 반쯤 강제로 장거리 출장을 와 보니, 전설 속 괴물이 등장했다.
거기다 보호해야 할 당사자는 신화시대의 약속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고 있었다.
피식.
‘현실감이 없어도 정도가 있지!’
하지만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고 나니 제법 설득력은 있었고, 그래서 더 기사의 피가 끓기도 했다.
– 이 모든 게 인류를 위한 일이야. 세상을 위한 일! 녀석을 믿지 못하겠다면, 나를 믿어 다오.
“인류를 위한 일이라……. 그래, 그러셨지요. 하, 그런데 그게 정말……?”
“예.”
타이니의 단호한 대답을 듣고서도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막상 허공에 떠 있는 크라켄의 일부를 보고 나면 논리와 상관없이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더하여.
– 녀석을 돕는 일이 수월하게 풀리지 않는다면, 내년까지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아니, 가능하면 돌아오지 않는 것도…….
주군이 남긴 찜찜하기 그지없는 마지막 말 또한 신경 쓰였다. 마치 내년까지 오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던 것이다.
‘명색이 블루윙의 기사단장인데.’
그럴 수야 없지요.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스승님, 아니 주군의 곁입니다.
“……결국 성물을 지키면, 아니 악마추종자 놈들을 쓸어 버리면 크라켄이 돌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지요.”
……그러길 간절히 바라야죠.
타이니는 불길한 말은 굳이 보태지 않았다.
하지만 제나스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만 하면 일이 끝나는 거지요? 간단하군요.”
“……예? 간단……. 아, 예. 그렇지요.”
“좋습니다. 강제 출장 업무를 빨리 끝내 버릴 방안이 코앞에 있었군요. 서두릅시다, 타이니 군.”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웃는 제나스.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돌아가겠습니다, 주군.’
속으로 그리 다짐하며 웃는 제나스를 보며 타이니가 고개를 갸웃할 때.
– 그오오오오.
허공에 멈춰 서 있던 크라켄의 촉수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