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96
96화. 폭뢰
카리나 성의 근처까지 다다른 순간.
– 끄아아악!
성물 아모르의 빛에 노출된 한 놈이 성벽 위에서 비명과 함께 불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동요하기 시작하는 병사들.
“컹!”
월랑의 감각이, 병사들 대다수의 머릿속에 들어차 있던 기분 나쁜 기운이 사라지는 것을 감지했다.
‘제대로 문을 열어 줄 것 같지는 않군.’
타악.
타이니는 닫힌 성문을 무시한 채 곧장 성벽 위로 뛰어올랐다.
“아우우우우우우우!”
땡땡땡땡땡땡땡땡!
월랑의 포효를 듣고 다급한 얼굴로 비상종을 치는 병사가 보였지만, 성안의 구조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타이니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
직경이 1km 남짓한 작은 성. 이 정도면 소도시라고 말하기도 힘들 듯했다.
백성들 대다수가 평상시에는 성 밖 마을에 살며 농사를 짓고 비상시국에만 성안에 모여 농성을 하게 만들어진, 그야말로 전술적인 목적의 작은 성.
‘변수는 없군.’
순식간에 지형 파악을 끝낸 타이니는 바로 내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성 한가운데 들어가기만 해도 성안의 악마추종자들을 모조리 불태울 수 있을 것 같은 규모.
‘역시 카리나는 황도의 전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미끼였어.’
타이니가 검제와 얘기했던 가설을 확신하는 순간.
타당탕탕.
“음?”
어디에선가 쏘아진 화살들이 월랑의 가죽과 갑옷에 부딪혀 튕겨 나가고, 정확하게 급소를 노린 화살 한 발은 그의 손에 잡혔다.
화살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니.
“히, 히익!”
파랗게 질린 궁수 몇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뒷걸음질 치는 것이 보였다.
“용감한 병사로군. 하지만 한동안은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반역자가 되기 싫다면 말이지.”
타이니의 담담한 목소리가 마나를 싣고 성 전체로 퍼져 나갔다.
특히나 ‘반역자’라는 단어에 힘이 들어간 문장이 성안에 울려 퍼지자, 애써 창을 꼬나들거나 시위에 화살을 메기던 다른 용감한 병사들의 손에서도 힘이 빠졌다.
거기에 더해.
“성안에 숨어든 악마추종자를 처단하러 왔다! 무고한 자라면 길을 비켜라!”
“크아아아아앙!”
사방을 떨쳐 울리는 호통과, 그보다 큰 월랑의 포효에, 일부 병사들의 작은 반항마저 그 즉시 멎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질주.
결계의 범위가 직경 1km에 가까운 성물의 힘은 일순간에 성 전체를 휩쓸었고.
– 끄아악!
– 아악!
질주하는 내내 곳곳에서 검붉은 연기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역시, 내가 직접 손을 쓸 일은 없으려나.’
성물을 휴대하는 것만으로도 악마추종자들에게는 엄청난 데미지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외성 벽을 넘어서 문이 열려 있던 내성 안으로 들어섰을 때.
– 새로운 세상을 위해!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구호가 귓전을 울림과 동시에, 불쾌한 기운이 몰려 있는 것이 느껴졌다.
“컹!”
“그래, 가자!”
오늘 처음으로 손맛을 보나 싶은 생각에, 타이니는 길게 늘인 스탬프를 거세게 움켜쥐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역시나 검붉게 불타오르는 시체들. 외성에 있는 것들에 비해 조금 더 버텼을 뿐, 역시나 성물의 힘에 타 버린 하급 마병들뿐이었다.
딱 한 놈을 제외하고는.
‘저놈!’
성물의 결계를 받치는 자세로 그 힘을 밀어 내듯 버티고 서 있는 놈.
적어도 블레이더급 이상의 마병으로 보이는 놈을 보며, 타이니는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어딜!”
파아아아앙.
마나를 실어 힘껏 던진 스탬프.
‘한번 버텨 봐라, 쓰레기!’
놈이 한 번 정도는 공격을 버틸 것을 가정하고 이어질 2차, 3차의 공격도 생각해 보는데.
꽈아아아아아아앙!
허무하게도, 놈은 그 일격에 그대로 박살이 나 육편이 되어 흩어졌다.
‘애걔……?’
무언가 허무한 마음에 입맛을 다시던 그 순간.
“컹!”
월랑이 경고하듯 울음소리를 내자, 그가 서 있는 내성 앞마당 전체가 내려앉으며 검붉은 불꽃이 솟구쳐 올랐다.
우르르르르릉.
콰콰콰콰콰콰콰콰!
온몸을 짜릿하게 뒤덮는 검붉은 불꽃. 본능적으로 끌어 올린 철신갑이 아니었다면 꽤 큰 타격을 입었을 만한 충격이었다.
달리 말하면, 충분히 견뎌 낼 만한 수준이라는 것.
다만 문제라면…….
‘저게 뭐지?’
대체 언제 파 놓은 건지 십여 미터는 될 듯한 깊이의 너른 구덩이가 보였고, 그 바닥에는 주먹만 한 둥근 물체들이 쌓여 있었다.
‘저 물체……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그 순간 그 괴상한 물체들이 검은 불꽃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붉게 달아올랐고, 타이니가 머릿속에서 기억을 떠올리기도 전에 그의 본능이 먼저 불길한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위기를 감지한 순간 급격히 빨라진 사고의 속도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착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최강의 수법을 본능적으로 동원했다.
‘흡!’
몸을 최대한 가볍게 만든 타이니가 일순간에 최대치로 끌어 올린 마나가, 붉은색과 노란색의 두 갈래로 갈라져 양손에 각각 모여들었다.
지난번 황도에서 있었던 깨달음으로 만들어 낸 수법. 아직은 다른 기술에 활용할 정도로 체화하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해!’
타이니가 두 손을 모은 순간, 각기 다른 혼을 근본으로 하는 두 마나가 서로 반대 성질의 중력 속성을 품고 다시 합쳐졌다.
그와 동시에 서로 격렬하게 반발하기 시작한 두 마나가 투입된 에너지의 수십 배 이상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발렌티아가에서 연습할 때는 이렇게까지 다뤄 보지는 않았다.
왜냐고? 위험하니까.
‘끄으으으으.’
그러니 지금 타이니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힘이 팽창하는 방향을 컨트롤하는 것뿐.
제 손으로 구사하면서도 그 원리 따위는 짐작도 안 가는 이 미친 에너지의 이름은 금세 떠올랐다.
모든 것을 박살 내려고 하는 흉포한 에너지니까…….
– 파멸 속성, 광범위 전개.
타이니의 전력이 투입된 회색의 에너지가 구덩이 바닥에 있는 붉은 구체들을 향해 쏘아졌다.
이내 그 회색의 힘이 붉은 구체의 3분의 2 이상을 삼켜 버리는 순간.
콰과과과과광!
굉음과 함께 엄청난 충격이 그의 전신을 강타하며 하늘 위로 튕겨 나가게 만들었다.
그 충격을 먼저 감당해야 했던 월랑의 육신이 역소환되고.
– 컹!
영혼의 반려가 지르는 비명 속에서, 타이니는 전신에 퍼지는 짜릿한 고통을 느끼며 허공에서 감은 눈을 떴다.
“……흐.”
이런 어처구니없는 위력이…….
몸이 수십 미터나 튕겨 올라간 것보다도 심리적 충격이 더 컸다.
‘내 마나 감응력에도 감지되지 않은 물건이 이런 파괴력을 낸다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타이니의 시야에 아수라장이 된 지상이 보였다.
내성 관저의 앞마당 전체가 푹 파인 채, 사방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세상에 어떤 아티팩트가 이만한 위력을……?’
생각이 거기까지 닿는 순간, 전생에 아르곤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 내가 놈들을 구별해 내는 방법을 발견하기 전까지 피해가 극심했던 건, 그놈들이 만든 ‘폭뢰’ 때문이야.
– 마나를 쓰는 것도 아니면서 다수가 모이면 웬만한 일회용 아티팩트 이상의 파괴 마법을 만들어 내는 끔찍한 물건들…….
– 주먹만 한 구슬처럼 생겼는데, 달아오르기 시작하면…… 쾅! 터져 버리는 거지. 뭐, 이제는 제작하는 것도 금기가 되었지만 말이야.
“……폭뢰!”
아티팩트가 아닌 아티팩트.
그것에 대한 기억이 떠오름과 동시에, 타이니는 다시금 폐허가 된 지상에 착지했다.
쿵.
“윽!”
마나 소비가 컸는지 어지럼증이 나는 바람에 착지가 조금 틀어졌다.
발목에선 저릿한 통증이 느껴지기까지 했지만, 당장은 그것보다 검은 연기가 솟구치는 타 버린 땅 위에서 풍기는 매캐한 냄새가 더 신경이 쓰였다.
“마나도 없이…… 이런 게 된다고?”
상식을 무너트리는 광경.
이미 죽어 나자빠져 가루로 흩어지고 있는 마병들의 시체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혹시…… 그럼 황궁도?’
– 황궁의 경계 태세는 만전이다. 아무리 내통자가 있다고 가정해도, 네가 말한 재앙이 어찌 일어났는지 궁금할 정도로.
검제의 말이 불쑥 떠오르며 가슴속에 서늘한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왜 이 생각을 미리 떠올리지 못했을까.
‘아니지. 이 정도일 줄은 나도 몰랐으니까.’
직접 겪어 보지 못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
아니, 전생의 그라면 겪어 봤어도 무시했을 것이다. 오러유저한테야 마나도, 의지도 담기지 않은 물리적인 폭발은 하등의 충격도 주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마나의 잔향 한 점 풍기지 않는 폭발물이 황궁에 반입된다면?
마나유저나 마법사, 혹은 아티팩트만 경계하고 있을 황궁의 기사들이나 검제는……?
“빌어먹을! 통신구!! 통신구 어디 있어!?”
쾅!
몸의 충격을 애써 떨쳐 내며, 타이니는 관저의 문을 열고 뛰쳐 들어갔다.
“꺄악! 사, 살려……!”
“통신구 어딨어, 통신구!!”
“그, 그런 건 모……!”
“총관이, 아, 아니 임시 성주가 알 겁니다!”
성안의 사람들을 추궁해 봤지만, 난데없이 벌어진 재앙 같은 사태에 겁을 잔뜩 먹은 사람들에게선 별 소득을 얻을 수 없었다.
결국 타이니는 곧장 대전으로 달려 나갔다.
쾅!
커다란 문을 박살 내며 들어선 대전.
“……히, 히히. 펴, 평등 만세.”
그곳에는 정신이 나간 듯 입가에 침을 흘리는 미친놈 하나가 부서진 검은 구슬을 짓밟으며 헛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눈이 돌아간 채로 입가에 거품까지 물고 있는 것이, 누가 봐도 맛이 간 것 같았지만.
“정신이 나갔으면 다시 돌아오게 만들면 되지.”
타이니는 이럴 때 적격인 치료법을 알고 있었다.
까드득.
이를 간 타이니가 이름 모를 놈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대로 따귀를 올려붙였다.
짜악!
“정신!”
쫙!
“차려!”
쫙!
“안 차리면!”
짜아악!
“이대로 패 죽인다!”
짜아아아악!
거세게 따귀를 올려붙일 때마다 좌우로 이빨이 튀어 나가는 것도 개의치 않는 과격함.
이미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얼굴이 일그러진 놈이 타이니의 살기에 노출되어 벌벌 떨기 시작했다.
“당장 말해! 통신구 어딨어!!!?”
진짜 혼이 나갔다면 모를까, 그저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방어 기제로 넋을 놓아 버린 것뿐이라면…….
“이, 이런 시골 영지에는, 그, 그런 거 어, 없습니다.”
이렇게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 곧 정신을 차리기 마련이다.
다만, 놈이 내놓은 대답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 진짜냐?”
“예. 예. 예. 흐, 흐으. 사, 살려…….”
극도의 공포와 폭력 속에서 약하게나마 이성을 찾은 놈이 눈이 반쯤 돌아간 채로 입에 거품을 물었다.
경험상 이런 상태에선 절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결국.
“제에에에엔장!”
타이니는 다시 내성 밖으로 미친 듯이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 돌아가야 해! 아직 안 늦었어. 결혼식 전에만 가면…….’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 크르르. 컹!
역소환의 여파 탓에 당장은 월랑의 소환이 불가능했다.
“아, 빌어먹을!”
신경질적으로 소리친 타이니는 관저 밖에서 뒤늦게 몰려온 일단의 무리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거기 너희들!!”
이십여 명에 달하는 기사와 수백의 병사들.
낭패한 몰골의 타이니를 마주한 그들은, 압도적인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주춤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난장판이 된 내성 앞마당에, 그 소란을 만들어 낸 한 사람.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는 것은 그에게서 스산하게 퍼지는 살기만으로도 알 수 있었으니까.
“너, 내려.”
“……예?”
“말에서 내리라고!”
“예에? 무, 무슨 소리를?”
“시끄럽고, 반역자로 즉결 처분하기 전에 말 내놔!!”
선두에서 가장 큰 말을 타고 있던 기사는 심령을 자극하는 살기에 자신도 모르게 말에서 내렸고.
히이이이이이이잉!
주인이 아닌 기수를 거부하려던 말은.
“뒈지기 싫으면 달려라!”
본능을 압도하는 살기에 부르르 떨면서 억지로 조금씩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내.
“달리라고!”
두두두두두두.
점차 빨라지기 시작한 말은 이내 내성을 지나 외성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대체 뭐야.”
“무, 무서워.”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악마추종자들에게 홀렸다가 광기 어린 기사의 협박을 마주한 남은 이들.
그들은 박살이 난 내성 안에서, 그 기사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