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08
107. 이상한 기세 싸움 >
태주의 분장실에 따지러 갔던 이세하는 혼이 나간 모습으로 돌아왔다. 같이 갔던 매니저와 코디네이터는 없을 줄 알았던 고양이가 거기에 있어서 그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고양이는 없었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후배 이태주의 모습만 가득했다. 깔끔하게 올린 머리, 몸에 딱 맞는 남색 슈트 그리고 굽이 있는 구두까지. 마치 그 혼자만 드라마가 아니라 화보촬영 중인 것처럼 보였다.
‘이태주 키가 몇이었지? 187? 구두 굽이 4? 5? 그럼 190이 넘는다는 소리잖아.’
“언니. 그 구두. 그 구두 있지? 14cm 금색. 그거 줘봐.”
“14cm? 이제 10cm 넘는 거는 안 신는다며?”
“지금 그게 문제야? 이태주랑 마주치는 장면인데. 이러다 나 화면에 안 나오겠어.”
“푸흡. 그, 그래. 찾아줄게.”
안 그래도 생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리딩 현장에서 봤을 때, 분명 민낯이었는데 잡티도 주름도 하나 없었다. 맑고 깨끗한 피부에 건강한 혈색이 도는 얼굴이 조막만 했다. 같은 화면에 잡히면 자신이 대두로 보일까 걱정될 정도였다.
“언니 옷도 바꿔. 이런 거론 안 돼. 좀 전에 봤지? 지금 이대로 나가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비교당해.”
“그 정도는 아닌데….”
“아니기는! 지금 여배우도 아니고 남배우랑 얼굴로 비교되게 생겼단 말이야.”
다른 때보다 더 까칠한 이유가 있었다. 이세하는 귀여운 외모 덕에 인기를 얻었지만,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했다. 성형을 바라는 그녀를 회사에서 나서서 못하게 말리는 중이었다.
평범한 연기력의 그녀가 조연이나마 계속 방송에 나올 수 있던 것은 귀여운 외모 덕이었다. 그걸 망치는 순간 그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배우가 될 것이다. 그걸 이세하 혼자만 모르고 있었다.
이번 드라마에선 미모로 그녀의 콤플렉스를 자극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그 부분은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말도 안 되게 남자 배우와 미모를 경쟁하고 있었다.
성별도 나이도 달랐다. 연기력은 스타일이 너무 달라 비교하기 힘들었지만 단순하게 말해도 차이가 심했다. 결정적으로 상대 배우는 이세하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녀 혼자만 신경 쓰는 중이었다.
“정말 그 옷 입을 거야? 패턴이 너무 과하다며?”
“옷에라도 힘을 줘야지. 대체 그 얼굴에 왜 배우를 해? 미쳤데? 모델이나 할 것이지.”
옆에서 옷 입는 것을 거들어주던 코디네이터는, 연기를 잘해서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조심했다.
이세하 말대로 모델보다 잘생긴 게 맞았다. 하지만 태주가 연기 중일 때는 외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배역이 보여주는 이야기와 감정에 빠져서 외모는 신경 쓸 틈 없게 된다. 그런 연기력을 썩히는 게 더 아까운 일이었다.
“야!”
“네?”
“뭘 멍청하게 서 있어? 빈둥거리지 말고 가서 시간 좀 더 달라고 해.”
“네?”
“머리랑 화장 새로 해야 하는 거 안 보여?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
이세하의 매니저가 울상이 되어서 촬영 시간을 조정하러 갔다. 좀 전에도 허리가 아플 정도로 사과하고 왔는데, 또 사과하러 가야 했다. 매니저로 일한 일 년 사이에 평생 해야 할 사과를 모두 몰아서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진짜 때려치우고 말지. 더러워서, 정말.’
울상을 지었다가 씩씩거렸다가 감정이 널을 뛰었지만, 이세하의 매니저는 할 일을 잊지 않았다. 마주치는 스태프들에게 인사하며 AD를 찾아가 촬영 시간을 조정해 달라 허리를 숙였다.
*
촬영 스태프들 사이에 아기 귀신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지만, 태주 같은 배우들에겐 아직 소식이 들어가지 않았다. 대기실이 따로 있기도 했고, 그의 경우 휴식 시간엔 태산이를 산책시키러 다니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역시 그는 태산이와 주변을 돌았다. 촬영이 바로 이어질 줄 알고 의상까지 갈아입었는데, 휴식 시간이 생겼다. 이세하의 의상에 문제가 있어서 준비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듣고 태주는 바로 태산이와 나왔다.
“냐앙.”
“오늘은 길로만 가자. 옷 망가져.”
“냐아앙.”
“안 되는데. 너 또 나무 타려고 그러지?”
“냐앙.”
산책을 나오려 운동화로 바꿔 신었지만, 패딩 안에 옷은 그대로였다. 뛰거나 심하게 움직이는 일은 피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사정을 태산이 알 리 없었다.
태산이 쉬지 않고 냥냥 거리면서 울었다. 태산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곳은 낙엽이 가득 쌓인 곳이었다. 슈트 바지 때문에 데려가기 난처했다. 그가 주위를 둘러봤다. 차가 다니지 못하는 작은 샛길이었다. 수풀이 많이 우거져서인지 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어휴. 그럼 잠깐만이야.”
“냐앙.”
어깨끈을 풀어주자마자 태산이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다행히 길옆 우거진 수풀 속이 아닌 나무 사이로 숨었다. 그는 순식간에 나무 뒤로 숨었다가 다른 나무에서 나타나는 태산이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냥.”
“이야. 우리 태산이 닌자 같다. 이 나무에 숨었다가 바로 저 나무에서 나타나다니. 신기하다.”
“냐앙.”
“그런데 너 왜 이리 일찍 돌아왔어? 쉬 안 하고 왔어?”
“냥!”
날카로운 대답이 돌아오자 태주가 입을 삐죽였다. 일반 동물과 다르니 사춘기를 겪는 것도 아닐 텐데 너무 예민했다. 그래도 금세 다가와 얌전히 안기는 걸 보면 잠깐 사이 기분이 풀어진 것 같았다.
“그거 잠깐 나왔다고 발 더러운 거 봐라. 어휴 꼬질꼬질.”
“냥!”
‘놀리는 소린 귀신같이 알아들어요. 눈치도 빠르지.’
산책을 마치고 촬영장에 들어설 때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상기된 얼굴로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고 있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분장실로 가려던 태주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옆에 가는 스태프에게 이유를 물었다.
“어우. 여기 촬영장에서 귀신 나온대요.”
“귀신이요?”
“네. 그 일본 공포 영화 있잖아요. 고양이 소리 내는 아이 귀신 나오는 거요.”
“헉. 진짜요?”
공포 영화를 질색하는 태주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스태프의 얘기를 듣자마자 그의 팔뚝에 소름이 쫙 올라왔다. 그는 태산이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따끈한 체온이 느껴지자 한기가 가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들 좋아하고 있어요.”
“네? 귀신이 나오는 데 좋아한다고요?”
“에이. 아시잖아요. 귀신 나오면 대박 친다는 얘기요.”
“그거야 알지만, 그래도….”
귀신 덕분에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설명을 마친 스태프는 원래 가려던 곳으로 갔다. 태주도 현장 분위기가 좋아진 것은 반가웠다. 그건 좋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없을 때, 촬영하고 집으로 돌아간 후에나 귀신이 나오길 바랐다.
*
평소엔 북적거릴 일 없는 승마클럽의 로비에 사람이 가득했다. 스태프들은 촬영 준비를 마치고 얘기를 나누며 배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주와 그의 수행원 역할을 할 단역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쪽에 서서 상대 배우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로비를 나서는 태주와 들어서는 이세하가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을 찍어야 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엉키고 서로를 탐색하는 장면이었지만, 준비가 늦어지는지 여전히 맞은편 로비는 비어있었다.
“옷을 만들어서 입나? 왜 아직도 안 나와?”
“그러게요. 한 시간이나 더 줬는데…. 그런데 의상은 이미 다 정하지 않았어요?”
“다 정했었지, 아침에 확인도 했고. 갑자기 무슨 변덕인지.”
스태프들 목소리 사이로 감독과 조 감독의 말소리가 들렸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슬슬 짜증이 밴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전까지 분위기가 밝았는데 지금은 감독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태주는 이세하의 준비가 늦어져도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연기는 그럭저럭했지만, 배우 생활을 오래 할 사람은 아니었다. 회귀 전에 그녀의 이름을 들어보긴 했다. 기자들과 현장 스태프에게 무례하게 굴다가 어느 순간 사라진 이름이었다.
‘연예인 병 걸린 배우의 전형 같은 사람이었지.’
감독의 지시를 받은 스태프가 분장실을 한 번 더 다녀온 뒤에야 겨우 상대가 나타났다.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지만, 아직은 괜찮았다. 어렵지 않은 씬이니 실수만 없다면 시간 안에 찍을 수 있었다.
태주는 자신의 뒤에 설 단역들을 데리고 지정된 위치에 가서 섰다. 맞은 편에는 이세하와 그녀의 수행 비서 역의 배우가 자리를 잡았다. 양측이 제 자리에 선 것을 확인한 감독이 신호를 주었다.
‘셋, 둘, 하나. 너무 빠르지 않게.’
로비 중앙, 화려한 상들리에 밑에서 마주치는 씬이기 때문에 너무 빨리 걸으면 안 됐다. 하이힐을 신은 이세하의 속도에 맞춰줘야 했다. 태주가 천천히 하지만 시선을 똑바로 상대에게 두고 로비를 가로 질렀다. 그렇게 두 배우 일행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거기서, 오케이. 태주는 지금 속도 그대로 가면 돼, 괜찮아. 그리고 이세하 씨는 조금만 빨리 걸어주세요. 자아, 한 번만 더 가볼까요?”
“네.”
반가워하는 얼굴과 속내를 감춘 얼굴이 한 컷에 잡혀야 했다. 태주가 속도를 잘 맞춰주고 있었지만, 이세하 쪽 걸음이 너무 느렸다.
“야. 이태주. 너 다리 안 벌리지?”
“네?”
“키 큰 거 자랑해? 넌 어떻게 여배우에 대한 배려가 없어?”
“네? 이거 풀샷인데요?”
“이~씨.”
뒤를 따르는 수행원까지 전부 한 컷에 잡히는 씬이었다. 그녀와 두 사람만 잡히는 씬이라면 그녀 말대로 무릎을 굽히든 다리를 벌리든 해서 키를 낮춰주겠지만, 이 씬에선 무리였다.
이세하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성질을 냈다가 태주의 대답을 듣고는 팩하고 돌아섰다. 민망했는지 걷는 모습이 거칠었다. 높은 굽 때문에 조심조심 걷던 것은 이미 잊은 것 같았다.
그녀가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대리석 바닥에서 배우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사람들의 우려는 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쿵쾅대며 거침없이 걷는 이세하가 삐끗하면서 미끄러져 버렸다. 발목이 휙 비틀리더니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갔다.
“꺅! 꺅! 꺄악!”
“읏차. 잡았어요. 소리 좀 그만 지르세요.”
“흐어어엉. 엄마아.”
자기 혼자 성질 내다 자빠질 뻔한 이세하를 태주가 받아주었다. 뒤돌아 가는 모습이 영 불안해서 보고 있던 태주가 아니었으면 크게 다칠 뻔했다. 그녀는 많이 놀랐는지 자신을 받아준 태주를 꽉 붙들고 매달려서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와 달리 태주의 심경은 꽤 불편했다.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여 선배 배우에게 붙들린 것도 그렇고, 그녀가 슈트를 틀어쥐는 순간 경악하는 미나를 봤기 때문이었다.
이세하가 붙든 슈트는 이미 눈물과 화장으로 엉망이었다. 틀어쥐고 매달린 상태라 주름도 보기 흉할 정도로 졌다. 게다가 그녀는 원래 그다지 마음에 드는 상대도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빨리 떨어져 줬으면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스태프도 다른 사람들도 대성통곡하는 그녀를 그대로 보고만 있었다. 태주는 기울어진 몸에 힘을 줘서 바로 세웠다. 그리고 자신을 붙들고 늘어지는 배우를 바로 세우고 억지로 떼어냈다. 선배 배우에게 좀 무례한 일이지만, 그에겐 미나의 상태가 더 중요했다.
슬쩍 본 미나의 안색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것을 보니 슈트 가격이 그녀식 표현대로 살벌한 것 같았다.
이세하를 떼어낸 태주가 성큼성큼 걸어서 감독에게 다가갔다. 의상이 망가진 것은 망가진 것이고, 촬영은 지금 이 상태로는 무리였다.
“감독님, 저 의상 좀 갈아입고 올게요.”
“헛. 그, 그래. 어서 갈아입어.”
“네, 그럼.”
그가 분장실 쪽으로 움직이자, 미나와 견우도 바로 따라서 움직였다.
분장실에 도착한 미나는 억울한 표정에 할 말이 많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입을 꾹 닫고 바로 두 번째로 뽑아뒀던 의상을 찾아서 태주에게 건넸다. 불편한 상황이었지만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누나. 좀 전에 슈트요. 제가 살게요.”
“뭐? 말도 안돼. 이게 얼마나 비싼데.”
“괜찮아요. 안 그래도 마음에 꼭 들었었어요.”
“아니야. 그러지 마.”
“괜찮아요. 제 말대로 하세요.”
미나가 자신이 업체에 설명하고 세탁비만 내겠다고 얘기했지만, 태주가 말렸다. 업체에서 당장은 수긍하고 넘어갈지도 모르지만, 이런 일이 쌓이면 스타일리스트인 그녀가 일하는 데 방해가 된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이런 일의 처리는 깔끔하게 하는 게 좋았다.
게다가 더럽혀진 옷을 세탁하는 일은 그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원의 상점에 들르면 금세 해결될 일이었다. 세탁 불가능한 모피든 대형 카펫이든 태주에겐 상관없었다. 주문서 한 장이면 충분했다. 그러니 이런 슈트는 문제없었다.
괜찮다고, 좋아하는 브랜든데 협찬 끊기면 어떻게 하냐며 울상인 미나를 달래는 태주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하지만 견우의 품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본 태산이 눈빛은 다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끄러운 여자의 모습을 떠올리는 태산의 눈빛이 매서웠다. 평소 자신을 예뻐해 주는 미나를 괴롭힌 건, 그 시끄러운 여자가 분명했다. 태산인 미나와 태주를 괴롭힌 상대를 골려주기로 다짐했다. 물론 그 전에 잠시 할 일이 있었다.
“냐아앙.”
“어머머. 태산이 누나 위로해주는 거예요?”
“냐앙.”
태산이 메이크업 박스를 펼치는 미나의 다리에 붙어서 머리를 비볐다. 귀여운 목소리는 덤이었다. 사람들이 일할 때는 얌전히 기다리는 태산이 먼저 다가와 애교를 부리자 분장실 안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이래서 다들 반려동물을 키우는구나.”
어느새 미나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태산이에게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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