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1
10. 요정 희
며칠 만에 정원에 들어왔다. 입원해 있는 동안 몇 번이나 회복약을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갑자기 체력이 회복되면 의사나 다른 사람의 의심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물약을 챙겨갔었다. 매니저가 옆에 있어서 마실 수 없었는데, 운이 좋았다.
“이제 하루 남았네.”
상점에서 회복약을 한 병 사 마신 뒤에 텃밭을 돌아봤다. 랜덤 박스에서 얻어 심은 무지개 씨앗들은 이제 하루 뒤면 수확할 수 있었다. 기다리느라 진이 빠질 뻔했다. 100일, 실제로는 40여 일 정도였는데 다른 작물들을 빨리빨리 수확해서일까 기다리기 힘들었다.
“대체 뭐가 나올까? 몸에 좋은 게 나오려나.”
분명한 건 매우 비싼 게 나올 거라는 사실이었다. 100일을 키워서 수확하는 것이다. 다 자란 건 아니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만으로도 범상치 않다는 게 느껴졌다.
가장 기대하는 것은 잠자리 날개 같은 게 붙어있는 것이다. 혹시 요정이 태어나지 않을까 기대 중이다. 다른 것들도 모두 신기한 모습이었다. 성게처럼 가시가 달린 검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것도 있고, 해파리 같은 홀씨가 대롱을 빙글빙글 감싸고 돌고 있는 것도 있다. 모두 현실에선 본 적 없는 식물이다.
“오늘도 낚시하긴 해야 하는데, 자동 낚싯대 같은 건 안 올라오나.”
태주는 보름이 넘게 아무 수확도 없는 낚시에 질렸다. 황금 잉어는 고사하고 연못에 가득한 평범한 잉어도 한 마리 낚지 못했다. 잉어가 좋아하는 미끼를 끼워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태주의 어설픈 낚시 실력이 문제였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요새 태주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슬라임 합치기였다. 덩치가 작은 슬라임 두 마리를 한 공간에 넣고 버섯을 하나만 넣어준다. 같은 버섯을 먹은 두 마리는 한동안 서로 탐색을 하다가 하나의 슬라임으로 합쳐진다.
이 슬라임이 합쳐질 때 나는 소리가 아주 재밌었다. ‘푸등푸등’, ‘뿅뿅’ 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이 소리가 재밌어서 일부러 합치고 있었다. 물론 낚시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는 이유가 가장 컸다. 덕분에 슬라임 숫자가 줄어서 상점에서 사다 채워야 했다.
태주는 나무에서 딴 열매를 하나 씹으며, 모아 둔 슬라임 진액을 비료 재료 위에 뿌렸다. 벌써 여러 번 만들어 봐서, 비료를 만드는 손길이 익숙했다. 비료구덩이는 땅의 색이 조금 진해질 뿐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라서 정원 이곳저곳에 만들어 두었다.
묘목 상태로 심었던 나무들은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자랐다. 별 나무 묘목은 벌써 다 자라서 수확을 한 번 했을 정도였다. 별 나무 열매는 가루가 필요해서, 오두막 난로 앞에 바구니 째 놓아두었다. 수분을 날린 후에 가루로 만들 생각이었다.
어쩐지 농가에서 고추를 널어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바구니를 볼 때마다 움찔했다.
날개 달린 방문자를 받기 위한 트리하우스를 지을 나무는 아직도 자라고 있다. 정원 중앙에 있는 커다란 나무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 3층 높이가 될 때까지 키워야 했다. 정원에 방문할 때마다 튼튼하게 자라도록 물과 비료를 주고 있었다.
“태산이 데려올걸. 수확할 때 방해될까 두고 왔더니 아쉽네.”
재미없는 낚시를 안 하려고 이곳저곳을 둘러봤지만, 이미 태주의 손길이 필요한 일은 모두 끝낸 상태였다. 무지개 씨앗의 작물을 수확할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태주는 한숨을 내쉬고 낚싯대를 들었다. 태블릿으로 신나는 음악을 틀어 놓고 낚싯대를 연못에 던졌다.
밤이 새도록 낚시를 했지만 결국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태주는 정말 자신이 낚시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다른 방법을 고민해봐야 했다.
*
날이 밝았다. 태주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확의 시간이 돌아왔다. 태주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꾹 누르며 잰걸음으로 밭에 다가갔다.
밭에서 묘한 향기가 나고 있었다. 과일 냄새 같기도 하고 약초 냄새 같기도 한 향이 사파이어색 식물에서 나고 있었다. 실 같은 줄기가 수십 가닥 꼬여서 타래를 만들고 있는 식물이었다.
[밧줄 꽃(사파이어)] 사파이어와 같은 경도의 꽃으로 방어구를 만들거나 장식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꽃으로 방어구를 만든다는 거야? 대장장이 기술이 필요하겠네.”
가장 기대하고 있던 날개가 달린 꽃을 확인했다.
[요정 꽃] 요정이 태어나는 희귀한 꽃이다.첫 발견자의 소망을 이뤄준다.
“아! 소망을 이뤄준다고? 제한 없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한 값어치를 가진 꽃이었다. 그저 요정이 태어나는 것을 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는데, 소망을 이뤄준다고 한다. 여러 가지 소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태산이를 성장시켜 달라고 할까? 아니. 자연스럽게 성장해야지. 이건 패스.’
‘시간을 다시 돌려달라고 할까? 이젠 잃을 게 너무 많아. 이것도 패스.’
‘낚시 스킬을 올려달라고 할까?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아니다.’
태주는 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럽게 요정 꽃을 건드렸다. 꽃은 태주의 손이 닿자 파르르 떨리더니 봉우리가 열렸다. 반짝이는 가루가 봉우리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안녕?」
“안녕?”
「반가워, 네 소망은 뭐야?」
“혹시 이 정원에서 같이 살 수 있을까?”
「그게 네 소망이야?」
“응. 요정이 정원에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좋아. 네 소망은 이뤄질 거야.」
♩♬♪~~
음악 소리가 정원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리고 태주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생겨났다.
[요정이 정원의 관리자가 되었습니다.]“아!”
“안녕! 이름을 지어줘.”
“아! 희(喜). 희라고 하자. 기쁘다는 뜻이야.”
“희! 맘에 들어. 이제 나는 희야!”
희가 투명한 날개에서 반짝이는 가루를 뿌리며 태주의 머리 위를 날았다. 뱅글뱅글 돌며 태주에게 가루를 뿌려 주었다.
[요정의 축복을 받았습니다.모든 신체 이상이 회복됩니다.]
“태주, 회복되었어?”
“고마워. 다 나았어.”
희에게 상대를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회복 물약을 마셨는데도 아직 전부 회복되지 않았었나 보다. 태주는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희, 같이 작물을 수확하자. 신기한 게 많아.”
“좋아. 희가 도와줄게.”
희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작물을 수확했다. 희가 가진 관리자의 능력인지 태주가 수확하는 작물들을 바로바로 창고로 이동시켰다. 태주가 손수레에 얹어서 창고에 가져다 두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수확을 끝낼 수 있었다.
“태주, 이건 팔면 안 돼. 태주가 나중에 약을 더 잘 만들게 되면 꼭 필요할 거야.”
“그럼 그건 보관하기로 하자.”
“응. 이건 상점에 팔자. 연금술 기술이 없으면 쓸 수 없는 거야.”
“그래? 그럼 그건 팔자.”
수확한 작물들을 팔 것과 보관할 것으로 나눴다. 희는 관리자가 되면서 정원 사용설명서의 정보를 바로바로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궁금할 때마다 책 모양 조각상에 가서 알아봐야 했던 태주와 달랐다. 덕분에 빠르게 작물을 구분할 수 있었다.
작물의 반 가까이가 태주가 쓸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매우 고가의 작물이어서 상점에 팔기 위해 올려두었다. 예상한 가격에 판매된다면 정원을 호화롭게 꾸미는 것도 가능했다.
“태주, 부탁이 있어. 희가 살 집을 만들어 줘.”
“집? 오두막에서 같이 사는 것 아니었어?”
“아니야. 희는 중앙의 큰 나무에서 살 거야. 큰 나무에 희의 집을 만들어 줘.”
희가 도와주는 것에 비하면 어렵지 않은 부탁이었다. 당연히 들어줄 생각이다. 상점에서 요정의 집 레시피를 검색했다.
“이거. 태주, 이걸로 만들어 줘.”
희가 고른 집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침대 옆에 두는 협탁 만한 크기였다. 하지만 한 뼘이 채 되지 않는 희가 쓰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레시피와 필요한 자재들을 구매했다. 앞으로 희가 살 집이라, 레시피를 건네주려 하자, 희가 거절했다. 뒷짐을 진 채 날개를 파르르 떨더니, 집을 만들어서 선물해 달라고 했다. 태주는 부끄러워하는 희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뜨린 후 바로 레시피를 찢어 집을 만들었다. 희가 바라는 위치에 집을 설치해 준 후 환영 인사를 건넸다.
“희. 정원에 온 걸 환영해. 앞으로 행복하게 지내자.”
“고마워, 태주. 우리 행복하게 지내자.”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희와 같이 보내다 보니 시간이 아주 빠르게 지나갔다. 태주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현실로 돌아왔다.
*
띠링!
「태주, 잘 도착했어?」
“허. 메신저?”
「책 조각상을 이용하면 태주와 대화할 수 있어.」
「태주, 자고 있어?」
「이잉.」
‘희. 메신저를 처음 써봐서 늦었어. 미안.’
「괜찮아. 태주가 대답해줘서 좋아.」
태주가 현실에 있는 동안 희가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찮을 것 같았다. 메신저라니 상상도 하지 못했다. 태블릿에 어느샌가 아이콘이 생겨있었다. 중앙 큰 나무 아래 있는 책 조각상과 같은 모양의 아이콘이었다.
“아, 진짜. 상상을 뛰어넘는구나.”
유쾌한 아침이었다.
“냐앙.”
“알았어, 줄게. 기다려. 좀 더 식히고.”
*
Trrr~~
“네, 아침 먹었어요. 몸도 괜찮아요.”
– ···.
“아니요, 오실 필요 없는데. 네, 그럼 도착하시면 전화하세요.”
직접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는 매니저를 거절하지 못했다. 매니저가 해야 할 일이기도 했고, 걱정하고 있다는 게 목소리에서 느껴질 정도라 어쩔 수 없었다.
“이사하고 처음 맞는 손님이네. 다기라도 꺼내 놓을까.”
얼마 전에 구한 다기를 쓸 생각을 하니 매니저의 방문이 반가웠다. 콧노래를 부르며 다기를 꺼내고, 찻잎을 골랐다. 홍차를 마시지 않는 사람도 있던데 부디 매니저가 그런 사람이 아니길 바랐다. 물론 태주는 커피도 홍차만큼 좋아해서 커피를 내리는 일도 싫지 않았지만, 새로 산 다기를 개시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띵동!
“냐앙.”
벨 소리에 이어 태산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매니저가 쇼핑백을 든 채 서 있었다.
“빈혈에는 붉은 살코기가 좋다고 해서, 소고기 세트로 준비했습니다.”
“감사해요. 생각도 못 했는데. 하하.”
굳이 보러와야 한다고 하더니, 이런 걸 준비해 왔다. 희 덕분에 좋은 기분으로 아침을 시작했는데, 매니저님 덕분에 훨씬 더 좋아졌다.
“얘가 태산이군요. 세상에! 고양이가 맞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귀엽죠?”
“하하하.”
‘말 별로 없는 편인 줄 알았는데, 태산이 앞에선 다 저렇게 되는구나.’
소파 위에서 몸을 뒤집어 등을 비비는 태산이는 확실히 귀여웠다. 남색 눈을 반짝이면서 끈을 잡으려 앞발로 냥냥펀치를 하는 모습은 영상으로 남기고 싶을 정도였다.
다행히 매니저님은 홍차를 싫어하지 않았다. 홍차와 함께 내준 초코체리를 보고 굉장히 신기해했다. 진하고 씁쓰레한 홍차를 달콤한 초코체리와 함께 맛보고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접하는 보람이 있는 반응이었다.
“휴. 이건 정말 맛의 신세계입니다. 이 초콜릿은 처음 먹어보는데, 정말 맛있군요. 입이 호강했습니다.”
“회사로 다시 들어가시죠? 가실 때 한 상자 챙겨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는 맛이라, 염치 불고하고 챙겨가겠습니다.”
“하하하. 괜찮아요. 집에 여러 상자 있어요.”
초코체리는 정말 불호가 없는 물건 같았다. 태우도 그렇고, 매니저님도 그렇고. 태주는 정원에 몇 그루 더 심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회복이 굉장히 빠르신 것 같습니다. 안색도 돌아왔고, 움직임도 어제처럼 힘겨워 보이지도 않고요. 다행입니다.”
“젊으니까요. 아직 십 대입니다.”
“하하. 그렇군요. 그럼 이걸 전해 드려도 될 것 같습니다.”
매니저가 가방에서 꺼내는 봉투를 보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께가 그리 두껍지 않은 걸 보니, 오디션용 대본이거나, 시놉시스일 것 같았다.
“버스킹?”
“정한선 배우님이라고 우리 회사에 계십니다. 혹시 아십니까?”
“네, 그분 나오는 영화 많이 봤어요. ‘동물원’, ‘형사’, ‘살인자의 밤’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하셨잖아요.”
“잘 아시는군요. 잘 알려지진 않았는데, 연출도 하십니다. 독립 영화도 몇 편 연출하셨고요.”
“아! ‘시계탑’은 본 적 있어요. 굉장히 서정적이었는데.”
“보셨군요. 이건 새로운 작품 시놉시스입니다. 독립 장편입니다.”
태주는 견우의 설명을 들으며 시놉시스를 넘겼다.
가난한 가수 지망생인 주인공은 어느 날 헤어진 여자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부산까지 가는 길은 너무 멀고 주인공은 당장 먹을 라면 하나 살만한 돈도 없었다.
히치하이킹과 버스킹으로 우여곡절 끝에 부산에 도착하지만, 마주한 것은 헤어진 여자 친구의 결혼 소식. 처음엔 결혼식을 망치기 위해 숨어들지만,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축가를 불러준다.
“다 보셨습니까?”
“네. 이거 혹시 남자 주인공 역인가요?”
“네. 오디션 영상을 보시고 연락 주셨습니다. 기타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모습 보시고 마음에 드신다고.”
“와. 겨우 그것만 보시고요?”
마음이 급해 다가선 태주가 부담스러웠는지, 견우가 조금 몸을 뒤로 물리고 헛기침을 했다. 태주도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 자세를 바로 했다.
“오디션 보실 때, 김윤선 배우님이 계셨는데, 혹시 기억나십니까?”
“네, 대표님 바로 옆에 앉아 계셨어요.”
“그분이 정한선 배우님께 추천하셨다고 합니다. 두 분이 굉장히 친하시거든요.”
“우와. 그럼 오디션은 언제 봐요? 지정대본은요?”
“오디션은 보실 필요 없습니다.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면 바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네? 그게 가능해요?”
“같은 소속사니까요.”
“좋네요. 할게요. 하고 싶어요.”
견우는 우선 체력을 완벽히 회복하라고 신신당부를 한 후에 돌아갔다. 기분이 좋아진 태주가 돌아가는 그에게 초코체리 한 상자를 더 챙겨주었다.
‘잠깐. 남지혁이 이때 들어간 작품은 상업영화 아니었나? 뭐지?’
태주는 회귀 전 삶에서 독립 영화 주연으로 데뷔했었다. 시기도 작품도 달랐지만, 독립 영화로 데뷔하는 것은 같았다. 살짝 소름이 돋았다.
‘회귀도 했는데, 그보다 더한 일이야 있겠어.’
오디션도 없이 촬영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으니, 욕먹지 않게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어떤 곡을 연주하게 될지 몰랐지만, 기타를 연주하는 신이 많을 것 같으니 미리미리 연습을 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