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12
111. 태주의 일상 >
오전 중에 리딩, 메이크업, 촬영장 세팅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다. 그 후엔 계속 촬영을 이어간다. 배우도 스태프도 모두 이 일정에 맞춰서 움직일 예정이었다. 태주 역시 이 일정을 따르게 되었다.
오후 1시. 오전 일정을 마친 그가 박지헌과 얘기를 나누는 곳으로 견우와 미나가 왔다. 촬영장 밖에 쿠첼루스와 산이가 왔다는 연락을 받고 그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
“산이가 누구야?”
“친척 동생이요. 엄청 귀여워요.”
“그래? 지금 밥 먹으러 가지? 나도 가도 돼?”
“그래요. 어? 형 매니저님은요?”
“칼칼한 거 먹고 싶대서 다른 스태프랑 가랬어. 난 매운 건 별로라.”
박지헌까지 네 명이 산이와 쿠첼루스가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세트장 입구에 노란 모자와 부츠를 신은 산이가 쿠첼루스의 손을 붙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병아리같이 귀여운 모습이었다. 태주는 그 모습을 보자 한걸음에 달려가서 산이를 안아 들었다.
“에쭈.”
“하하하. 이제 이름도 잘 부르네. 산이 대단하다.”
“앙.”
사람들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 태주는 산이에게 폭풍 칭찬을 하고 있었다. 노란색이 너무 잘 어울린다. 우리 산이 서 있는 모습이 아주 당당하고 멋지다. 옆에서 쿠첼루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박지헌은 물론이고 견우와 미나도 산이를 처음 봤다. 회사에 데려왔었다는 얘기를 들어서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두 사람은 태주와 똑 닮은 산이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너무 닮은 모습에 혹시 아들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얘가 산이야?”
“앙.”
“하하하. 너랑 판박인데? 아니네. 산이 눈이 더 예쁘네.”
“보석 같지 않아요? 우리 산이 안 예쁜 곳이 없어요.”
“앙.”
팔불출이 따로 없었다. 일행은 음식점에 도착할 때까지 태주가 하는 아이 자랑을 들어줘야 했다. 자랑이라고 해봤자 사실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 체력이 좋아서 잘 논다, 정도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동생 자랑을 하는 한편 부드러운 목소리로 잠시 떨어져 있던 시간 동안 뭘 했는지 물었다. ‘앙’하는 대답밖에 돌아오지 않는데도 꿀 떨어진다는 말을 완벽하게 표현하며 품 안의 아이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태주가 안내한 곳은 흔히 먹는 삼을 넣은 삼계탕 외에도 녹두 닭죽이나 들깨 삼계탕도 메뉴에 있는 곳이었다. 아이인 태산이와 보양식이 필요한 쿠첼루스를 생각해서 일부러 고른 곳이었다.
음식 메뉴까지 예약해둔 덕에 자리에 앉자 바로 음식이 나왔다. 태산이를 위한 닭죽과 들깨를 좋아하는 미나를 위한 들깨 삼계탕, 박지헌 몫의 평범한 삼계탕까지 한 번에 음식이 나오자 다들 먹기 바빴다.
“물 먼저 먹고 먹자.”
“앙.”
“잘 먹네. 산아 죽 식을 때까지 여기 식힌 고기 먼저 먹자.”
“앙.”
죽을 앞접시에 덜어서 식히랴, 껍질을 벗긴 닭을 조각내서 입에 넣어주랴, 태주는 태산이를 챙기느라 바빴다. 자신은 먹지도 못하는데 계속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고기를 꼭꼭 씹어 먹는 태산일 보기만 해도 좋은지 줄곧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배우와 그 스태프라 그런지, 식사 중 나누는 대화의 주제도 드라마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새로 합류한 조연에 관한 얘기, 촬영 일정 조정에 관한 얘기 등이 주제로 올랐다. 그렇게 본인들 작품에 관한 얘기가 한 차례 지나가자, 자연스럽게 경쟁작에 관한 얘기가 주제로 올랐다.
돈을 엄청 들인 아스타의 성적이 어떨지부터 로케 촬영에서 문제가 있었다던데 기사가 안 나왔다더라 등의 얘기가 나왔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던 중에 태주가 사람들이 잊고 있던 얘기를 꺼냈다.
사전 제작이라 이제 거의 촬영이 끝났을 사극 ‘용좌’에 관한 얘기였다.
“그런데 다들 용좌를 무시하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어라? 그러네. 용좌도 하루는 겹치잖아.”
“네. 그쪽은 주말 드라마죠. 주말 사극.”
“어? 어라?”
“헐.”
한동안 스크린에서만 활동하던 배우 황석준의 7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이었다. 게다가 신조선 사또 전이 밀리면서 정통 사극의 부활을 알리는 첫 작품이 되었다. 공중파 주말 사극, 사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지금은 무슨 이유에선지 홍보를 자제하고 제작 발표회도 하고 있지 않지만, 본격적으로 홍보를 시작하면 아마 무섭게 화제를 집어삼킬 것이었다.
“정통 사극에 주말 10시? 휘유~. 이쪽도 만만치 않겠는데, 이거 사실 삼파전인 거 아니야?”
“음. 저흰 금.토라 하루만 겹치니 괜찮을 것 같은데요.”
“왜 주말 9시가 아니고 10시인 거야, 쳇.”
태주와 지헌의 대화 사이로 놀란 미나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태주도 견우도 말을 안 하고 있지만, 지금 언급하는 상대 드라마에 태주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태주야! 너 용좌 출연한 거! 네 출연분 더 노블레스랑 겹치지 않아?”
“아닙니다. 용좌가 1주일 먼저 방영합니다. 3화 초반 5분가량을 제외하면 괜찮습니다.”
“괜찮을 거예요, 누나. 광고 시간이 있어서 앞에 5분 정도는….”
사실 태주가 용좌 1, 2화에 출연하는 것은 오히려 더 노블레스에는 호재였다. 화제의 사극에 태주가 출연해서 받는 스포트라이트를 더 노블레스로 끌고 올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홍보는 없었다.
신조선 사또 전이 종영되면 바로 이어서 방영되게끔 짰던 스케줄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더 노블레스에 이점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조연 빠진 건 액땜했다 치면 되겠다. 하하하. 좋네. 잘 해보자.”
“네. 아스타를 확실히 눌러봐요.”
“얌.”
태주는 잘 식힌 닭 다리를 태산이 입에 대주며 박지헌의 의견에 호응했다. 사실 말만 박지헌에게 호응하고 있을 뿐 태주의 관심과 시선은 오로지 태산이에게 있었다. 조그만 녀석이 어찌나 야무지게 잘 먹는지, 먹이는 보람이 있었다.
“너랑 네 동생이랑 둘이 음식 CF 찍으면 그냥 바로 A급으로 올라가겠다.”
“킥. 우리 산이가 편식도 안 하고 잘 먹긴 해요.”
“앙. 빱.”
“오! 한 번 가르쳐줬는데, 그새 외웠네. 산이 똑똑하다.”
“앙.”
그는 다시 한 번 팔불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식사 시간이 끝나고 쿠첼루스가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태주가 내내 안고 있던 태산이를 그에게 안겨주었다. 아침엔 떨어지기 싫다는 듯이 칭얼댔었는데, 고기를 배부르게 먹자 잠이 오는지 얌전했다.
태주는 쿠첼루스에게 온몸을 맡기고 안긴 태산이가 눈에 밟혔다. 그는 잘 씌워진 모자도 다시 고쳐서 씌워주고 손도 잡았다 놓길 반복했다.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으로 둘을 보내지 못하고 붙잡고 있었다.
일을 끝내고 집에 가면 볼 텐데 참 유난이었다. 주변에서 그런 그를 보며 웃고 있었지만, 혼자 감상에 빠진 태주는 알지 못했다.
“형. 우리 실수 없이 찍어요. 힘내서 찍고, 일찍 퇴근해요.”
“어? 어. 큽. 그래, 그러자.”
“호호호.”
“푸흡.”
매우 알기 쉬운 또 다른 이유로 태주의 의욕이 불타올랐다.
*
정원으로 통하는 벽 전체가 유리로 된 공간이었다. 높은 천장에는 기하학적인 크리스털 상들리에가 빛나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엷게 광택이 도는 검은색 벨벳 소파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소파 위, 편해 보이지만 단정한 차림을 한 젊은 청년이 몸을 깊숙이 묻은 채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으로 주름 하나 없이 정돈된 옷을 입은 중년의 남성이 서 있었다.
“이 실장님. 내가 이 나이 되도록 회장님을 뵌 게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예요.”
“정확히 9번입니다.”
“그러니까요. 친자식인데 말이죠. 이 정도면 부자 관계라고 보기도 어렵지 않나?”
“….”
“유언장 공개할 때나 가볼래요. 임종 지킬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친부가 위중하다는 얘기를 들은 자식이 보일 반응이 아니었다. 청년을 연기하는 태주의 얼굴에는 만나지 못한 친부에 대한 원망이나 그리움 같은 감정은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순수하게 귀찮다는 얼굴이었다.
“아니다. 어차피 나한테 남겨줄 것도 별로 없을 텐데 그냥 이대로 돌아갈까?”
“도련님.”
“어차피 우리 여사님 이혼할 때, 내가 받을 거까지 다 받고 정리했잖아요.”
“아직 남은 게 많습니다. MH에는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더 많습니다.”
“흐응. 귀찮은데….”
이미 재산은 충분했다. 해외에서 자란 그에게 한국의 재벌이라는 신분이 가진 이점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살 생각이 없는 그에겐 더욱 그랬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자기가 내 형이라고 하던 사람이요.”
“최민권입니다.”
“최민권.”
이 실장이 알려준 이름을 따라서 발음해본 그가 몸을 조금 일으켰다. 좀 전 같은 귀찮아하던 얼굴이 아니었다. 호기심과 의문이 섞인 얼굴이었다.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푼 그가 이 실장에게 가볍게 물었다.
“최민권이 우리가 가족이라던데….”
“예?”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이 가족이 될 수 있지?”
“도련님께서 주식을 가지고 계시니까요.”
“흠. 역시 그렇구나.”
다시 흥미를 잃은 표정이 된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 실장이 바로 곁으로 붙었다.
“컷! 오케이.”
박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바로 나왔다. 박 감독은 태주의 과하지 않으면서도 확실하게 전달되는 표정 연기를 마음에 들어 했다. 좀 전의 촬영에서도 미세하게 찌푸렸다가 바로 표정을 푸는 게 좋았다며 칭찬했다.
“으앗. 머헤요?”
“너 이걸로 퇴근이지?”
“넹. 나져요. 아포여.”
“미안. 그런데 너 진짜 표정이 다채롭다.”
자기 촬영 순서를 기다리다 박 감독의 뒤에서 태주의 미세한 표정 연기를 지켜본 박지헌이었다. 그는 몸 쓰는 것만큼이나 자유롭게 얼굴 근육을 사용해서 표정을 만들어내는 태주가 신기했다.
신경질적으로 확 눈썹을 올리는 게 아니라, 미세하게 올렸다 내렸다. 또 평소 웃을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촬영 중에 웃을 때 입가에 작은 주름이 드러나게 했다. 작은 주름 하나로 평소보다 짓궂어 보이는 얼굴이 되었다. 얼굴에 드러낸 이 모든 변화가 매우 자연스러웠다.
신기한 마음에 태주의 얼굴을 주물러봤지만, 어떻게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로맨스 연기가 약한 편인 박지헌은 태주처럼 섬세한 표현이 가능한 얼굴이 매우 부러웠다. 지난번 드라마에서도 그렇더니,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너 나중에 로코 찍으면 진짜 대박 나겠다.”
“로코도 찍고 액션도 찍고 해야죠.”
“그래.”
“전 이만 퇴근해요.”
“오야. 가라.”
박지헌에게 볼이 붙들린 채로 모니터링을 마친 태주가 퇴근을 서둘렀다. 집에 가는 중에 들를만한 디저트 가게를 떠올려본 그가 견우에게 조금 돌아서 가자고 말하자 생각했다. 점심 먹고 돌려보낼 때 짠했던 마음에 뭐라도 맛있는 것을 사줄 생각이었다.
*
태주는 집에 가는 길에 유명한 베이커리 이름을 대며 들러달라 부탁했다. 시간이 아슬아슬했지만, 촬영을 조금 일찍 마친 덕분에 매장이 아직 열려있었다.
그는 태산이 이나타가 준 컵케이크를 잘 먹었던 걸 떠올리고 장식이 예쁜 컵케이크를 몇 개 골랐다. 미나와 견우에게도 한 박스씩 선물하고 두근대며 집에 돌아갔다.
하지만 집에 도착한 태주를 반기는 것은, ‘냥냥’ 거리는 고양이로 위장한 귀여운 호랑이 모습의 태산이였다.
“컥. 쿠첼 얘 언제 바뀌었어요?”
“점심 먹고 얼마 안 있어서 바뀌었습니다. 유아 시트에서 자는 게 불편했는지 바로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저가 편한 모습으로 있겠다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 에이, 얄미운 녀석.”
“하하하.”
“이건 저랑 쿠첼이 먹어야겠네요. 쿠첼 차랑 컵케이크 먹어요.”
태주는 기껏 챙겨온 간식은 나 몰라라 하고 공을 쫓으며 노는 태산이를 두고 차를 준비했다. TV를 켜놓고 쿠첼루스와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공놀이에 질렸는지, 태산이 그의 무릎 위로 올라왔다.
“냥.”
“다 놀았어? 사냥 놀이해 줄까?”
“앙.”
“어?”
태산이 등을 쓰다듬던 그의 손에 옷이 닿았다. 무릎에 올라온 녀석이 그새 아이 모습으로 바뀌었다. 변신한 태산인 몸을 들썩이며 컵케이크에 손을 뻗었다. 떨어질 것 같은 아이 몸을 태주가 손으로 붙잡고 물었다.
“산아, 너 혹시 컵케이크 먹으려고 변한 거니?”
“자, 여기. 잘 잡아.”
“앙.”
태산이 호랑이 모습일 때는 주는 음식을 조심했지만, 산이 모습일 때는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달라는 대로 줬다. 아마 지금도 산이 모습이라면 컵케이크를 먹을 수 있겠다 싶어서 바뀐 것 같았다.
“쿠첼. 얘 아무래도 그런 것 같죠?”
“하하하. 네. 먹을 때는 산이로, 놀 때는 태산이로 바꾸는 것 같습니다.”
“아이고 머리야. 이 녀석이 똑똑한 건 알지만, 이건 좀.”
“하하하.”
컵케이크를 다 먹자, 다시 호랑이로 변해서 공을 몰고 다녔다. 그 모습에 태주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이로 변해서 먹었다해도 음식이 전부 소화된 건 아닐 텐데 바로 호랑이 모습으로 변해도 괜찮은 건지, 하루에 몇 번씩 몸을 바꿔도 문제가 없는 건지 걱정됐다.
“얘는 참. 호랑이여도 사람이어도 걱정되게 하네요.”
“하하하. 변덕스러운 것은 원래 본성이지 않습니까.”
“에효.”
변덕스러운 호랑이와 함께하는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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