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13
112. 열 받은 우 팀장 >
촬영이 이어지는 동안 가끔 쿠첼루스가 태산이를 데리고 점심을 같이 먹으러 왔다. 그는 그때마다 태산이를 안고 다녔다. 그러니 인터넷에 이런 기사가 올라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배우 이태주 숨겨둔 아들] [속도위반? 십 대에 낳은 아들] [비공개 결혼 아이는 십 대에]연예란 뉴스에 뜬 기사를 보던 우 팀장과 김 실장은 혀를 찼다. 트리즈에 문의 전화 한 통만 했어도 저게 모두 헛소리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기자라는 작자들이 참 한심했다.
“버젓이 안고 다니는데 숨겨둔 아들은 무슨.”
“저 사진 그 사진 아니야?
“맞아요. 저번에 파파라치가 가져왔던 거에요.”
“허, 참나.”
두 사람은 특종이라며 올라온 기사를 보면서 얼마 전에 받았던 파파라치의 제안을 떠올렸다. 태주가 산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정면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걸 큰 비밀인 양 트리즈에 팔겠다고 거래를 제안했다. 당연히 이미 산이의 존재를 알고 있던 회사에선 거절했다.
파파라치의 수완이 좋았는지 트리즈에서 사지 않은 사진을 한 미디어에서 사서 특종으로 기사를 올렸다. 그리고 다른 미디어에선 그걸 그대로 복사한 기사를 썼다.
“앞으로 이쪽이랑은 인터뷰 잡지 말아야겠네.”
“원래 잡을 일도 없었잖아. 거기 친 LT 성향 미디어라.”
“그렇긴 하죠. 그런데 우리 이 배우가 뭘 했다고, 저격 기사를 쓰고 난린지.”
“더 노블레스 견제하느라 그러는 거지, 뭐.”
소문대로 아스타에 밝혀진 것보다 문제가 더 많은 것 같았다. 해외 촬영장소 섭외 문제에 외주 업체와의 마찰까지 아스타가 기사화를 막은 일이 꽤 된다는 얘기가 돌고 있었다.
이미 처음 발표했던 200억은 훌쩍 넘긴 제작비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업계 관계자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 만약 작품의 퀄리티가 생각보다 못하다면 이렇게 타 작품을 견제하는 일이 말이 되었다.
“아무래도 아스타가 생각보다 못 나왔나 보네요.”
“그런 것 같아. 쉬쉬하는 중이긴 한데, LT 제작사 분위기가 안 좋긴 한 것 같더라.”
“방 CP, 아니 이젠 방 대표죠. 방 대표 첫 작품인데 어깨가 무겁겠어요.”
“그렇다 해도, 우리 태주 씨를 건드리면 안 되지.”
김 실장이 종이컵을 구기면서 이를 갈았다. 건드릴 사람이 없어서 앞날 창창한 우리 배우를 건드리냐면서 방 CP와 저격 기사를 쓴 미디어를 싸잡아서 욕했다.
“그런데 진짜 아들 아니야? 엄청 닮았던데.”
“친척이에요. 한국 국적도 아니고요.”
아이는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태주 외엔 돌봐줄 사람이 없는 상태였다. 우 팀장은 트리즈에 문의하는 미디어에 아이가 해외에서 태어났고, 보호자가 될만한 사람이 태주뿐이라 그가 맡았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기사화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공식 발표 같은 거 안 해도 되겠어?”
“그럴 필요까진 없죠.”
“팬카페는 난리더라. 숨겨둔 자식이 맞다 틀리다. 실망했다, 탈퇴한다. 아주 난장판이야.”
“숨기긴 뭘 숨긴다는 건지…. 아이 안고 이곳저곳 잘 다니시던데요.”
“애초에 숨길 거면 그런 사진이 찍히지 않았겠지.”
공식 발표까진 하지 않기로 했지만, 간단한 입장표명은 필요했다. 회사에선 태주의 SNS에 짧게 언급하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지금 김 실장과 우 팀장이 기다리는 것도 태주가 직접 올리기로 한 멘션이었다.
“올라왔네요.”
“어디 보자. 안녕하세요. 이태주입니다. …우 팀장.”
“음. 네.”
“이게 입장표명 맞아? 순전히 동생 자랑밖에 없잖아.”
“그, 첫 문장에 친척 동생이라고….”
태주가 올린 입장표명에는 친척 동생이라는 짧은 소개 외에는 전부 동생을 자랑하는 글과 사진이었다.
입장표명 멘션 뒤로 올라오기 시작한 사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친척 동생인 산이와 반려동물인 태산이까지 셋이서 장난치고 노는 사진. 간식 사 먹고 마트에서 같이 물건을 고르는 사진까지. 사이좋고 다정한 모습이 찍힌 사진이 쉴새 없이 올라왔다.
“파파라치 사진 산 거기는 배 아프겠네.”
“자업자득이죠. 호호호. 이 배우님 동생 자랑하고 싶은 걸 지금까지 어떻게 참으셨나 몰라.”
“하하하. 그러게. 밑에 코멘트도 괜찮네. 귀엽다. 사랑스럽다. 이런 말이 대부분이네.”
SNS에는 우 팀장의 예상과 조금 다른 멘션을 올렸지만, 팬 카페에는 제대로 된 영상을 올렸다. 산이를 품에 안은 태주가 친척 동생이라는 소개를 하고 얼마 전부터 같이 지내게 된 사정을 얘기했다. 영상의 마지막에는 지나가던 태산이도 출연시켰다.
영상을 올리자 팬카페의 여론이 잠잠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태주를 비난하고 비방하는 댓글은 달리고 있었다. 아들이라는 기사 역시 내려가지 않고 여전히 연예면에 올라와 있었다.
“끈질기네. 적당히 하고 내리지.”
“뭐 노리는 게 있으니 어쩔 수 없겠지.”
이미 실패한 저격 기사인데도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트리즈에서 기사를 내라라는 요청이나 정정하라는 요청을 하지 않으니 그냥 두는 것 같았다.
“그건 태주 씨 말대로 할 거야?”
“해야죠. 이제 3살이에요. 그런 어린 애를 욕하는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이래요?”
“가만 보면 태주 씨가 무른 성격은 아닌 것 같아. 아이 욕하는 사람은 기자고 뭐고 바로 고소하겠다고 나섰잖아.”
“평소엔 순하잖아요. 문제도 안 일으키고. 원래 그런 사람이 화나면 더 무서워요.”
산이에 관해 비방하는 기사를 쓴 기자나 댓글을 단 사람에게 태주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상대 기자에게 정정기사 같은 걸 요청하지도 않았다. 소속사와 얘기한 후에 바로 고소를 진행해 달라 부탁했다.
댓글을 단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합의나 훈방 조치 같은 걸 바라지 않았다. 단돈 몇만 원의 벌금이라도 내길 바랐다.
“인생은 실전이지, 뭐.”
“그렇죠. 증거도 확실하게 잘 모아두셨고요.”
“같이 사는 그 외국인 양반이 모아놨다며?”
“네. 안 그래도 실장님한테 보여드릴 게 있었어요.”
“뭔데?”
쿠첼루스는 태주와 산이의 악성 댓글 캡처 외에 다른 자료도 건넸다. 김성진이 고양이를 유기했던 기사와 스태프에게 욕설을 뱉고 물건을 던지는 영상을 보내왔다. 또 그와 친한 연예인들의 메신저 내용이 담긴 사진도 있었다.
“헐. 그 양반 인도 출신이야?”
“네?”
“아니 일반인이 이런 자료를 어떻게 얻어?”
“이 배우님 얘기로는 천재래요.”
우 팀장도 기자 인맥은 충분했지만, 홍보팀을 이끄는 김 실장보다는 못했다. 그녀는 이 자료가 태주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쓰이길 바랐다. 아마 김도진 실장이라면 자료를 요긴하게 쓸 것이다. 아스타를 물 먹이는 데 쓰던 김성진을 물 먹이는 데 쓰던.
“흐흐흐. 온더탑이 거기 소속이지? 전에 태주 씨 욕하고 다니던 곳.”
“네. 오렌지 엔터요. 이 배우님 스카우트 못 한 화풀이로 욕하던 곳이에요.”
“좋아. 이건 내가 아는 기자한테 줄게. 그런데 그 외국인 양반 재주가 참 좋네.”
“어휴. 그보단 그 메신저 내용이요. 적당히 덜어내셔야 할거에요.”
“알아서 할게.”
메신저 내용에 마약을 가리키는 은어가 다수 섞여 있었다. 얼음이니 캔디니 하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 트리즈에는 그쪽으로 문제가 될만한 배우가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 등장하는 배우와 가수의 이름이 꽤 많았다. 연예계 전체로 마약 관련 문제가 커질 것 같았다.
“뭘 걱정하는지 알겠는데, 어차피 이런 건 언제든 터지게 되어 있어. 차라리 우리한테 유리할 때 터뜨리는 게 나아.”
“그게 지금은 아니죠.”
“맞아. 그건 좀 나중에. 하지만 이거, 김성진이 고양이 버린 거랑 매니저인가 코디인가한테 물병 던지는 영상은 지금이 딱 이야.”
“실장님이 알아서 써 주세요.”
“응. 근데 다시 봐도 이 외국인 양반 재주가 대단해.”
쿠첼루스가 모아준 자료의 충실함에 감탄한 김 실장이었다.
*
태주는 주변 상황에 신경 쓰지 않고 촬영에 집중했다. 어차피 제작진은 산이가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트리즈에서 나서면 금세 정리될 이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이렇게 화제가 된 걸 반기고 있었다.
“야. 이태주.”
“네?”
“네 고양이 왜 요새 안 데려와?”
“아! 촬영장이 번잡해서 방해될까 봐요.”
“흥. 조그만 게 방해는 무슨. 알았어.”
이세하가 며칠 이쪽을 계속 훔쳐보던 게 태산이가 궁금해서 그랬나 보다. 태주는 지난 촬영 때 둘이 많이 친해졌던 게 생각났다. 태산이 선물도 사주고 먹을 것도 챙겨줬었다. 그는 다음에 정원에서 피부 크림을 몇 개 만들어서 그녀에게 선물하자고 생각했다.
태주는 촬영 중에는 폰을 거의 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엔 촬영이 잠깐 멈춘 사이사이 폰을 확인했다. 쿠첼루스가 산이 사진을 보내주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영상을 보내 주는 날은 몇 번이나 돌려보곤 했다.
“태주야, 너 이세하랑 친하냐?”
“네? 그냥 그런데요.”
“그런데 왜 맨날 너만 보고 있어?”
“아! 전에 태산이 데려왔을 때 친해졌나 봐요. 좀 전에 왜 안 데려오냐고 묻고 갔어요.”
“그래? 뭐. 그건 그렇고. 너 용좌 쪽에서 연락받은 거 없어?”
용좌 제작진에게서 연락받은 게 전혀 없었다. 이제 며칠 뒤에 방영인데 제작 발표회도 아직이었다. 조연 출연이긴 하지만, 1화와 2화를 이끌어 나가는 주역이었다. 제작 발표회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 와야 정상이었다.
“전혀요. 제작 발표회를 방영 바로 전날 하는 일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미리 시간을 맞춰야지. 네 촬영 스케줄하고 겹치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니까요. 회사에서 물어봐도 계속 조정 중이래요.”
“그 새끼 때문인가?”
“네?”
박지헌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못 말했다면서 자리를 피했다. 이미 회사에선 용좌 제작 발표회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내린 상태였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언질도 주지 않는 곳의 사정에 모두 맞춰 줄 만큼 태주의 일정이 여유롭지 못했다.
‘그 새끼라. 황석준 말하는 거겠지?’
사실 태주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내막을 짐작하고 있었다.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용좌의 주연배우 황석준에게는 문제점이 있었다. 사실 연기실력에 비하면 문제도 아니긴 했다. 어느 집단이나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것이기도 했다.
‘대예종 출신 아니면 상대도 안 했지. 겸상도 안 하고.’
지금은 대놓고 비 대예종 출신을 차별하는 시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 뒤에 찍을 영화에서 투톱으로 섭외된 다른 배우를 무시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메이킹 필름에 찍히면서 문제가 된다.
이번 용좌의 제작 발표회 날짜가 정해지지 않고, 그에게 별다른 연락이 없는 것은 아마 그가 대예종 출신은커녕 대학교 문턱도 밟은 적 없는 고졸이기 때문일 것이다.
태주는 용좌 촬영을 모두 마쳤을 때, 만난 황석준이 불쾌해하던 표정을 떠올리고 얼굴을 굳혔다. 그 만남은 태주에게도 불쾌한 만남이었다.
*
당시 태주는 김지혁이 하차한 후에 합류한 새로운 호위무사역의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촬영 기간이 늘어지길 바라지 않아서 모든 신경을 그쪽에 쏟고 있었다.
지방 촬영이 그렇듯 촬영이 끝난 다음엔 스태프들이 술자리를 자주 가졌다. 처음엔 태주를 청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그의 촬영 스케줄이 빡빡한 것이 알려진 후로는 그를 찾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촬영을 마친 후에도 술자리를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서울로 올라가는 그를 배웅하려 A 팀 감독과 황석준 등의 배우가 일부러 찾아왔다. 그 술자리에서 황석준을 처음 만난 태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한 감정만 느끼다 일어섰다.
‘너 몇 학번이야?’
‘네?’
‘내가 98학번이거든. 넌?’
‘아, 저는 학교 안 다니는 데요.’
‘뭐? 너 대예종 아니야?’
황석준은 태주가 대예종 출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자마자 인상을 구겼다. 그리고 태주의 가득 찬 잔을 마시라고 재촉했다. 태주는 선배인 그가 계속 눈치를 주자 바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태주의 잔이 비자 바로 황석준이 입을 열었다.
‘일어나.’
‘네?’
‘새끼가 귓구멍이 막혔나. 거슬리니까 일어나라고.’
그때 잊고 있던 황석준에 관한 얘기가 떠올랐다. 자신과 같은 대학 출신과만 얘기하고 작업한다는 얘기였다. 그 기억을 떠올린 순간 태주 역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은 무표정이었지만, 태주의 눈빛엔 황석준의 편협함과 옹졸함에 대한 혐오가 그대로 묻어났다. 연기자인 태주이니 그런 혐오하는 눈빛을 지우려면 충분히 지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고, 황석준은 그 눈빛을 정면에서 마주 봐야 했다.
‘너 이 새끼….’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선. 배.’
깍듯하게 허리까지 숙여 가며 인사한 태주를 그가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다. 태주는 그대로 일어나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렸고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황석준과 다시 얼굴을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본성이 쪼잔하고 편협한 인간이 생각하는 게 뻔하지. 같은 무대에 서는 것도 스포트라이트를 나눠 받는 것도 싫다는 거겠지.”
아마 태주에게 제작 발표회 소식을 주지 않는 것은 황석준의 요구일 것이다. 사실 그는 별로 상관없었다. 용좌 1화, 2화의 주역은 자신이었다. 제작 발표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평가는 자신의 연기를 본 사람들이 해줄 것이다.
‘뭐 내가 신경 쓰지 않는 것과 별개로, 우 팀장님은 이를 갈겠지.’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우 팀장은 눈에 불을 켜고 이를 갈고 있었다. 용좌의 제작 발표회가 이틀 뒤, 첫 방 바로 전날로 잡혔다는 얘기를 제작사가 아닌 친한 기자에게서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추천한 드라마에서 태주가 또 홀대를 당한 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전화 몇 통으로 황석준이 문제라는 것도 알아냈다. 그 사실을 알고 그녀는 남몰래 작성하던 연예인 인맥지도를 확인했다.
인맥지도에서 황석준의 인맥이 모두 대예종 출신으로 채워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출연한 모든 작품의, 이번에 출연한 용좌의 감독까지 전부 대예종 동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체 왜 지금까지 아무도 이걸 알아차리지 못한 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우 팀장은 자신이 눈치챈, 작지만 구설에 오르기 딱 좋은 사실을 커뮤니티에 화두로 던졌다.
“노이즈 마케팅 신나게 해보시라고요, 황석준 씨. 노이즈 마케팅이 될지, 노이즈에서 끝날지 모르겠지만.”
경력이 긴 배우였다. 이런 일이 불과 태주 한 명에만 국한되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그에게 차별이나 무시를 당한 사람들이 나올 터였다. 우 팀장은 먹이를 던진 후, 피 냄새를 맡은 피라냐들이 몰려오길 기다렸다.
<